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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7화 (47/624)

제47화

46화-중간고사 (6)

“그래서 놓쳤다고?”

“보고로는…….”

“이런 머저리 새끼가!”

부하를 향해 벼루를 냅다 던진 연주택은 입술을 깨물었다.

연수화는 절대로 살아 있으면 안 된다.

지금도 뒤에서 연수화를 지지할 마음을 품은 이들이 있다.

신념이니 뭐니 하는 것에 집착하는 머저리들.

하지만 그런 놈들이라고 해도 이 가문에 필요한 머저리들이다.

연가는 무(武)가 아닌 두뇌로 성장한 무가(武家).

그로 인해 생기는 고질적인 문제는 무력의 부재다.

초절정조차 한 세대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수준이다.

사파의 한 축을 담당하는 무가로서는 치명적인 약점.

그걸 메우기 위해 연가는 보통의 무가보다도 많은 식객을 거느리고 있다.

돈이야 충분히 있으니까.

한데, 이 식객들도 나름 파벌이 나누어져 있다.

순수하게 돈과 이득만을 보고 들어온 이들.

연가라는 이름에 보호받고 싶어 온 이들.

연가에서 무언가 배울 것이 있다고 판단해서 온 이들.

문제는 마지막, 무언가 배울 것이 있다고 판단한 이들이다.

전대 가주가 정말로 중히 여기고 아꼈던 이들.

그들은 웬만한 충신은 저리 가라는 수준으로 전대 가주에게 충성을 다했다.

연주택이 벌인 짓을 알아챈 순간, 바로 검을 치켜들 잠재적 반동분자들이다.

그들이 연수화와 접촉하면?

이 가문이 반 토막 나는 건 시간문제다.

그럴 순 없다.

이 사파에서 약자는 곧 먹잇감.

반으로 갈라진 연가는 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진다.

그렇다면, 차라리 가치가 떨어지기 전에 조금의 손해를 감수하는 수밖에.

“놈들은 아직도 우리 영역 안에 있겠지?”

“예. 살아남은 전철후의 말로는 남하했다고 합니다.”

“흥, 뭐가 거람(巨攬)이냐. 크기만 하지 아무것도 붙잡지 못한 놈이.”

병상에 누워 치료를 받고 있을 전철후를 비웃은 연주택은 돈주머니를 꺼내 부하에게 던졌다.

“살영(殺影)에 의뢰를 넣어라. 목표는 수화의 사살이다.”

조건에 따라 화경의 암살 의뢰도 받아들이는 놈들이다.

이 정도 의뢰, 얼마든지 받아 주겠지.

* * *

“이건 심하군.”

“뼈가 틀어지거나 잘못된 곳이 있습니까?”

“음, 다행히 그건 아닐세. 다만, 낫는 데 수개월은 걸릴 게야.”

적당한 크기의 마을.

마을에 있는 유일한 의원인 노인의 진료를 받으며 설천위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크게 잘못된 곳은 없네.

[나를 뭐로 보고 그러는 것이냐. 다 섬세한 조절이…….]

그게 됐으면 다치게 하질 말아야지.

헛소리를 지껄이는 현태중을 한 번 쏘아본 설천위는 고개를 돌려 누워 있는 연수화를 바라봤다.

남궁천의 등에 업혀 와 설천위보다 먼저 진료를 받은 연수화다.

다행히 목숨은 붙어 있지만…….

“최소 3주인가.”

거동이 가능해질 때까지 걸릴 예상 시간이 너무 길다.

이쪽은 회복이 있으니 한 사나흘이면 전투가 가능해질 정도로 회복하겠지만…….

“씁. 이거 문제가 크네.”

“아무리 적이 쫓아와도 쉬어야 할 때는 쉬어야 하는 거네, 젊은이.”

설천위의 혼잣말에 허허롭게 웃은 의원은 다시 연수화의 곁에 앉았다.

“밖에 있는 저 친구에게도 전해 두게. 그렇게 쉬지 않고 움직이면 쓰러진다고.”

혀를 차며 이마에 올려놓은 천을 교체한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는 저 옆방에 있을 테니 아프거나 하면 부르게.”

“예, 어르신.”

의원이 나가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설천위는 가부좌를 틀었다.

뭐가 됐든,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자.

일단 회복이 먼저다.

내공을 회복하고, 그 내공으로 몸을 치료한다.

[회복] 스킬의 성장이 참 가파르다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네.

내공을 전부 다 쓸 때까지 [회복]을 사용하던 설천위는 이내 또 하나 확인할 것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패기(覇氣)라…….”

게임에선 딱히 본 적이 없는 능력치다.

NPC 중 누군가는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플레이어블 캐릭터엔 없었다.

효과를 예측하기 힘든, 그런 종류의 스탯이다.

하지만 이번 싸움으로 한 가지 효과는 확인했다.

디버프.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짓누르는 힘.

어떻게 보면 남궁세가의 제왕검형이랑 비슷한 것 같은데…….

그것과 뭔가 다른 것 같단 말이지.

그리고.

‘이렇게 하는 거였나?’

[패룡지체]를 발동했을 땐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던 패기의 흐름이 영 감이 안 잡힌다.

이게 맞는지, 제대로 움직이고 있는 건지 의심스러울 만큼 내공과는 전혀 다른 무형의 힘.

이걸 다루는 게 [혼원패공] 성장의 열쇠 중 하나일 것 같은데…….

거기에 패융과의 빙의를 고려하면, 무조건 익혀 두는 게 좋을 것 같고.

시간 날 때마다 실험해 보는 수밖에 없나.

[패룡지체]도 있으니까.

학관에 돌아가면 금방 감을 잡고 쓸 수 있게 되겠지.

그렇게 설천위가 여러모로 고민하며 회복에 힘쓰던 그때.

“천위, 일어나 있나?”

“어. 들어와.”

“음.”

밖에서 주변을 경계하던 남궁천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다행히 추적자는 없는 것 같네.”

“뭐, 그렇겠지.”

암영의적의 말을 그대로 따라서 정말 최소한의 흔적으로 마을까지 왔으니까.

거기에다 천라지망을 펼친 흔적 때문에 보통의 추적자는 흔적을 읽은 것조차 불가능한 상태다.

한 며칠 정도는 안전하겠지.

애초에 우리가 천라지망을 뚫었다는 보고가 들어가고 그 후속 조치가 내려올 때까지도 시간이 걸릴 테니까.

문제는…….

“3주나 기다려야 한다네.”

“음, 그건 역시 좀 힘들군.”

아무리 그래도 3주나 걸릴 일은 없다는 거다.

저쪽도 나름대로 한시가 급한 상황인데 그렇게 여유롭게 일 처리를 할 리가 없지.

어깨를 으쓱인 설천위는 아예 누워서 천장을 봤다.

일단 한숨을 돌린 건 맞지만, 솔직히 갑갑하긴 하네.

“그래서 생각하고 있는 거나 말해 봐.”

“응?”

“너, 아무 생각 없이 아래로 내려오진 않았을 거 아니야.”

당장 연수화의 목숨이 위험하니까.

설천위의 상태가 안 좋으니까 위험한 길은 피하자.

그런 생각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고작 그것 때문이었다면 설천위가 자신의 목숨이 걸린 선택을 맡겼을 리가 없다.

설천위는 기본적으로 생존 최우선이니까.

남궁천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걸 가지고 있지 않은가.

설천위의 말에 작게 웃은 남궁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열흘. 열흘만 버티면 될 걸세.”

“열흘이라…….”

그 정도라면…….

“이 악물고 버티면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네.”

* * *

“찾았나?”

“예. 찾았습니다.”

“쯧, 어디서 배운 건진 몰라도 쓸데없는 짓을…….”

이제야 찾았다는 부하의 보고에 칠영(七影)은 짜증으로 혀를 찼다.

고작해야 애X끼들.

의뢰를 받았을 땐 손쉬운 의뢰라고 좋아했는데, 이놈들이 생각보다 더 번거로웠다.

어디서 배운 건진 몰라도 흔적을 교묘하게 감추는 짓거리를 해 놔서 찾는 데 수고가 너무 들었다.

“상황은?”

“목표물인 여자가 상당한 중상인지 벌써 일주일째 머물고 있다고 합니다.”

“흠.”

그건 좋은 소식이군.

그렇다면 생각보다 간단하다.

“일시에 쳐들어간다.”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설천위인가 하는 놈도 상당한 부상이라고 하니 걸림돌은 남궁천 하나.

그렇다면 아예 머릿수로 찍어 눌러 버리는 게 가장 좋은 선택지다.

어차피 남궁천은 죽일 필요도 없고.

목표만 처리하면 임무 완료다.

“일단 주위를 적당히 둘러싼 채 상황을 지켜본다.”

아무리 뛰어난 무인이더라도 결국 사람.

휴식을 취해야 하는 순간은 반드시 온다.

그때가 바로 어둠을 타고 활동하는 그림자들이 움직일 때다.

* * *

‘움직입니다.’

부하의 수신호에 칠영은 천천히 걸음을 뗐다.

남궁천이 휴식을 위해 집 안으로 들어간 이 순간.

일시에 포위해 단숨에 마무리 짓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은밀함과 신속함.

그러니 차분하게, 그렇지만 신속하게 포위를…….

“응?”

뭔가 이상한데?

왜 인기척이 없지?

거의 지척까지 도착한 칠영은 내부에서 느껴지는 기척의 부재에 미간을 찡그렸다.

아니, 의원이란 놈은 아까 낮에 나갔으니 그렇다고 쳐도 몸져누워 있는 여자의 기척은…….

순간, 머리를 때리는 하나의 정보.

연가의 천라지망을 마치 귀신같은 솜씨로 파훼했다.

알고 있다는 듯 약점만을 공략해서……!

“도망쳤다! 산개해서 찾아라!”

대체 언제?

어느 순간에?

설마 의원이 낮에 빠져나간 것도 미리 대피시킨 거였나?

아니, 그 전에 어떻게 알아챈 거지?

천라지망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은신술이란 말이다!

도저히 믿기 힘든 현실에 이를 악문 칠영은 그대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일단, 일단 흔적이다.

흔적을 찾아야…….

작은 방.

그곳에 놓여 있는 편지 하나에 칠영은 이를 악물었다.

[바퀴벌레 소리가 너무 크네! 우리는 깨끗한 걸 좋아해서 못 참겠어! 그럼 이만!]

“이, 이 개자식들이……!”

그냥 도망친 것도 아니고 조롱까지?

두 눈을 부릅뜬 칠영은 그대로 방을 박차고 나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죽여 주마!

살영의 긍지를 걸고!

* * *

“천위, 굳이 그렇게 도발할 필요가 있었나?”

“어? 물론이지. 침착하면 이쪽에 여유가 있다고 생각해서 경계하겠지?”

그러면 추적이 조금이라도 느려질 테니 다행.

“화가 솟구치면 눈이 흐려져 추적에 조금 시간이 걸릴 테고.”

추종술이라는 게 정말 섬세한 작업의 종합 산물 같은 거다.

발자국, 풀이 꺾인 흔적 등등.

그야말로 섬세하게 모든 것들을 전부 읽어 내야 가능한 기예.

조금이라도 피가 머리에 쏠려 있다면 자연히 느려질 수밖에 없다.

뭐가 됐든, 찔러 볼 만한 가치가 있는 도발이다.

뭐, 반쯤 재미로 한 것도 있지만.

“여유롭군.”

“이제 멀쩡하니까.”

“정말 신기하다니까.”

이제 멀쩡해진 설천위의 팔을 보며 남궁천은 고개를 저었다.

정말 불가사의한 회복력이다.

그나저나.

“소저, 괜찮소?”

“괘, 괜찮아요.”

남궁천의 등에 업혀 있던 연수화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넓은 등…….

‘아,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처음 만난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걸고 도와주고 있는 분들 아닌가.

이런 생각에 빠질 때가 아니다.

무엇보다 남궁 소협은 자신보다 연하…….

연수화가 기묘한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설천위와 남궁천은 담담하게 상황을 읽었다.

“그래서 방향은?”

“음,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

“문제는 적의 움직임인가.”

고작 살수들 딸랑 보내고 끝?

그럴 리가 있나.

명색이 사학(邪學)이라 불리는 연가의 공격이다.

아마 포위망 정도는…….

[있다. 천위.]

“있군. 바로 나왔다.”

“또 천라지망인가?”

“아뇨. 아무리 저희 가문이라고 해도 또다시 천라지망을 펼칠 정도의 여유는 없을 겁니다.”

연수화의 부정에 설천위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다면 다행이지.

북쪽으로 포위망을 펼쳤다.

참으로…….

“생각이 짧은 친구들이구먼.”

설천위는 망설임 없이 방향을 틀었다.

인도하는 것은 남궁천.

그 뒤를 따르면서 설천위는 혼들을 통해 사방을 경계했다.

[적의 포위는 전체적으로 북쪽에 집중되어 있다.]

[서쪽과 동쪽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니라.]

[음, 살수들이 상당히 가까운 거리까지 쫓아왔다.]

쯧, 살수들이랑은 최대 하루 정도까지 거리를 벌리고 싶었는데, 역시 급하게 도망치는 상황에서 그건 무리였나.

도주를 시작한 지 고작 몇 시간.

벌써 지척까지 따라왔다는 걸 보니 살수들이 상당히 유능한 놈들인가 보네.

이번에도 상당히 빡빡한 도주극이 되겠어.

“죄송합니다…….”

상황이 점점 더 위험으로 치닫는 것을 깨달은 연수화의 고개가 아래를 향한다.

어찌 고개를 들 수 있겠는가.

자신 때문에 젊은 두 사람의 미래가 여기서 끊기게 생겼는데.

도저히 사파인이라 보기 힘든 죄책감 가득한 목소리에 남궁천은 입꼬리를 올렸다.

“미안할 것 없소! 내 정의(正義)는 남에게 감사나 사죄를 받기 위한 것이 아니니!”

“놈! 찾았다!!”

남궁천의 호쾌한 선언이 끝나기가 무섭게 몇 개의 비수가 그를 덮친다.

검을 뽑아 단숨에 그것들을 쳐 낸 남궁천은 입꼬리를 올리며 살수들을 향해 검을 겨눴다.

“내 정의(正義)는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관철하기 위해 있는 것이니!!”

“생각 없는 게 자랑이다. 자식아.”

당당하게 웃은 남궁천의 옆, 주먹을 치켜든 설천위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크르르르.]

그의 몸을 타고 흐르는 패룡의 힘.

앞뒤는 물론 주변에도 휘둘리지 않는, 그저 한결같은 의협심.

그런 거, 싫어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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