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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9화 (49/624)

제49화

48화-중간고사 (8)

“씁.”

“어떻게 할까?”

나무 위에서 적들의 포위망을 확인한 설천위는 남궁천의 질문에 입을 다물었다.

뭘 어째.

방법이 있냐.

“뚫어야지.”

“역시 그 방법밖에 없겠지?”

고작 두세 시간.

그 정도만 멈춰 있어도 뒤에 있는 놈들에게 확실하게 붙잡힌다.

그래서 싸우게 되면?

저쪽에서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이 초원에서 저만한 숫자를 따돌리는 것도 불가능할 테니 포위당하면 끝.

거기에.

[음, 초절정 정도로 보이는 녀석이 하나 있구나.]

이봐, 이봐.

다쳐 있는 전철후란 놈은 몰라도 쌩쌩한 초절정이 하나 합류하면 패배 확정이다.

아무리 남궁천이 대단한 재능을 지녔고 그에 맞는 노력을 했어도 나이는 이제 고작 10대 후반.

현실의 한계라는 게 있는 법이다.

무공이란 게 만능은 아니란 말이지.

그렇다면.

“일시에 뚫고 지나가는 게 답인가?”

“위험하다. 아무리 그래도 팔이 망가지면.”

“달리는 데 지장이 있지.”

팔의 통증을 완전히 무시한다고 해도 달릴 때 팔은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한다.

그게 하나 망가지면 제 속도를 내기 힘들다.

균형을 잡는 데 그만한 힘을 써야 하니까.

아예 몸의 중심을 앞으로 쏠리게 해서 팔을 움직이지 않고 달리는 형태의 주법도 있지만, [섬뢰풍영보(閃雷風影步)]는 그런 형태의 보법도 아니고.

씁.

답이.

답이 보이질 않는다.

어찌해야 하나.

고민은 깊지만, 이렇다 할 결과물은 나오지 않는다.

애초에 뚜렷한 결과물이 바로 나올 만한 문제였으면 이런 고민도 안 했겠지.

“천위, 이번엔 네 선택에 따르지.”

뚫느냐 아니냐.

그 열쇠를 설천위가 쥐고 있다.

목숨을 걸고 앞을 열어야 하는 역할을 설천위가 맡아야 한다.

그렇기에 남궁천은 설천위가 그랬던 것처럼 담담히 그의 선택을 기다렸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곧은 남궁천의 눈동자를 설천위는 가만히 바라봤다.

사람을 구하는 것이 정의(正義)라고 믿는 선인(善人).

정파(正派)란, 정도(正道)란 당연히 그러한 것이라고 믿는 무인(武人).

자신의 행동에 한 점 후회도 없는 눈동자.

그 안에 담긴 작은 미안함조차 친우를 위협에 빠트리고 구해 주지 못한 자신을 향한 분노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기에 그것을 사과하지 않는다.

사과한다고 한들 의미가 없음을 알기에.

그저 행할 뿐이다.

그 목숨이 자신의 친우보다 빨리 죽는 것을.

자신이 죽기 전엔 절대 친우를 죽게 놔두지 않겠다는 신념을.

‘……라고 게임에선 말했었지.’

뭐, 아무리 그래도 눈빛으로 이 복잡한 감정을 읽을 순 없지.

게임에서 봤던 남궁천은 그런 사내였고, 지금 보아하니 여기서도 다른 것 같진 않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지 않은가.

“뚫자.”

이쪽도 목숨을 거는 수밖에.

애초에 남궁천이 연수화를 구하는 시점에서 그를 버리지 않은 건 자신의 선택이다.

무림(武林)에서, 이 육도(六道)의 세계에서 오지랖은 죽음과 연결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른답게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질 차례다.

지금은 어른은 아니지만, 여하튼 어른이었으니까.

검에 손을 올린 설천위는 천천히 일어나 초원을 바라봤다.

결심했으니 행동할 차례다.

* * *

‘더럽게 힘들구먼.’

초원에 펼쳐진 얇고 넓은 그물.

그 그물의 한 획을 맡은 엽하는 소매로 땀을 닦았다.

날씨도 꽤나 후덥지근한데, 이렇게 온종일 초원에 죽치고 서 있다니.

힘든 걸 떠나서 지친다.

멍하니 아무것도 없는 초원을 바라보는 시간.

제대로 된 휴식 시간도 없이 그저 서서 보고 또 본다.

저 윗대가리 놈들은 적당히 휴식을 취하러 가는데.

이쪽은 휴식의 쪼가리도 맛보지 못하고 있다.

‘약한 게 죄지, 죄야.’

사파에서 약한 건 죄 맞지.

그리고 난 그 죄인에서 단 한 걸음도 못 벗어날 테고.

현실을 인정하고 포기해 버린 엽하는 반항조차 포기했다.

반항해 봤자 죽기밖에 더해?

아무리 힘들어도 버티기만 하면 돌아가서 저녁에 술 한잔 걸칠 정도의 돈은 나온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음?”

신세 한탄과 함께 복귀 후 찾아올 달콤함을 상상하던 엽하는 묘한 느낌에 눈을 비볐다.

무언가가 보였다.

저 풀숲 너머 무언가가 움직인 듯한…….

“적이다!!”

누군가의 외침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듣자 하니 이 포위망이 노리는 건 정파의 후기지수.

그것도 그 유명한 남궁세가의 후기지수다.

자신 같은 잡졸 따위 일초지적도 되지 않는, 재능이란 말로 표현하기에도 힘든 격차가 있는 괴물.

그런 녀석을 상대로 맞서 싸울 생각은 없다.

그저 적당히 버티다가 어떻게든 살아만 남으면…….

엽하는 적이 자신의 앞에 나타나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라던 그 순간.

싸악.

공기가 차가워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늦가을에 차가운 밤공기를 맞이한 듯한 서늘함.

그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을 고민하는 순간.

엽하의 시야는 이미 땅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 * *

“재미있군!!”

단숨에 포위망의 한 축이 무너졌다.

거기에 아름답기까지 했던 하나의 궤적.

그 하나의 궤적이 만들어 낸 결과물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소름 끼치는 건 그 궤적은 그저 허공을 베었을 뿐이라는 것.

살을 떨게 만드는 그 위력에 이를 악문 유허정은 입꼬리를 비틀었다.

“적습이다!! 전원 전투 준비!!”

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초원 전체로 퍼져 나간다.

상대가 어떤 강자라 할지라도 물러서지 않는다.

자신이 몸을 담고 있는 곳은 죽음 혹은 삶만이 있는 부대.

백절생사단(百絶生死團).

그 3번대 대주인 유허정은 검을 뽑아 들고 달렸다.

뭐가 어찌 됐든, 이쪽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다.

“철저하게 포위해 사로잡아라!”

남궁천을 붙잡는 것!

무엇보다 조금 전의 공격.

후속타가 없다.

이만한 기술을 쓸 정도의 상대라면 그 뒤 이어지는 공격에 포위망이 완전히 와해돼야 맞다.

그런데 왜 후속타가 없는가?

답은 하나다.

무리하게 펼친 기술이기 때문이다.

몸 상태가 안 좋건, 경지 밖의 기술을 억지로 펼쳤건 상대는 제대로 된 상태가 아니다.

그렇다면 할 만하다.

단숨에 사로잡아 주마.

입꼬리를 올린 유허정은 단숨에 부하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가만히 밖에서 죽어 나가는 걸 기다린다?

그건 겁쟁이들이나 쓰는 비효율적인 수단이다.

이쪽의 최대 전력이 자신인데 자신이 놀아서야 일이 빨리 끝날 수가 없다.

망설임 없이 전장으로 뛰어든 유허정의 눈에 검을 든 남자가 보였다.

창천을 상징하는 푸른 무복을 입은 미소년.

네가 남궁천이구나.

목표물을 포착한 유허정의 시선은 오로지 남궁천만을 향했다.

그 뒤에서 망가진 오른팔 대신 왼손으로 분전하고 있는 녀석은 이미 그의 시선 밖에 있었다.

그렇기에 망설임 없이 몸을 날린 유허정.

그의 검이 부하를 벤 직후인 남궁천을 덮친다.

완벽한 순간.

완벽한 찌르기.

그 냉혹하기 그지없는 공격에 남궁천은 이를 악물고 어깨를 비틀었다.

하지만 그것도 예상 범위.

남궁천의 어깨를 유허정의 검이 단숨에 꿰뚫는다.

그 깔끔하기 그지없는 공격에 남궁천은 이를 악물었다.

이자, 자신보다 한 수 위의 경지다.

초절정이라고 전부 다 같은 초절정이 아니다.

경험, 내공의 양, 익힌 무공의 성질 등등.

상호 간에 상성은 물론이고, 우열도 당연히 있다.

눈앞에 있는 상대는 경험과 내공의 양.

이 두 가지에서 확실하게 자신보다 우위에 있다.

낭인 출신인 전철후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되는, 전장에서 살아남은 진짜 강자.

절로 이가 악물어진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 행동이 굼떠진다.

‘아니! 정신 차려라!’

아직 죽어선 안 된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여기서 내가 무너지면, 친우가 죽는다!

여기서 내가 무너지면, 연수화가 죽는다!

지켜 주겠다는 약속을 어기게 된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선 안 된다.

약속을 어기는 것은 불의(不義)니까!

“남궁(南宮)에 불의(不義)란 없다!”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두르는 남궁천의 모습에 유허정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과연, 역시 정파의 창천이다.

그 푸르름이 너무나도 선명해 눈이 부실 지경이구나.

하지만 현실은 현실.

미숙한 경험.

움직임을 방해하는 부상.

등에 짊어진, 지켜야 할 존재라는 짐.

이 모든 것을 뛰어넘기엔 현실의 벽은 너무도 높고 비정하다.

유허정의 검이 남궁천을 몰아붙인다.

네 번 검이 허공에서 부딪히면, 한 번 베인다.

세 번 검이 허공에서 부딪히면, 한 번 베인다.

두 번 검이 허공에서 부딪히면, 한 번 베인다.

한 번 검이 허공에서 부딪히면, 한 번 베인다.

그러다 어느 순간,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사라졌다.

그저 살을 베는 소리만이 허공에 울려 퍼진다.

“끈질기군.”

검에 묻은 피가 어느새 찐득해진 느낌이다.

검신을 어루만지며 유허정은 남궁천을 바라봤다.

사로잡아야 하니 급소는 피했다고 하지만, 이 이상 시간이 지나면 과다 출혈로 죽는다.

그런 상태가 됐는데도 아직도 쓰러지지 않고 서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고 싶지만…….

“넌 뭐냐?”

그보다 더 놀라운 녀석이 있었다.

남궁천의 등 뒤.

연수화는 물론, 남궁천의 등에도 단 한 점의 상처조차 없다.

대주가 싸우고 있으니 부하들이 합공을 안 해서?

그럴 리가.

여긴 사파다.

합공은 기본 소양이다.

단지 못 했을 뿐이다.

“뭘 뭐냐, 새끼야……. 사람이지…….”

저 피투성이로 싸우고 있는 녀석 하나 때문에.

속도를 중점으로 한 무공을 익힌 것 같은데, 발이 묶인 상태에서 어떻게 저리 버티고 있는 것일까.

상처의 수준은 이미 남궁천을 아득히 넘어섰는데.

무엇으로 서 있는 것인가?

정신력?

신념?

뭘까?

호기심이 절로 일어나는 그 근성에 유허정이 검 끝을 겨누는 순간.

오싹.

등줄기에 느껴진 짜릿한 오한이 몸 전체를 꿰뚫고 지나간다.

그건 본능이었다.

자신의 목을 지키는, 무인의 본능.

피가 뿜어져 나오는 소리와 함께 쓰러지는 부하들 사이에서 유허정은 자신의 검을 바라봤다.

3분의 1 정도가 파인 검신.

충격을 해소하지 못한 몸이 아직도 떨린다.

“하, 빌어먹을……. 왼팔은 좀 약하네.”

그렇기에 허탈한 목소리를 향해 딱딱하게 굳은 목이 천천히 돌아갔다.

왼팔마저 망가진 듯, 양팔을 늘어트린 채 서 있는 소년.

여태까지 이 기술을 쓰지 않은 건 양팔을 잃으면 살길이 없기 때문이었나.

마지막의 마지막에 와서 자신의 목숨을 건 도박을 한 거였나!

본능이 외친다.

지금 죽여야 한다.

지금, 이 자리에서!

두 눈에 강렬한 살기를 품은 유허정이 땅을 박찼다.

남궁천이 말리려 움직였지만, 이미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그가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렇게 남궁천을 무시한 채 단숨에 설천위의 앞에 도달한 유허정이 검을 들어 내려치려는 그 순간.

“어허.”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순간적으로 유허정의 다리에 힘이 풀린다.

예상치 못한 압박감에 의한 일시적인 혼란.

빠르게 몸을 추스른 유허정은 고개를 들었다.

언제, 아니, 어떻게?

“아이들을 상대로 너무 열을 내는 것 아닌가? 유 대주.”

창천(蒼天).

드넓은 하늘이 유허정을 짓누른다.

푸른 무복에 멋들어진 수염을 기른 중년인.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선과 남궁천의 아버지.

전 창천단주(蒼天團主), 남궁현강.

그의 검이 얼굴 위로 떨어진다.

아니, 떨어졌다고 느꼈다.

그저 가져다 댔을 뿐인데.

전신을 짓누르는 제왕검형(帝王劍形)의 압박감에 유허정은 이를 악물었다.

이 괴물 같은 종자가……!

“오랜만에 뵙는군요! 남궁 가주!”

“흐하하하! 오랜만이긴 하지! 저번 전쟁에서 봤었나? 그때 못 죽인 게 참 아쉬웠는데 말이야.”

호탕하게 웃은 남궁현강은 검을 밀었다.

천천히, 유허정의 볼을 파고드는 검.

어느새 싸늘하게 식은 남궁현강의 두 눈이 유허정을 응시했다.

“우리 아이들이랑 조금 감정의 골이 생긴 것 같은데, 어떤가? 나랑 마저 풀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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