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화
64화-입관 시험 (5)
“흐으읍!!”
장정 서넛이 달려들어도 힘들 것 같은 나무 기둥을 단숨에 들어 올린 철백은 그것을 그대로 뒤로 던졌다.
쿵!
묵직한 소리가 땅을 울렸지만, 뒤돌아볼 생각이 없는 철백은 다시금 잔해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왕!]
“여기 있다는 거 맞지?”
[왕! 왕!]
헉헉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영락없이 사람 말을 알아듣는 모양새다.
듣자 하니 나름 영물 비슷한 거라고 하니 맞겠지.
고개를 끄덕인 철백은 다시 거침없이 손을 움직였다.
폭발이 터진 곳으로 바로 달려왔지만, 적의 잔당은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다.
근처에 있던 학생들이 제압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문제는 무너진 건물에 깔린 이들이다.
까득.
몇이나 살았을까.
거칠게 이를 악문 철백은 손의 속도를 더 올렸다.
철백만이 아니다.
이미 무너진 건물 잔해 위로 수많은 학생들이 잔해를 치우고 있었다.
“백 소저! 어디 있소!”
연인을 찾는 자.
“걸부 이놈아, 어딨냐! 썩 나와라!”
친구를 찾는 자.
“석 형!! 어디 있는 거요!”
가족으로 보이는 자를 찾는 자.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소중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잔해 속으로 욱여넣고 있었다.
피부가 까지고, 손톱이 갈라지고 있음에도 연신 손을 움직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건물 잔해는 끝이 보이질 않았다.
무너진 건물은 향화루(香華樓)라는 누각이다.
학생들의 휴식을 위한 찻집.
방학임에도 상당한 숫자의 사람들이 있었던 이유다.
아마 학기 중이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밑에 깔렸겠지.
여하튼 문제는 이 향화루가 무려 4층짜리 건물이라는 점이다.
사방이 탁 트인 형태로 짓는 누각이라는 특성을 감안해도 단숨에 무너진 1층과 2층에 있던 사람들은 엄청난 중량에 깔린 상태다.
거기에다 폭발음은 하나였지만 폭발은 한 번이 아니었던 듯, 거의 모든 나무가 박살이 난 상태다.
몇 개의 폭탄을 각 층에서 동시에 터트렸다는 증거.
‘이대로라면 늦는다.’
깔린 이들 중에는 무인이 아닌 자들도 있다.
이 향화루에도 점원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이 이상 속도를 올릴 방도도 없다.
그냥 후려 까면 되지 않느냐고?
그럼 구멍은 빨리 팔 수 있겠지만, 그 충격에 내부에서 그나마 희생자들의 숨구멍이 되어 주던 공간이 다 무너질 거다.
그렇게 되면 진짜로 끝이다.
그러니 이렇게 위에서 하나하나 해체해 나가는 방법이 가장 안전하다.
안전한데…….
‘너무 느리…….’
“아미타불.”
속에서 절로 끓어오르는 화를 삼키던 철백은 나지막한 염불 소리에 몸을 들었다.
그렇게 고개를 돌리자, 눈에 보인 건 무림학관 내에서도 가끔 보이던 이들이었다.
“소림?”
중소 문파나 가문들과 달리 구파일방은 무림학관에 적극적으로 학생을 보내지 않는다.
자신들의 역사에 자신이 있고, 그 안에서 꼭 배워야 할 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무림맹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은 유지해야 하니 일정 숫자의 제자들을 보낸다.
그 조건은 보통 두 가지 중 하나를 충족하는 것이다.
스승의 가르침 없이도 혼자 나아갈 수 있거나.
스승의 가르침을 전부 받아들였거나.
어떤 경우도 천재라는 말로 수식하기 어려운 경우다.
그렇기에.
“소승들도 미력하나마 힘을 더하겠습니다.”
고작 넷뿐인 소림승들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백도 따라가기 힘든 속도.
생각해 보면 여태까지 구조 작업에 참여하던 이들 중에 구파일방은 없었다.
물론, 구파일방이라고 해서 그렇게 특출 나게 구조를 잘하는 건 아니겠지만…….
‘다르군.’
품고 있는 내력이, 몸의 기본적인 움직임이 다르다.
학관 내에서 가르쳐 주는 무공은 기본 정도로만 배운다는 이들.
과연 그 이름이 왜 높은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왕! 왕!]
“음? 강아지?”
[왕!]
“……혹 이 밑에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까?”
[왕!]
거기에 강아지한테까지 존댓말을 하는 저 품격.
뭐냐, 쩌네.
아니, 근데 넌 언제 거기까지 갔냐.
나보다 걔들이 빨라서 거기로 간 거냐.
어느새 소림승들 옆에서 짖으며 사람의 위치를 알리고 있는 청랑을 보던 철백은 피식 웃곤 다시 잔해를 들어 올렸다.
어차피 한 사람이 이 밑에 있다는 건 알았으니 자신의 할 일은 그 사람을 구해 내는 것이다.
그리고…….
‘천위.’
혹 위험하면 잘 버티고 있어라.
여기 일만 마무리되면 바로 달려갈 테니.
* * *
진천뢰(震天雷).
그것이 무엇인가.
하늘의 우레를 담았다고 하여 이름 붙은 폭탄이다.
그 위력은 그야말로 경천동지.
하늘이 떨고 대지가 우는 그런 물건이다.
그런데.
그런데…….
‘그게 왜 거기서 나오냐?’
이를 악문 설천위는 진천뢰를 든 중패를 바라봤다.
아, 안 되겠네.
저거 죽음을 각오한 눈빛이다.
[함께 죽겠다는 심산이구나.]
천마의 보증까지.
이건 확실하네.
이걸 어떻게 한다?
지금이라도 사람들을 피난시켜?
아니, 그러기엔 너무 늦었다.
그렇다면…….
설천위는 자세를 낮췄다.
진천뢰는 격발형 폭탄이다.
특수하게 제작된 버튼을 특수한 방법으로 누르면 몇 초 뒤에 폭발.
너무 엄청난 위력의 폭탄이기에 그만큼 안전장치를 철저하게 해 놨다.
그런 설정이었기에 유저들도 상당히 긴 발동 시간을 납득했었지.
그러니 이건 여기에서도 다르지 않을 거다.
무엇보다 저 녀석이 곧바로 터트리지 않는 것이 그 증거다.
죽음까지 각오한 녀석이 무서워서 망설이고 있는 건 아닐 테니까.
그러니.
그 안에 해내야 한다.
누가 좋을까.
참수사신? 현태중?
능력상 가장 좋은 건 참수사신이겠지만…….
도(刀)가 없다.
참수사신 본인은 도가 없어도 저리 어설픈 놈이 쥔 진천뢰 정도는 그냥 베어 버렸겠지만, 아쉽게도 참수사신 본인이 아니다.
그러니 도(刀)가 필요한데 그게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연습용 도를 더 빨리 구했어야 했는데.
빌려 쓸 수 있다고 너무 안일했다.
이 일이 끝나면 바로 구해야지.
작게 한숨을 내쉰 설천위는 결국 두 번째 선택을 했다.
검은 차고 있으니까.
“아저씨.”
[알겠다.]
설천위의 부름에 현태중이 움직였다.
그리고 단숨에 설천위의 육체에 깃든다.
끼이이이익.
무언가가 비틀어지는 듯한 소리가 몸속에서 울려 퍼졌지만, 설천위는 이를 악물고 견뎌 냈다.
정신적 피로가 심하긴 하지만, 패융과 합체한 상태에서의 빙의에도 적응할 필요가 있다.
진짜 강한 상대를 만났을 때 필요하니까.
그러니…….
“훌륭하군.”
[훌륭하군.]
견뎌 내는 거다.
현태중에게 육체를 내준 설천위는 그의 거대한 존재감을 버티고 버텼다.
그리고 그런 설천위의 상태를 아는 현태중은 곧바로 검을 뽑아 중패를 겨눴다.
“빠르게 끝내지.”
[빠르게 끝내지.]
담담하기 그지없는 그 목소리에 중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오만하다.
자신을 상대로 조금 우위를 점했다고 저리도 오만하다니!
“네놈은 결코 살아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두 눈을 부릅뜬 중패는 손안에 있는 진천뢰를 바라봤다.
진천뢰의 특징.
복잡한 발동은 이 재앙을 억누르는 억제력이지만, 그것도 다 방법이 있다.
발동은 이제 곧 끝난다.
사전에 미리 발동을 조금 진행해 놓으면 훨씬 더 짧은 시간 안에 발동할 수 있다.
저 어린놈이 진천뢰를 보고 놀라는 걸 보니 조금 지식이 있는 것 같지만, 그래 봤자 고작 수박 겉핥기 정도의 지식일 터.
이제 이 진천뢰는 막을 수 없…….
서걱.
베였다.
왜?
마치 식칼로 무를 단숨에 베어 내는 듯한 시원한 소리와 함께 손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절단면에서 울컥 피가 솟아오른다.
뒤늦게 상황을 인지하고 나서야 강렬한 통증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 통증보다도 더 강렬하게 중패를 흔드는 것은 의문이었다.
“어떻게?”
“검수 앞에서 그리 손을 내밀고 있으니 베어 달라는 뜻인 줄 알았다만, 아니었나?”
[검수 앞에서 그리 손을 내밀고 있으니 베어 달라는 뜻인 줄 알았다만, 아니었나?]
아니, 미친놈아, 그게 왜 베어 달라는 뜻이야.
담담하게 헛소리를 지껄이는 모습에 속에서 울화가 솟구쳤다.
아니, 이게 이렇게 간단하게 처리될 물건이 아닌…….
서걱.
또다시 무언가가 베이는 소리와 함께 중패는 볼 수 있었다.
진천뢰를 감싸고 있던 자신의 손이 고기 조각이 되어 바닥으로 떨어진다.
안 된다.
이럴 순 없다.
그제야 뒤늦게 상황을 인지한 중패가 왼손으로라도 진천뢰를 쥐기 위해 손을 뻗는 순간.
“둔하군.”
[둔하군.]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중패는 손이 없는 자신의 왼팔을 바라봤다.
언제 베였지?
아니, 그 전에 이 손은 딱히 내밀고 있지도 않았는데?
이젠 억울하기까지 한 상황에서 끔찍한 고통이 밀려든다.
양손의 절단.
그 통증이 과연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인가.
모든 것이 실패했다는 절망과 함께 괴성을 지르려던 중패는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구나.
목도 베였구나.
천천히 떨어지는 시야 속 어느새 자신의 앞에 도착해 진천뢰를 집어 드는 상대를 보며 중패는 눈을 감았다.
‘이 세상에 올바른 정의가 서기를.’
* * *
“대단해……!”
자신의 대련이 끝나자마자 다시 담 위에 섰던 주현운은 오싹오싹한 느낌에 양손으로 팔을 비볐다.
말도 안 된다.
아니, 저게 가능한 건가?
할 수 있나?
아니, 할 수 없다.
최소 1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저것에 매달려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할 수 있다.
흉내 정도는 낼 수 있을 거다.
처음 살인을 목도한 충격?
그런 건 저 고고하기 그지없는 무(武)를 직접 견식한 충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두 눈이 별처럼 빛나기 시작한 주현운은 결국 참지 못하고 담을 넘었다.
“저…….”
진천뢰를 회수하고 남은 잔당을 제압하던 설천위는 접근한 주현운의 모습에 그를 바라봤다.
“뭐?”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아! 저는 주현운이라고 합니다!”
존경심이 흘러넘치는, 그야말로 별과 같은 눈빛에 설천위는 미간을 찡그렸다.
‘이 새끼, 왜 이래?’
설천위는 미간을 찡그린 채 주현운을 쓱 보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상관없나.
이 녀석도 기본적으로 선인(善人)이고.
“설천위.”
“설 소협이시군요!”
“그래그래, 그런데 왜?”
“존경스럽습니다! 조금 전에 보여 주신 그 검! 흔적조차 남지 않는, 아니! 흔적이 없기에 완성된 그 경이적인 검!”
뭐래.
[호오?]
[껄껄! 역시 다르구나. 제 몸으로 직접 쓰고도 느끼지 못하는 놈이 있는데 그걸 한 번에 보고 파악하다니.]
씁.
천마의 설명보다 현태중의 반응이 더 섭섭했다.
저 양반, 내가 수련할 땐 놀란 표정 하나 없었는데.
아니, 있긴 했지.
내가 더럽게 못 따라갈 때.
사람이 이런 것도 못 따라오는구나, 하고 놀라던 걸 본 것 같기도 하고.
“됐어, 존경할 필요 없어. 그냥 우연이니까.”
“우연이라뇨! 그런 검을 우연으로 쓸 수 있다면 누가…….”
“주현운!”
흥분해서 말을 이어 가던 주현운은 담 너머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죄송합니다! 아직 시험이 덜 끝나서 후에 찾아뵙겠습니다!”
“그래그래.”
훌쩍 담을 넘어 사라지는 주현운을 바라보던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이곤 하던 일을 마저 이어 갔다.
제압할 수 있는 놈들은 전부 제압했고, 죽일 놈은 죽였으니 이걸로 끝인가.
이제 문제는…….
“흠.”
이건데.
거의 발동 직전까지 간 진천뢰.
이걸 어떻게 진정시켜야…….
[왼쪽 아래에 있는 뿔을 좌로 두 번 돌리거라.]
“응? 알아요?”
[내가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그걸 모르겠느냐! 자, 어서 따라 하거라.]
아니, 그래도 아는 건 이상한데?
살짝 고개를 갸웃하던 설천위는 이내 어깨를 으쓱이곤 천마의 말을 따라 진천뢰를 정리했다.
그렇게 진천뢰까지 정리가 끝나고.
“씁, 튜토리얼 끝인가.”
튜토리얼이 끝났으니 이제 본편을 준비할 시간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