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70화 (70/624)

제70화

69화-철귀 (5)

삐걱댄다.

육체가 이리도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 얼마 만이지?

생각해 보면, 무공에 진지해지게 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조용히 숨죽여 지내면 사랑하는 사람과 이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현실이 그리 어설프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몇 년 전이었더라.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요 몇 년, 무공에 집중하면서 육체를 다루는 것에 익숙해졌다.

몸은 언제나 의도한 대로 움직였고, 한 치의 어색함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 몸이 너무도 어색하게 느껴진다.

몸 곳곳에 난 상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육체.

흘러나온 피가 옷을 적셔 천이 몸에 달라붙는 감각.

참으로.

“……좋지 않군요.”

나지막한 유예린의 목소리에 철귀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크흐흐흐, 암! 네년에게는 좋지 않고말고! 물론 나에게는 최고로 좋은 순간이니라!”

기쁨에 들뜬 목소리.

큰 목소리로 떠드는 철귀의 눈동자엔 뜨거운 열기가 일렁였다.

얻을 수 있다.

최고의 재료를!

“네년도 결국 정파 나부랭이, 자신의 동료를 베지는 못하는구나!”

그그긍.

철귀의 비웃음과 함께 자신의 창을 바닥에 끌며 서하영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본디 창이란 이렇게 좁은 복도에서 쓰기에는 매우 부적절한 무기다.

장점인 긴 길이가 오히려 큰 단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도 결국 재능의 영역이었던 건가.

‘말도 안 되게 뛰어나네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강하다.

좁은 공간을 역으로 이용해 창으로 벽을 만들어 내는 솜씨.

심지어 창의 아랫부분, 창끝으로 벽을 때려 그 반동으로 창의 속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선백창(旋百槍).

서하영이 무룡투쟁의 상품으로 받은 이 창은 창날은 물론이고 창대까지 금속으로 되어 있다.

그것도 탄성이 이상하리만치 높은 금속으로.

나무로 만든 창 부럽지 않은 탄성과 유연함을 자랑하는 창이다.

그렇기에 선백(旋百).

백 번 회전하는, 초속의 창.

‘그걸 제 눈으로 보게 될 줄이야.’

그것도 상대하는 입장으로.

작게 호흡을 가다듬은 유예린은 천천히 팔을 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예전 같았으면, 서하영을 전투 불능으로 만들어 버리고 단숨에 철귀를 노렸을 거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

간단하다.

할 수가 없다.

“……이래서 사람과 친해지는 건 별로 좋지 않아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유예린은 검을 들었다.

밝게 웃으며 자신을 향해 떠드는 서하영의 얼굴이 겹쳐진다.

자신과 친해질 만한 사람이라곤 홍유화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벽이 될 사람이 하나 더 늘었다는 사실에 기쁘면서도 한편 씁쓸했다.

그걸 이런 상황이 돼서야 아는 자신이 싫다.

이미 어긋나 자신의 마음조차 제대로 볼 수 없는 자신…….

‘천위.’

내 사랑.

이리 어긋나 버린 나에게 사랑을 알려 준 사람.

당신이 알려 준 사랑에 내 검은 무뎌지지만, 나라는 인간은…….

“잡념이 길구나!”

유예린의 생각을 끊고 한 줄기 철사(鐵絲)가 유예린의 팔을 스치고 지나간다.

좁은 복도를 가득 메우는 서하영이라는 든든한 방패.

그리고 그 틈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철사.

공방이 잘 어우러진, 상대하기 힘든 조합이다.

유예린이나 되는 사람이 이리도 고전하고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크흐흐흐흐, 곧이다! 곧이야!’

입꼬리를 비튼 철귀는 점점 더 피를 흘리는 유예린을 바라봤다.

모를 것이다.

이 철사에 독이 발려져 있다는 것을.

대단한 독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시원찮은 독이다.

허나, 그렇기에 쌓을 수 있다.

너무 하찮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의 독일지라도 상당한 양이 몸에 쌓이면 효과가 나타난다.

그러니, 차근차근 무너트려 주마.

그 육체는 사지가 멀쩡하게 가져가야 하니.

입꼬리를 비튼 철귀의 손이 부드럽게 움직인다.

철사를 조종하는 그의 독문무학.

이 신기(神技)에 가까운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그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 왔던가.

그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었다.

저 어린 계집이 아무리 이름이 높다 하더라도 자신의 공격이 이리도 잘 먹히지 않는가.

“크흐흐흐흐.”

나를 무시했던 그놈들.

나를 무시했던 무림.

모두 파멸로 향할 것이다.

내가 그리 만들 것이다.

공절괴괴(恐絶怪拐)의 유지를 이은 내가……!

“후.”

나지막한 한숨.

여태까지 유예린이 호흡을 크게 내쉬었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몇 번이고 있었던, 흐름에 들어가 있는 작은 행동.

하지만, 그 행동에 철귀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왜?

이 호흡이 뭐가 다르지?

뭐가…….

‘안도?’

그래, 그런 느낌이다.

확신이 들었다.

저 한숨에 담겨 있는 감정은 분명 안도다.

그렇다면 왜?

어째서?

이 상황에서 안도 따위를 하는 거지?

그럴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그 순간.

철귀는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한기에 자신도 모르게 움직임을 멈췄다.

서하영의 등 너머,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유예린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사랑은 인간의 검을 무디게 만들죠.”

담담하게, 자신의 검을 검집에 집어넣으며 유예린은 철귀를 바라봤다.

“검이란 결국 사람을 베는 무기. 사적인 감정은 검을 흔들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년이 대체 지금 무슨 소리를?

이해 못 할 유예린의 언행에 철귀가 미간을 찡그렸지만, 유예린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무인(武人)이란 그런 모순을 뒤엎는 자들.”

선천적 약자가 선천적 강자를 이긴다는 모순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해 온 이들.

후천적인 힘을 손에 넣으면서도 그들이 강자를 이길 수 있게 했던 요인인 오만을 얻지 않고자 했던 이들.

그들이 정파(正派)의 시작이다.

살육(殺戮)과 약탈(掠奪) 속에서 협(俠)과 의(義)를 외치며.

배신(背信)과 모략(謀略) 속에서 믿음(信)과 벗(友)을 말하는 이들.

그들은 모순에 스스로를 던진 어리석은 이들이자.

스스로 모순을 극복해 내는 현자다.

“제 감정은 제가 쓸 수 있는 방법의 개수를 줄일 뿐, 그 벽을 뚫을 수 없는 무딤을 만들어 내진 않습니다.”

그것이 유예린이 선택한 모순.

사랑이라는 목적 하나만을 위해 달리는 무인이 품은 모순.

감정에 휘둘리면서도 감정을 극복해 내기 위해 모든 것을 갈고닦는 무인의 모순.

서걱.

그 서늘하기 그지없는 눈빛에 철귀는 무언가가 베인 소리를 듣고 나서야 자신의 몸에 생긴 이상을 깨달았다.

없다.

없어.

수많은 시간을 자신과 함께한.

자신의 모든 것이 담긴 손이 하나 없었다.

꿀렁이며 흘러나오는 피가 너무도 비현실적이지만, 코끝을 찌르는 혈향이 지금 처한 상황이 현실이라고 알려 주고 있었다.

“이, 이 빌어먹을 년이이이이이이!!”

분노로 극심한 통증조차 초월해 버린 철귀가 괴성을 치르며 멀쩡한 오른손으로 철사를 조작했다.

동시에 철귀의 말에 호응한 서하영이 앞으로 몸을 날려 유예린을 압박한다.

허나, 그 모습에 유예린은 담담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역시 당신은 삼류로군요.”

약자가 강자를 이길 수 있는 후천적인 힘은 손에 넣었지만, 덩달아 얻지 말아야 할 것까지 얻었다.

착각.

스스로가 강자라는 착각에서 나오는 오만.

그 오만을 얻어 저리도 나약하게 변해 버렸다.

쾅!!

철귀의 몸이 포탄에 맞은 것처럼 날아간다.

그건 단 한 번의 후려치는 손짓이었다.

철귀의 뒤에서 오른손으로, 옆구리에서 위로.

그저 파리를 쫓듯 휘두른 단순하기 그지없는 손짓.

허나,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걸 막아야 할 왼손은 이미 땅에 떨어져 있었으니까.

“커헉!”

벽과 부딪히며 피를 토해 내는 철귀의 눈앞에 거대한 덩치의 남자가 뛰어가는 모습이 들어온다.

‘아까 그놈인가……!’

저 창을 든 여자를 납치할 때 있었던 거한.

하지만 대체 어떻게?

자신의 감각마저 속이고 이곳에 들어올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아니, 애초에 어떻게 이곳으로 들어온 것이지?

몇 개나 되는 입구 중에 대체 여길 어떻게?

[낄낄, 벽까지 넘으니 역시 못 갈 곳이 없구나!]

철백의 옆에 붙어 그를 이곳까지 안내한 암영의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암, 내가 벽을 마음대로 넘나드는데 눈에 훤히 보이는 철사를 따라가는 것쯤은 일도 아니지!

암영의적이 자화자찬에 빠져 흡족해하고 있는 사이, 철귀를 지나친 철백은 망설임 없이 서하영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창을 역으로 찌르는 서하영.

날이 붙어 있지 않은 창끝임에도 그 날카로움은 범상치가 않았다.

하지만.

“흡!”

최소한의 회피.

급소만을 피해 낸 철백은 몸으로 창을 맞아 가며 서하영의 등 뒤에 도달했다.

그리고 단숨에 끌어안는다.

“서 매! 진정하시오!”

양팔을 묶어 버리자 손목만으로 창을 움직이려 하는 서하영의 창을 어느새 접근한 유예린이 뺏었다.

“놀이는 여기까지예요. 서 소저.”

창을 꺼내 구석으로 던져 버린 유예린은 서하영과 철백을 지나쳐 이제 겨우 몸을 일으키고 있는 철귀를 향해 걸어갔다.

“철사를 통한 색적에만 익숙해지니 스스로 기척을 느끼는 능력이 부족해진 거예요.”

까득.

“인간이 통과할 수 없는 수준으로 철사를 펼쳐 놨다! 하물며 저 거대한 놈이!”

“철 소협은 저보다 유연한 걸요?”

유연하지 못한 몸은 힘을 받았을 때 망가져 버린다.

그걸 모를 리가 없는 철백이고, 천마다.

당연히 철백의 수련에는 유연성을 기르는 훈련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아마 천위의 친구들 중 가장 유연한 건 그일 거다.

게다가 철사의 위치까지 안다면?

통과하는 건 일도 아니다.

철백이 그 덩치로 철사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들어오는 걸 상상한 유예린은 피식 웃곤 다시 철귀를 바라봤다.

“자, 이제 상황은 충분히 파악했을 테니 순순히 협력해 주시죠.”

“……상황? 무슨 상황을 말하는 것이냐?”

헛웃음을 지은 철귀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무리다. 너희들은 나를 죽일 수 없어. 내가 죽으면 저년은 평생 저리 살 것이다.”

크흐흐흐, 특유의 웃음소리를 흘리며 철귀는 벽에 등을 기댔다.

“마교를 절반 가까이 먹어 치웠던 공절괴괴(恐絶怪拐) 무학이다. 그 정수를 저년의 머릿속에 때려 박았지.”

공절괴괴?

난생처음 듣는 명칭에 유예린이 미간을 찡그렸다.

“처음 듣겠지? 당연하다. 수백 년 전의 사람이니까. 그 무학은 사람의 뇌를 조종해 인간을 다룰 수 있게 만들어 주지.”

세뇌.

그 일종이다.

“원한다면, 만인지상의 위치에 서는 것도 가능한 그런 능력이란 말이다!”

광기까지 서린 철귀의 눈동자가 유예린을 응시한다.

“내가 직접 하나하나 조종해야 하는 꼭두각시가 아닌, 내 의도대로 움직여 주는 진짜 병사!”

광기에 휩싸인 그 눈동자를 마주한 유예린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래서 해제는 못 하겠다는 건가요?”

“크흐흐흐, 물론이다. 하면 내가 죽을 터인데 할 이유가 있느냐?”

“죽음이 축복이란 걸 모를 나이는 아닐 텐데요?”

“크흐흐, 섬서유가인가? 그것도 좋지. 섬서유가의 고문술을 이 몸으로 맛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광기.

고문이 잘 통하지 않는 이들은 하나같이 이런 눈동자를 하고 있다.

상황이 어려워지기 시작함을 느낀 유예린이 미간을 찡그리려는 그 순간.

“그럼 죽이면 되지.”

담담한 목소리와 함께 조금 둔한 걸음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설 공자!”

다가오는 이의 모습을 확인한 유예린이 방긋 웃었지만 이내 그 모습을 자세히 확인하곤 표정이 섬뜩하게 일그러졌다.

몸 곳곳이 망가져 절뚝이는 걸음.

흘린 피는 아직도 딱지가 지지 않은 채 옷을 적시고 있다.

누가 봐도 상당한 수준의 상처.

“아, 급하게 뚫고 온다고 좀 다쳤어.”

그 눈빛을 읽은 설천위가 어색하게 웃었지만, 유예린은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짝!!

단숨에 철귀의 뺨을 갈겨 버린 유예린은 그대로 검을 뽑아 철귀의 오른손을 잘랐다.

그 모습에 순간 쫄아 버린 설천위는 다급하게 유예린을 말렸다.

“그만! 죽이는 건 내가!”

유예린의 검이 멈춘 것을 확인한 설천위는 철귀의 앞으로 가며 스킬창을 열었다.

그리고 얼마 전 입관 시험 때 얻은 스킬 포인트를 과감하게 투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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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원패공(魂元覇功)이 3성으로 성장합니다.

지배 가능한 혼백의 숫자가 9로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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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천마한테 두들겨 맞으면서도 버틸 수 있나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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