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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50화 (50/624)

제50화

49화-중간고사 (9)

창천단주(蒼天團主).

그 검에 하늘을 담았다고 하여, 스스로 창천검(蒼天劍)이라 자칭하는 이들.

현시대의 창천검은 남궁선이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남궁현강, 이 사내가 창천검의 자리에 있었다.

그런 사내의 눈동자가 서슬 퍼런 살기를 띤 채 유허정을 내려다본다.

피부가 저릿해지는 것 같은 살기를 느끼며 유허정은 이를 악물었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핏방울의 선명한 감촉.

굴욕이다.

하지만…….

천천히 검을 거둔 유허정은 남궁현강과 조심스럽게 거리를 벌렸다.

지금 이 자리에 온 건 3번대뿐이다.

이쪽은 단주가 오지 않았다.

그 격차는 실로 컸다.

화경이라 불리는, 초인의 영역에 들어선 이들의 힘이야말로 그들이 단(團)이라 불리는 큰 조직의 주인(主人)인 이유였다.

싸우면 몰살.

까딱하면 저 두 어린놈도 처리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다.

남궁현강은 지금 자신들을 죽일 생각이 없어 보이니.

이 목이 붙어 있는 게 그 증거다.

무엇보다 이 인간이 혼자 왔을 리가 없다.

“철수다.”

유허정의 한마디에 움직일 수 있는 3번대 인원들은 즉시 무기를 거두었다.

사파에서 상급자의 명령은 곧 법이니까.

하물며 그게 목숨을 살릴 철수 명령이라면 뭉그적거릴 이유가 없다.

사파의 인원들이 재빨리 철수 준비를 시작하는 순간.

“가주님!”

저 멀리서 달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에 3번대의 손길이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최소 수십.

게다가 남궁 가주 직속의 창궁대(蒼穹隊)일 터.

상대가 될 리 없었다.

빠르게 철수를 시작하는 부하들을 지켜보던 유허정은 남궁현강을 바라봤다.

“뒷수습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뭘?”

“당신이 우리의 영역에 들어온 건 큰 문제지요.”

“흥, 헛소리.”

코웃음과 함께 어느새 검을 집어넣은 남궁현강은 팔짱을 낀 채 유허정을 바라봤다.

“아비가 자식을 마중 나온 게 무에 문제가 된다고?”

천륜을 따르는 행동이니 아무런 문제도 없다.

“문제가 되는 건 네놈들이 내 아들놈을 붙잡으려고 여기에 진을 치고 있었던 점이다.”

또다시 무겁게 공간을 찍어 누르는 압박감에 유허정은 자신도 모르게 반걸음 물러났다.

이내 자신의 수치스러운 행동을 깨닫고 이를 악문 유허정은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저희는 훈련을 했을 뿐입니다. 남궁 가주.”

“흥, 마음대로 지껄여라.”

기세를 거둔 남궁현강은 어느새 도착해 아이들을 챙기고 있는 부하들을 바라봤다.

“다음에는 훈련이 아니라 실전에서 만나게 될 테니.”

이 피의 값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그 경고에 유허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엔 우리 단주를 모시고 찾아가겠습니다.”

짧은 대답을 마지막으로 유허정 또한 자리를 떴다.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진 사람들 사이로 남궁현강은 들것에 실리는 아들과 그 옆에 있는 아들의 친구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놈, 학관에 보내 놨더니 아주 재미있는 녀석이랑 친구가 되어 돌아왔구나.”

* * *

[천위, 슬슬 일어나라.]

“으음?”

[슬슬 회복하지 않으면 팔에 무리가 간다.]

흔들리는 어딘가.

천마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설천위는 상체를 일으키기 위해 팔을 쓰려다가 아찔한 통증에 그만 이를 악물었다.

“아윽, 더럽게 아프네.”

팔을 쓰는 건 포기하고 복근만으로 상체를 일으킨 설천위는 이내 상황을 파악했다.

마차 안.

아마 돌아가는 길이겠지.

팔에 대어져 있는 부목으로 봐선 남궁세가에서 잘 수습해 줬나 보네.

[놈, 어리석었다. 남궁 가주가 왔다는 걸 알려 줬다고 그런 짓을 하다니.]

일어나자마자 눈을 부라리는 천마의 질책에 설천위는 고개를 돌렸다.

“아니, 그 자식이 꼴받게 하잖아요.”

[그렇다고 팔을 양쪽 다 걸레짝으로 만드는 머저리가 대체 어디에 있느냐?]

뭐, 그건 맞는 말이지.

천마의 질책을 순순히 받아들인 설천위는 눈으로 마차 내부를 훑었다.

일단, 옆에 누워 있는 남궁천 녀석은 일어날 기미조차 안 보이고.

연수화 걔는 다른 마차에 탔나.

그나저나 이 마차 꽤 크네.

나랑 남궁천 둘이 누워 있는데도 공간이 남을 정도면.

“남궁세가가 돈이 꽤 있긴 한가 보네.”

[이를 말이냐. 남궁세가는 안휘의 패자인데.]

뭐 그렇긴 하지.

고개를 끄덕이며 회복 스킬을 발동시킨 설천위는 몸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응급조치를 잘했는지 크게 문제가 생긴 곳은 없는 것 같았다.

좋아.

“그럼 다시 잘까.”

팔을 못 움직이니 자는 게 우선이지!

* * *

“허, 놀라운 회복력이구나.”

남궁세가로 돌아가는 길.

한 객잔에 자리를 잡은 남궁현강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오랜만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금세 정신을 차려서 밥을 달라고 할 땐 꽤나 정신력이 좋은 놈이구나, 하는 정도로 생각했는데…….

“아! 감사합니다!”

“됐다. 신경 쓰지 말고 많이 먹기나 하거라.”

양손으로 돼지다리를 들고 뜯는 설천위의 모습에 남궁현강은 고개를 저었다.

분명 최소 몇 달은 요양해야 할 중상이었는데, 이게 대체 무슨 기사(奇事)인가.

무림에 기이한 일이 많다곤 하지만, 저렇게 어린 녀석이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설가 놈들이 도술을 연구하고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말이지.’

독학인가?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설천위를 바라보던 남궁현강은 그 옆에 있는 자식을 바라봤다.

친구 놈한테 지기 싫은 건지, 아니면 그냥 약한 상태로 있는 게 싫은 건지.

꾸역꾸역 나와서 고기를 입에 넣고 있는 모습이 썩 마음에 든다.

“그런데 가주님.”

“됐다. 아들 친구 녀석이 무슨 가주님이냐? 네가 네 아비보다 두 살 어리니 그냥 숙부라고 불러라.”

“그럼, 남궁 숙부.”

“오냐.”

근처에서 남궁현강과 설천위의 대화를 듣고 있던 백도균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설천위를 바라봤다.

뭐 저런 녀석이 다 있지?

가주는 그 배분은 높지 않을지언정 이 무림에서 인정받고 있는 초인이다.

그런데 뭐 저리 친숙하게 다가간단 말인가.

설주철, 그 인간이 자식이랑 친하게 지냈을 리도 없고.

어찌 저리 낯이 두껍지.

두 사람이 친해지는 속도를 백도균이 따라가지 못하는 사이, 설천위는 질문을 이어 갔다.

“이렇게 직접 오셨어도 되는 거예요?”

“뭘 걱정하느냐?”

“사천맹 걔들 쪼잔하기로 유명하잖아요.”

“흐하하하! 암, 쪼잔한 놈들이지. 하지만 쪼잔한 녀석이 귀찮다고 해서 몸을 움츠리고 있을 필요는 없는 법이다.”

호쾌하게 웃은 남궁현강은 가만히 설천위를 바라봤다.

“그나저나 옛날에 보았을 때랑 완전히 다른 아이가 됐구나.”

“아이는 원래 끝없이 성장하는 법이죠.”

“흐하하하! 맞다. 아이는 본래 성장하는 법이지.”

고개를 끄덕인 남궁현강은 어느새 훌쩍 커 버린 아들을 바라봤다.

“조금 있으면 가문에 도착하니 며칠 정도 푹 쉬었다 가거라.”

* * *

“그래서요? 설 공자는 괜찮대요?”

“네. 양팔이 망가졌었는데, 이젠 멀쩡하다고 하네요.”

“어휴, 다행이다.”

“그럼요. 다행이죠.”

서하영과 유예린의 뒤.

두 여자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철백은 순간적으로 스친 유예린의 싸늘한 미소에 고개를 끄덕였다.

음, 다행이야.

천위가 죽었다면 섬서유가가 사파에 전쟁을 선포했을지도 모르겠어.

사파와의 전쟁이 휴전 상태에 돌입한 지 수년.

자잘한 전투는 있어도 요 몇 년간 대규모의 전투는 없었다.

위기에 몰린 사파가 사천맹이라는 이름 아래 제대로 뭉쳐 버리는 바람에 생긴 부작용 같은 평화였다.

그 평화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

과연 이 무림은 어떻게 될까.

도저히 예측하기 힘든 미래를 떠올리던 철백은 고개를 저어 잡념을 털어 냈다.

뭐가 됐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해야 할 것은 하나다.

“그럼 난 이만 훈련장으로 돌아가겠네.”

“같이 가요!”

수련.

이 몸을 갈고닦는 것.

그 무엇에도 꺾이지 않는 불굴의 육체를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유일한 과제다.

서하영과 함께 훈련장으로 돌아가는 철백의 뒷모습을 보며 유예린은 작게 웃었다.

역시 그 사람의 친구답다고 해야 하나.

닮은 구석이 있네.

설천위 생각에 희미하게 미소 짓던 유예린은 천장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순식간에 그 미소를 지웠다.

“어떻게 됐나요?”

“의뢰가 있었던 것을 확인했습니다.”

“역시.”

전철후, 이 인간과 싸웠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누구일까?

남궁세가와 설가는 적이 많다.

그 수많은 적들 중에 과연 누구일까.

“의뢰자는…….”

부하의 이어지는 목소리에 유예린의 표정이 더욱더 차갑게 굳어 간다.

“지금 당장 증인과 증거를 수집하세요.”

천천히 입을 연 그녀의 목소리엔 경멸과 살기가 깃들어 있었다.

* * *

남궁천이 머무르는 별채의 마당.

그 마당에 있는 정자에 누운 설천위는 한껏 기지개를 켰다.

“끄어! 집 좋네!”

“너희 집도 만만치 않을 텐데.”

“글쎄, 딱히 기억이 없어서.”

기억이 없다.

설천위의 그 말에 남궁천은 쓰게 웃었다.

설천위의 처지를 알고 있으니 말의 속뜻이 이해되었다.

재능이 없는 그가 무가(武家)에서 지냈다면, 그것도 사파와의 전투 하나에 모든 것을 건 설가에서 자랐다면 뻔히 상상되는 이야기이니까.

설천위의 별 뜻 없는 진심에 남궁천이 씁쓸함을 삼키던 순간.

“몸 상태는 괜찮으냐?”

“아버지!”

“됐다. 벌떡 일어나는 걸 보니 멀쩡한 것 같구나.”

아들의 모습에 빙긋 웃은 남궁현강은 정자에 엉덩이를 걸쳤다.

“이제 너희도 슬슬 돌아가야 할 때가 됐으니, 한 가지 궁금해서 이리 왔다.”

“예?”

“천위, 네게 궁금한 게 있다.”

“예, 숙부.”

반듯한 자세로 대답하는 설천위를 가만히 바라보던 남궁현강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그의 허리춤에 있는 검을 바라봤다.

“내가 너희를 구하기 직전에 네가 펼쳤던 검술, 그 이름이 무엇이더냐?”

“소적검(消跡劍)이라고 합니다.”

“이름까지 같구나.”

이름까지 같다.

그 말에 설천위는 단숨에 상황을 이해했다.

[음, 아직도 나를 기억해 주는 건가.]

야, 아는 사이인 거 왜 말 안 했어!

현태중을 향해 눈을 부라리고 싶은 걸 필사적으로 참은 설천위는 어색하게 웃으며 남궁현강을 바라봤다.

“이 무공의 주인을 아십니까?”

“친우였다.”

“그렇다면…….”

“됐다. 네가 어찌 그 무공을 익혔고, 어찌 그 몸으로 그것을 재현해 낼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잠시 말을 끊은 남궁현강의 눈이 짧게 허공을 응시한다.

그리고 이내, 다시 설천위를 바라본 남궁현강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 친구를 볼 자격이 없구나.”

[인지하지 못한 불의(不義)를 못 보고 넘긴 것은 죄가 아니다.]

남궁현강의 말에 대답하는 듯한 현태중의 목소리에 설천위는 작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인지하지 못한 불의(不義)를 못 보고 넘긴 것은 죄가 아니다…… 라고 하네요.”

“……과연.”

설천위의 말에 쓴웃음을 삼킨 남궁현강은 이내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

“옛 친우를 떠올리게 해 준 보답이다. 지금 네가 원하는 것 중 내가 이뤄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하나 들어주마.”

이뤄 줄 수 있는 것.

남궁세가의 가주가 말하는, 이뤄 줄 수 있는 것의 범위는 아득히 넓다.

그 가치를 아는 암영의적이 호들갑을 떨었지만, 설천위는 담담하게 남궁현강을 바라봤다.

뭐, 사실 원하던 게 하나 있었지.

“제왕검형을 보고 체험하고 싶습니다.”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제 재능으로 제왕검형을 익히려면 최소 2년은 여기서 살아야 할 테니까요.”

“흐하하하! 재능이 없다고 들었지만, 스스로 그렇게 평가할 정도더냐?”

“뭐, 명불허전이죠. 천마도 인정할 걸요?”

[암, 인정하고말고.]

“허허, 천마의 보증이라면 또 믿을 만하겠지. 좋다.”

재미있는 농을 들었다는 듯 기분 좋게 일어선 남궁현강은 마당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보여 주마. 체험시켜 주마. 창천과 제왕의 무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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