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화
32화-승급전 (1)
서하영이 쉬고 있는 병실. 그곳에 모인 철백과 설천위는 서하영에게 가장 중요한 소식을 먼저 전했다.
“무룡투쟁(武龍鬪爭)에요?”
“어, 확정이라던데?”
우리의 의사 따윈 묻지도 않았지.
무룡투쟁 출전 소식 이후엔 대충 보고만 하고 돌아왔다.
악령이 있어서 퇴치했다곤 할 수 없으니 열심히 쓸고 닦았다고 했지.
시간 날 때마다 해서 실제로 깨끗했으니까.
“우리에게 출전권이 주어지다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그러니까요. 그거 출전 조건이 최소 신(辛) 아니었어요?”
“그나마도 신급(辛級)은 거의 출전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애초에 이 무룡투쟁에 나가는 이유가 승급을 위해서니까.
최소 경(庚)에서 기(己)로 넘어가는 이들부터 출전을 결심하는 경우가 많다.
조장급이 보장되는 기(己)부터는 일류 이상의 무위를 증명하면 승급이 오르기 쉬우니까.
즉.
“우리가 최소 일류는 됐다고 판단했다는 거겠지.”
설천위의 말에 철백과 서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으면 말이 안 되긴 하다.
학기를 시작하고 나면 한 달.
그 중간고사가 시작되기 전에 무룡투쟁이 열린다.
그때가 기회다.
의자에서 일어난 설천위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우리도 슬슬 좋은 데서 좀 살아 봐야지?”
벌레들이랑 빠이빠이 할 때가 됐어.
* * *
개학을 하루 앞둔 날 밤.
홀로 훈련장을 찾은 설천위는 훈련장 중앙에 앉아 있었다.
[뭐 하냐?]
“점검 좀 하려고요.”
철백은 서하영을 돌봐준다고 했으니 편하게 해 보자고.
“상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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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설천위
나이: 16세
레벨: 1
근력 下中
체력 下中
순발력 下中
지력 中下
정신력 中中
내공 下上
영력 中下
패기 下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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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가장 큰 변화는 영력이겠지.
下上(하상)에 머물던 녀석이 中下(중하)로 올라섰다.
거기에 현태중을 쓰러트리며 얻은 영력의 찌꺼기들.
그것들은 아직도 몸 안에 맴돌고 있으니 전부 흡수하면 한 단계 정도는 더 오를 거다.
그다음은 패기인가.
어쩌다 보니 하나가 올랐다.
이유는 뭐, 뻔하지.
[뭘 보느냐.]
“아뇨. 아저씨 얼굴도 보면 볼수록 묘하게 정감 가네요.”
[원래부터 호감형이라 평가받던 얼굴이다.]
현태중의 뻔뻔한 대답에 설천위는 미간을 찡그렸다.
이 아저씨, 좀 잘생겼다고 뻔뻔하기는.
암영의적 아저씨 좀 봐.
못생기긴 해도 사람이 착하…….
[시선이 아주 기분을 더럽게 만드는구나.]
……진 않지.
생각해 보니 이 아저씨 도둑이었잖아?
도둑에 살인마?
이야, 화려하네.
범죄자의 혼만 모아 놨어.
스스로의 인복에 감탄한 설천위가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천마는 혀를 차며 설천위를 바라봤다.
[그래서 이번 싸움으로 얻은 것은 무엇이냐?]
“예?”
[내가 너를 하루 이틀 본 것도 아닌데,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냐?]
“……뭐, 그렇긴 하죠.”
천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스킬창을 열었다.
[혼원패공(魂元覇功)], [영혼지체(靈魂之體)], [섬벽권(閃霹拳)], [섬뢰풍영보(閃雷風影步)], [회복(回復)], [불굴(不屈)] 등등.
스킬이 많이도 늘었다.
늘었는데…….
“숙련도 한번 더럽게 안 오르네…….”
영적인 스킬을 제외한 모든 스킬의 성장이 더디다.
더뎌도 너무 더디다.
[영안(靈眼)]은 벌써 3성인데.
무공들은 진짜 죽어라 익혔는데도 겨우 2성인 것들이 태반이다.
[네 녀석의 속도가 느린 걸 이제 알았느냐?]
“에이 씨, 알고 있으니까 뭐라 하지 말아요.”
거, 섭섭하네.
툭툭거리는 설천위의 모습에 재미있다는 듯 놀리던 암영의적은 이내 미간을 찡그렸다.
[허어, 그래서 새로 얻은 힘은 무엇이냐?]
씁, 그냥 넘어갈까 했는데.
암영의적까지 걸고넘어지자 설천위는 결국 한숨과 함께 손을 펼쳤다.
“이거요.”
앞으로 내민 설천위의 손을 타고 흐르는, 은은한 영력.
[호오? 상당히 밀집력 있는 영기(靈氣)로구나?]
“예. 검기랑 비슷한 느낌? 사람 상대로 쓰기엔 약하지만요.”
반대로 영혼한테 쓰면 강하겠지만.
그래도 뭐, 검기나 권기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겼다는 게 어딘가.
이것만 있어도 앞으로의 전투에 상당한 도움이 될 거다.
현태중을 쓰러트린 것치고는 조금 저렴한 보상이지 않나 싶지만, 뭐…… 3인 클리어이니 어쩔 수 없지.
애초에 철백과 서하영 없이는 성립이 안 되는 전략이었고.
이 영기(靈氣)는 성장에 따라선 영강(靈罡)이나 그 외의 것으로 발전시킬 수 있으니 잠재력을 따지면 충분한 보상이기도 하고.
“읏차, 그럼 해 볼까요?”
대충 정리를 끝낸 설천위는 자리에서 일어나 현태중을 바라봤다.
굳이 이 밤에 방을 나와 훈련장에 온 이유.
하나다.
[목검을 들어라.]
“옙.”
현태중에게 검법의 기초를 배우기 위해서다.
[섬벽권(閃霹拳)]이나 [섬뢰풍영보(閃雷風影步)].
이 두 가지 모두 초식은 전부 익혔다.
이제 숙달의 단계만 남은 상태.
이 두 가지에 몰빵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솔직히 소적검(消跡劍).
이게 바로 남자의 로망이지.
너무 쓰고 싶다.
[네 재능으로 소적검(消跡劍)을 쓰려면 한세월이 걸려도 모자랄 게다.]
설천위의 생각을 뻔히 알고 있는 천마의 목소리에 설천위는 입술을 삐쭉였다.
“그거야 해 봐야 알죠.”
[사람은 가끔 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기에 사람인 것이다.]
거참, 너무 야박하네.
젊은이가 꿈과 희망을 키우겠다는데.
[소적검은 네 약혼자가 익히고 있는 검법과 동렬의 검법이다. 흉내라도 내려면 네 약혼자처럼 초절정엔 이르러야 하느니라.]
[약혼자? 나이가 어떻길래?]
[이 녀석보다 한 살 더 많다고 알고 있네.]
[허어, 그 나이에 초절정?]
천마의 말에 감탄을 내뱉은 현태중은 설천위를 바라봤다.
[대체 어떻게 아직도 혼약이 안 깨진 것이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아, 진짜 너무들 하네.
살짝 마음에 상처가 남을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설천위는 검을 휘둘렀다.
“됐고, 빨리 알려 주기나 해요. 이미 죽은 사람들이 뭔 남의 이야기에 그렇게 흥미가 많아.”
[허허, 원래 늙으면 오지랖이 넓어지는 법이다.]
“늙다 못해 쓰러지셨으면, 그 오지랖 접어 두세요.”
[이놈이?]
노인 공경의 ‘노’ 자도 모르는 놈!
눈을 부릅뜨는 천마를 가볍게 무시한 설천위는 현태중을 바라봤다.
빨리 알려 달라는 그 신호에 현태중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됐든, 이 녀석이 바란다면 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먼저 자세를 알려 주마.]
현태중은 가르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자세를 보여 주고, 그걸 따라 하는 설천위의 동작 하나하나를 전부 지적해 준다.
동시에 그 지적의 이유까지 구체적으로 풀어서 설명해 주는 친절함.
왜 여기에선 이렇게 움직여야 하고, 왜 저기에선 저래야 하는지.
인간의 관절과 근육의 움직임.
적을 상대할 때의 가정.
그야말로 족집게 강의라는 말이 어울리는, 구체적이고도 친절한 강의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음, 이 정도면 한 초식 정도는 되겠군.]
나름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현태중.
[오, 그 말 어디서 들어 본 것 같구먼!]
그리고 그 말에 낄낄거리며 설천위를 놀리는 암영의적.
그 모습에 설천위는 이번에는 정말 확실히 할 거라고 다짐하며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일검.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내려 긋는, 사선 베기.
그 안에 담긴 기예는 몇 가지가 있지만, 일단 이 초식의 시작은 이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수많은 궤적.
그렇게 한 초식을 전부 끝낸 설천위가 흐트러짐 없이 자세를 잡는 그 순간.
[다시.]
“……예?”
[다시.]
……씁?
냉정하기 그지없는 현태중의 눈빛에 설천위는 싸늘한 감각을 느꼈다.
[끌끌끌, 화경이란 경지가 딱지치기로 올라가는 줄 아느냐? 독기(毒氣)와 근성(根性)이 다르니라.]
미리 예견했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웃는 천마의 목소리에 설천위는 깨달았다.
망했다는 것을.
[다시! 틀린 부분을 전부 지적해 주마.]
이 인간, 시작하면 끝을 보는 타입이다.
* * *
“천위, 안색이 안 좋네.”
“아, 어제 밤샜어.”
오늘 아침까지 달렸지.
천마 할배랑 할 때는 밤샐 체력이 없어서 이렇게 길게 하지 못했는데…….
체력이 좋아지니까 이런 게 문제네.
어째 몸이 좋아지니까 정신이 더 힘들어지냐.
물론, 정말 아침까지 반복하고 또 반복한 설천위는…….
[허허! 그렇게 하고도 익히지 못한 것이 더 대단하구나!]
초식을 성공하지 못했다.
당연히 현태중의 기본 검법인 선유적월검(仙遊跡月劍)은 익히지도 못했고.
신선놀음의 발자취를 따르는 달이라니.
이게 무슨 개 같은 소리인가.
뜬구름 잡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대체 뭘 어찌해야 할지 감도 잡히질 않았다.
[내가 보기엔 최소 한 달은 걸릴 것 같구나.]
“무룡투쟁에선 써먹지도 못하겠네요.”
천마의 대답에 한숨을 내쉰 설천위는 대충 자리에 섰다.
마치 반처럼 계급마다 모여 있는 학생들.
설천위와 철백, 서하영은 당연히 계급(癸級)이 모이는 곳에 있다.
주변에서 날아오는 멸시의 시선이 상당히 따갑지만, 뭐 이젠 익숙해졌으니까.
주위의 시선을 대충 무시하던 설천위는 귀에 감각을 집중했다.
이런 시간에 학생들끼리 떠드는 소리가 은근히 또 중요한 정보가 된단 말이지.
그렇게 설천위가 청각에 집중하자, 몇몇 흥미로운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야, 들었냐? 이번 학기에 누가 을(乙)에 도전한다던데?”
“정말? 개쩌네.”
이 학관에서 교관들조차 건드리기 힘들어지는 상위 등급.
그중에서도 중간 단계인 을(乙)에 누군가가 도전한다는 소식이다.
시기상으로 생각하면…….
‘남궁천인가?’
검룡(劍龍) 남궁천.
이 녀석도 그야말로 재능의 덩어리지.
동료로 영입하면 후반까지 쭉 데리고 다닐 수 있는, 든든한 조력자.
성격도 정의로운 편이라 거부감도 거의 안 생긴다.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안 쓸 정도로 성격이 개차반 중 개차반인 조력자도 있으니까.
뭐, 일단 이쪽이랑은 상관없는 얘기네.
“얼마 전에 퇴학당한 배천문의 가문이 멸문했다던데?”
“정말?”
“어, 하룻밤 만에 잿더미로 변했다더라.”
씁?
이건 상당히 싸한데?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돌린 설천위는 이쪽을 보며 웃고 있는 여자를 발견하곤 어색하게 웃었다.
아니, 저 예쁜 얼굴로 뭔 짓을 한 거래.
유예린의 환한 미소에 어색하게 손을 흔들어 준 설천위는 결국 고개를 돌렸다.
뭐, 그놈들이 선빵 친 건 맞으니까.
그냥 넘어가자.
상당히 충격적인 소식에 설천위는 결국 더 이상의 정보 수집은 포기했다.
이 이상 충격적인 소식도 없을 것 같고.
무엇보다 아직 게임 본편이 시작되기 전이다.
이번 학기까지 큰 이변은 없을 터.
본편에서 벌어지는 무룡투쟁은 온갖 방해가 들어와서 개판이 되기 일쑤다.
애초에 끝까지 간 걸 본 적이 별로 없을 정도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 무룡투쟁은 상당히 할 만하다.
“음, 탐나.”
[뭐가 말이냐?]
“4강 상품이요.”
[4강?]
설천위의 말에 고개를 돌린 천마는 큼지막하게 걸려 있는 상품 내역을 바라봤다.
4강.
4강…….
[백화초(白火草) 말이더냐?]
“옙.”
하얀 불을 품은 풀.
뜨거운 화산지대에서 자라며, 그 효과는 화 속성 내성을 영구적으로 올려 준다.
그런데.
저게 또 특수한 방법으로 제련하면 훌륭한 영약이 된다.
화 속성에 내공까지 챙길 수 있는 그야말로 꿀템.
거기에 무룡투쟁이란 게 원래 진짜 강한 애들은 잘 안 나오는 대회다.
그런 녀석들한테 약한 애들 잡고 얻는 점수는 별로 필요 없으니까.
그러니까 4강.
할 만하다.
탐욕으로 반짝이는 설천위의 눈빛을 읽은 천마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백화초를 왜 원하는진 모르겠지만.
[수련이나 열심히 하거라.]
4강이 어디 쉬운 줄 아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