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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57화 (57/624)

제57화

56화-백화단 (1)

“추적은 흔적만 따라가는 수준으로 하세요.”

“예!”

어느새 기절한 설천위를 품에 안은 유예린은 지시를 내리며 설천위를 살폈다.

왼팔은 붕대로 감겨 있고, 몸 곳곳엔 피가 흐르고 있다.

다행히 깊은 상처는 없어 보이긴 하는데…….

“일단, 주위 경계에 집중하세요. 응급처치부터 하겠습니다.”

“예!”

어느새 부하가 깔아 놓은 천 위에 설천위를 눕힌 유예린은 그의 몸을 살폈다.

다행히 목숨에 지장이 갈 정도의 치명상은 없어 보인다.

특이한 점이라고 하면, 몸의 근육 이곳저곳이 경련하고 있다는 것?

아마 몸의 한계를 넘어선 싸움을 해서 그런 거겠지.

“천위의 상태는 어떻소?”

“괜찮아요. 휴식만 취하면 충분히 회복할 수 있겠어요.”

“다행이군.”

유예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철백은 어깨를 으쓱였다.

“각오가 무색하게 너무 쉬운 끝이군.”

“무림의 싸움이라는 게 그런 거죠.”

피와 피로 점철된 무림이라도 팽팽할 땐 끝까지 가지 않는 법이다.

특히 그게 변수가 많은 단체전이라면 더욱더.

누가 뭐래도 자기 목숨이 가장 소중한 게 인간 아니던가.

복수도, 목적도 모두 살아 있어야 쟁취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상하네요.’

분명 저들의 목표는 뚜렷했고, 그 목표는…….

“이건가요?”

이 책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설천위의 품에서 혈성지록을 꺼낸 유예린은 미간을 찡그렸다.

음지에 숨어 있던 화경의 고수가 모습을 드러낼 정도의 중요도를 가진 물건이다.

부하들의 목숨을 미끼로 던져서라도 쟁취하려는 것이 당연할 터.

대체 왜 이렇게 순순히 물러나는 거지?

짐작 가는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이 물건이 의외로 그렇게까지 중요도가 높지 않거나…….

‘화경의 고수가 목숨의 위험을 느낄 정도의 상황이거나.’

유예린의 눈이 기절해 있는 설천위를 향했다.

아직도 손엔 도를 쥐고 있는 모습.

참수사신, 그 이름에 걸맞은 강자인 건가?

* * *

“언니세요?”

“네에.”

“와! 분명 저보다 어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깨 정도로 오는 짧은 단발.

떡을 연상케 하는 부드러운 피부.

동글동글한 느낌이 드는 이목구비까지.

누가 봐도 십 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외모인데, 18살이라니.

“어릴 때 몸이 약해서 그런지 성장이 멈췄거든요.”

“아.”

자신의 대답을 듣고 서하영의 눈에 미안함이 담기자, 소윤혜는 손을 저었다.

“괜찮아요. 딱히 신경 안 써요.”

“죄송해요.”

“아우, 됐다니까.”

빙긋 웃은 소윤혜는 자신보다 큰 서하영을 바라봤다.

큰 키에 도드라지는 몸매.

단련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탄탄한 몸이다.

부럽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아예 없다면 거짓이겠지만, 그건 뭐 조금 아쉬운 정도다.

이쪽도 할아버지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몸이다, 이 말이야.

“그나저나 정말 괜찮아요? 이렇게 우리만 마차에 타고 있어도.”

“물론이죠. 저 두 사람은 오히려 함께 있는 걸 더 어색해할 걸요?”

서하영의 대답에 소윤혜는 밖에서 말을 타고 있는 철백과 남궁천을 바라봤다.

한 명은 말이 힘들어하는 게 보일 정도의 거구고, 한 명은 상당한 꽃미남.

무림학관은 미남도 많나 보네.

작게 고개를 끄덕인 소윤혜는 맞은편에 앉아 있는 유예린을 바라봤다.

“약혼자인가요?”

“네.”

누워 있는 설천위의 머리는 유예린의 허벅지 위에 올라가 있다.

정말 필요한 일이 있을 때 빼곤 항상 베개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유예린.

‘다리 많이 저릴 텐데.’

대단하네.

소윤혜가 작게 감탄하는 그 순간.

“부드럽네.”

“후후, 그렇죠?”

멍하니 눈을 뜬 설천위의 목소리에 마차의 문이 열렸다.

“천위! 깨어난 건가?”

“아우! 말 위에서 그러면 민폐예요!”

무게가 쏠려 힘들어하는 말의 모습에 서하영은 단숨에 문을 닫아 철백을 차단했다.

반가운 마음은 아는데 말이야.

“얼마나 기절해 있었어?”

“하루요.”

“길었네.”

작은 한숨과 함께 상체를 일으킨 설천위는 근육통을 느끼며 몸을 비틀었다.

“끄응.”

절로 소리가 나오는 뻐근함.

아주 그냥 죽겠네.

전투가 끝나고 바로 쓰러져서 그런지 내공도 쥐꼬리밖에 없고.

회복하려면 며칠은 걸리겠어.

“그래서, 어떻게 됐어?”

“적들은 순순히 물러났고, 저희도 응급처치만 하고 바로 이동 중이에요.”

“추적은?”

“실패했어요.”

“씁, 뭐 그럴 것 같긴 했어.”

혈사련이 괜히 음지에서 잘 활동하고 있는 게 아니겠지.

화경의 고수도 있으니 충분한 거리를 두고 따라갔을 텐데, 그런 추적으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는 법.

뭐, 추적한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으니 상관없나.

“그런데 학교 측엔 뭐라고 하고 나온 거야?”

“그냥 나간다고만 하고 나왔는데요?”

“전부 낙제 확정인가?”

“후후, 낙제까진 아니어도 이번 학기 과목의 점수는 확실하게 낮겠네요. 아, 물론 남궁 소협과 설 공자는 낙제 확정이에요.”

“남궁 소협은 을(乙) 승급이 완전히 무산됐고요!”

서하영의 덧붙임에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학관 과제 수행 중에 사정이 있었다곤 하나 가문의 힘을 빌렸다.

승급이 실패하는 건 당연한가.

그나저나 돌아가면 거의 바로 시험이겠군.

이번에도 낙제 확정인가…….

아니 뭐, 등급은 안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마음에 안 드네.

빨리 무림맹에 들어가야 임무를 받아 경험치나 여러 가질 먹을 텐데.

씁.

“뭔가 마음에 안 드시나요?”

“아니, 별거 아니야.”

날카로운 유예린의 질문에 고개를 저은 설천위는 마차 벽에 등을 기댔다.

“뭐, 학관에 다니는 기간이 조금 길어지겠다 싶어서.”

뭐, 학관에서도 할 수 있는 건 나름대로 많으니까.

* * *

“고생했구먼.”

“예, 뭐 그렇죠.”

학관에 돌아온 직후.

팽후의 부름을 받은 설천위는 학관장실에서 그와 마주했다.

“꽤나 고난이었다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멀쩡해 보이는군?”

“회복력이 젊음의 장점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그건 맞지. 암, 뼈가 부러져도 싸울 수 있는 게 젊은이의 특권이지.”

아니, 그건 다른 것 같은데.

호쾌하게 웃는 팽후의 모습에 속으로 고개를 저은 설천위가 찻잔을 드는 순간.

“그 녀석들이 노린 물건을 보고 싶군.”

“아, 그거요?”

팽후의 말에 설천위는 망설임 없이 혈성지록을 꺼내 팽후에게 내밀었다.

“여기요.”

“……이렇게 바로 주나?”

“저한텐 쓸모없고, 학관장님은 믿을 만하니까요.”

“그건 고마운 평가군.”

웃으며 혈성지록을 챙긴 팽후는 여유로운 설천위를 바라봤다.

대체, 뭐가 이 아이를 이렇게 바꾼 걸까.

쓸데없는 생각에 작게 웃은 팽후는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내밀었다.

“이 서책의 가치에 미치진 못하지만, 보상일세.”

“됐어요. 저 말고 책의 원주인에게나 주세요.”

“따로 지급할 테니 걱정…….”

“감사합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상자를 가져가는 모습에 헛웃음을 흘린 팽후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설천위를 바라봤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가?”

“예?”

“이번 학기 성적은 상당히 가망이 없을 텐데.”

“이미 포기했으니 그냥 개인 수련에나 열중하려고요.”

음,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

고개를 끄덕인 팽후는 웃으며 설천위를 바라봤다.

“그렇다면 잘됐군. 마침 자네를 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어서 말이야.”

“저를요?”

“그래. 들어 봤을진 모르겠는데…… 혹시 백화단(白花團)이라고 아나?”

* * *

“백화단이라…….”

“백화단? 그 무림맹의 구단(九團) 중 하나 말인가?”

훈련장.

홀로 중얼거리는 설천위의 목소리에 철백이 반응했다.

“그, 괴이를 전문으로 사냥한다는 도사 집단이요?!”

“정확하게 말하면 도사들만 모인 건 아니라고 하더군. 엄밀히 말하면 술사(術士)라고 하는 게 맞겠지.”

“……넌 뭘 그렇게 자세히 아냐?”

“그런 일이 있었는데, 조사하지 않을 수가 있나?”

철백의 시선이 설천위의 뒤쪽에 있는 현태중을 향했다.

그 시선을 눈치챈 설천위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런 일이 있으면 그럴 만도 하지.

항거 못 할 괴이와 마주해 적응하고 성장해 결국 이겨 냈으니까.

그 성장의 맛을 넘어 초반에 느꼈던 벽에 긴장하지 않는 게 이상하긴 하다.

그나저나.

“그래서, 어떻게 쓸 만한 정보는 있냐?”

“음, 수소문한 것뿐이라 별거 없지만, 듣자 하니 백화는 술법을 위주로 한다고 하더군.”

“술법?”

“혼을 다루는 것이 아닌, 도술이나 법술을 쓴다고 들었네.”

음. 내가 게임에서 봤던 거랑 같네.

씁. 그럼 별로 배울 건 없단 소린가?

아니, 그런데 왜 얘들이 접근하지?

기억상으론 분명 혼을 다루고 부리는 단도 있었던 것 같은데.

왜 그쪽에서 안 오고 이쪽에서 오는 거야?

“그런데 그게 갑자기 무슨 상관이에요?”

“백화단 단주께서 날 보고 싶다고 하셨다네.”

“정말요?”

영입 제안?!

동그랗게 눈을 뜬 서하영의 놀람에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영입 제안 같은 건 아닐 테니 걱정 말고.”

“제, 제가 말로 했나요?!”

“눈이 말하고 있잖아.”

아니, 어떻게 얘가 게임에선 그 창절이 되는 거지.

시크한 매력이 인상적인 캐릭터였는데.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서하영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은 설천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됐다. 난 조금 따로 시험해 볼 게 있어서 다른 데서 수련한다.”

“음? 굳이?”

“여기서 하면 민폐일 게 뻔하거든. 제대로 쓸 수 있게 되면 보여 줄게.”

대충 손을 내저은 설천위는 그대로 훈련장을 나와 숲으로 걸어갔다.

상처는 학관을 오면서 열심히 회복을 써서 전부 치유된 상태다.

팔도 멀쩡하고, 몸도 멀쩡하다.

이제 뭐 수련한다고 해서 유예린이 뭐라 하지도 않겠지.

그렇게 대충 걸어 적당한 곳에 도착한 설천위는 가볍게 자세를 잡고 섰다.

“패융.”

[크르르르르르르.]

작고 귀엽던 패융이 용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외형으로 변하며 설천위의 몸을 감싼다.

[패룡지체(覇龍之體)]

패룡의 힘이 설천위의 육체를 감싼다.

패기에 의해 육체의 성능이 전체적으로 올라간다.

해적 만화에 나오는 무장색 패기랑은 조금 다른가.

그건 육체를 단단하게 만드는 게 중심이고, 이건 육체의 성능을 올리는 게 중심이니까.

[패룡지기(覇龍之氣)]

몸을 중심으로 흘러나오는 패기는 패융의 힘이 되어 패융에게 물리력을 선사한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수족 이외의 방어.

자잘한 화살은 물론이고, 웬만한 공격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자동 방어.

‘이것도 살짝 견문색…….’

음, 이것도 어디서 많이 보던 성능 같은데.

뭐, 그럼 이다음은 패왕색인가?

심기체(心氣體)의 심(心)이 남았으니 가능성 없는 이야기는 아닌데…….

혼자서 하는 재미있는 상상에 히죽이던 설천위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성능 실험이 우선이지.

그때는 워낙 급해서 그냥 썼지만, 정확한 성능을 아는 건 전투와 전략의 기본이다.

가볍게 호흡을 고른 설천위는 이리저리 몸을 움직였다.

단순한 뜀박질부터 무공 초식에 이르기까지.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과 미리 생각해 뒀던 거의 대부분의 것을 실험해 본다.

실험은 어느새 달이 하늘에 떠 대지를 은은하게 밝혀 주는 시간이 돼서야 끝이 났다.

“후우.”

가볍게 호흡을 고른 설천위는 감탄했다.

안 지친다.

아니, 지치긴 하는데 그 정도가 현저히 낮다.

거기에다.

[음, 절정 정도라면 충분히 해 볼 만하겠구나.]

[무공의 성취로는 부족하지만 몸을 억누르는 기운이 있으니 절정 정도는 이길 수 있을 게다.]

[다만, 그 기운이 아군에게 가지 않도록 제어하는 능력부터 길러야겠구나.]

혼들의 평가에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패기를 거뒀다.

이제 훈련장에서 얘들 데리고 연습할 일만 남았네.

자, 그럼…….

“이런, 벌써 끝인가요?”

작은 웃음소리와 함께 공간을 짓누르는 압도적인 영력이 설천위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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