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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39화 (39/624)

제39화

38화-승급전 (7)

약제당(藥劑堂).

왜 의약당(醫藥堂)이 아니라 약제당이냐 하면, 이쪽은 약제 취급이 전문이기 때문이다.

무림맹 의약당의 하위 개념이라고 해야 하나.

의원이 있긴 한데, 전문 의사가 아닌 보건실 교사 같은 느낌?

일단 의원 자격은 있지만 스스로 의사를 자칭하지 않는?

그런 느낌인지라 약제당이라 칭하고 있다.

“상처는 괜찮으냐?”

“멀쩡하지.”

그런 약제당의 침대 중 하나를 차지한 철백은 호쾌하게 웃었다.

“이야, 겁나 강하더군. 역시 상위인가.”

“뭐, 대단하긴 하지.”

철백을 큰 상처 없이 제압했다는 점에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대단하다.

원래 철백처럼 방어력과 체력이 둘 다 높은 녀석일수록 상처 없이 제압하기는 힘든 법인데.

남궁천, 그 녀석은 그걸 당연하다는 듯이 해냈다.

뭐, 천마 할배의 말로는 상성도 조금 안 좋았다곤 하는데.

상성을 떠나 넘을 수 없는 격차가 있었던 건 사실이니까.

설천위가 조금 전에 있었던 시합을 떠올리던 그 순간, 철백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벽이 느껴지더군.”

“벽?”

“그래, 벽. 아니, 엄밀히 말하면 하늘인가.”

팔에 감긴 붕대를 바라보며 철백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눈앞을 가득 메우는 하늘 앞에서 내 손은 그저 허공을 향해 뻗을 뿐이었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는 철백을 가만히 바라보던 설천위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래서, 감상은?”

“그리 멀지 않더군.”

반짝이는 눈동자.

절망?

그딴 건 철백의 사전에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그에게 벽이란 건 오래 걸려 넘어야 할 벽이거나 금방 넘을 수 있는 벽이거나.

이 두 가지 중 하나일 뿐이다.

넘는다는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 하늘에 닿는다는 결과를 반드시 이루어 내고 만다.

이루어 낸다.

하지만.

“물론 아직은 닿지 못했지. 하지만, 넌 닿겠지?”

“뭐라는 거냐.”

철백의 물음에 설천위는 피식 웃으며 그대로 몸을 돌렸다.

“닿지도 않으면, 한 방 먹일 수가 없잖아.”

개처발린 다음에 친구 하자고 하면, 얼마나 개쪽이야?

당연히, 제대로 한 방 먹여 줘야지.

* * *

“이야, 창궁무애검은 역시 대단하더군요.”

무룡투쟁 이틀째가 끝난 저녁.

회의를 위해 모인 교사들이 내뱉은 화제는 모두가 하나였다.

남궁천이 선보인 창궁무애검(蒼穹無涯劍).

남궁세가의 절학이 오늘의 최대 화제였다.

검을 쓰는 무인들이라면 한 번쯤 바라봤을 남궁세가.

그들의 절학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 어찌 흥분되지 않겠는가.

심지어 그 경지조차 결코 낮지 않아 그 이치를 똑똑히 볼 수 있기까지 했으니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나저나 의외였습니다. 고작해야 외공에 힘을 쓴 학생에게 창궁무애검을 쓰다니.”

한 교관의 발언에 몇몇 교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철백이 성장한 모습을 보여 주긴 했지만 그래 봤자 일류 끝자락, 정말 잘 쳐줘야 절정의 초입이다.

그런 상대에게 굳이 창궁무애검을?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솔직히 썩 이해되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 교관들의 의문에 가만히 앉아 있던 팽후가 코웃음과 함께 일어났다.

“그게 배려라는 것이다. 어찌 학생보다도 생각이 얕은지……. 쯧쯧.”

가볍게 혀를 찬 팽후는 고개를 돌려 부학관장을 바라봤다.

“내가 보기엔 최소 기(己)인데, 자네가 보기엔 어떤가?”

“실적이 부족하니 기(己)가 맞습니다.”

부학관장의 대답에 팽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것도 부족하긴 하지만 제대로 된 실적이 없는 건 사실이니.

그렇게 철백의 새로운 등급을 정한 팽후는 웃으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앞으로 두 명이나 남았으니 어떤 모습을 보여 줄지 기대되는군.”

“음, 그 서하영이란 아이는 몰라도 설천위 그 아이는 힘들지 않겠습니까?”

서하영은 절정에 오른 데다 남궁천과 싸우려면 결승에 올라야 한다.

즉, 그녀의 앞을 막고 있는 건 동급의 적들뿐이란 소리다.

당연히 앞으로의 싸움에서 분전하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있겠지만 설천위는…….

“철백, 그 강인한 녀석조차 일초지적이 되지 못했는데 그 부실한 몸으론…….”

한 교관의 회의적인 반응에 팽후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하긴, 이 녀석들은 그 모습을 못 봤지.

“그럼 내기라도 하겠나?”

승률이 높은 내기만큼 재미있는 게 또 없지.

* * *

“설 공자.”

“음? 웬일이래?”

대기실.

남궁천과의 경기를 앞둔 설천위를 찾은 유예린은 부드러운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몸 상태는 괜찮으신가요?”

“어, 멀쩡해.”

담담한 대답.

그 대답에 유예린은 소매 속에서 주먹을 움켜쥐었다.

몇 번이나 고민했던 말.

괜히 설천위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게 아닌가 걱정되어 참으려 했던 말이 목을 타고 흘러나온다.

“……이번에는 정말 위험해요.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홍유화에게 남궁천과 설천위 사이에 있었던 일을 들은 유예린이다.

남궁천이 그런 일로 복수할 속 좁은 남자는 아니긴 하지만, 혹시 모르는 거다.

괜히 손속이 좀 더 거칠어질 수도 있는 거고.

걱정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는 그런 상황.

그렇기에 유예린은 설천위가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감내하며 이렇게 찾아온 것이다.

뭐가 됐든, 설천위의 안위가 최우선이니까.

그런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눈빛에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절대로 안 죽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부상은요?”

“뭐, 그렇게 크겐 안 다칠걸? 아마도.”

“아마도론 안 돼요.”

어느새 다부진 눈빛이 된 유예린의 목소리에 설천위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됐으니까 똑똑히 봐.”

“예?”

“너한테는 아마 도움이 될 테니까.”

도움?

무슨 도움?

유예린이 설천위의 말뜻을 따라가지 못해 되물으려는 순간, 밖에 있던 사람이 설천위를 불렀다.

“경기 시작합니다! 나와 주세요!”

“그럼 다녀올게.”

경기장으로 걸어가는 설천위의 허리춤에서 투박한 철검이 흔들거렸다.

* * *

“그래서, 오늘은 여기로 온 건가?”

“뭐, 여기가 가장 보기 좋잖아요?”

시합이 열리는 곳의 가장 높은 상석.

학관장의 자리 바로 옆에 앉은 남궁선은 웃으며 술병을 흔들었다.

“가장 재미있는 게 처음이라는 건 조금 아쉽지만, 뭐 술맛 정도는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 지금 직무 중일세.”

“에이, 왜 그러시나? 저 학생 때도 같이 많이 마셨으면서.”

“커흠, 그건…….”

아니, 그런 얘기를 왜 지금 꺼내?

잠시 고민하던 팽후는 결국 손을 뻗어 술잔을 집었다.

뭐, 마시고 싶을 땐 마시는 거지.

“그나저나 이번엔 동생이 얼마나 제대로 싸울지 모르겠네요.”

팽후의 잔에 술을 채우며 남궁선이 어깨를 으쓱이자 팽후는 웃으며 술을 들이켰다.

“아마 어제보다도 더 열심히 싸우지 않으면 안 될 걸세.”

“그 정도예요? 조금 수준을 파악하기 힘들긴 하던데.”

“음, 솔직히 나도 파악이 힘들긴 하네. 워낙 실력이 들쑥날쑥한 녀석이라.”

뭐, 그런 이유는 무인이라기보다는 술사에 가까워서겠지만.

너무 과한 정보는 오히려 독이 되지.

굳이 말을 더하지 않은 팽후는 술잔을 기울이며 경기장을 바라봤다.

어느새 두 사람 모두 서로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팽팽한 긴장감.

그러고 보니 조금 궁금하긴 하다.

자신과 달리 남궁천은 설천위의 실력을 제대로 볼 기회가 없었을 터인데.

어째서 저리도 설천위를 높게 평가하는 것일까.

“아, 우리 동생이 감이 좀 좋아요.”

“감?”

“예, 뭐 사람을 잘 본다고 해야 하나? 아마 저 설가의 막내한테 뭔가 느낀 거 아닐까요?”

동생이 사람을 가려 사귀는 이유도 그거고.

본능적으로 꺼려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대부분 나태하거나 겉과 속이 다른 인간들이고, 반대로 호감이 생기는 사람은 성실하고 솔직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린 녀석이 꽤나 특출 난 능력을 지녔지.

졸업하면 바로 데려가야지.

“히히.”

“또 경박하게 웃기는. 자네는 너무 위엄이 없어.”

“위엄이 뭐 밥 먹여 줍니까? 그냥 편하게 사는 거지. 제 하늘은 그런 하늘입니다요.”

“허, 참…….”

능글맞게 웃는 남궁선의 모습에 고개를 저은 팽후는 다시 경기에 집중했다.

싸움은 생각보다 당연한 흐름으로 흘러갔다.

설천위는 도망 다니고, 남궁천은 착실하게 거리를 좁힌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설천위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긴 하다.

무작정 창궁무애검의 범위로 들어갔다간 제대로 반항도 못 해 보고 찍혀 눌릴 테니까.

문제는 이렇게 도망 다닌다고 해서 창궁무애검의 틈을 찾을 수 있냐는 점이다.

설천위와 남궁천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

거기에 긴 세월에 걸쳐 다듬어진 걸출한 무공.

설천위는 결국 궁지에 몰려 무너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이 시합을 보고 있는 이들은 그리 생각할 것이다.

아마 대부분은.

“이제 슬슬 재미있어지겠구먼.”

설천위의 눈빛이 변한 것을 확인한 팽후의 말과 함께 시합장의 공기가 변했다.

아니, 정확히 말해 한 사람의 존재감이 변했다.

“……미친?”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오는 보법이구먼.”

욕지거리를 내뱉는 남궁선과 두 번째 보는 것임에도 감탄하는 팽후.

그들의 눈엔 시합장 위에 서 있는데도 존재감이 옅어지고 있는 설천위가 담겨 있었다.

암영의적이 직접 펼치는 [섬뢰풍영보(閃雷風影步)].

속도와 은신.

그 두 가지를 모두 잡아낸 초절(超絶)의 보법이 그 위용을 드러낸다.

남궁천에게 있어서 거리는 그 가치를 상실한다.

남궁천은 원하는 대로 닿을 수 없지만, 설천위는 원하는 대로 닿을 수 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남궁천은 그대로 내공을 끌어올려 검식을 펼쳤다.

창궁무애검(蒼穹無涯劍).

그의 검이 만들어 내는 무게가 설천위의 발을 붙잡으려 한다.

허나, 남궁천이 만들어 낸 하늘로는 아직 담아낼 수 없는 것이 많았고, 암영의적의 발이 그 담아낼 수 없는 것들 중 하나에 속했다.

“큭!”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공격해 오는 설천위의 공격을 남궁천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막아 낸다.

주먹에 날붙이를 가져다 댔음에도 흔들림 없이 날을 피해 내는 차분함.

섬세하게 주먹의 방향을 바꾸는 제어력.

모든 것이 훌륭하다.

그렇기에 설천위의 공격이 끊임없이 남궁천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오오!”

누군가의 감탄과 함께 경기장의 공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예상치도 못한 설천위의 선전.

남궁천의 궁지.

이런 전개가 펼쳐질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그렇게 경기를 보는 이들의 시선이 흥분으로 차오르는 순간.

“쯧, 아쉽구먼.”

“역시 내 동생이 짱이네요!”

팽후와 남궁선의 평가는 남궁천을 향하고 있었다.

분명 설천위는 잘 싸우고 있다.

잘 싸우고 있지만.

“공격이 너무 부족하군.”

“쓰고 있는 권법도 속도는 좋지만 보법을 못 따라와 주네요.”

암영의적의 고질적인 단점.

공격.

그것의 부족함을 팽후와 남궁선은 단숨에 눈치챘다.

이 싸움은 아마 설천위의 힘이 떨어져 속도가 느려지는 순간, 단숨에 끝이 날 것이다.

언뜻 남궁천이 궁지에 몰리고 있는 것 같지만, 남궁천은 아무런 어려움도 없이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으니까.

설천위가 어떻게 저리 움직일 수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겉으로 보이는 육체로 그 체력을 가늠할 순 있다.

남궁천과 비교하면 정말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겠지.

“아쉽지만, 뭐 이 정도면 훌륭하군.”

“음, 무(戊) 정도 주시려고요?”

“아마 그쯤이 맞겠지.”

계(癸)에서 단숨에 무(戊)라.

원래 계에서 기어 올라오는 놈들이 한 번에 많이 승급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대단하네.

술을 마시며 고개를 끄덕인 남궁선은 다시 경기장을 바라봤다.

이제 슬슬 힘에 부치는지 설천위의 움직임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이제 곧 결말이…….

“음?”

“왜 저기에?”

남궁선과 팽후 둘 다 동시에 의문을 표할 정도로 설천위의 행동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갑자기 검이 닿기 딱 좋은 위치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 멈춘 설천위.

이 정도 거리면 남궁천에게 훨씬 유리한데?

그런 의문이 두 사람의 머릿속에 차는 순간.

설천위가 검을 잡았다.

그리고.

[소적검(消跡劍)]

보이지 않는 궤적이 하늘을 둘로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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