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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64화 (64/624)

제64화

63화-입관 시험 (4)

발이 무거워진다.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이 언제였던가.

그 옛날, 무림맹주를 마주했을 때?

무림맹의 주요 전력이라는 구단(九團) 중 하나의 단주를 맞이했을 때?

‘그럴 리가 없다!’

저런 애송이가 그런 실력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다.

괴물의 범주에 들어간 그런 초인의 영역에 들어갔을 리가 없다.

이를 악문 중패는 과감하게 땅을 박찼다.

갑작스레 변한 공기에 주춤했던 잠깐의 시간조차 부끄럽지만, 그런 부끄러움 따위 대업이 끝나고 느껴도 될 일.

지금 할 것은 이 무림학관이라는 가증스러운 위선자들을 벌하는 것이다.

각오를 다지고 땅을 박차는 중패를 보며 설천위는 주먹을 들었다.

무림학관에 쳐들어올 각오는 있다는 소리겠지.

“죽어라!!”

망설임 없이 장을 내지르는 중패를 보며 설천위는 주먹을 뻗었다.

그리고 그 순간, 중패는 볼 수 있었다.

순식간에 커지는 주먹을.

‘마, 막아야 한다!’

본능이 외친다.

막지 못하면 진다.

그렇게 느낀 순간, 설천위의 가슴을 뭉개기 위해 내질렀던 손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돌아왔다.

그야말로 살기 위한 발악, 본능.

그것들이 만들어 내는 방어다.

허나, 설천위의 주먹은 쾌속의 주먹.

이미 내질렀던 손을 회수하여 막기에는 너무나 빨랐다.

우득!

가슴뼈가 우그러지는 소리와 함께 중패의 몸이 살짝 뒤로 떠오른다.

주먹에 무게가 실려 있어서?

아니다.

그저 빨라서!

속도가 그 위력을 수배 배가시켜 만들어 낸 힘이다.

“커헉!”

피를 토해 내며 중패의 몸이 허물어진다.

[쯧쯧, 근성 없는 놈.]

그 모습에 혀를 찬 건 참수사신, 소백진이었다.

[나 때는 말이야. 갈비뼈가 폐를 찔러도 손을 움직였다, 이 말이야.]

[요즘 것들은 끈기가 없군.]

현태중 이 양반아, 넌 또 왜 거들고 있어.

‘라떼는’을 시전하는 두 꼰대들의 말을 대충 흘린 설천위는 앞을 바라봤다.

이제야 달리기 시작하는 이들이 눈에 보인다.

허나, 그 움직임이 너무도 느리다.

일류 혹은 이류.

무림학관에서도 중하위권 정도의 무력을 가진 이들.

이놈들이 대체 무슨 깡으로 쳐들어왔는지 모르겠다.

당장 저기서 심판을 보는 화영 교관만 해도 혼자 이들을 상대할 수 있을 터.

무엇을 믿는…….

[천위.]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주춤거리는 이들을 바라보던 설천위는 천마의 목소리에 다시 시선을 옮겼다.

“놈……!”

비척거리며 일어나고 있는 중패의 모습에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아무리 그래도 절정 고수.

일격으로 쓰러트릴 순 없겠지.

그렇게 다시 일어나는 중패의 모습에 설천위가 다시 자세를 잡는 사이, 중패는 이를 악물고 있었다.

‘왜 움직이지 않는 것이냐!’

빈틈을 찌르기 위해 달려들어야 할 녀석들이 땅에 발이 박힌 듯 움직이질 않고 있다.

왜?

설마 겁먹어서?

저 애송이 하나에?

움켜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린다.

숨을 크게 들이쉬자, 부러진 갈비뼈 때문에 아찔한 통증이 찾아왔지만 억눌렀다.

지금 중요한 건 그딴 게 아니니까.

“뭣들 하는 것이냐!!”

우렁찬 고함에 머뭇거리던 이들이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부르르 떨었다.

“도, 돌격하라!!”

그제야 자신들의 임무를 떠올린 이가 검을 뽑아 들고 외쳤다.

그리고 자신부터 달리기 시작한다.

동료들의 상황을 살필 정신이 없었다.

솔직히 지금 당장이라도 멈춰 서서 주저앉고 싶은 압박감이 몸을 휘감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앞만을 바라본다.

앞만을 바라보면, 견뎌 낼 수 있다.

달리자, 목표를 향해!

“쯧.”

그 모습에 가볍게 혀를 찬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패기 스탯은 아직 中上.

일류 고수를 완전히 찍어 누르는 건 불가능하겠지.

특수한 스킬의 도움을 받는다면 몰라도 아직은 무리다.

그러니.

이 직접 때려 부술 수밖에.

달려드는 적을 향해 설천위는 땅을 박찼다.

움직이기 시작한 일류 고수?

아니, 지금 상대해야 할 건 그게 아니다.

머릿수는 중요하지만, 무림의 전투에서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강자의 유무다.

단숨에 중패의 코앞에 도달한 설천위의 주먹이 그 턱을 후려친다.

겨우 내공을 움직여 목이 부러지는 것을 막아 낸 중패 또한 이를 악물고 손을 움직였다.

허나.

가슴을 노리는 우수는 몸을 옆으로 틀어 피하고, 머리를 노리던 좌수는 고개를 아래로 꺾어 피한다.

간결하면서도 확실한 회피 동작.

회피?

능숙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설천위가 대련 상대로 삼는 이들이 누군가.

천마, 현태중, 암영의적, 참수사신.

그 하나하나가 무림에 이름을 남긴 초인들이다.

그들과의 대련을 수도 없이 반복했는데, 이런 공격을 읽지 못한다?

아무리 설천위의 재능이 바닥을 기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이익!”

가볍게 자신의 공격을 피한 설천위를 중패의 눈이 따라간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피하며 자신의 왼쪽 옆구리로 파고드는 설천위가 고개를 쳐든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 눈을 마주한 중패는 이를 악물었다.

살기도, 독기도, 분노도 없다.

그저 담담하게 자신을 올려다본다.

전투 시작 전, 입꼬리를 비틀며 도발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냉정 그 자체.

빠각!

그리고 그렇기에 여전히 속도를 잃지 않은 주먹이 중패의 옆구리에 박힌다.

이를 악물어서 겨우 신음을 삼킬 수 있었지만, 고통이 등줄기를 타고 치솟는다.

그 고통을 감내하기 위해 숨을 들이켜는 순간, 중패는 깨달았다.

갈비뼈가 폐를 찔렀다.

확실하게 부러졌다는 소리다.

그 사실을 깨닫자 동시에 한 가지 감정이 가슴에서 솟구쳤다.

분노.

이딴 시설에 다니는 애송이한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있다는 자기혐오가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이럴 순 없다.

이럴 순 없는 것이다!!

두 눈을 부릅뜬 중패는 땅을 박차며 품 안에 손을 넣었다.

그 모습에 단숨에 따라잡으려던 설천위는 오히려 거리를 유지했다.

장법을 쓰는 이가 품에 손을 넣을 만한 이유는 몇 개 없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선택할 건…….

“암기인가?”

“쳐라!!”

설천위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은 중패는 어느새 상당히 가까워진 부하들을 향해 외쳤다.

“타앗!”

그리고 그 외침과 함께 지척에서 달려드는 기척을 확인한 설천위는 가볍게 혀를 차며 몸을 돌렸다.

뭐가 됐든, 저쪽은 할배들이 지켜봐 줄 거다.

이쪽은 눈앞에서 달려드는 놈들을 확실하게 정리만 하면 된다.

설천위의 주먹이 가장 먼저 달려드는 이의 턱을 후려친다.

설천위는 담담한 눈동자로 적들을 바라보며 주먹을 움직였다.

하나씩 확실하게 정리한다.

설천위가 달려드는 이들을 정리하는 사이, 천마의 눈은 여전히 중패를 향하고 있었다.

품 안에 손을 넣은 채 무언가를 망설이는 모습.

‘아군까지 휩쓸리는 종류의 암기인가? 혹은 독?’

뭐가 됐든, 확실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어떤 수를 쓰든 자신이 본다면 대응하는 데 늦지 않을 테니.

* * *

“승자, 주현운.”

“감사합니다.”

담담하게 승리 선언을 하는 화영을 향해 포권으로 예를 표한 주현운은 비무대에서 내려왔다.

잠깐의 소란이 있었지만, 주현운은 비무에서 담담히 승리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힘 조절을 하지 못해 단 한 수만에 기절시킨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궁금하네요.’

주현운의 시선은 그런 사소한 것을 담고 있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아까 누군가가 넘어간 담이다.

밖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이 너무도 분명해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간다.

그렇게 잠시 고민하던 주현운은 결국 담을 향해 걸어갔다.

어차피 실력은 보여 줬다.

다음 비무에서 실격패를 하더라도 합격은 확실할 터.

등급이 조금 낮게 나올지도 모르지만, 그게 뭔 상관인가.

올리고자 하면 얼마든지 올릴 수 있을 텐데.

그렇게 담 앞에 도착한 주현운은 가볍게 담을 박차 그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광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뒈져!”

호쾌하게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

덩치는 그리 크지 않다.

다만, 드문드문 보이는 근육의 밀도가 장난이 아니다.

거기에.

‘깔끔하네.’

자신이 보기에도 흠이 없는, 깔끔한 움직임.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오로지 저 움직임만 깔끔하네.’

속도를 내서 적과 싸우는 그 순간.

주먹을 내지르고 땅을 박차는 움직임은 깔끔하기 그지없지만, 드문드문 등을 노리고 들어오는 공격을 막는 움직임은 허술하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막아 내는 것은 속도를 활용한 전투를 할 줄 안다는 증거.

흥미롭다.

물론, 흥미로운 이유는 저것뿐만이 아니다.

“남궁세가? 아닌 것 같은데.”

전신을 오싹하게 하는 기묘한 공기.

그 공기의 근원이 저 남자라는 건 누가 봐도 명백했다.

대체 무슨 힘일까?

어떤 종류의 무학일까?

자신과는 다른 형태의, 자신은 전혀 모르는 무(武)를 품은 무인.

저 사람은 어떤 길을 가고 있는 걸까?

이 학관에 다니다 보면, 분명 만날 수 있겠지?

친해질 수 있을까?

친해지면 많은 것을 물어볼 수 있겠지?

작게 미소 지은 주현운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담에서 한 번 뛰어올랐다.

“주현운!”

“예!”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주현운은 다시 비무대 위로 향했다.

전투에 끼지 않는 이유?

간단하다.

딱히 도와줄 필요가 없으니까.

* * *

까득.

쓰러져 간다.

자신과 함께 정의를 세우고자 다짐했던 동료들이 하나씩 쓰러져 간다.

그렇기에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중패는 결국 소리를 질렀다.

“놈!! 어찌 우리의 앞길을 막는 것이냐!!”

“뭐래?”

폐가 찢어지는 고통조차 감내하며 외치는 그 울분을 설천위는 짜게 식은 눈동자로 받아쳤다.

“그럼 폭탄을 터트리고 싸움을 거는 놈들의 앞길을 막지, 선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앞길을 막으리?”

“우리가 하는 것은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이 가증스러운 무림맹과 무림학관의 이면을 네놈이 알고 있냐는 말이다!”

분노로 가득 찬 목소리에 설천위는 마지막으로 서 있는 이의 목을 후려쳤다.

“끄륵.”

피가래가 끓는 소리와 함께 무너지는 남자.

어느새 서 있던 이들을 전부 정리한 설천위는 조금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중패를 바라봤다.

“이면? 이며어어언?”

“이들의 무도함을 만인이 알고 천지가 알고 있다! 네놈도 정파의 협객이라면 응당 우리에게 협조해도 부족할 노릇이거늘!”

“아니, 넌 무슨 신박한 개소리를 그렇게 열심히 하냐.”

미간을 찡그린 설천위는 중패를 보며 혀를 찼다.

이면?

진실?

당연히 다 알지.

이 무림이 얼마나 썩어 빠진 곳인지, 외부의 시선에서 게임이라는 형태로 플레이한 설천위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제삼자의 눈으로 봤을 때, 이 무림에서 외치는 의(義)와 협(俠)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다.

그런데, 왜 가만히 있냐고?

음(陰) 속에 양(陽)이 있고, 양(陽) 속에 음(陰)이 있다.

절대적인 선(善)도, 절대적인 악(惡)도 없다.

토악질이 나는 악(惡)이 있으면 토악질로도 부족한 위선(僞善)도 있다.

절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선(善)이 있으면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픈 위악(僞惡)도 있다.

어떤 것도 흑백논리로는 정할 수 없는 것.

그것이 육도(六道)라는 게임 속에서 그려지는 무림이다.

그렇기에.

여섯 개의 길(六道).

플레이어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향해 나아간다.

“이 무림학관에 선량한 사람은 하나도 없냐? 너희가 설치한 폭탄에 악인만 죽었을 거란 보장이 있나?”

“…….”

“대답할 수 없지? 그것을 희생이란 이름으로 포장할 테니까. 그러니.”

담담하게 중패를 보며 설천위는 중지를 치켜세웠다.

“너 또한 악(惡)이지. 착각하지 마. 누군가의 목숨을 노리는 녀석은 전부 악(惡)이니까.”

선악이란 상대적인 것.

살인을 결심한 순간부터 설천위 또한 자신의 마음에 기둥을 세웠다.

“그러니 덤…….”

“어쩔 수 없군.”

당당하게 외치던 설천위는 품에서 손을 꺼내는 중패의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雷(우레 뢰)자’가 새겨진 철구(鐵球).

“……그게 여기서 왜 나와?”

진천뢰(震天雷).

무림 역사에서도 손에 꼽히는 엄청난 위력의 폭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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