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화
51화-참수사신 (2)
남궁천이 날린 검기가 적진을 휘젓는다.
그 의도를 읽은 연수화는 이를 악물고 고삐를 잡았다.
그녀가 해야 할 일은 하나.
이 마차와 말이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게 하는 것.
속도를 올릴 필요?
없다.
살기에 흥분한 말들의 발은 충분히 빨라졌으니.
마차가 성난 속도로 달려간다.
덜컹거리는 충격이 마차를 뒤흔든다.
서 있기는커녕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힘든 심한 흔들림.
하지만.
“흡!”
그런 마차 위를 누비며 남궁천은 날아오는 화살을 전부 쳐 냈다.
첫 공격에 말이 죽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도주에서 말이라는 제2의 발은 상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니.
‘문제는 적을 떼어 낼 수 있느냐 없느냐인데…….’
남궁천의 고민과 별개로 거친 숨을 토해 내는 말들은 적들과의 거리를 빠르게 좁혔다.
충돌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거대한 도끼를 어깨에 걸친 사내가 마차의 정면을 막아섰다.
그리고.
쾅!!
대지를 강타하는 강렬한 일격.
그 충격에 말들이 거칠게 날뛰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는 말들.
이대로 가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마차까지 뒤집힐 판이다.
그 사실을 인지한 남궁천은 즉시 검을 휘둘렀다.
마차와 말을 연결하는 줄을 끊어 낸다.
마차를 끌던 말은 두 마리.
남궁천은 고삐를 놓고 도에 손을 올리고 있던 연수화의 팔을 잡고 뛰어올랐다.
그리고 말 위에 안착.
짧아진 고삐를 틀어쥔 남궁천은 그대로 말을 제어하며 검을 휘둘렀다.
그런 남궁천의 모습에 연수화도 도를 뽑았다.
뭐가 됐든 그를 도와야…….
“으어어!”
그 순간, 예상치 못한 목소리에 남궁천과 연수화는 뒤를 돌아봤다.
미친 듯이 달리는 말 위에서 그저 흔들리고 있는 설천위.
방향은 당연히 정면이 아닌 옆으로 꺾여 달리고 있다.
무림학관으로 가는 것과는 다른 방향.
그 모습에 돌아오라고 소리치려던 남궁천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 보니…….
“야! 야! 저쪽! 저쪽!”
설천위는 말을 못 타지.
말의 움직임에 맞춰 균형을 잡는 것도 능숙하게 못하는데, 말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 리가 없다.
말에 이끌려 전장을 떠나는 설천위를 적들이 뒤쫓는다.
그 모습에 남궁천이 말고삐를 틀려는 순간.
“아쉽지만, 네 상대는 나다.”
말을 노리는 도끼를 쳐 낸 남궁천은 이를 악물었다.
입꼬리를 비틀고 있는 모습이 완전히 승리를 확신한 모습이다.
하긴 한 명이 저리 멍청하게 떨어져 나갔는데, 승리를 확신하지 않을 수 있을 리가 있나.
“탓할 거면 멍청한 네놈의 친구를 탓해라.”
쾅!!
묵직하게 떨어지는 도끼를 받아 낸 남궁천은 이를 악물고 말에서 내렸다.
머뭇거리는 사이, 두 번이나 공격을 받아 말은 발을 완전히 멈춰 버렸다.
완전히 속도를 잃은 지금, 말은 그저 짐일 뿐이다.
남궁천이 말을 버리자 함께 말에서 내린 연수화는 도를 든 채 남궁천의 등을 지켰다.
적들의 숫자는 대략 스물.
서로 떨어져 포위당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그렇게 두 사람이 완전히 전투태세에 들어간 걸 확인한 거한은 입꼬리를 비틀었다.
“좋은 기세다!”
호쾌하게 도끼를 휘두르는 거한의 공격을 받아 내며 남궁천은 이를 악물었다.
연수화는 병상에서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상태.
즉, 제대로 싸울 수가 없다.
그리고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고.
고작 열흘이 좀 넘는 시간으로 회복될 상처가 아니었으니까.
그렇기에.
“큭!”
“크하하! 약하구나! 약해!”
거한의 도끼질에 남궁천은 이를 악물고 검을 움직였다.
방어조차 버거운 공세.
도끼를 받아 보니 알겠다.
정상적인 몸 상태였어도 힘들었을 적이다.
이대로 가면, 무조건 진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위기를 넘기고 살아남을 방법을……!
“뒤, 뒤에!”
순간 다급한 음성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컥!”
누군가의 단말마와 함께 초절정 고수 둘의 전투로 생긴 소음에 묻혔던 소리가 전장을 울린다.
말이 거칠게 투레질하며 땅을 박차는 소리.
“비켜라! 어린놈들아!!”
[비켜라! 어린놈들아!!]
말 위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손발을 놀리는 설천위가 포위를 뚫어 낸다.
“천위!”
그 모습에 감격한 것도 잠시.
남궁천은 이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닫고 검을 움직였다.
“안 되지!”
“큭!!”
검과 도끼가 부딪치는 굉음과 함께 거한이 눈을 부릅떴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말에 휘둘려 떠나갔던 놈이 갑자기 무슨…….
속인 건가?
이쪽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서?
거한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설천위를 응시했다.
눈여겨봐야 할 녀석이라고 듣긴 했지만, 생각보다 더 거슬리는 놈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여기에 두 놈의 발을 묶어 둔 상태다.
혼자 도망치지 않고 이곳으로 다시 온 용기는 가상하다만, 거기까지.
이 포위를 뚫고 도망칠 순 없다.
곧 저 말도 속도를 줄이고 멈출…….
“으아아아!”
“비키라고, 자식들아!”
[비키라고, 자식들아!]
멈출…….
“커헉!”
“아! 귀찮게 하네!”
[아! 귀찮게 하네!]
왜 안 멈추지?
말 위에서 병장기를 든 상대를 저렇게 자유자재로 공격할 수 있다고?
저 어린놈이?
말과 평생을 함께한다는 북방의 오랑캐들이나 가능한 기예다.
심지어 이쪽의 인원들은 말을 막기 위해 몸을 던지는 놈들이다.
대체 어찌 저런 움직임을?
거한의 머릿속에 의문이 떠오르는 것과 함께 설천위 아니, 암영의적은 입꼬리를 비틀었다.
“내가 말 위에서 도망친 세월이 네놈들이 평생 밥 먹은 시간보다 길다, 이놈들아!”
[내가 말 위에서 도망친 세월이 네놈들이 평생 밥 먹은 시간보다 길다, 이놈들아!]
아니, 그거 자랑인가?
애초에 밥 먹는 시간이 그렇게 긴가?
암영의적에게 몸을 맡기고 상황을 읽어 내던 설천위는 자신의 입에서 나온 헛소리에 혀를 찼다.
암영의적, 이 양반은 다재다능한데 뭔가 나사가 하나씩 빠져 있단 말이지.
그나저나.
‘길이 없군.’
암영의적 덕에 말을 돌려 포위를 뚫는 것까지 성공하긴 했지만, 여전히 상황이 위험한 건 똑같았다.
적의 후속 병력도 오고 있는 지금, 상황이 절망적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뭘 어찌해.
하나밖에 없지.
빙의한 덕에 설천위의 생각을 그대로 전달받은 암영의적은 입꼬리를 비틀었다.
참으로 마음에 드는 놈일세.
입꼬리를 비튼 암영의적은 말고삐를 움직여 방향을 바꿨다.
포위를 뚫기 위해 적들 사이를 누비던 움직임이 한곳을 향한다.
“준비해라!”
[준비해라!]
암영의적의 외침에 거한의 도끼를 받아 내던 남궁천은 이를 악물었다.
외침만이 아니다.
이쪽으로 말고삐를 달려오고 있는 의도야 뻔하지 않은가.
“연 소저! 먼저 가시오!”
“소협!”
“어서!”
남궁천의 재촉에 도를 휘두르던 연수화는 이를 악물고 크게 도를 휘둘렀다.
빈틈이 생기는 큰 공격이었지만, 상관없다.
원하는 것은 적들이 물러나는 잠깐의 틈.
“훌륭하구나!”
[훌륭하구나!]
그렇게 만들어진 틈을 파고든 암영의적의 손을 연수화가 붙잡았다.
그리고 단숨에 끌어올려져 말에 안착한 연수화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돌렸다.
“소협!!”
“난 됐으니 어서 가시오!”
아무리 말이 튼튼한 동물이라고 해도 사람 세 명은 힘들다.
무엇보다 자신이 물러나면 이 거한은 누가 막는단 말인가.
다른 이들은 몰라도 이 거한은 말의 속도를 충분히 따라올 수 있다.
그러니 자신은 남아서 시간을…….
“헛소리 말 거라!”
[헛소리 말 거라!]
각오를 다지던 남궁천의 뒤에서 뻗어 나온 주먹이 거한의 도끼를 때린다.
그렇게 생겨난 틈.
남궁천은 부유감과 함께 상황을 깨달았다.
“천위!!”
“어린놈이 무에 벌써 죽을 자리를 찾느냐.”
[어린놈이 무에 벌써 죽을 자리를 찾느냐.]
웃음기 섞인 목소리와 함께 남궁천의 몸이 허공에 멈춘다.
그를 받아 낸 연수화가 떨리는 눈동자로 이를 악물었다.
“설 소협!”
“됐으니까 빨리 가라! 남궁천! 길을 열어라!!”
설천위의 호통에 이를 악문 남궁천은 자세를 고쳐 말 위에 섰다.
동시에 뿌려지는 검기.
억지로 쥐어짠 공격이 길을 뚫어 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진짜 길.
그렇기에 남궁천은 고개를 돌렸지만, 이내 이를 악물었다.
돌아갈 수 없다.
돌아가선 안 된다.
저 길은 곧 닫힐 테니까.
그렇다면 이쪽은 이 길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살아 있어라! 천위!! 반드시 데리러 올 테니까!!”
“오냐!”
남궁천의 목소리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삐딱하게 선 채 거한을 바라봤다.
헛웃음을 짓고 있는 꼬락서니가 썩 마음에 든다.
“혼자 죽겠다는 거냐?”
거한의 질문에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나도 어린놈인지라 벌써 묫자리를 찾긴 싫거든.”
“그렇다면 이게 무슨 짓이냐? 설마 살아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뚫렸던 길은 이미 닫혔다.
말은 대부분의 무인의 발보다 빠르다.
한번 포위망을 뚫고 달아나면 다시 포위해서 잡기 힘들다.
그런데 그런 말도 없고, 발도 그리 빠르지 않다면.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없다.
애초에 이 포위망을 정리하고 나갈 실력이 있었다면, 그리했을 테지.
즉, 이 포위를 정리할 실력이 없어 친구들을 내보낸 주제에 대체 이 무슨 자신감이란 말인가.
거기에다.
“설마 도망쳤다고 해서 못 잡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우리가 그리 허술해 보이느냐?”
잡기 어려운 거지, 못 잡는 게 아니다.
말도 체력에 한계가 있다.
타고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달리는 말도 휴식이 필요하다.
거기에 말은 그 체중만큼이나 자국도 뚜렷하게 남는다.
추적이 시작되면 결코 벗어날 수 없다.
“헛고생을 목숨을 바쳐서 하는구나.”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설천위를 보며 거한은 헛웃음을 지었다.
“어린놈이라서 생각이 짧구나.”
“뭐, 늙은 게 자랑이냐?”
가만히 듣던 설천위의 첫말이 조롱이라는 사실에 거한은 미간을 찡그렸다.
친우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그 기개는 높게 사 주고 싶지만, 싸가지가 없구나.
“당장 추적을 시작하라! 이놈은 내가 직접…….”
“추적을 왜 하냐?”
“네놈이 알 바가 아니…….”
설천위의 물음에 그를 향해 눈을 부라리려던 거한의 말문이 순간 막혀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정확히는 그의 손을 바라봤다.
살랑살랑 흔들고 있는 것.
[血聖之錄(혈성지록)]
있는지 없는지 헷갈렸던, 자신들이 원하던 비보.
“너희가 원하는 물건은 여기에 있는데, 왜 쟤들을 쫓아?”
“네놈…….”
설천위의 목소리에 거한은 낮게 으르렁거렸다.
혈성지록이 여기에 있다는 것보다 이 녀석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였다.
“산 채로 붙잡아 모든 것을 불게 해 주마.”
“에에~, 그건 싫은데?”
장난스러운 태도.
어느새 혈성지록을 상자에 넣은 설천위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암영의적에게 말해서 연수화를 말에 태울 때 빼돌려 놓길 잘했네.
적의로 불타오르는 거한의 시선을 설천위가 마주 바라봤다.
이 녀석들이 남궁천을 따라갈 걱정은 이제 안 해도 되겠네.
다른 매복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자, 그럼.
이제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까…….
선택지는 두 개.
잠시 고민하던 설천위는 결국 정했다.
“그럼 난 이만.”
튀자.
“놈! 어딜 도망치려는…….”
단, 적이 못 따라오게 한 뒤에.
가볍게 손을 흔들며 도망치려는 설천위를 붙잡기 위해 거한이 몸을 날린 그 순간.
설천위의 왼손은 검을 쥐고 있었다.
[소적검(消跡劍)]
오싹한 한기와 함께 거한은 몸을 비틀었다.
필사적으로, 그야말로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서.
그 발악의 끝.
“끄아아아아아!!”
왼다리가 무릎 아래로 잘려 나간 거한은 괴성과 함께 도끼를 휘둘렀지만, 설천위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그럼 바이바이.”
신법을 최대로 운용해 달리는 설천위가 손을 흔들었고, 그 모습에 거한은 악을 썼다.
“쫓아! 쫓으라고!!”
설천위의 무림생 두 번째 추격전이 시작됐다.
물론 이번에도 도망치는 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