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67화 (67/624)

제67화

66화-철귀 (2)

수련.

수련이란 무엇일까.

기술을 숙달시키는 것?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

가지고 있던 능력을 더 높은 단계로 올리는 것?

뭐, 아마 이것들이 무림에서 말하는 수련의 기본적인 정의겠지.

초식을 연마하고, 새로운 초식을 배우고, 익힌 초식을 더욱 발전시킨다.

자고로 무인이란 그런 목적을 가지고 수련을 하고, 그것을 위해 땀을 흘린다.

[그건 있는 놈들의 경우에 해당하는 소리다.]

천마는 이런 상식을 단호하게 부정했다.

이유?

간단하다.

저 상식의 기준이 되는 명문 정파는 제자를 가려 받기 때문이다.

기술을 갈고닦는 것만으로 육체가 그 발전에 따라올 수 있는, 그런 기본적인 재능을 갖춘 이들.

그들은 그저 고상하게 초식을 연마하고, 배우는 것만으로 성장할 수 있다.

강해질 수 있다.

그렇기에 굳이 고통스럽고 지루한 기초 단련에 큰 노력을 쏟지 않는다.

[재능이 없는 자는 그 누구보다 거대한 기초를 쌓아야 하는 법.]

설천위가 하루에 초식을 연마하는 시간은 2시간이 채 안 된다.

학업을 따라가기에도 벅찬 지금, 초식 연마에 모든 시간을 쏟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유? 간단하다.

남들은 그저 초식을 연마하는 것만으로도 육체가 충분히 성장하지만, 설천위는 아니니까.

“끄으으으읍!!”

[기초 훈련은 하면 할수록 좋은 것이다.]

설령 그것이 재능이 넘치는 이라고 할지라도.

허나.

[재능이 없는 이는 반드시 해야만 한다.]

“끄아아아아!!”

큼지막한 바위를 짊어진 채 앉았다 일어서는 것을 반복하는 설천위를 보며 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아주 좋다.

[검은 검 끝에서 완성되고 주먹은 손끝에서 완성되지만, 모든 무공은 하체에서부터 시작된다.]

수많은 무공을 쓸 수 있는 설천위라면, 그 육체의 기본이 되는 부분을 그 무엇보다 굳건하게 단련할 필요가 있다.

강철 같은, 아니 강철도 뛰어넘는 굳건한 하체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설천위는 대부분의 시간을 기초 단련에 힘쓰고 있었다.

[음, 재능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구나.]

기이한 회복 능력 덕에 하루 종일 기초 단련을 할 수 있었지만, 그 성장 속도는 더디기 그지없었다.

재능이 있기는 한데, 뭔가 어설프다고 해야 하나.

가볍게 혀를 찬 천마는 살짝 고개를 돌려 훈련장을 바라봤다.

‘이 아이 빼곤 재능 있는 애들만 있구나.’

한쪽에서 창을 수련하는 서하영.

그녀의 재능은 뭐 말할 것도 없다.

주먹을 쓰는 것에는 처참하리만큼 재능이 없지만 창을 다루는 것 하나만큼은 대종사의 자질이 보일 정도다.

거기에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단련된 육체까지.

아마 이 안에서 현재 가장 무난하게 강한 사람을 뽑으라면 그녀가 될 테지.

“흐으읍!!”

그리고 철백.

들어 올리는 무게가 그새 늘어났다.

설천위 같은 독특한 회복 능력이 없는데도 설천위와 거의 비슷한 시간을 기초 훈련에 투자하고 있다.

그 훈련을 몸이 따라가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놀라울 정도다.

물론 몸을 다스리는 내공심법이 그쪽으로 발전했으니 가능한 일이겠지만.

아마 지금 당장 서하영과 싸우면 승률이 반반은 나올 테지.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기대되는구나.’

이 무림을 뒤흔들 새로운 강자가 등장할 거다.

자신이 도움을 줬던 철백의 무공을 떠올린 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도를 한 손에 쥔 채 가만히 서 있는 소윤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천적인 병으로 하체는 일반인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아니, 아마 달리고 뛰는 건 일반인만도 못하다.

하지만.

[혜야, 힘내거라!]

저 주책 맞은 노인네가 죽기 전 자신의 내공을 전부 넘겨줬다.

아직 전부를 소화해 낸 건 아닌 것 같지만, 화경급 강자가 평생에 걸쳐 쌓은 내공을 품고 있다는 건 그만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막대한 내공을 품고 있다고 해도 검기를 날리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니까.

조부의 재능을 거의 그대로 물려받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터.

설천위와 비교하면 축복받았다고 말해도 마땅한 재능이다.

그리고 마지막.

[천무지체인가.]

훈련장 구석, 눈을 빛내며 사람들을 관찰하는 소년을 보며 천마는 담담히 그를 바라봤다.

하늘이 내린 무재(武才).

그 재능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다.

지금 앉아서 저리 지켜보고 있는 것만으로, 다른 이들의 기술을 전부 흡수할 수 있을 거다.

그런데, 참으로 기이하다.

저 재능으로 빛나는 아이조차 이곳에 온전히 따라 할 수 없는 사람이 둘이나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철백이다.

지금 당장은 저 주현운이라는 아이가 철백의 주먹을 따라 할 순 있을 거다.

하지만, 경지에 올라 철백이 자신이 원하는 수준에 도달했을 때.

저 주현운이라는 아이는 철백이라는 새로운 벽을 마주하게 될 거다.

그리고.

[놈! 힘이 풀렸다!]

“끄읍!”

다리를 부들부들 떨고 있는 이놈 또한, 저 주현운이라는 아이가 따라 할 수 없는 영역에 도달할 것이다.

무(武)와 영(靈)의 조합.

누구도 쉽사리 조합하지 못하지만, 조합해 내 그 끝에 다다르게 되면 어떤 존재가 될지 이미 이 무림이 증명해 냈다.

혈패황(血覇皇).

홀로 무림을 감당해 낸 괴물.

천마는 자신의 후배가 그에게 짓눌려 종속되는 것을 직접 보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그 후배가 약했었나?

아니다.

검의 극치에 이르렀다고 해도 좋을 영역에 오른 자였다.

그런데도 짓눌려 그에게 종속됐다.

물론 혈패황이 그를 온전히 다루진 못했지만 아마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그조차도 온전히 다뤄 내는 경지에 이르렀을 거다.

뭐, 사실 그렇다고 해도 설천위가 그와 같은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한다.

설천위와 달리 혈패황은 그야말로 재능의 덩어리 같은 인간이었으니까.

영적인 재능은 물론, 무(武)의 재능 또한 웬만한 천재를 발아래 둘 정도로 뛰어났다.

그러니 설천위가 그 경지까지 이르는 것은 힘들겠지만…….

그 근처라도 도달할 수 있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설 공자!”

잠시 상념에 빠져 있던 천마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훈련장으로 들어오는 유예린의 등장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그곳으로 쏠렸다.

“어머? 이분은?”

“소 소저의 친구입니다.”

“주현운이라고 합니다! 다음 학기부터 이 학관에 다니게 됐습니다!”

“어머, 환영해요. 저는 유예린이라고 해요.”

깍듯하게 포권으로 인사하는 주현운에게 포권으로 인사한 유예린은 빙긋 웃으며 몸을 돌렸다.

“설 공자, 약속을 기억하시죠?”

약속?

유예린의 한 마디에 모든 이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약속이라도 있나?

딱히 약속하는 걸 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그 생각은 설천위도 마찬가지였는지 설천위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는 순간.

구원의 손길이 그의 어깨를 부드럽게 쓸었다.

[네가 약방에서 구련초를 살 때, 작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에잉, 그건 말 안 해야 재미있는 건데.]

현태중의 도움에 감사한 설천위는 뒤에 이어진 암영의적의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소원, 벌써 말하게?”

그리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여유로운 얼굴로 대답했다.

물론 다리는 후들거리고 있었지만.

“후후, 기억하시네요? 슬슬 까먹으셨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유 매랑 약속한 건 절대 안 잊지.”

“흐음? 정말요?”

“무, 물론.”

“그럼 그때 한 약속도 기억하겠네요?”

그, 그때?

그때가 언젠데?

설천위랑 유예린이 알고 지낸 세월이 십 년이 넘어갈 텐데, 그때는 너무 광범위하지 않나?

설천위의 동공이 심하게 떨리기 시작한 순간.

유예린이 입을 가리며 웃었다.

“됐어요. 설 공자는 기억 못 하실 테니까요.”

“그게 무슨…….”

“그러니 일단 지금 기억하고 있는 약속을 지켜 주세요.”

“……알았어.”

고개를 드는 호기심을 억누른 설천위는 유예린의 말에 긍정하며 자리를 떴다.

“씻고 올게.”

일단 땀은 좀 닦아 내고 가야지.

* * *

“그래서 소원이 뭔데?”

날이 상당히 쌀쌀해진 덕에 나름 두껍게 옷을 입은 설천위는 옆에서 걷고 있는 유예린을 바라봤다.

“간단한 거예요. 사냥에 조금 도움을 주셨으면 해서요.”

“사냥?”

“네.”

사냥이라.

흠…….

“철귀(綴鬼)?”

“어머, 벌써 아시나요?”

알기야 알지.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가 철귀를 잡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치트캐를 이용하거나 미친 컨트롤로 직접 잡는다.

혹은 시간을 끌어 철귀를 잡을 수 있는 NPC를 기다린다.

물론 당연히 후자가 게임사가 의도한 공략 방법이겠지만.

게임에서 철귀를 잡기 위해 끌어들일 수 있는 NPC 중에는 유예린도 포함돼 있었다.

얼마 전에 설천운이 직접 와서 경고까지 했는데, 짐작을 못 하면 안 되지.

“그런데 내가 필요한가?”

“후후, 저는 설 공자랑 함께 있으면 힘이 나거든요!”

“……그럼 어쩔 수 없고.”

“후후후.”

잔뜩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유예린의 모습에 설천위는 결국 고개를 돌렸다.

겁나 예쁘네.

고개를 돌린 설천위를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던 유예린은 이내 설천위의 손을 잡고 그를 이끌기 시작했다.

“자, 시작해요.”

그리고 본격적인 나들이가 시작됐다.

철귀를 찾는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나들이는 꽤나 활기차게 이어졌다.

적극적으로 달라붙는 유예린의 모습에 설천위가 어색하게 떨어지려는 모습이 몇 번이고 반복된다.

“흐으응?”

“왜 그래? 서 매?”

“아뇨. 그냥 부러워서요.”

“뭐가?”

“……강철 돼지.”

“응?”

유예린과 설천위를 미행하던 서하영은 멍청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는 철백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왜 이런 놈한테 반해서…….

먼저 반한 놈이 진 거지, 뭐.

또다시 나오려는 한숨을 삼킨 서하영은 이내 다짐한 듯 철백의 곁에 붙었다.

차마 손을 잡진 못하고 거리만 좁히는 서하영.

어느새 살짝 붉어진 볼이 그녀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보여 줬지만…….

“음, 조금 외진 곳으로 향하는군.”

철백은 담담하게 앞으로 걸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솟구치려는 화를 겨우 삼킨 서하영이 철백을 붙잡으려는 그 순간.

끼릭.

무언가가 서하영의 손을 막았다.

게다가 입 또한 움직이지 않았다.

‘……아혈(啞穴)?’

언제?

순간, 서하영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완전히 제압당했다.

아무리 풀어진 상태였다고 해도 이렇게 은밀하게?

위험하다.

까드득.

단련된 근육이 억지로 몸을 비튼다.

몸을 속박하는 무언가를 부숴 버리기 위해 근육이 힘을 쓰는 그 순간.

“거친 계집이구나.”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서하영의 의식이 끊겼다.

그리고.

“서 매!”

닫히는 시야 속에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철백의 모습이 희미하게 일렁였다.

* * *

“공자, 왜 굳이 막내 공자를 찾은 것입니까?”

“응?”

함께하던 호위 무사의 질문에 설천운은 그를 바라봤다.

정말로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그를 보며 설천운은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왜? 천위는 그 녀석에게 안 노려질 것 같은가?”

“예. 그놈은 아주 기이한 놈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말한 걸세. 그 기이한 조건에 내 동생 놈이 들어가니까.”

아버지는 아무런 관심도 없지만, 장남인 그는 동생들에게 나름대로 신경을 쓰는 편이다.

까딱하다간 콩가루 집안이 되는 곳이 거대 세가니까.

“허나…….”

“섬서유가의 유예린과는 사이가 멀어진 지 꽤 되지 않았냐고?”

“예.”

“아니, 그건 자네가 몰라서 하는 소리일세.”

몇 번이나 마주한 제수씨를 떠올린 설천운은 어깨를 으쓱였다.

“아마 천위가 그 아이랑 헤어질 일은 없을 거야. 거기에 최근 화해도 했다고 하니, 같이 나들이 정도는 가지 않겠는가?”

“허면…….”

동생을 미끼로 쓴 거냐.

차마 그 말을 꺼내지 못하는 호위 무사를 보며 설천운은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미끼?

뭐, 쓴 건 맞지만.

그 제수씨가 당할 리는 없으니 문제는 없을 거다.

예상외의 일만 벌어지지 않는다면.

철귀(綴鬼).

꿰맬 철(綴).

사람을 이어 버리는 미친 종자.

그 주된 목표는 어린 남녀 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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