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53화 (53/624)

제53화

52화-참수사신 (3)

[그래서 어찌할 거냐?]

“그러게요. 어찌하죠?”

어딘지 모를 산속.

동굴에 몸을 숨긴 설천위는 한숨과 함께 왼팔을 바라봤다.

가만히 있어도 화끈거리는 통증이 뇌리를 파고든다.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쓴 거긴 하지만, 그래도 아쉽네.

작은 한숨과 함께 아쉬움을 삼킨 설천위는 동굴로 들어오는 암영의적을 바라봤다.

“어때요?”

[음, 한동안은 숨어도 될 것 같다.]

“그럼 여기서 자는 건 무리라는 소리네요.”

[아무래도 네 몸으론 흔적을 완전히 지울 수 없으니 말이다.]

암영의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육포를 꺼내 입에 물었다.

“뭐, 조금만 쉬고 바로 튀어야죠.”

애초에 암영의적이 아니었으면 도망도 못 쳤을 테니까.

“적들의 시선이 완전히 저로 향한 건 맞는 것 같죠?”

[확실하다.]

[그 책이 무엇이기에 그리 집착하는 것이냐?]

현태중의 질문에 설천위는 품에서 혈성지록을 꺼냈다.

혈사련(血邪聯)을 세운 초대 혈주(血主), 혈성(血聖).

“혈사련의 초대 혈주의 일대기를 적은 책이에요.”

[혈주?]

[혈사련이라면 네가 전에 말한 놈들이구나.]

“예, 피에 미친 녀석들이죠.”

주술이 존재하는 이곳에서 피를 이용한 성장 방법은 상당히 다양하다.

혈사련은 그런 방법을 쓰는 조직 중에서도 상당한 악질이다.

말이 연합이지, 종교나 마찬가지인 조직이니까.

책을 펼친 설천위는 육포를 질겅거리며 책을 훑었다.

[음, 내용은 별것 없는 것 같은데…….]

그 내용을 함께 보던 암영의적의 말에 설천위가 고개를 저으려는 순간.

[아니, 있다.]

[이건 무공이군.]

천마와 현태중이 먼저 입을 열었다.

[상당한 수준의 무공이다. 다만.]

[사이한 힘이 느껴지는구나. 대성하지 못하면 오히려 명을 갉아먹을 사공(邪功)이다.]

천마의 말에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익히면 상당한 내공을 얻지만 그 대가로 체력이 줄고, 육체적 능력이 서서히 감소하죠.”

게임에선 최대 체력이 줄어들고 기본적인 체력 재생도 줄었지.

문제는 그걸 감수할 정도로 확실하게 강해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천마의 말대로 대성하면 그 명을 갉아먹는 것이 사라진다.

오히려 명을 늘릴 수 있게 된다.

적의 피를 흡수해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있게 되니까.

상당히 매력적인 힘이지만…….

“뭐, 제 재능으론 대성하기 전에 죽을 테니까 익힐 생각은 없어요.”

책을 덮은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이곤 동굴 벽에 등을 기댔다.

“조금 잘 테니 경계 잘 부탁해요.”

체력도, 내공도 이젠 한계다.

허기는 채웠으니 이제 잘 시간이다.

* * *

“그래서 둘 다 놓쳤다는 소린가?”

“…….”

누군가의 질책에 거한은 이를 악물었다.

할 말이 없다.

목표를 이루지 못한 건 물론이고, 어린놈들도 전부 놓쳤다.

아무리 상대로 남궁천이 껴 있다고 해도 저질러선 안 될 실책이다.

자신의 질책에 그저 입을 다문 거한을 보며, 동료는 고개를 저었다.

“추적은?”

“하고 있지만 흔적이 희미해 시간이 걸린다.”

“완전히 놓칠 수도 있다는 소리군.”

“아니, 놓치진 않는다.”

확신이 담긴 거한의 대답에 동료는 그 눈동자를 바라봤다.

분노로 일그러진 눈동자가 강렬하게 산을 응시한다.

“흔적이 점점 더 진해지고 있다.”

“힘이 빠지고 있다는 소린가?”

“그래. 거기에 그놈은 팔도 정상이 아니다.”

“……정보로 들었던 그게 진짜로 있었나 보군.”

잘려 나간 거한의 발을 잠시 바라보던 동료는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났다.

“천천히 따라와라. 그 발로는 아무것도 못 할 테니.”

“헛소리. 놈의 목은 내가 벤다.”

자리에서 일어난 동료를 바라보는 거한의 눈동자가 살기로 번들거렸다.

그 모습에 동료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쉽지만, 네게 갈 기회는 없을 거다.”

* * *

“소저, 괜찮소?”

“저는 괜찮아요.”

말 위, 연수화의 거친 숨소리에 남궁천은 이를 악물었다.

연수화의 상태를 고려하면 쉬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아무리 말을 타고 달리고 있다고 해도 추적이 쫓아오는 낌새가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한 가지.

말을 쫓을 수 있을 만큼의 경신법을 쓸 수 있는 인원 전부가 설천위를 쫓고 있다는 소리다.

무엇보다 아까 잠깐의 휴식 중에 연수화의 가보가 없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설천위가 빼돌린 거겠지.

그 잠깐 사이에 어떻게 빼낸 건진 모르겠지만…….

‘천위, 살아야 한다.’

그 의도를 모를 정도로 남궁천은 멍청하지 않았다.

친구의 희생.

그걸 물거품으로 만들 순 없다.

그러니.

“힘들어도 참아 주시오. 소저.”

연수화를 마을에 두고 다시 돌아갈 생각도 해 봤다.

하지만 악수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 너무 감정에 치우친 선택이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학관으로 돌아가는 것.

그곳에서 천위를 위해 움직일 그녀를 찾아가는 거다.

아니,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을 거다.

처음 들렀던 마을에서 파발을 보냈으니.

* * *

“씁!”

달린다.

더럽게 힘들지만 그래도 달린다.

몸이 흔들릴 때마다 왼팔에서 아찔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그래도 달렸다.

왜?

방법이 없으니까.

[두 번째 초절정이라……. 적들도 단단히 준비한 것 같구나.]

천마의 목소리에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혼들의 안내 덕에 어떻게든 전투는 피하고 있었지만, 그 한계가 슬슬 보이고 있다.

추적에 뛰어난 이들이 확실하게 포위망을 조이고 있었다.

아니, 보통 이런 건 도망치는 쪽이 유리한 거 아닌가?

왜 이렇게 잘 따라오는 거야.

[쯧, 네 섬뢰풍영보(閃雷風影步)가 3성에만 이르렀어도…….]

죄송합니다. 아직도 1성이라.

그래도 영각을 쓰면 2성은 넘잖아.

혀를 차는 암영의적과 함께 아쉬움을 삼킨 설천위는 결국 얼마 가지 못해 걸음을 멈췄다.

[전투를 준비하거라.]

천마의 목소리가 들리고 몇 개나 되는 인기척이 설천위의 감각에 잡혔다.

완전한 포위.

이젠 전투 없이 벗어난다는 선택지는 사라졌다.

그렇다면 해 주마.

“후.”

[영각(靈覺)]

혼이 깨어난다.

틈틈이 회복을 쓰고 있어서 내공엔 그리 여유가 없지만, 이제 어쩔 수 없지.

검을 뽑는다.

한 손밖에 없는 지금은 차라리 검이 더 이점이 많았다.

이쪽은 찔러 넣기만 해도 하나는 죽일 수 있으니까.

한숨과 함께 검을 쥔 설천위가 움직인다.

“찾았……!”

소리치는 적의 목을 검이 꿰뚫는다.

궤적을 흔드는 [선유적월검(仙遊跡月劍)]의 초식.

아직 성취가 미약해 그 흉내만 내는 수준이지만, 이류 수준인 적의 목숨을 빼앗기엔 충분했다.

하나의 목을 벤 순간, 다른 방향에서 검이 떨어졌다.

목을 벤 이와 함께하던 녀석의 공격.

몸을 비틀어 그 공격을 피하며, 설천위는 검을 뽑았다.

동맥을 끊어 버린 검이 빠져나오면서 피가 울컥울컥 솟구친다.

그 피를 검에 묻혀 휘두른다.

“네놈?!”

그 피가 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팔로 시야를 가린 순간.

설천위의 검이 상대의 팔을 베었다.

완전히 잘라 내진 못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크아악!”

고통에 괴성을 지르는 상대의 품으로 완전히 파고든 설천위는 한순간에 검을 역수로 쥐어 그 복부를 꿰뚫었다.

그리고 옆으로 빼내며 확실하게 숨통을 끊는다.

[참 신기하구나. 무(武)에 재능은 없는데, 싸움에 대한 감각은 있는 것이.]

현태중의 평을 대충 흘려 넘긴 설천위는 검을 뽑아내며 그대로 달렸다.

이미 소리는 적들에게 들킨 상황.

피할 수 없다.

하지만 포위당하는 것만큼 악수도 없다.

그걸 피하려면 구멍을 낸 곳을 향해 끊임없이 달리는 수밖에 없다.

* * *

“벌써 열이나 당했다고?”

“예.”

“쯧.”

부하의 보고에 설천위의 추적을 맡았던 남자, 윤백은 가볍게 혀를 찼다.

독한 놈.

이미 내공도, 체력도 바닥이 났을 상황인데.

“그리고 은검(隱劍)이 움직였다고 합니다.”

“결국 움직였군.”

하긴, 그 미친 여자가 안 움직였을 리가 없지.

자신에게 소식이 들려올 정도면, 이미 이삼일 거리까지 좁혀 왔을 가능성이 크다.

시간이 없다.

대로에서 대놓고 습격한 탓에 시선이 상당히 쏠린 상태다.

빠르게 처리하고 빠져나가지 않으면 큰 곤욕을 치를 터.

“쓸 수 있는 모든 인원을 동원해라. 그리고 최소 셋 이상 붙어 다니도록.”

“예!”

두 명이 쉽게 뚫린다면 셋을 붙여 놓으면 되지.

간단한 이치다.

설천위의 실력은 크게 들쑥날쑥하지만, 그 상한선은 분명히 있으니까.

지치고 상처 입은 지금, 이류 셋을 한 번에 정리할 여유는 없을 거다.

“아, 그리고…….”

“그리고?”

물러나던 부하가 하나 생각났다는 듯 돌아서자, 윤백은 미간을 찡그렸다.

또 뭐?

“이 인근에 참수사신으로 보이는 이가 은거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그 노괴가?”

“예. 허나 요 몇 년간 보이지 않은 것으로 봐선 이미 죽은 것이 아닐까 하고…….”

“그럴 만한 나이긴 하지.”

전대 고수도 아닌, 전전대 고수니까.

충분히 늙어 죽을 만한 나이이긴 하다.

“신경 쓰지 말고 수색을 이어 가도록.”

“예!”

살아 있었다면 나와도 진즉에 나왔을 테지.

그 노괴는 자신의 영역에서 남이 칼을 휘두르는 걸 용납하는 인간이 아니니까.

수색을 위해 움직이는 부하를 보며 윤백도 걸음을 옮겼다.

이제 슬슬 상처 입은 사냥감의 숨통을 끊을 때가 됐다.

* * *

“아오! 개쉑히들아!!”

등 뒤를 노리는 검을 피하며 설천위는 이를 악물었다.

셋.

고작 하나 늘었을 뿐인데, 힘들어도 너무 힘들다.

진짜 머릿수가 깡패지, 깡패.

적의 공격을 피하고 받아 내며 설천위는 열심히 달렸다.

그만큼 적도 열심히 따라오고 있지만, 알게 뭔가.

어떻게든 시간을 벌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야 살 궁리라도 할 것 아닌가.

그렇게 설천위가 미친 듯이 달리던 그 순간.

[음, 천위 앞에 사람이 있다.]

“또?!”

[다만, 적은 아니구나.]

적이 아니라는 천마의 말에 설천위는 이를 악물었다.

그럼 여기로 못 가잖아!

고개를 돌린 설천위는 자신에게 붙은 적의 수를 헤아렸다.

어느새 다섯.

싸우면 상처 없이 빠져나갈 수 없는 숫자다.

……그런데 어쩌냐. 선택지가 없는데.

“덤벼라, 새끼들아!!”

순간적으로 멈춰 선 설천위가 귀신같이 돌아 검을 휘둘렀다.

허나, 상대도 이미 설천위를 인식하고 따라오는 상태.

즉각 반응해 검을 세운다.

물론.

[선유적월검(仙遊跡月劍) 제1초 선월(線月)]

본래의 궤적과 살짝 다른 궤적이 검을 비껴 내고 파고들어 적의 목을 꿰뚫는다.

허나 동료의 죽음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적들의 검이 설천위를 노리고 파고든다.

피하고, 막고, 찔린다.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통증을 참으며 설천위는 검을 휘둘렀다.

뭐가 됐든, 하나라도 더 줄여서 길을……!

“어머?”

순간, 전장에 들려온 맑은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여러 가지 풀이 담긴 바구니를 옆구리에 낀, 어린 소녀.

“아, 하던 일 마저 하세요!”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인 소녀가 뒷걸음질치는 순간.

혈사련의 무인 중 하나가 소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목격자를 남겨 두지 않기 위한 살인멸구.

그 모습에 설천위는 땅을 박찼다.

뭐가 됐든, 나 때문에 괜한 민간인이 죽으면 뒷맛이 찜찜……!

[고개를 숙여라!]

천마의 외침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인 설천위는 서늘한 한기가 등줄기를 훑고 지나가는 걸 느꼈다.

“이러시면 안 돼요. 저는 싸울 생각이 없었는데…….”

아이 참.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니 설천위의 시야에 소녀를 향해 달려가던 무인이 들어왔다.

목에 그어진 혈선.

어느새, 허리춤에 있던 외날의 도를 뽑은 소녀.

[껄껄껄! 역시 내 손녀야! 솜씨가 깔끔하구나!]

그리고 허공에서 들리는 주책 맞은 목소리.

이건 또 무슨 상황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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