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1화 (41/624)

제41화

40화-승급전 (9)

“그래서? 그 자식은 뭐야?”

무룡투쟁 3일 차 저녁.

남궁천의 패배라는 충격적인 소식이 무림학관 전체에 퍼진 밤.

팽후는 오랜만에 만나는 손님들의 방문에 얼굴을 구기고 있었다.

“낸들 알겠나?”

“이 학관의 장인 자네가 모르면 대체 누가 안단 말인가?”

“그러는 자네는? 단주씩이나 되는 자가 그것도 못 읽어 내나?”

팽후의 반격에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싸늘해졌다.

단주씩이나 되는 자.

그 단어에 걸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하하하! 거, 선배님들 쪽 팔리신가 봅니다?”

“닥쳐라. 주(主)라는 단어가 부담스러워 스스로를 단장(團長)이라 칭하는 어린놈이.”

남궁선의 조롱에 미간을 찡그린 중년 남성이 그녀를 노려봤다.

살기에 한없이 가까운, 날카로운 기세가 남궁선을 꿰뚫는다.

“에이, 부족한 걸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어른의 자세죠.”

그런 기세를 가볍게 넘긴 남궁선은 손을 휘저으며 술잔을 들었다.

“그래서, 우리 패력 단주님는 좀 읽으셨나요?”

술잔을 돌리며 웃는 남궁선의 질문에 패력(覇力) 단주(團主), 황보중은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곤 침묵.

차마 자신이 전부 읽어 내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그 치졸한 침묵에 남궁선은 입꼬리를 올렸다.

“에이, 모르시면서 인정도 안 하시긴. 그거 부끄러운 겁니다?”

묵묵부답으로 대응하는 황보중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인 남궁선은 고개를 돌려 다른 사람들을 바라봤다.

이번 무룡투쟁을 직접 보러 온 단주는 자신을 포함해 총 네 명.

아쉽게도 이 중에 괴이(怪異)와의 싸움을 담당하는 두 개의 단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쪽 사람들이 있다면 더 명확하게 해답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뭐, 올 리가 없지. 무림학관은 그쪽이랑은 거리가 먼 순수하게 무인을 양성하는 곳이니까.

“뭐, 저희끼리 자세한 건 무리니 하나는 확실하게 하고 가죠.”

술잔을 내려놓은 남궁선은 이들이 오기 전 팽후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참으로, 기분이 더러운 이야기였다.

“설마 그 검이 그자의 검을 닮았다 하여 해코지할 인간은 없겠죠?”

남궁선의 도발에 술잔을 기울이던 이들의 기세가 흉흉하게 피어오른다.

“있다면 어쩌겠느냐?”

한 단주의 질문에 남궁선은 웃으며 허리춤에 있는 검을 가리켰다.

“남궁(南宮)은 불의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싸울 것이다.

그 표현에 흉흉하게 기세를 내뿜던 이들은 피식 웃으며 다시 술을 들이켰다.

“흥, 없다.”

“있을 리가 없지.”

“여기에 있는 우리는 그 사건과 연관이 없으니까.”

황보중의 말에 남궁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여기 있는 인간들이 그럴 리 없나.

순식간에 기세를 가라앉힌 남궁선은 다시 술잔을 들었다.

“그런데, 진짜 어떻게 썼는지 알아챈 선배 없습니까?”

“아, 없다니까?”

“후후후, 그럼 제 승리군요.”

“응?”

“저는 제 동생이 알아내러 갔거든요?”

내 동생의 친화력이면 낙승이지.

* * *

“허어, 죽은 자의 힘을 빌린다는 소린가?”

“뭐, 비슷하지.”

훈련장.

팔 빼면 멀쩡한 설천위는 즉각 퇴원했다.

굳이 병실에 죽치고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

그래서 자연스럽게 남궁천과 친목도 다질 겸 술자리가 벌어졌다.

물론 내일 출전하는 서하영은 당연히 못 마시고…….

“공자?”

“……옙.”

은근슬쩍 술잔에 손을 대려던 설천위는 유예린의 눈빛 한 방에 이내 손을 거뒀다.

전생에도 잘 마시는 편은 아니었지만, 대학 친구들이랑 심심찮게 마셨었는데…….

이 시대에서는 술을 마시기 시작하는 나이가 빠른 편이라 조금 기대했었는데.

너무 수련이 바빠서 생각도 못 하고 있었지.

“하하하! 벌써부터 완전히 잡혀 사는구먼?”

“건강을 걱정해서 마시지 말라는데 어쩔 수 있나?”

“그게 잡혀 사는 게지.”

철백까지 남궁천에게 동조하자 설천위가 미간을 찡그렸다.

아니, 아직 약혼자니까 별 신경 안 쓰려고 했는데 이거 뭔가 좀 거슬리네…….

안 잡혀 산다고 반항해?

근데 하면 뭔가 뒤에 힘들 것 같기도 하고…….

설천위가 고민에 빠진 그 순간.

“그나저나, 그러면 내게 펼친 그 공격은 계속 그렇게밖에 못 쓰는 겐가?”

“어? 아니. 아마 수련해서 튼튼해지면 잘 쓰겠지?”

솔직히 경험치를 육체 스탯에 투자만 해도 한 두세 방 정도는 가능할 것 같은데.

뭐, 학관을 다니는 동안 그 이상의 적을 상대할 일은 거의 없을 테니 조급한 선택이다.

화경급 공격을 써야 할 일이 그리 흔한 것도 아니고.

“음, 그러면 다행이군.”

“뭐가?”

“졸업할 때쯤엔 그런 기술을 몇 번이고 쓰는 자네와 싸울 수 있다는 소리니까.”

“야, 그거 모른다.”

내 몸뚱이가 졸업할 때까지 그렇게 성장할 수 있을지 모르겠거든.

이 망할 놈의 육체는 발전이 더디다 못해 거의 기어가는 수준이니까.

남궁천의 기대 어린 눈빛을 손을 휘저어 흐트러트린 설천위는 찻잔을 들었다.

“뭐, 그렇게만 되면 갑(甲)도 가능할 테니 해 보고 싶긴 하네.”

“하하! 내가 알기론 최근 십 년간 우리 누님을 제외하면 갑은 없었던 거로 기억한다만.”

“네가 을에 도전하는 이유는 그거?”

“누님의 발끝이라도 따라가고 싶은 동생의 마음이지.”

야, 그 괴물 같은 누나 따라가다간 가랑이 찢어진다.

남궁선이 얼마나 괴물인지 게임을 통해 충분히 알고 있는 설천위는 고개를 저었다.

뭐, 젊을 때의 꿈은 큰 게 좋지.

“그나저나 그럼 내일은 기권인가?”

“뭐, 그렇겠지? 아무리 그래도 이 팔론 못 이기지.”

회복을 거의 풀로 돌리고 있는데, 아직도 팔을 움직이는 게 힘들다.

자연 치유에 상당한 시간이 드는 인대나 뼈가 다쳤기 때문이겠지.

다친 부위도 많고.

뭐, 애초에 목표로 했던 4강에도 들었고.

남궁천도 이겼으니 이 이상 무리하게 올라갈 필요는 없지.

“그러면…….”

설천위의 대답에 남궁천의 시선이 한 곳을 향한다.

이 자리에 남은 유일한 무룡투쟁 출전자.

“서 소저가 이번 대회의 우승자겠구먼?”

* * *

“승자! 서하영!”

“……진짜로 우승해 버렸네.”

무룡투쟁 마지막 날.

기권승으로 올라간 상대를 가볍게 꺾은 서하영은 얼떨떨한 얼굴로 경기장 위에 서 있었다.

“저 소저도 참 괴물 같구먼. 어째 경기할 때마다 강해지는 느낌이야.”

“재능 하나는 확실하지.”

[누구랑 다르게 확실하다 못해 넘치는 수준이니라.]

[누구랑은 다르게 말이야.]

이 인간들이…….

천마와 암영의적의 놀림에 설천위는 애써 표정을 관리했다.

서하영이 우승했는데, 인상을 구기고 있을 순 없지.

“그럼 수상이 있겠습니다! 수상자들은 위로 올라와 주세요!”

사회자를 맡은 교관의 외침에 설천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4강에 든 설천위도 수상자니까.

수상자들은 빠르게 단상 위로 모였다.

애초에 반쯤 대기하고 있던 상황이었고.

“크흠, 그럼 수상을 시작하겠습니다.”

당연히 순서는 밑에서부터.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3위 결정전을 기권한 설천위부터 약속된 상품을 받았다.

물론 설천위가 받은 건 4강의 부상인 백화초(白火草)뿐이다.

그 위로는 뭐 간단한 약이라든가 몇 개를 더 받고, 우승자인 서하영에 이르러선…….

“음, 마침 잘됐네. 자네가 우승하면 주려고 미리 준비해 놓은 상품이 있었으니.”

“예?”

“창고에서 썩고 있던 물건이지.”

미소와 함께 천에 싸인 물건을 내미는 팽후.

다만 그 길이가 그리 길지 않았다.

검 정도?

창을 쓰는 서하영에게 줄 만한 선물인가 싶은 그 순간.

그 물건을 받아 든 서하영의 눈이 단숨에 날카로워졌다.

휘리릭 철컥.

그리고 단숨에 천을 풀어헤쳐 가볍게 조립해 버리는 서하영.

그 모습에 팽후조차 놀랐지만, 서하영은 자신의 손에 들린 물건에 시선을 뺏긴 뒤였다.

“창!”

“선백창(旋百槍)이라고 하네. 유연성이 장점인, 자네와 같은 창술을 쓰는 무인에게 좋은 창이지.”

성인 남성의 한 뼘을 가볍게 넘어가는 날 길이.

당연히 총 길이 자체는 서하영의 키를 가볍게 넘겼다.

팽후의 신장보다도 조금 더 긴 수준.

허나 그 길이의 창을 서하영은 이미 자연스럽게 다루고 있었다.

찰칵.

다시 순식간에 분해해 반 정도로 길이를 줄인 서하영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진다.

“감사합니다!”

“음, 좋아하니 다행이군.”

사용법을 설명해 주기 위해 준비했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삼킨 팽후는 이번엔 고개를 돌려 설천위를 바라봤다.

이 1등 상품에 누구보다 가까웠지만, 가장 낮은 4등 상품을 받은 아이.

분명 부러울 법한…….

‘어딜 보고 있는 거지?’

그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그리 부러워 보이는 표정은 아니었다.

애초에 관심도 없었나?

하긴 4강에 든 것만으로 승급은 확실해졌으니.

원하는 것은 이미 얻었을지도 모르겠군.

성격이 꽤나 소탈하군.

팽후가 설천위에 대한 호감도를 하나 쌓는 그 순간.

설천위는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당연히 이유는 무룡투쟁이 끝났기 때문이고.

----------

무룡투쟁이 종료되었습니다.

성과에 따라 보상을 지급합니다.

성과를 계산합니다.

경이적인 업적! 다섯 단계 이상 차이가 나는 상대를 상대로 승리하였습니다!

초월적인 업적! 일곱 단계 이상 차이가 나는 상대를 상대로 승리하였습니다!

경이적인 업적! 수많은 사람 앞에서 경지를 아득히 초월한 일격을 선보였습니다!

경이적인 업적! 계(癸)의 신분으로 무룡투쟁 4강에 진출했습니다!

업적과 성과에 따라 보상을 계산합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

말도 안 되는 보상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조립식 창?

그런 거에 눈이 갈 리가 있나.

자, 와라!

보상이여!!

* * *

“확실한 건가?”

“예. 확실합니다. 영매(靈媒)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수준은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의 재능이다.”

“확실합니다. 벌써부터 화경급의 혼을 몸에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화경급의 혼.

그들이 아무리 육체를 뛰어넘지 못한 초인이라고 해도 그 혼의 격까지 낮은 건 아니다.

그 혼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건 재능은 충분하다는 소리.

부하의 보고에 남자가 만족스럽게 웃으려는 순간.

“한데…… 조금 걸리는 점이 있습니다.”

“뭐냐?”

“몸이 약합니다. 화경의 혼을 받아들일 순 있지만, 그 반동을 견뎌 낼 육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쯧, 흔한 경우군.”

영매(靈媒)엔 재능이 있지만 무(武)에는 재능이 없는 경우.

하지만 나쁘진 않다.

“마침 딱 좋군. 설가(雪家)라면 명분은 충분하니 영약이라도 투자하도록.”

“예.”

“단, 그만큼 확실하게 붙잡아야 한다.”

“물론입니다.”

자신감이 가득한 대답과 함께 물러나는 부하를 보며 남자는 입꼬리를 올렸다.

좋다.

모든 것은 우리들의 숙원(宿願)을 위하여.

* * *

“천위! 짐은 다 챙겼나?”

“어. 다 챙겼어.”

철백의 목소리에 몇 개 없던 짐들을 챙긴 설천위는 방을 나왔다.

무룡투쟁이 끝난 후.

바로 다음 날 있었던 승급식에서 설천위와 철백 모두 계(癸)를 벗어났다.

설천위와 서하영은 무(戊), 철백은 기(己)다.

설천위가 무(戊)를 받은 것에 유예린이 화를 내긴 했지만, 설천위는 납득했다.

아무리 남궁천을 쓰러트렸다곤 해도 그건 대련이라서 이길 수 있었던 거다.

거기서 싸움이 끝나지 않았더라면 분명 설천위가 패배했을 테니까.

거기에다 평소에는 일류 수준이지 않은가.

오히려 무(戊)를 받은 것이 살짝 부담스러울 정도다.

물론, 부담스럽지 않을 수 있었다.

무룡투쟁의 업적은 정말 엄청난 거였고 거기서 받는 보상이라면 충분히 그 틈을 메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했는데.

그랬는데…….

“쓰읍, 넌 대체 뭐냐.”

“천위, 또 그 알을 보고 있는 건가?”

“그럼 안 보겠냐? 갑자기 생겼는데?”

“음. 그렇긴 하지.”

설천위의 어깨 위, 웬 이상한 알 하나가 뽈뽈거리며 자신의 존재감을 주장하고 있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