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59화 (59/624)

제59화

58화-백화단 (3)

“기한은 학기가 끝나는 시간까지 2주 드리죠.”

“넉넉한 건가요?”

“아뇨. 상당히 부족한 편이죠.”

동굴에서 떨어진 작은 집.

그곳으로 설천위를 안내한 백화단주는 바로 주전자를 꺼내 차를 우렸다.

익숙한 몸놀림.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설천위는 이내 자신의 앞에 놓인 차를 볼 수 있었다.

“자주 오시나요?”

“저 아이를 보러 자주 오냐는 물음인가요?”

“네.”

설천위는 부적이 덕지덕지 붙은 쇠사슬에 묶여 있던 개를 떠올렸다.

느껴지는 기운은 그렇게 강하진 않았는데, 아무래도 봉인 탓이겠지.

“상당히 자주 오는 편이긴 합니다.”

“자주 오는 편이라고요?”

“저 아이는 선대 백화단주가 가장 아끼던 아이니까요.”

담담한 대답과 함께 차를 홀짝인 백화단주는 설천위를 바라봤다.

“다만, 그리 강한 아이는 아니었습니다.”

“그럼 단주님께도 아끼던 녀석인가요?”

“예, 저도 선대 단주를 따를 때 자주 귀여워해 준 아이입니다.”

“그게 억지로 제압하지 않은 이유이겠군요.”

“……예, 그렇죠. 차마 제 손으로 짓누르지 못하겠더군요.”

조금 슬픔이 담겨 있는 눈동자.

그 눈동자에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가시나요?”

“일단 상태부터 정확히 파악해 봐야죠.”

“잘 부탁드려요.”

“노력은 해 볼게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백화단주를 뒤로한 채 설천위는 다시 계단을 올랐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도착한 동굴.

천천히 안으로 들어가니, 푸른빛이 시야를 밝혀 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동굴의 끝에 도착한 순간.

[컹! 컹!]

강렬하게 짖어 대는 짐승의 모습.

자세히 살펴보니, 역시 늑대보다는 개에 가까운 것 같다.

생긴 건 시베리안 허스키 같은데 털이 짧고 주둥이가 조금 더 둥근 느낌.

색은 전체적으로 회색이고, 그 위에 푸른 불꽃이 일렁이고 있다.

생각보다 더 잘생겼네, 자식.

[크르르르.]

어느새 짖는 거로도 모자라 으르렁거리기 시작한 개를 보며 설천위는 그 앞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뭘 그리 화를 내냐.”

[컹! 컹!]

또 짖네.

이 녀석, 왜 이렇게 공격적이야.

가만히 개를 바라보던 설천위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말도 안 통하는 녀석이랑 대화는 역시 무린가.”

단순한 개는 아닐 테니 통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크르르르.]

“에이, 됐다.”

또다시 으르렁거리는 개의 모습에 설천위는 가부좌를 틀고 개의 정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힘을 끌어올린다.

마침 잘됐다.

제압을 위해선 짓누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지금 가장 효율적인 건 패기(覇氣)겠지.

백화단주는 진정을 말했지만, 원래 제압당한 애들은 다 진정되는 법이다.

분노조절장애라고 외치고 다니는 놈들이 마동석 앞에서 조용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지.

보여 줘야 하는 건 힘.

그리고 공포.

그게 짐승을 진정시키는 방법이다.

그 후에 훈련을 통해 사랑과 애정을 줄 수 있겠으나, 뭐가 됐든 처음은 힘의 격차를 이해시키는 것에서부터 시작이다.

천천히 패기(覇氣)가 끓어오른다.

패융은 일부러 부르지 않았다.

패융의 조력 없이도 완벽히 제어할 수 있는 것이 목표이기에.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패기(覇氣)를 움직인다.

다행인 점은 이 힘이 무(武)보다는 술(術)에 가까운지 나름 재능이 있다는 것 정도?

2주.

충분히 다룰 수 있게 되겠지.

완벽하게 다룰 수 있게 된 뒤에도 제압할 수 없다면 그땐 다른 방법을 궁리해 보면 되는 것이고.

* * *

홀로 남은 백화단주, 성화린은 가라앉는 눈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확실히 독특한 힘이군요.”

학관에서 보았을 때도 그랬지만, 확실히 독특한 힘이다.

마치 황제를 보는 듯한 감각.

그 방향성이 다르다는 건 알겠지만, 뭐가 됐든 위에 서 있는 자의 묵직한 존재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솔직히 말해서 아주 의외다.

호남설가(湖南雪家)는 극단적으로 무(武)에 치우친 가문이다.

명예 따윈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독종들.

그래서 가주가 무림 오대 고수에 이름을 올렸음에도 무림맹에서 단(團)을 맡고 있지 않다.

심지어 그 장남은 무림학관을 다녔음에도 졸업 후 바로 본가로 돌아간 특이한 일화를 가지고 있다.

현재 학관에 다니는 차남은 자기 누나처럼 무림맹에 입문할 거라곤 하지만.

그야말로 호남을 지키는 것에 모든 것을 내건 가문.

현재 황궁이 있는 북경과 반대되는, 남쪽에 있는 지역들은 사파가 득세하고 있다.

호남을 둘러싼 귀주, 광서, 광동, 강서.

이 네 지역은 사파의 영역이라 딱 잘라 말할 수 있을 정도다.

특히, 현 사파의 정점이자 중심축인 사천맹이 광동에 자리 잡고 있다.

호남설가는 그 사천맹을 상대하는 최전방에 자리 잡고 있는 가문.

날붙이를 들고 있는 사파를 상대하기도 벅찰 터인데, 괴이 따위를 상대할 틈이 있을 리가 없다.

실제로 괴이와 관련해서 수많은 의뢰를 하는 가문이기도 하고.

그런데 그 가문의 아들 중 하나가 저런 재능이라.

하늘의 장난인가, 아니면 계획된 미래인가.

백화단주의 눈이 천천히 가라앉던 그 순간.

“음?”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낸 백화단주는 동굴이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여태까지 느껴지던 힘이 변했다.

무언가가 더해진 느낌.

이 힘은.

“영력이군요.”

과연 쓰는 법이 따로 있다는 건가요?

* * *

[크르르르.]

처음에는 별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그저 뿜어낼 뿐인 패기에 억눌리기엔 저 개의 존재감은 장난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패기를 천천히 모았다.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도록.

내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가지 않도록.

누군가와 함께 싸우는 전장에서 방해가 되지 않도록 제어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그 연습을 겸해 패기를 모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쉽게 나름 개의 주변으로 패기를 모으는 것까진 성공했다.

시간이 상당히 걸려서 전투에선 쓸 수 없겠지만.

여하튼 그렇게 패기를 모았을 때, 개의 울음소리가 변했다.

[크르!]

짧고 강렬한 으르렁거림.

그 안에 담긴 건 이제 위협이 아니었다.

자신의 범위로 들어오는 순간, 단숨에 물어뜯겠다는 확실하고도 분명한 적의.

이쪽에게 굴복될 생각은 한 줌도 없어 보이는, 선명하기 그지없는 적의다.

그렇기에 설천위는 생각을 달리했다.

이 녀석은 이렇게 보여도 나름 영체(靈體)일 터.

그렇다면 추가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지 않은가.

그렇게 영력이 패기와 함께 일어났다.

패기에 영력이 섞이자, 개가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울음소리가 낮아지고, 조금 거리를 벌린다.

그 눈동자에 담긴 것은 여전히 뚜렷한 적의였지만, 그 안에 경계심 또한 함께 담겨 있었다.

그렇기에.

“성공이군.”

설천위는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패기는 아직 여유가 꽤 있었지만, 영력은 아니었다.

패기와 비율을 맞추기 위해 상당히 짙게 뿜어냈더니 소모가 장난이 아니었다.

내공과 달리 따로 회복할 방법을 갖추지 못한 힘이니 너무 과한 소비는 지양할 필요가 있었다.

[크르르…….]

어느새 한껏 낮아진 자세로 으르렁거리는 개를 보며 설천위는 손을 휘저었다.

“그럼 내일 보자, 멍멍아.”

* * *

“영력을 회복하는 법이요?”

“네, 아무래도 필요할 것 같아서요.”

“흐음.”

설천위를 기다리던 성화린은 설천위의 당돌한 요구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제가 의뢰한 일이니 어느 정도의 지원은 해 드리는 게 맞겠죠.”

고개를 끄덕인 성화린은 망설임 없이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의 방법을 전수해 줬다.

“영력이란 혼의 힘입니다. 당연히 회복을 위해선 혼을 쉬어 줄 필요가 있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설천위의 등 뒤에 선 성화린은 부채로 그의 어깨를 짚었다.

“허나, 그 방법은 대부분의 경우 시간만이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 즉, 당신이 원하는 방법은 아니라는 거죠.”

이윽고 백화단주의 부채가 몇 개의 혈을 짚는다.

“그러니 내공처럼 자연의 힘을 영력으로 치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연지기(自然之氣)를 영력으로 바꾸는 심법.

그리고 지금 성화린이 알려 주고 있는 것은 백화단의 기초 심법으로, 그 효율이 썩 좋은 심법은 아니다.

하지만 외인에게 알려 줄 수 있는 건 이 정도가 한계.

“집중하세요. 단순히 혈을 따라 기를 돌리는 것만이 아닙니다. 내면에 있는 혼을 느끼고, 그 혼과 기를 동화시키는 겁니다.”

성화린의 조언에 따라 설천위는 천천히 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천천히 그리고 섬세하게 기를 돌리며 영혼에 집중한다.

순식간에 완전한 집중 상태에 돌입한 설천위의 모습에 성화린은 웃으며 거리를 벌렸다.

무(武)에 재능이 아예 없는, 역대급 무재(無才).

그런데 어찌 영(靈)에 대한 재능은 이토록 뛰어난 것일까.

다른 수련생들이 일 년을 넘게 수련해야 겨우 따라 할 수 있는 심법을 벌써 가닥을 잡는 단계에 이르렀다.

‘재능이란 것은 참으로 기이하군요.’

저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재능이 아니었을 텐데.

* * *

“마! 또 왔다!!”

일주일.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갔다.

어느새 패기의 조절, 영력의 제어, 영력의 회복까지.

무림학관에서 얻을 수 없었던 값진 것들을 상당히 많이 얻었다.

솔직히 거의 납치되듯 온 곳이었지만, 이젠 딱히 불만은 없었다.

무엇보다 천마를 바라보는 백화단주의 눈빛이 상당히 부드러워진 것이 실패해도 잘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렇기에 설천위는 가벼운 마음으로 개의 앞에 섰다.

이름은 아직도 모른다.

백화단주가 끝까지 안 알려 줘서 그렇다.

뭐, 짐작 가는 바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

개 앞에 선 설천위는 이젠 상당히 기세가 줄어든 개의 눈빛을 보며 그 앞에 앉았다.

“슬슬 끝내자, 멍멍아.”

개와 눈높이를 맞춘 설천위는 천천히 힘을 끌어올렸다.

패기가 개를 향해 모인다.

그 안에 담긴 영력이 기(氣)에 민감한 영체를 더더욱 강하게 짓누른다.

으르렁거리던 소리마저 사라지고, 천천히 그 배가 땅을 향한다.

점점 더 낮아지는 개의 모습을 보며 설천위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하는 접촉.

그 접촉으로 설천위는 개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그 손길엔 적의도, 분노도, 살의도 없다.

그저 부드럽게.

그저 다정하게.

쓰다듬는다.

“고생하는구나.”

수많은 부적으로 묶인 이 개는 단 한 번도 살의(殺意)를 뿌린 적이 없었다.

아무리 위협해도, 아무리 겁을 줘도 단 한 번도 살의를 품진 않았다.

그렇기에 알 수밖에 없었다.

적의에 담긴 경계심을.

자신에게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을 해치는 것이 두려운 거냐.”

그저 입을 다문 채 한껏 굳은 상태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개를 보며 설천위는 빙긋 웃었다.

“그렇다면 걱정 마라. 너한테 물릴 정도로 약한 사람은 아니니까.”

[끼잉.]

나지막한 울음소리. 그 순간, 설천위는 머리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아니, 보았다.

----------

패기와 영력이 융합하며 영안(靈眼)의 격이 상승합니다.

[영안(靈眼)(下中)]이 [패령안(覇靈眼)(中中)]으로 변화합니다.

----------

……응?

잠깐의 당황.

하지만 그것도 잠시.

스킬의 생성과 함께 더욱 또렷하게 보이는 기운을 향해 설천위는 손을 뻗었다.

검고 탁한 기운.

혼의 본질에 얽혀 있는 그 기운을 패기로 짓누르고 영력으로 붙잡는다.

그리고 단숨에 뜯어낸다.

혼의 일부가 뜯겨 나가는 고통에 개가 발작을 일으키려는 그 순간.

설천위는 개의 머리를 붙잡고 개를 보며 말했다.

“네 이름은 청랑(靑狼)이다.”

설천위의 영력이 개에게 스며들어 그 빈자리를 채운다.

----------

소환수 등록이 완료되었습니다!

청랑(中下)이 소환수로 등록됩니다.

청랑이 자신의 이름을 마음에 들어 합니다! 친밀도가 상승합니다.

청랑의 외형이 이름에 맞게 변화합니다!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