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화
44화-중간고사 (4)
전투가 끝난 후.
휴식을 위해 자리에 앉는 설천위와 남궁천을 바라보는 연수화의 표정이 묘했다.
“이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과감한 돌진.
천라지망(天羅地網)이 왜 무서운가.
하늘과 땅의 그물이라는 말처럼 촘촘하게 배치된 사람의 그물이 무서운 것이다.
적을 한 무리 쓰러트리면 두 무리가 나타나는, 끝이 없는 싸움 구조.
뚫어도, 뚫어도 끊임없이 나오는 적.
그것이야말로 천라지망의 강점이자 공포스러운 이유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그물이 늘어진 곳, 다른 인원이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곳.
그런 지점만을 정확하게 짚어 내는 거지?
무려 다섯 번째다.
본래라면 밀려오는 적들에게 둘러싸여 끊임없이 전투를 해야 할 터.
이렇게 느긋하게 쉬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대체, 어찌 그리 귀신처럼 그물이 해진 곳만을 짚어 내는 거죠?”
결국, 궁금함을 참지 못한 연수화의 질문에 설천위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알고 있네.”
“예?”
“귀신처럼 알아내는 거. 그게 핵심이지.”
그게 무슨 헛소리야.
설천위의 이상한 대답에 연수화가 미간을 찡그린 순간.
“천위.”
“응?”
“이 방법이 맞는 건가? 함정일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만.”
조용히 집중하고 있던 남궁천의 질문에 설천위는 턱을 쓸었다.
사학(邪學)이라 불리는 연가의 천라지망이다.
확실히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남궁천의 질문에 같은 의문을 품은 설천위는 위를 올려다봤다.
하늘에서 정찰 중인 암영의적.
과연 함정일까?
[아닐 게다.]
설천위가 품은 의문을 천마가 부정했다.
[함정이란 적이 들어올 수 있어야 함정인 것이다. 똑똑한 이들은 의미 없는 함정을 파지 않으니라.]
암영의적이 아니었다면 눈치채지도 못할 함정.
남궁천도 기감만으로 찾아낼 수 없었던 그물의 구멍이다.
이 천라지망이 화경급 고수를 노린 게 아니라면 함정일 리가 없다.
천마의 말뜻을 이해한 설천위는 고개를 저었다.
“함정일 리 없어. 적이 들어오지도 않을 곳에 함정을 칠 리는 없으니까. 그렇지?”
“……예. 제가 알기로도 가문의 천라지망에 고의적으로 틈을 만든다는 규칙은 없으니까요.”
“거봐.”
“단.”
남궁천을 향해 어깨를 으쓱이던 설천위는 연수화의 한마디에 다시 그녀를 바라봤다.
몇 번이나 천라지망을 돌파했음에도 연수화의 표정은 한껏 굳어 있었다.
“현장에 지휘관이 참여해 실시간으로 천라지망을 움직여야 한다는 규칙은 있습니다.”
“그 말은?”
“다섯 번, 아무리 저희 가문이라도 저 하나 잡겠다고 천라지망을 다섯 겹이나 펼치진 않아요.”
연수화의 말에 설천위의 시선이 다시 위로 향한다.
그 모습에 어느새 내려온 암영의적이 딱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조여 오고 있다. 아무래도 소리를 내는 도구로 신호를 주고받는 것 같다.]
“씁.”
아까부터 들렸던 묘한 쇳소리가 신호였나?
“죄송해요. 제가 좀 더 빨리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됐어. 자기 몸 간수하기도 힘든 사람이 뭘 한다고.”
연수화의 안색은 이미 상당히 안 좋아진 상태다.
여태까진 의지로 버티고 있었지만, 그것조차 한계에 다다른 모습.
이제 슬슬 정말로 의원한테 가지 않으면 위험한 상태에 도달했다.
“천위, 슬슬 결단을 내려야 할 것 같다.”
검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남궁천의 목소리에 설천위는 두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남궁천이 말하는 결단이란 무엇인가.
뻔하다.
정확하게 방향을 정해서 제대로 돌파를 하거나 아니면…….
“사파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건 위험해. 알지?”
“연 소저를 살리려면 그쪽이 더 확실하지 않겠나?”
“느긋하게 쉬는 걸 생각하면 정파의 영역으로 가는 게 맞긴 하지.”
“어떤 방향이든 좋네.”
검을 움켜쥔 남궁천의 눈빛이 스산하게 빛난다.
“내 검은 의(義)를 향해 움직이니.”
이미 결심을 굳힌 듯한 그 목소리에 설천위는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게 뭔 개고생이냐.”
“끝나면 거하게 한번 쏘지.”
“기억했다.”
[먼저 서쪽으로 이동하거라.]
암영의적의 말에 설천위가 눈빛으로 이유를 물었다.
[불빛이 가장 적으면서 뚫었을 때 어느 쪽이든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이다. 단, 지금은 함정일 확률이 높다.]
슬슬 적도 눈치챘을 거라 이 말이지.
잠시 고민하던 설천위는 결국 결정을 내렸다.
“좋아. 서쪽으로 가자.”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칠 거면, 제대로 쳐 봐야지.
* * *
“흐음? 이것 봐라?”
낭인, 전철후는 불빛이 가득한 산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목표가 너무 안 와서 움직였더니 상황이 이리 흘러가고 있었을 줄이야.
“그물에 걸린 물고기만큼 맛있는 게 또 없지.”
큼지막한 도를 어깨에 걸친 전철후는 웃으며 원하는 것을 찾았다.
돌아다니는 무인들의 옷은 연가의 옷.
그렇다면 이 천라지망은 연가가 펼친 것일 테고…….
“오! 찾았군!”
“누구냐!”
이것을 조종하는 지휘관이 있을 터.
지도를 가지고 모여 있던 인원들에게 도착한 전철후는 웃으며 손을 저었다.
“이야, 그리 경계할 것 없어. 나도 의뢰 때문에 온 몸이니까.”
“……전철후?”
“오, 백준 너냐? 마침 잘됐네.”
지휘관으로 있던 남자, 백준은 전철후의 등장에 미간을 찡그렸다.
거람(巨攬) 전철후.
큼지막한 도를 쓰는 주제에 목표물은 절대로 놓치지 않는 전문적인 인간 사냥꾼.
평상시의 더러운 인성으로도 유명한, 사파의 유명인 중 하나.
“이야, 나도 의뢰 때문에 마침 잡아야 하는 사람이 있어서 말이지.”
“잡아야 하는 사람? 설마 남궁천이냐?”
“아니, 설천위.”
“쯧.”
설천위라는 대답에 백준은 혀를 찼다.
지금 이쪽이 고생하는 이유는 남궁천 때문이지 설천위 때문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래도 적의 전력을 하나라도 줄여 준다면…….
“그런데 남궁천은 역시 아니란 말이지. 협력하자고.”
“협력?”
“내가 남궁천을 잡지. 그러면 너희가 나머지를 잡아.”
“과연, 적재적소란 말인가.”
전철후의 제안에 백준은 입꼬리를 올렸다.
이게 무슨 호재인가.
“좋다. 마침 적을 유도하던 중이었으니 금방…….”
“유도 성공을 알리는 연락입니다!”
“바로 왔군.”
부하의 말에 입꼬리를 비튼 백준은 지도를 펼쳐 한 곳을 가리켰다.
“여기.”
“거기로 온다, 이건가?”
“듣자 하니 남궁천은 우리 쪽 아가씨를 지키려 한다더군. 정파의 협(俠)이라는 거겠지.”
“그거 좋은 소식이구먼.”
껄껄거리며 웃은 전철후는 거대한 몸을 움직였다.
“빠르게 정리하고, 술이나 한잔하자고.”
“일이 잘 끝나면 내가 쏘지 못할 것도 없지.”
“크하하하! 기억해 뒀으니 뺄 생각 마라!”
* * *
“씁!”
적을 쓰러트린 설천위는 호흡을 빨아들이며 주위를 둘러봤다.
예상대로 그리 많지 않았던 적의 숫자.
몇 겹으로 펼쳐져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근처로 적이 오고 있다는 신호는 없다.
그렇다면.
“바로 움직이자.”
“문제없다.”
이번에 휴식 시간 없이 간다.
검에 묻은 피를 대충 닦아 낸 남궁천은 연수화의 상태를 신경 쓰며 설천위의 뒤를 따라 달렸다.
‘친구 하나는 잘 사귀었군.’
이쪽의 막무가내의 행동으로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 부닥쳤는데, 그것에 관해선 아무런 말도 없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함께 짊어진다.
아버지가 말씀하신, 동료가 될 친구란 바로 이런 녀석이겠지.
위기 속에서 점점 더 선명해지는 정신.
남궁천은 여러 가지 생각을 품으면서도 의지를 한 점에 모았다.
이 검으로 지켜야 마땅할 것들을 지킨다.
그렇게 남궁천이 스스로의 의식을 한 점에 집중시키던 그 순간.
“멈춰.”
설천위의 말에 남궁천과 연수화의 걸음이 멈췄다.
“보여?”
“예?”
“저쪽은 이미 이쪽을 봤어.”
이미 봤다.
그 말에 남궁천은 서늘한 감각을 느꼈다.
“아아, 보이는군.”
“예?”
“거대한 도를 어깨에 짊어진 거한이오.”
“설마 거람(巨攬)?”
“거람이라고 하면?”
“전철후라고 사파에서도 유명한 악인이에요. 인간 사냥을 전문으로 하는 사냥꾼이기도 하고요.”
[맞는 것 같구나.]
연수화의 설명에 천마를 비롯한 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의 목을 따는 백정의 냄새가 나느니라.]
* * *
“기개가 좋구나. 어린놈들.”
“뭐래, 늙은이가.”
“흐하하하! 난 아직 한창 젊은데 말이지.”
입꼬리를 올린 전철후는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세 연놈을 바라봤다.
하나는 확실히 말도 안 되는 괴물이고, 나머지 둘은 뭐, 적당히 뛰어난 수준.
그래 봤자 자신의 상대는 안 된다.
하물며.
“아가씨.”
“……배신자.”
“배신자라뇨. 대세의 흐름을 타는 것이 책략입니다.”
저리 준비를 하고 온 연가의 전력을 상대하는 건 더욱 어림도 없다.
이쪽의 승리가 확실하다.
그리고 승리가 확실해진 상황이야말로 사냥의 묘미.
“크하하하! 자! 즐겨 보자!”
땅을 박차는 전철후를 맞이해 남궁천이 움직인다.
전철후의 경지는 무려 초절정.
낭인이라는 개인이 사파에서 이름을 떨치는 유명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그렇게 전철후가 남궁천과 검을 맞대는 사이.
“이야, 이건 빡세네.”
설천위는 어느새 사방을 포위한 적들을 보며 어깨를 으쓱이고 있었다.
“설 소협…….”
“왜요?”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됐네요.”
[사파의 여식 같지 않은 아이구나.]
[아마 다른 애였으면 지금쯤 사과를 하는 게 아니라 등에 칼을 꽂았을 텐데.]
어이, 그런 말 하지 마. 괜히 뒤가 신경 쓰이잖아.
암영의적의 말에 괜히 찝찝해진 설천위는 고개를 저어 잡념을 털어 냈다.
뭐가 됐든, 이쪽도 할 일을 하면 될 뿐이다.
적의 전력은 다수.
암영의적이나 현태중은 최후의 패다.
그렇다면 이쪽에서 쓸 수 있는 패는 한 가지.
[영각(靈覺)].
이거 하나뿐이다.
그런데 이걸 지금 바로 쓰자니 적이 너무 많고.
“씁.”
드디어 때가 온 건가?
아끼고 아껴 놨던 경험치를 쓸 때가…….
[뀨!]
“응?”
결심과 함께 상태창을 열려던 순간.
품에서 빼꼼 고개를 내민 용의 머리에 설천위는 행동을 멈췄다.
지금?
갑자기?
여태까지 싸울 때 내내 품 안에 있었으면서?
뜬금없이 나와 존재감을 강조하는 새끼 용의 모습에 설천위는 순간 고민에 빠졌다.
얘가 왜 이럴까.
무언가 원해서 이러는 걸 텐데.
대체 뭐가…….
[뀨! 뀨!]
“야, 너 대체 뭘…….”
그러고 보니, 얘 아직 이름도 안 지어 줬네.
하긴 너도 죽을지도 모르는데, 이름 없이 가는 건 싫겠구나.
생각해 놓은 이름은 없지만…….
“패융(覇隆). 이게 네 이름이다.”
용이니까 융.
의미는.
“네 부모처럼 크고 높은 존재가 되어라.”
뭐, 잘못하면 여기서 죽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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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환수 등록이 완료되었습니다!
패룡(覇龍)의 새끼, 패융(覇隆)(中上)이 소환수로 등록됩니다.
패융이 자신의 이름을 마음에 들어 합니다! 친밀도가 상승합니다.
소환수와의 합체 스킬이 개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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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으으으응?
잠깐.
그럼 여태까지 아무런 쓸모가 없었던 게 이름을 안 지어 줘서 그런 거라고?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설천위가 미묘한 항의를 하려는 순간.
그의 앞으로 올라온 패융이 귀엽게 울부짖었다.
[뀨아아앙!]
“어, 그래. 그런데 합체 스킬이 대체 무슨…….”
순간, 설천위가 스킬명을 말하기도 전에 패융이 설천위를 향해 달려들었다.
설천위가 스킬명을 말해야 하는 스킬은 시스템의 도움으로 얻은 스킬들뿐이다.
무공을 직접 몸으로 익혀 체득한 스킬이라면 굳이 스킬명을 말하지 않아도 발동시킬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합체 스킬도 마찬가지여야겠지만…….
이쪽도 한쪽이 그냥 쓸 수 있으니 그런 절차가 필요 없었다.
패융이 설천위의 가슴으로 파고들어 전신으로 퍼진다.
몸에 흐르는 것은 고고한 패룡의 힘.
[합체 스킬]
[패룡지체(覇龍之體)]
설천위의 몸이 단숨에 대지를 박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