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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6화 (46/624)

제46화

45화-중간고사 (5)

단숨에 땅을 박찬 설천위는 망설임 없이 적진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섬뢰풍영보(閃雷風影步)]가 만들어 내는 신속의 돌진.

한 박자 느린 적들의 반응 속도로는 설천위의 움직임에 제대로 대응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커헉!”

일격.

[섬벽권(閃霹拳)]의 이치를 담은 주먹이 적의 안면을 짓뭉갠다.

여태까지와 비교해 차이점이라고 하면, 달라진 위력이다.

그저 속도.

빠르다는 것 하나를 장점으로 삼던 주먹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묵직해진 주먹, 그렇다고 해서 속도가 느려졌는가?

그렇지 않다.

이 무게는 근력이 만들어 낸 순수한 힘이기 때문이다.

빠르게 그리고 강력하게.

설천위의 주먹이 적을 뭉갠다.

“막아라!!”

허나, 적들도 나름 사파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가문에 소속된 이들.

설천위의 주먹이 또 다른 사냥감에 도달하기 전에 지휘관의 목소리가 굳어 있던 이들의 몸을 일깨웠다.

그렇기에 설천위의 다음 목표가 됐던 이가 다급히 몸을 움직였지만 거기까지.

그런 뒤늦은 발악으로 피하기엔 두 사람 간의 실력의 격차가 컸다.

“컥!”

또다시 쓰러지는 무인.

뒤이어, 설천위의 주먹이 다른 무인들을 향하기 시작했다.

반응한다고 치더라도 잠깐.

결국, 설천위의 주먹을 막아 내지 못한 무인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간다.

‘이 무슨…….’

분명 경계할 만한 상대는 아니라고 들었는데?

보고로는 고작 일류 정도라고 했다.

아무리 일류가 수십의 이류를 이길 수 있다고 해도 그건 진흙탕 싸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통솔되어 진형을 이룬 이류들을 일류가 이리 쉽게 박살 낼 순 없다.

‘아니, 권기를 두르지 않는 걸 봐선 일류가 맞을 수도 있다.’

단지 그 무공이 특출하게 뛰어나거나 혹은 전투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거나.

이 두 가지 중 하나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쪽을 향해 오지 않는 게 이상해.’

지휘관을 먼저 노리는 건 전략의 기본이다.

처음 이쪽을 향해 돌진했던 그 속도대로라면 충분히 자신을 먼저 노릴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러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실력에 자신이 없어서 그런 것 아닐까?

‘아니, 희망적인 추측은 금물이다.’

고개를 저어 정신을 차린 백준은 천천히 검을 뽑았다.

뭐가 어찌 됐든, 이쪽의 부하들이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면 이제 남은 수는 하나다.

자신이 직접 싸우는 것.

뜻을 정한 백준은 천천히 설천위를 향해 걸어갔다.

태세를 정비한 부하들이 응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상황.

여기서 확실하게 자신이…….

“음?!”

순간, 싸늘한 느낌에 백준의 걸음이 멈췄다.

뭐지?

방금 그 묘한 느낌은?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긴장감으로 등 근육이 바짝 조여드는 느낌.

그 기묘한 감각에 백준은 미간을 찡그리며 다시 앞을 주시했다.

뭐가 됐든, 그 원인은 저 애송이가 확실할 터.

그렇다면 저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면…….

오싹.

설천위를 주시하던 백준은, 순간 오한의 정체를 눈치챘다.

마주친 거다.

이쪽을 바라보는 설천위의 두 눈동자와.

인간의 것이 아닌 동체를 가진, 괴물의 눈과.

긴장감에 검을 쥔 손에 힘이 더해진다.

꽉 움켜쥔 검을 쥐고, 백준은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저 괴물의 싹을 잘라 버리기 위해.

* * *

[생각보다 길구나.]

[음, 빙의 중인데도 몸에 큰 부담은 없는 것 같아 다행이구나.]

천마와 현태중의 평가에 설천위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맞는 말이다.

암영의적이든, 현태중이든 빙의를 하면 몸에 무리가 갔었다.

그런 결과를 낼 수 없는 육체를 그들이 기술로 강제로 결과를 끌어내는 방식이었으니까.

아무리 몸을 단련하고 단련해도 몸이 그 경지의 무예(武藝)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상, 그 한계는 명확했다.

그 때문에 암영의적의 빙의도 시간제한을 뒀던 거고.

그런데, 이 [패룡지체(覇龍之體)]는 다르다.

그저 힘을 더하는 것.

패융의 힘이 더해지자, 신체 능력이 향상되고 설천위가 제대로 쓰지 못하던 패기(覇氣)가 활성화되었다.

그로 인해 나타나는 결과물은 명백한 전투력의 향상. 더불어 시간제한이 거의 없는 전투 모드다.

‘아주 복덩이야!’

포위망의 하나를 담당하던 무인의 얼굴을 뭉개며, 설천위는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간 패융을 칭찬했다.

이게 있으면 일류 정도는 이제 아무 문제도 없다.

절정도 조금만 성장하면 큰 무리 없이 상대해 낼 수 있을 거다.

거기에.

“으, 으아!”

어설픈 적의 공격을 가볍게 피해 낸 설천위의 주먹이 그 안면에 꽂힌다.

이류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어설픈 공격과 회피.

패융과의 합체로 얻은 패기(覇氣)의 활성화.

그 힘이 만들어 내는 적의 전력 저하.

패기에 짓눌린 이들의 움직임은 하나같이 느려졌다.

속도도, 반응도.

다만, 지금 이렇게 확실하게 통하는 건 자신보다 약한 이류 이하 정도이겠지.

그 이상의 경지는 영향을 끼치는 수준에서 그칠 가능성이 크다.

[천위, 온다.]

천마의 목소리에 설천위는 슬쩍 시선을 돌렸다.

이쪽을 향해 천천히 접근하고 있는 남자.

아까 연수화와 대화했던 내용으로 봐선 저자가 리더다.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서 한번 지켜봤는데…….

‘역시 이쪽을 노리는군.’

연수화가 목표라면 이쪽을 노리는 게 아니라 연수화를 향해 갔어야 맞다.

생포든 사살이든, 약해져 있는 연수화를 노리는 게 더 편한 길이니까.

그런데 노리지 않는다.

이유는?

연수화의 배신?

아니.

이미 손을 써 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하다.

만약 다른 암살자들이 연수화를 향하고 있었다면 천마 할배가 경고해 줬을 텐데?

“큭!”

연수화의 나지막한 신음성과 동시에 설천위는 다시 한번 땅을 박찼다.

[섬뢰풍영보(閃雷風影步)]를 최대로 운용한 신속의 이동.

허나.

“그렇게 둘 순 없다!”

그 앞을 백준이 막아선다.

백준이 처음부터 달려들지 않고 경계만 했던 이유.

그의 최종 목표는 연수화의 살해.

그렇다면 그 방법이 굳이 칼일 필요는 없다.

슈슈슈슉

“이 미친놈이!”

활.

연수화가 고립되고 설천위의 퇴로를 막은 시점부터 멀리서 대기하고 있던 궁수들이 연수화를 목표로 활을 쏘기 시작했다.

정상적인 상태의 연수화였다면, 자신의 도(刀)로 몸을 지키며 안전한 곳까지 피신할 수 있었을 거다.

그래서 통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연수화가 약해졌고 제대로 조치를 취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도 안다.

그렇다면, 준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도를 든 연수화는 화살을 막아 내며 이를 악물었다.

활이라니.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무인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궁수는 많지 않으니까.

써도 빈틈을 찌르는 용도이지 사살용으로 쓰진 않는다.

그렇기에 예상할 수 없었던 적의 공격 앞에서 연수화는 이를 악물었다.

끝이다.

끝이지만…… 마지막까지 발악하자.

그게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어 준 두 사람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니까.

그렇게 연수화의 도가 필사적으로 움직이며 화살을 쳐 낸다.

하지만,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몸으론 한계가 있다.

하나씩, 하나씩.

화살이 몸에 박힌다.

아마 그리 길게 살진 못할 거다.

정말…… 최악…….

“천아!! 그거 쓴다!!”

순간, 울부짖는 듯한 설천위의 포효가 전장을 크게 울린다.

그거 쓴다.

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모두의 머릿속에 한 줄기 의문이 피어오르는 순간.

단 한 사람.

그거를 몸으로 받아 봤던 한 사람은 그 말뜻을 이해했다.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전철후의 큼지막한 도를 받아 내며, 남궁천은 앞으로 나아갔다.

여태까지 팽팽한 접전을 유지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막무가내식 돌진.

실패 확률이 한없이 높은 도박수.

허나, 그 모습에 전철후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좋다! 상대해 주마!”

이런 머저리 같은 돌진, 싫어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좋아한다.

이쪽의 승리가 더욱 확실해지니까.

한껏 입꼬리를 올린 전철후가 자신을 향해 들어오는 남궁천의 머리를 쪼개기 위해 도를 내리친다.

그 살벌한 공격을 남궁천은 담담히 받아 냈다.

[창궁무애검(蒼穹無涯劍) 제2초 구민(九旻)]

부드러움의 이치를 담은, 아홉 개의 하늘.

그 하늘이 품어 내지 못하는 것은 없으니.

“으음?!”

전철후의 도가 빨려 들어가듯 붙잡힌다.

말 그대로, 남궁천의 검이 전철후의 도를 받아 내 붙잡았다.

“네놈, 대체 이게 무슨……!”

서로의 무기를 묶어 버리는 그 기묘한 행태에 본능적으로 주먹을 치켜들던 전철후는 순간 입을 다물었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강렬한 긴장감.

죽음이 자신의 등 뒤로 다가와 있다.

그렇기에 순간 전철후는 자신도 모르게 남궁천에게서 시선을 뗐다.

확인하지 않고선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떤 놈이……!

고개를 돌린 전철후의 시선의 끝.

그곳엔 자세를 낮춘 설천위가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전투 중에 한눈을 파는 건 자살행위지.”

남궁천의 발이 고개를 돌렸던 전철후의 옆구리를 강타한다.

검을 쓰지 않은 이유는 당연히 방어할 수단을 남겨 놓지 않기 위해서다.

이 발길질은 그저 자세를 흐트러트리는 역할일 뿐이니까.

진짜 공격은…….

[소적검(消跡劍)]

그 어떤 흔적도 남지 않는 무흔의 검이 전장을 갈랐다.

* * *

베였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이미 무릎은 땅과 닿아 있었다.

“이, 이게 무, 무슨…….”

인지조차 할 수 없는, 영역을 넘어선 공격.

고개를 떨군 백준의 눈에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만큼 처참하게 갈라진 복부가 들어왔다.

흘러내리는 내장이 너무도 비현실적이라 죽음조차 실감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조차 현실.

흐릿해지는 의식과 시야 속에서 백준은 떠올렸다.

자신이 몸을 맡기고 있던 가문의 미래를.

흐릿하게 흩어져 가는 시야처럼 흐릿한 미래를.

“아오! 뒈지겠다!!”

단 일검(一劍).

그 하나로 전장을 베어 버린 설천위는 악을 쓰며 몸을 움직였다.

“천아!”

“음.”

설천위의 부름에 전철후를 바라보던 남궁천은 고개를 돌렸다.

상대에게서 시선을 떼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지만, 지금은 괜찮았다.

“허억, 허억.”

상대는 이쪽을 공격할 힘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니까.

“마무리하려면 얼마나 걸리겠냐?”

“음, 잠깐이면 충분하네. 하지만…….”

“무리?”

“아무래도 힘들 것 같군.”

고개를 젓는 남궁천의 모습에 설천위는 미간을 찡그렸다.

전투가 진행되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다.

이쪽의 상태는 그야말로 만신창이.

연수화는 당장 숨이 끊어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고, 자신은 오른팔이 완전히 망가졌다.

지금 필요한 건 그 무엇도 아닌 휴식과 치료다.

게다가 다른 건 몰라도 연수화의 상처는 슬슬 의원에게 보여 주지 않으면 위험한 수준에 도달했다.

몇 개나 되는 화살이 몸을 관통했으니까.

그러니, 선택해야 한다.

이대로 정파로 향하면?

이 경우엔 어차피 포위망이 정파 쪽에 있었기에 적들의 남은 병력을 전부 상대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그러니, 시간을 들여서라도 전철후를 마무리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싸워야 하니 가장 큰 적을 정리해 놓는 건 기본이다.

하지만 이 경우 가는 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연수화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반대로 사파로 간다면?

지금 당장 도주하면 포위망이 허술한 아래는 쉽게 돌파할 수 있을 거다.

아니, 돌파 수준이 아니라 암영의적의 도움을 받으면 전투 하나 없이 내려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빠르게 의원이 있는 마을까지 도달해 연수화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겠지.

단, 그렇게 되면 혹시라도 정체가 들킨 순간 지옥문의 개방이다.

자, 선택의 순간이다.

설천위의 시선에 남궁천은 이를 악물었다.

가장 선두에 서서 적을 상대해야 하는 자신에게 선택권을 주다니.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목숨을 맡길 정도로 의(義)가 깊은 친구다.

짧지만 깊은 갈등.

그 끝에서 남궁천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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