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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51화 (51/624)

제51화

50화-참수사신 (1)

“먼저, 하나 정정해 줄 것이 있구나.”

마당의 중앙에 선 남궁현강은 웃는 얼굴로 설천위를 바라봤다.

“제왕검형의 정식 명칭은 제왕검형이 아니다.”

“예?”

“당연하지 않으냐? 남궁세가는 무력을 가진 무가(武家)다. 아무리 무림의 일원이라도 가주의 무공에 그런 명칭을 붙이면 반역죄로 황제의 칼끝에 섰을 게다.”

아…….

그건 맞긴 하지.

생각해 보니 게임에서도 이런 얘기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정식 명칭은 중천(重天). 이는 검식(劍式)의 형태로 전해지긴 하지만 엄밀히 말해 검식은 아니다.”

그렇기에 남궁현강은 검을 뽑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서서 설천위를 바라본다.

그의 앞에 선 설천위는 미묘한 느낌에 살짝 몸을 비틀었다.

뭔가 무거운…….

“감각이 좋구나.”

[음, 감각 하나는 쓸 만한 편이지.]

남궁현강의 평가와 천마의 동의.

그 속에서 설천위는 기묘한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무게군요.”

“정답이다. 중천은 중검(重劍)의 묘리를 검을 쓰지 않고 광범위하게 펼치는 것이다.”

그게 무슨 개소리일까.

중검을 ‘ㅈ’도, 아니 중검의 ‘ㅈ’도 모르는 설천위는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중검의 묘리?

그게 뭔데.

아니, 그리고 검(劍) 없이 중검(重劍)의 묘리를 펼치면 그냥 중(重) 아니야?

설천위가 이해하지 못할 설명에 미간을 찡그리고 있자, 남궁현강은 빙긋 웃었다.

그리고.

“흡!”

설천위의 고개가 아래로 꺾인다.

호흡이 막힌다.

거대한 무언가에 짓눌린 것처럼 가슴이 막혀 호흡이 약해진다.

본능적으로 일어난 내공이 몸 전체를 돌며 어떻게든 호흡을 정상으로 되돌리려 노력했지만, 그저 노력으로 끝날 뿐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그렇기에 설천위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었다.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남궁현강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대체 무엇을 한 걸까.

기세?

아니, 다르다.

살기와 위협에 긴장한 근육이 굳어 못 움직이는 게 아니다.

정말로 엄청난 무게의 바위가 몸 전체를 짓누르는 것 같다.

근육을 필사적으로 쥐어짜도 거대한 산을 결코 움직일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용을 쓰고 힘을 써도 거대한 철 덩어리를 비틀 수 없는 것처럼.

“중(重)이란 단어에는 수많은 뜻이 있지만, 이 무공에 담긴 의미는 두 가지.”

이를 악물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설천위의 기특함에 남궁현강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무겁다. 거듭하다.”

무거운 것을 거듭 쌓아 올린다.

그 무게는 당연히 배가 되고, 그것이 반복되면.

“이 하늘이 몇 겹으로 쌓였다고 생각해 보거라. 그 무게 아래에서 사람이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지.”

중력(重力).

남궁천의 설명에 설천위는 이 대지가 하늘을 붙잡아 놓는 힘을 떠올렸다.

과연 중천이란 그 힘을 재현한 것인가.

그 힘을 추구하고 갈구하여 만들어 낸 것인가.

“그렇기에 사람의 무릎은 땅에 닿고, 그 고개는 땅을 향한다.”

그 모습이 적을 굴복시켜 자신의 아래에 두는 제왕과 같기에.

“사람들은 이 무공을 제왕검형이라 부르기 시작했지.”

남궁세가에서 대놓고 부정하지 않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다.

굳이 나서서 부정할 필요도 없었고.

거기에 세간 사람들의 입을 하나하나 막을 수도 없었다.

이런 자잘한 이유로 방치했기에 제왕검형은 남궁세가의 대표 무공의 이름이 되어 버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무공이 그 이름값을 못 하는 건 아니었다.

“네가 어째서 이 무공을 보고 싶다고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몸을 짓누르는 힘이 더욱 강해진다.

남궁현강의 미소와 함께 설천위는 그 뒤에 이어질 말을 상상할 수 있었다.

“네가 원하는 만큼 몸으로 체험해 보거라.”

그 전에 기절하겠지만.

* * *

“으허!”

“이제 일어났나?”

“얼마나?”

“꼬박 하루다.”

남궁천의 대답에 설천위는 미간을 찡그렸다.

아니, 정신력은 쓸 만한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닌가?

[정신력만 쓸 만해서 하루나 기절한 게다.]

설천위의 표정을 보고 단박에 속내를 읽은 천마는 혀를 차며 설천위를 나무랐다.

[몸은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는데 정신력으로 억지로 버티니 몸이 망가지지 않고 배기겠느냐?]

혀를 차는 천마의 말에 설천위는 그제야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부러진 곳은 없지만 몸이 영 뻐근한 것이 확실히 근육에 무리가 갔던 것 같긴 하네.

“몸 상태는 걱정할 것 없다고 했으니 내일 출발할 거다.”

“그래, 그런데 숙부님은?”

“일이 생기셔서 외부로 나가셨다. 배웅을 못 해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씁, 그래?”

아쉽네.

뭐, 그래도 제왕검형은 썩 도움이 안 될 것 같으니 별 미련은 없지만.

결과물은 비슷해도 원리가 너무 다르다.

“그럼 푹 쉬고 내일 이른 아침에 출발하자. 쉬어라.”

“오냐.”

방 밖으로 나가는 남궁천을 향해 대충 손을 흔든 설천위는 그가 나가자마자 다시 침대에 머리를 댔다.

[아쉬워하는 것 같구나.]

“생각보다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서요.”

[무엇에 말이냐?]

“패기(覇氣)요.”

적의 움직임을 막고 약화시킨다.

그 결과물은 같지만, 구동 원리가 완전히 달랐다.

패기의 성장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쉽네.

여태까지 패기가 확실하게 성장했던 조건은 하나.

[혼원패공(魂元覇功)]이 성장했을 때뿐이다.

패융 덕에 패기를 쓰는 법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쓸모 있는 힘인지도 알게 됐고.

그렇다면 당연히 성장에 힘쓸 필요가 있었다.

그 성장 방법의 지름길을 찾을 수 있을까 했는데, 아쉽게 됐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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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설천위

나이: 16세

레벨: 1

근력 下上

체력 下上

순발력 下上

지력 中下

정신력 中中

내공 中下

영력 中下

패기 下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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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전투로 얻은 성과는 두 가지.

하나는 근력 스탯의 상승이다.

다른 스탯들은 아직 성장치에 도달을 못 했는지 등급이 오르지 않았고, 가장 낮았던 근력만이 등급이 올랐다.

그 치열한 전투 끝에 살아남은 것치고는 보상이 짜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애초에 남궁천의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전멸이었을 테니 어쩔 수 없지.

다행인 건 스탯 말고도 얻은 게 하나 있다는 것 정도?

학관에 도착하면 자세히 알아봐야지.

그럼…….

“밥이나 먹을까.”

배고파 죽겠네.

* * *

“으허, 나른하네.”

“그럼 나가서 걷겠는가?”

“헛소리 마라.”

무림학관으로 돌아가는 길.

웃으며 마차 밖을 가리키는 남궁천을 무시한 설천위는 한껏 늘어진 채 밖을 바라봤다.

참, 좋네.

무림학관에 빨리 가야 하기도 하니 남궁세가에서 마차를 빌려줬다.

말을 못 타는 설천위를 위한 배려다.

뭐, 타 보려고 시도는 했는데 극한의 몸치인 이 몸으론 말 타는 법을 배우다가 학기가 다 끝날 것 같아 포기했다.

“도착하려면 아직도 한참 남았나?”

“음, 아마도 앞으로 최소 닷새는 더 걸릴 거다.”

그럼 넉넉하게 일정을 잡으면 일주일도 걸린단 소리네.

아, 이게 문제야 이게.

땅덩어리는 더럽게 커서는…….

고증은 게임이랍시고 이것저것 무시하는 주제에 왜 땅덩어리는 그대로 겁나 크게 한 거야.

이럴 거면 포털도 만들어 주든가.

주술에 순간이동 비슷한 거 있잖아.

“씁, 심심하네.”

속으로 투덜거리던 설천위는 결국 한숨과 함께 본심을 토했다.

진짜 심심하다.

마차 안이라서 수련도 못 하고.

이 흔들림 속에서도 제대로 운기할 짬밥도 안 되고.

정말 시간 낭비 오지네.

“왜 산적들이 코빼기도 안 보이냐.”

“남궁세가의 깃발을 꽂아 놓은 마차를 털 간 큰 산적이 얼마나 되겠나?”

“씁.”

그것도 그렇군.

산적들을 상대하면 좋은 경험치가 될 수도 있을 텐데.

생각해 보면 여태까지 임무로만 상대해 봤지 그냥 산적을 공격한 적은 없었다.

공격하면 죽여야 할 일이 생기는데, 굳이 나서서 사람을 죽이고 싶지도 않고.

그래도 사냥만으로 충분한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지 시험해 보긴 해야 하는데…….

흠.

“천위.”

“응?”

“시험은 괜찮겠나?”

“몰라.”

남궁천의 말에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사태가 사태인 만큼 이번 중간고사는 대충 넘어갔다.

사파에서 탈출한 여인을 구출했다는 대의명분이 있으니 학관에서도 눈감아 준 거지.

문제는 그 덕분에 점수 책정이 기말로 몰빵 됐다는 점 정도?

즉, 기말고사를 망치면 끝이다.

그런데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으니 기말이라고 잘 볼 수 있을 리가.

“죄송해요. 저 때문에…….”

“죄송할 것 없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죠.”

자신의 옆에 앉아 있던 연수화의 목소리에 남궁천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곤란한 사람이 있으면 돕는다. 의협(義俠)의 기본입니다.”

“대협 나셨구먼.”

“대협이라니, 나는.”

“에이에이, 됐으니까 더 말하지 마라. 그리고 연 소저도 그리 신경 쓰지 마요. 돕는다는 선택을 한 건 우리니까.”

대충 남궁천의 말을 끊은 설천위는 다시 등을 기댔다.

“뭐가 됐든 그 얘기는 더 하지 말…….”

설천위의 말을 끊고, 강렬한 파공음이 벽을 꿰뚫는다.

“적!”

연수화의 뒤통수를 노리던 화살을 붙잡은 남궁천은 화살을 단숨에 꺾어 버리고 마차 문을 열었다.

“마부는 이미 죽었다!”

가슴과 목에 박힌 화살.

즉사나 다름없는 수준의 상처다.

남궁천의 외침에 설천위는 반대쪽 문을 열고 지붕 위로 올라갔다.

“적은?”

[음, 포위당했구나.]

천마의 대답에 설천위는 그대로 얼굴을 구겼다.

정파의 영역 내라서 아무런 대비도 안 하고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미리 대비했다면 마부도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쓸데없는 후회지.’

가볍게 머리를 저어 잡념을 털어 낸 설천위는 서둘러 상황 파악에 집중했다.

[전방에 약 스물, 후방에도 그 정도 있구나.]

최소 사십.

만약 옆으로 돌아오고 있는 인원까지 있다면, 그 숫자는 오십을 가볍게 넘길 수도 있다.

대규모라고 보기엔 부족하지만 그래도 상당한 숫자의 인원이다.

이런 숫자가 정파의 영역 내에서?

‘혈사련(血邪聯)인가!’

그 미친 종자들이라면 가능하다.

그놈들은 정파의 영역이고 나발이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암약하는 놈들이니까.

무엇보다 지금 있는 지역은 무당파와 남궁세가의 권역 사이.

즉, 서로의 힘이 약하게 작용하는 외곽이란 소리다.

충분히, 그 자식들이 노릴 만한 장소란 소리다.

그리고.

‘들켰네.’

연수화가 챙겨 도망친 가보 중에 혈사련의 물건이 들어 있다는 걸 들킨 거다.

그게 아니라면, 저 녀석들이 움직인 이유가 설명이 안 된다.

“천위.”

남궁천의 목소리에 설천위는 한숨과 함께 주먹을 들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라 미친 듯이 달리고 있는 말들.

어느새 마부석에 앉은 남궁천이 제어하고 있지만, 적들과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선택해야 한다.

도망칠 것인가, 싸울 것인가.

노리는 게 혈성지록(血聖之錄)이라면 최소 단주급이 왔을 거다.

그렇게 되면?

필패.

진짜 초인의 경지에 오른 괴물 따위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랬다면 화살 같은 거 안 쐈겠지.’

그냥 그대로 하늘에서 떨어져 마차랑 함께 목을 베어 버렸을 거다.

그러니 할 만하다.

아니, 해야 한다.

화살이나 갈기면서 이쪽을 포위하고 있다는 것은 그 노림수가 확실하니까.

시간 벌이.

즉,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하나.

“뚫자.”

닷새 정도의 거리.

학관에만 닿으면 이쪽의 승리다.

어깨 위로 올라온 패융이 설천위의 뜻에 따라 가슴으로 파고든다.

들끓는 패기(覇氣)가 육체를 깨우고 설천위에게 없던 힘을 더한다.

“연 소저! 말을 부탁합니다!”

“예!”

그런 설천위에 호응해 고삐를 넘긴 남궁천도 마차의 지붕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검을 뽑는다.

“작전은?”

“아까 말했잖아.”

“확인했다.”

설천위의 대답에 빙긋 웃은 남궁천의 검이 전방을 막고 있는 적들을 향한다.

끓어오르는 내공이 팔을 타고 흘러 검에 도달한다.

그리고.

“가자!”

푸른 검기가 길을 막는 적을 향해 쇄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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