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화
41화-중간고사 (1)
[???의 알(不明)]
이게 대체 뭘까.
숙소로 겨우 짐을 다 옮긴 설천위는 손바닥 위에 올린 알을 바라봤다.
이 녀석은 왠지 모르겠지만 상태창이 보인다.
다른 사물, 사람은 전부 안 보이는데.
왜 이 녀석만 보일까.
그런 의문을 품으며 설천위는 뿅뿅거리는 알을 바라봤다.
“귀엽긴 한데…….”
쓸모가 없으니 문제로다.
무룡투쟁의 보상은 이거 딱 하나다.
분명 엄청나게 좋은 거일 텐데…….
“공자?”
“응?”
누가 들어왔는지도 모르고 알을 바라보던 설천위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문 앞에서 웃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던 유예린이 그의 손 위를 바라봤다.
“거기에 뭐가 있나요?”
“아, 별거 아니야.”
어깨를 으쓱인 설천위는 알을 어깨에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방을 옮기셨다고 해서 짐 정리나 도와드리려고 했지요.”
“괜찮다니까. 애초에 짐이 없거든.”
“음, 그래 보이네요.”
침대 위에 놓인 조촐한 짐을 본 유예린은 이내 눈을 반짝였다.
“그러면 사러 갈까요?”
“응? 뭘?”
“생활에 필요한 게 많이 부족해 보이니 같이 사러 가요.”
“어? 난 필요 없는…….”
“가요!”
겁나 빠르네?!
순식간에 팔을 붙잡힌 설천위는 그대로 유예린에게 끌려 방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억지로 힘을 준다고 버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니까.
그렇게 학관 밖으로 향하는 길.
멍하니 걷던 설천위는 유예린을 바라봤다.
방긋방긋 웃고 있는 것이 정말로 기분이 좋아 보인다.
게임에서 봤던 차가운 이미지의 유예린은 온데간데없는 모습.
뭐, 귀엽긴 하네.
다른 사람이었다면 귀찮다고 거절했겠지만, 유예린이라면 뭐.
마침 팔도 회복이 덜 돼서 훈련은 적당히 할 생각이었으니까.
[돌아와서 훈련이다.]
씁.
깐깐한 영감.
천마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나오려는 한숨을 삼킨 설천위는 그렇게 유예린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 * *
설천위를 밖으로 끌고 나온 유예린은 그와의 시간을 맘껏 즐기기 시작했다.
“이건 어때요?”
“예쁜데?”
“정말요?”
“유 매가 입어서 안 예쁜 옷은 옷이 아니지.”
“아우! 참!”
[껄껄껄, 싫다더니 잘만 하는구나.]
천마의 웃음소리에 설천위는 애써 표정을 관리했다.
아니, 왜 방심만 했다 하면 이런 말이 튀어나오냐?
원래 커플들 노는 걸 옆에서 보면 다 꼴값이라고 하지만, 그걸 내가 직접 하게 되다니.
‘어? 좋은 건가?’
어라? 살짝 눈물이…….
순간 차오르는 천희의 슬픔을 애써 억누르며 설천위는 유예린과의 쇼핑에 집중했다.
뭐, 집중이라고 해 봤자 돈 없는 설천위는 사지 못하니 대부분 유예린이 선물해 주는 거였다.
명목은 승급과 무룡투쟁 4강 축하.
지금 안 받으면 나중에 선물로라도 보내겠다는 눈빛이어서 순순히 받고 있다.
솔직히 옷 같은 건 조금 부족하긴 했으니까.
그렇게 즐거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고.
“이제 여기가 마지막이에요.”
“약방?”
“예. 공자는 무인이면서 상비약을 제대로 안 가지고 다니잖아요.”
뭐 그렇긴 한데…….
망설임 없는 유예린의 뒤를 따라 약방으로 들어간 설천위는 생각보다 더 큰 약방의 규모에 감탄했다.
밖에서 봤을 땐 이렇게 큰 것 같지 않았는데, 안으로 상당히 깊네.
“어서 오세요! 무슨 약재를 원하시나요?”
“상비약이요. 기본적인 것들로 주세요.”
“기본적이라고 하시면 지혈제랑 진통제 정도면 될까요?”
“거기에 가벼운 내상을 다스릴 수 있는 것도 부탁해요.”
“알겠습니다!”
직원으로 보이는 여자가 유예린의 말에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딱 봐도 가격에 망설임이 없어 보이는 손님이니 제대로 팔아 볼 생각인 거겠지.
그렇게 직원이 빠르게 움직이는 사이, 내부를 훑어보던 설천위는 살짝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할까.
……이렇게 된 거 차라리 좀 뻔뻔하게 나가 봐?
“여기 구련초(九鍊草)도 있나요?”
“생것 말씀이신가요?”
“예.”
“예! 있습니다! 마침 어제 들어왔거든요!”
이런 호재가.
직원의 대답에 설천위는 유예린을 바라봤다.
“가격은 나중에 갚을 테니까 돈 좀 꿔 주세요.”
“흐음……? 갚으신다고요?”
“옙.”
공손히 양손을 모아 앞으로 내민 설천위를 가만히 바라보던 유예린은 풉 하고 웃었다.
“됐어요. 어차피 선물로 주려고 했으니까 하나 정도는 상관없어요.”
“그래도…….”
“음, 그럼 갚는 대신 나중에 작은 소원 하나 들어줘요.”
“소원?”
“네. 소원이요.”
소원이라.
쉽지.
“알겠습니다요.”
“구련초도 주세요.”
“옙!”
“두 개 부탁드립니다.”
“두 개 주세요.”
두 개라.
구련초가 왜 필요한 거지?
잠시 고민하던 유예린은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설천위가 뭘 사 달라고 한 것 자체가 기쁜데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나중에 소원으로 뭘 부탁할지나 고민해야지.
그렇게 유예린의 행복한 고민과 함께 두 사람의 첫 나들이가 마무리됐다.
* * *
[검은 안 바꾸느냐?]
“나중에 평상시에도 쓸 수 있을 정도가 되면요.”
[한참 걸리겠구나.]
이 인간이?
유예린과의 나들이에서 검은 거절했던 설천위다.
애초에 지금 당장은 주먹보다 못 쓰니까.
현태중이 빙의할 때 말곤 쓸데가 없다.
그것도 잠깐이니 뭐, 굳이 바꿀 필요가 있나 싶지.
아무리 그래도 선의로 사 주는 건데 필요 없는 것까지 바꿀 순 없지.
“그래서, 우리는 왜 모이라고 한 건가?”
철백의 질문에 설천위는 작게 헛기침하곤 구련초를 꺼냈다.
“아직 백화초 안 썼지?”
“예? 예……. 쓰지 말라고 해서 안 썼죠.”
“설마 백화초랑 함께 섭취하려고요?”
화들짝 놀란 유예린의 목소리에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래서 샀지!”
“그러다 죽어요! 같이 먹으면 화기가 너무 강해져서 몸이 망가지는…….”
“에헤이, 당연히 그냥은 안 먹지.”
유예린을 진정시킨 설천위는 미리 준비해 놓은 탕약기를 꺼냈다.
“자, 지금부터 우리는 2교대 체제로 들어간다.”
“응?”
“방법은 간단. 이 두 약초를 잘 빻아서 넣고, 한 번 훅 끓인 다음 식힌다.”
설천위가 두 약초를 빻기 시작하자, 서하영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따라 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그렇게 한 번 팔팔 끓인 뒤 설천위는 탕약을 불에서 내려놓았다.
“그다음은 식힌다.”
“식혀요?”
“어, 식히는 순간은 신호가 올 때까지.”
신호?
그게 무슨 소리야?
모두가 같은 의문을 품을 때, 설천위는 웃으며 가만히 탕약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팅!
무언가가 튕기는 소리와 함께 설천위는 재빨리 탕약을 다시 불 위에 올려놨다.
“방금 그 소리는 뭐예요?”
“나도 몰라. 근데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짓을 아홉 번 반복하면 구련초가 백화초의 화기를 잡아 준다는 거지.”
이제 남은 건 노가다뿐이다.
* * *
“끄어어어! 완성!!”
장장 열두 시간.
점점 식히는 시간이 길어져 밤을 꼬박 새우고 나서야 약을 완성한 설천위는 기쁨의 환호를 질렀다.
“이제 됐어요?”
설천위의 환호성에 졸고 있던 다른 사람들이 깨어났다.
설천위가 받았던 백화초보다 작았던 서하영의 백화초는 이미 세 시간 전에 제련이 끝났으니까.
그녀는 바로 섭취했고, 약간의 내공을 얻었다.
화기(火氣) 자체가 그녀랑 잘 안 맞는 힘이라 곧바로 전부 흡수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래도 나머지는 전부 육체에 쌓였으니 천천히 흡수되겠지.
“기대되네요.”
끝을 보겠다며 함께 기다리던 유예린은 완성된 약재의 향에 미소 지었다.
이 정도면 구련초를 사 준 보람이 있네요.
‘하나는 서 소저를 위한 것이었다는 게 조금 괘씸하지만.’
뭐, 그건 나중에 몸으로 받아 내고.
설천위의 성장을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는 유예린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설천위를 바라봤다.
걸쭉한 액체를 단숨에 들이켜는 설천위.
곧바로 가부좌를 틀고 앉는 그의 모습을 세 사람은 얌전히 지켜봤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설천위의 몸에서 느껴지는 열기가 변한다.
뜨거운 열기가 심장에서 요동치고 설천위는 그 열기를 필사적으로 붙잡는다.
구련초는 백화초의 열기를 증폭시킨다.
그렇기에 유예린은 두 가지를 같이 섭취하겠다고 한 설천위의 말에 놀란 거다.
그 증폭된 열기를 그냥 섭취하면 몸에 반드시 해가 되기 때문.
애초에 원기를 보충하는 용도로 쓰는 구련초를 양기가 강한 백화초와 같이 먹는다는 발상 자체가 상식 밖이다.
하지만 그런 비상식도 조금만 비틀면 상식이 되는 법.
구련초를 이용한 제련은 백련초의 양기를 키움과 동시에 응축시켜 낸다.
그리고 그 응축된 양기는 거칠고 폭발적이나 사람이 충분히 흡수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음, 상당히 괜찮구나.]
천마의 감탄대로, 백화초의 열기가 설천위의 몸 전체를 누빈다.
혈도는 더 튼튼하게.
근육은 더 질기게.
뼈는 더 단단하게.
강렬한 열기가 마치 철을 제련하듯 육체를 강화시킨다.
동시에 몸 안에 남아 있던 잔여물들을 녹여 하나로 합친다.
옛날에 먹었던 선명초의 미약한 잔여물.
현태중과의 싸움으로 얻었던 영력의 잔여물.
그의 몸에 쌓여 있던 미세한 잔여물들이 전부 열기에 녹아 하나가 되어 단전에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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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공이 中下(중하)로 성장합니다!
혼원패공이 성장합니다!
패기가 下上(하상)으로 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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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눈앞에 보인 기분 좋은 알림에 설천위는 입꼬리를 올렸다.
좋다.
이거지.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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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달성!
???의 알이 부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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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이건 예상 못 했는데?
* * *
기초 생존술 수업.
수업에 나온 설천위는 한숨과 함께 손바닥 위를 바라봤다.
[뀨?]
“씁……. 귀엽긴 한데…….”
[귀엽긴 참 귀엽구나.]
[생긴 건 용이지만.]
아니, 보통 이런 경우 늑대나 새 뭐 이런 거 아닌가?
처음부터 용은 너무 빡센 것 같은데…….
손안에서 뽈뽈거리며 빙글빙글 돌고 있는 아기 용을 보며 설천위는 미간을 찡그렸다.
전체적으로 붉은색의 용.
작게나마 손발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날아다닌다.
그 귀여움은 서하영의 관심을 단숨에 끌었을 정도.
한데.
‘쓰읍, 이게 패룡(覇龍)?’
아니지, 패룡의 새끼니까 아직 패룡은 아닌가?
자식이 꼭 부모 따라가라는 법은 없잖아?
그렇게 설천위가 미묘한 표정으로 새끼 용을 바라보는 순간.
“천위, 교관님 오셨네.”
“음?”
딴생각에 빠져 있는 설천위를 남궁천이 깨웠다.
“커흠, 그럼 중간고사 과제를 발표하지.”
가벼운 기침과 함께 커다란 지도를 보기 편하게 펼친 교관은 한 점을 가리켰다.
“시험은 내일부터, 목표 지점은 이곳이다.”
“……예?”
“생존술은 원래 시험을 빨리 치른다.”
“아뇨. 그게 아니라.”
목표 지점이 너무 먼데?
무림학관은 호북성과 하남성 사이에 있다.
그런데 목표 지점은 강서성.
거리로 따지면, 성 하나를 지나가야 하는 수준이다.
말이 성 하나지 거리로 따지면 서울에서 부산보다 길다.
그 거리를 시험 한 번에?
다른 과목은?
당황하는 설천위의 눈빛에 교관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었다.
“기한은 2주. 물론 왕복이다.”
그걸 왕복하라고?!
2주 만에?!
순간 터져 나오려는 욕지기를 겨우 삼킨 설천위가 이를 악무는 순간.
“음, 생각보다 쉽군. 생존술 시험은 조금 힘들다고 들었는데.”
“그러게요.”
이 미친놈들이?
양옆에서 헛소리를 지껄이는 홍유화와 남궁천을 보며 설천위가 눈을 치켜떴다.
그건 너희 같은 체력 괴물들이나 가능한 거고.
나 같은 약골은 가다가 죽어요.
객사한다고.
“아, 물론 조건도 있다. 여비는 지정한 만큼만, 3분의 2 이상 노숙할 것, 대로는 이용하지 말 것. 이 세 가지다.”
이게 없으면 생존이 아니지.
음음.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교관을 보며 설천위는 그대로 얼굴을 구겼다.
거기에 이어지는 교관의 추가타.
“아, 끝부분은 거의 사파의 영역이니 조심해서 가거라?”
이 미친 학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