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화
62화-입관 시험 (3)
“내일은 대련인가?”
소윤혜의 시험이 끝나자마자 훈련장으로 돌아온 철백은 설천위와 함께 훈련을 시작했다.
서하영은 소윤혜와 함께 내일 있을 시험 얘기를 하러 갔다.
“뭐 그렇겠지?”
“소 소저의 실력이라면 만에 하나라도 떨어질 일은 없을 테니 걱정은 필요 없겠군.”
그렇긴 하지.
다리가 약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소윤혜는 일류 정도는 그냥 썰어 버리는 고수다.
물론, 실전에서 상대가 도망친다면 손을 쓸 수 없겠으나 대련이라면 그럴 걱정은 없으니까.
“솔직히 재미있을 것 같군.”
“나름 한가락 하는 놈들도 많으니까.”
대부분은 신(辛)이나 임(壬)에 떨어질 놈들이겠지만, 시작부터 기(己)나 경(庚)을 받을 만한 녀석들도 있을 거다.
그런 녀석들의 대련은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아마 꽤 많은 사람들이 모이겠지?
교관들도 구경 삼아 나올 테고.
‘뭐, 뻔한 이야기지.’
어깨를 으쓱인 설천위는 천천히 다리에 집중했다.
뭐가 됐든, 이쪽에서 해야 할 일은 하나다.
수련.
성장.
절정의 고수 정도는 상대할 수 있다.
상대의 수준에 따라 승리도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아직 초절정은 무리다.
혼들의 힘을 빌려도 수비가 고작.
이 몸으로 펼치는 검은 현태중의 손을 빌려도 목숨을 빼앗기 힘들다.
그러니 더 단련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초절정은 주력이라고 불리는 이들.
그 경지에 오르는 것이 이 무림학관을 졸업하기 전에 이루어 내야 할 최우선 과제다.
설천위가 수련에 집중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장하고 있다.
진짜 더럽게도 재능이 없어서 들이는 노력에 비해 너무도 더디지만, 그럼에도 성장하고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남들은 보지 못하는, 노력의 결정체가 쌓이고 있다.
구파일방이라 불리는 무림에선 일대제자 이상을 주력으로 취급한다.
그 아래에 있는 이대, 삼대는 후기지수로 취급하며 전력에서 제외하는 경우가 많다.
왜일까?
이유야 간단하다.
무인에게 시간이야말로 곧 힘이니까.
상처 입은 육체는 회복하여 더욱 강해진다.
일 년을 상처 입어 가며 회복한 자와, 십 년을 상처 입어 가며 회복한 자의 성장.
둘 중 무엇이 거대할지는 안 봐도 뻔하다.
하지만, 그것은 이론적인 이야기일 뿐.
십 년을 옳게 쌓는 이가 얼마나 될까?
하루 이틀 죽어라 수련하고 닷새를 쉬는 사람이 많을까, 아니면 설렁설렁 칠일을 수련하는 사람이 많을까?
수련은 자신의 몸에 맞춰서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편하다면 그것은 수련이 아니다.
설렁설렁하는 칠일의 수련은 하루를 수련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니 금세 따라잡히는 것이다.
“흡! 흡!”
이를 악물고 근육을 찢고 땅바닥을 구르는 이런 아이들에게.
고매한 척 검이나 몇 번 휘두르고 만족하는 놈들은 금세 따라잡히고 만다.
내력을 쌓으니 비슷한 것 아니냐고?
그럴 리가.
내력도 마찬가지다.
수련으로 고갈시키면 그 반동으로 더 많은 기(氣)를 몸이 빨아들인다.
다만, 그 양이 그리 크다고 하기엔 부족하여 하지 않는 이가 많을 뿐.
허나 그것도 쌓이는 것이다.
티끌이 태산이 되듯.
하루의 수련이 쌓여 수십 년이 되듯.
철백과 설천위의 수련을 바라보며 천마는 빙긋 웃었다.
[무릎이 흐트러졌다! 이놈아!!]
그 하루하루가 가치 있도록 내가 만들어 주마.
* * *
“끄읍.”
“오늘은 더 심하군.”
“어제 조금 과격하게 했으니까.”
무슨 촉이 왔는지 쥐어짜 내는 천마 덕에 평소보다 더 심한 근육통과 함께한 설천위는 목을 이리저리 꺾었다.
아, 죽겠네.
살아야 하니 수련하긴 해야겠고.
스스로 적당히 타협할 때쯤 천마가 쪼아 주니 좋긴 한데…….
진짜 뒈질 것같이 힘들어서 싫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사해요.
어깨를 으쓱인 설천위는 자세를 고쳐 섰다.
뭐가 됐든 지금은 앞에 있는 상황에 집중해야지.
“하앗!”
호쾌한 외침과 함께 검을 휘두르는 소년.
그런 소년의 검을 받아 내는 소년.
소년, 소녀들이 뒤얽힌 싸움이 비무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날렵한 몸놀림으로 싸우는 모습이지만…….
“조잡하군.”
“그러게.”
철백의 대답에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빌어먹을 몸은 영 따라 주지 않지만, 보는 눈은 확실하게 성장한 모양이네.
비무대 위에서 싸우고 있는 녀석들에게서 보이는 허점이 눈에 훤히 들어올 정도다.
그나마 빈틈이 제대로 안 보이는 건 대문파의 자제들 정도?
뭐, 솔직히 설천위 정도로 애매한 실력이 아니면 대부분이 시험을 보고 들어오니까.
삼류라고 해도 재능만 보이면 입관시켜 주는 것이 무림학관이니까.
괜히 철백이나 서하영이 입관할 수 있었던 게 아니다.
물론 관비를 낼 수 있어야 하겠지만.
그나저나.
‘안 오나?’
슬슬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예상보다 더 오래 걸리는 느낌에 설천위가 미간을 찡그린 순간.
“모용세가다!”
“상대는 누구지?”
“몰라!”
대련장에 올라온 한 소년으로 인해 시험장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하긴 모용세가가 오대세가나 신흥삼가에 끗발이 살짝 밀리긴 해도 그 급은 어지간한 대문파 못지않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신기하겠지.
그렇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비무대 위.
모용세가의 상대로 선 것은 주현운이었다.
“흥, 어디 보부상의 자식 같은데 순순히 기권하는 것이 어떠냐?”
큼지막한 짐을 짊어지고 비무대 위에 선 주현운을 보며 모용세가의 소년이 그를 비웃었다.
하긴 무인이 저리 방해되는 큰 짐을 들고 다니진 않지.
그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철백이 그 오만한 태도에 미간을 찡그리는 순간.
“하여튼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옆에서 들리는 혀를 차는 소리에 철백은 고개를 돌렸다.
“저 아이가 모용세가의 아이보다 강할 거란 말인가?”
“뭐래, 당연하지.”
쟤가 누군데.
철백의 물음에 시답잖은 소리 말라는 듯 손을 저은 설천위는 가만히 주현운을 바라봤다.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가 뭔 개판을 쳐도 최소 화경까진 올라가는 사기캐가 바로 주현운이다.
화경이 무엇인가.
무림맹의 요직 중 요직, 무력의 핵심인 단(團)의 단주를 맡을 수 있는 최소 조건이다.
바꿔 말하면, 무림맹에서도 화경 정도 되면 한 개의 단을 맡을 수 있다고 인정해 준다는 소리다.
이 무림에서 뼈를 깎는 수련을 하는 사람이 몇일까.
백? 천? 만?
아마도 최소 만은 넘길 거다.
그런데 화경에 오른 고수는 서른이 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재야에 숨어 있는 기인들을 모두 합쳐도 서른이 되지 않을 거라고 대부분의 무림인은 확신하고 있다.
‘뭐, 그렇진 않지만.’
음지에 있는 조직들은 꽤 많은 화경의 고수들을 보유하고 있으니 서른은 넘겠지.
여하튼, 그렇게 오르기 힘든 경지가 바로 화경이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저 주현운이란 놈은 숨만 쉬어도 그 화경에 오를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냥 이대로 무기나 만지작거리면서 성장하다 보면, 화경에 오를 수 있다는 소리다.
무림학관에서 갑을 찍는 것에 도전하는 플레이어들도 주현운으로 갑을 찍는 건 인정 안 한다.
빡세게 굴리면 게임 조금 해 본 사람이라면 다할 수 있는 거니까.
그런 괴물이 바로 주현운이다.
[허.]
그리고 그 사실을 이제 설천위만 눈치챈 게 아니게 됐다.
모용세가의 어린놈이 던진 도발에 짐을 내려놓은 주현운은 그 안에서 한 자루의 검을 꺼낸 것이다.
모용세가의 주력은 검.
그러니 검으로 상대해 주겠다는 심산이겠지.
검을 들고 자세를 잡는 주현운의 모습에 천마가 고개를 돌려 설천위를 보며 혀를 찼다.
[세상이란 것이 이토록 잔인하구나.]
“……뭐요.”
[네 녀석은 천 번을 연습해도 똑같이 펼칠 수 없거늘 저 아이는 한 번만 봐도 똑같이 펼칠 수 있겠구나.]
“그럼 만 번 연습하면 되지.”
[네 재능으론 만 번도 안 된다.]
씁.
천마의 확신에 설천위는 눈을 부라리며 천마를 흘겼다.
아니, 이 할배가?
보통은 만 번 연습하면 된다고 답하면 그 의지를 칭찬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뭘 그리 쳐다보냐는 의미를 담은 천마의 눈빛에 설천위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래, 내가 말해 뭐하냐.
일단 쟤 실력이나 보자.
분명 게임에서는 그냥 개털었던 것…….
쾅!!
순간 땅을 흔드는 충격과 함께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근처에 있던 건물 하나가 완전히 무너져 주저앉고 있었다.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에 모두가 얼이 빠져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때.
“이 새끼들이…….”
설천위는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폭발이 일어난 곳을 바라봤다.
바뀌었다.
자신이 알기론 이번에 습격하는 놈들은 폭탄 같은 거창한 것을 준비할 여력이 없다.
그야 이번에 습격하는 놈들은 말 그대로 오프닝 이벤트.
떨거지들이니까.
어린 입관생들을 습격해 무림학관에 치욕을 주려는 것이 놈들의 목적이다.
별동대가 다른 곳에서 소란을 일으키고 구경을 나온 교관들이 그쪽으로 몰려갈 때 이곳을 습격한다.
그야말로 기본 중의 기본인 전술로 나오는 놈들이다.
그렇게 교관을 빼 버리면 이곳에서 위협이 되는 교관은 시험을 맡은 두세 명 정도뿐이니까.
합공을 해서 발을 묶어 두면 다른 어린놈들 죽이는 거야 일도 아니다.
그러니 그렇게 나왔어야 했는데…….
폭탄이라니.
저 건물에 몇 사람이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상당한 사람이 죽거나 다쳤을 거다.
모든 사람을 구할 거라는 안일한 생각은 안 했지만, 알고 있던 사건에선 사람이 죽도록 놔두지 않겠다던 계획이…….
까득.
이를 악문 설천위는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그보다도 먼저 움직인 철백이 폭발의 중심지로 달려가는 게 보인다.
그리고 왠지는 모르겠지만, 그 뒤를 청랑 녀석이 따라가고 있었다.
“서 소저!”
“네!”
“철백을 도와줘!”
“알겠어요!”
서하영이 땅을 박차는 것을 확인한 설천위도 즉시 움직였다.
[이쪽이다!]
상황이 펼쳐진 것과 동시에 사태를 파악한 암영의적이 설천위를 안내했다.
이 머저리 놈들은 폭탄을 터트려 소란을 만들었으니 방심한 듯 기척도 제대로 숨기지 않고 달려오고 있었다.
“설천위?”
“시험장엔 얼씬도 못 하게 하겠습니다!”
그 설천위의 대답에 시험을 맡았던 교관 화영은 미간을 찡그렸다.
설천위의 대답과 함께 여태껏 느끼지 못했던 기척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혼자 맡겠다고?”
친구들은 전부 딴 곳으로 보내고?
대체 왜?
아니, 어떻게?
이곳을 습격할 정도면 교관의 발을 묶을 자신 정도는 있다는 소리다.
그런 놈들을 혼자서 어떻게?
이해하기 힘든 판단에 화영이 미간을 찡그리는 순간, 설천위는 어느새 걸음을 멈추고 적을 맞이하고 있었다.
시험장의 한쪽 담을 넘어 포위를 위해 부하들을 보내던 중패는 미간을 찡그렸다.
웬 어린놈이?
“웬 놈이냐?”
“이 학관 학생이다.”
“그걸 몰라서 묻는 것 같으냐? 어찌 혼자 이곳을 막느냔 소리다.”
노기가 서린 그 목소리에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너희 따위를 잡는 데 사람이 더 필요할까?”
“……오만하구나.”
자신만만한 태도로 어깨를 으쓱이는 설천위를 보며 중패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네놈부터 박살 내서 너희 위선자들을 하늘을 대신해 벌할 것이라고 선언해 주마!”
살기를 품은 중패가 땅을 박차려는 그 순간.
[크르르르르.]
중패는 물론, 모든 이들이 무언가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허나,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공간을 뒤덮는 무언가.
중패가 몸이 무거워졌다고 느낀 그 순간.
설천위가 한 걸음 앞으로 나오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뒈졌다고 복창해라, 새끼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