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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32화 (32/624)

제32화

31화-악령 퇴치 (7)

현태중은 악의와 증오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악의와 증오는 누구의 것일까?

현태중 본인의 것?

아니다.

현태중이 죽인 이들의 것이다.

복수라는 어둠에 빠져 무차별적으로 검을 휘두른 그를 향한 증오와 분노.

그것이 부러진 검이 되어 현태중을 속박하고 타락시켰다.

현태중이라는 자아를 침식하는 독이 되어서.

그렇기에 현태중은 애매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

스스로의 이성은 유지하고 있지만 타인의 악의에 침식되어 버린, 본래의 힘을 발휘 못 하는 애매한 혼.

그런데 그걸 설천위가 뽑아냈다.

그것을 계기로 현태중은 자아를 침식하던 독을 떨쳐 내고, 스스로의 길을 정하고 악의를 바탕으로 진정한 악령(惡靈)이 됐다.

홀로 올곧이 선 진짜배기로.

그런데…….

‘……이것도 결국 힘이잖아?’

검을 뽑아서 현태중은 홀로 설 수 있게 됐다.

한데 반대로, 검을 박아도 현태중은 진짜 악령이 되어 변화한다.

검을 박아 악령으로 변한 현태중은 패턴은 단순해지지만 그 공격력만큼은 남부럽지 않은 괴물이 된다.

그렇다면.

“할 만하지 않을까?”

[갑자기 무슨 헛소리냐.]

기세가 등등해진 적을 앞에 두고 잠깐이지만 멍하니 있다가 헛소리를 내뱉는 설천위의 모습에 암영의적이 미간을 찡그렸다.

이 녀석이 위기 앞에서 정말 맛이 갔나.

암영의적이 의문을 품은 것만큼, 비슷한 정도의 의문을 품은 현태중은 가만히 설천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가 됐든 자신이 제대로 된 길을 선택할 수 있게 해 준 아이들이다.

항복한다면, 죽이진 않을 것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랬으면 좋겠다.

자신이 죽였던 이들과 달리 이 아이들은 정말로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아이들이니까.

그렇기에 검을 든 상태로 현태중은 가만히 설천위를 바라봤다.

시간은 넉넉하게 주마.

친구를 구하기 위해 물러나거나.

정말 목숨을 걸고 싸우거나.

어느 쪽이든 받아들여 주마.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설천위는 결심을 한 듯 움직였다.

품에서 검신을 꺼내 손에 쥔다.

그 모습에 현태중은 미간을 찡그렸다.

저 검신들은 본래라면 자신에게 돌아올 악의들이다.

한데 완전히 떨어져 나간 것에 이어 이쪽의 정신이 완전해졌다.

이쪽으로 돌아올 틈 따윈 없는, 그야말로 갈 곳을 잃은 악의(惡意).

그런 걸 꺼내서 대체 뭘…….

까득.

[음?]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에 현태중은 미간을 찡그렸다.

아니, 이건…….

그런 현태중의 반응 따위 상관없다는 듯 설천위는 이내 두 번째 검신을 꺼냈다.

“생각보다 먹을 만하네.”

그리고 다시 한입.

갈 곳을 잃은 악의는 영력을 담은 설천위의 이빨에 너무도 쉽게 부서져 입안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먹어 치우자.

[네놈…….]

드디어 설천위의 속셈을 깨달은 현태중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네놈의 본질을 무너트리는 우책(愚策)이다.]

검을 겨눈 채 꾸짖는 그를 보며 어느새 열 개나 되는 검신을 씹어 삼킨 설천위는 중지를 치켜세웠다.

“뭐래, 내가 넌 줄 아냐?”

설천위의 몸을 타고 흐르는, 검은 아지랑이.

그 표정, 몸짓, 말투 모든 것에 살기(殺氣)가 밴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정제되지 않은, 폭력적인 영력(靈力).

흡수하고 있는 것이다.

죽은 사자들이 만들어 낸 악의(惡意)를.

그들의 증오를.

그들의 원념을.

“쓰읍.”

호흡을 들이쉰 설천위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딘다.

그의 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영역(靈域)!]

그의 발을 중심으로 변하는 공간에 놀란 현태중이 검을 휘둘렀다.

베어야 한다.

그런 일념이 담긴 공격.

허나.

“흡!”

튕겨 낸다.

영역이라는 공간에 의해 상쇄된 힘은 설천위의 영력이 만들어 내는 벽을 뚫지 못했다.

무(武)의 경지?

아마 어림도 없을 거다.

제대로 붙으면 현태중은 한 손가락으로 설천위를 농락할 수 있다.

한데, 그건 육체가 있는 산 자들의 이야기.

[네 녀석의 패인은 하나니라.]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천마는 서하영과 철백을 챙기며 웃었다.

[그 녀석은 무(武)에 대한 재능은 바닥이지만.]

빠른 속도로 서하영의 상태를 진정시킨 천마는 철백에게 그녀를 맡긴 채 일어나 웃었다.

[영적인 재능은 내가 본 사람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뛰어나니라.]

잡스러운 혼들의 악의(惡意)와 증오(憎惡) 따윈 설천위를 타락시킬 수 없다.

그리고 타락시키지 못한다면?

그 모든 것은 결국 그의 힘이 될 뿐이다.

그렇기에.

검신을 뽑는 것이 정답인 것이다.

* * *

천마가 철백과 서하영을 챙기는 사이, 설천위는 여태까지 느껴 본 적 없던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힘.

자신의 의지를 따라.

생각에 따라 움직이는 폭력.

그 힘의 달콤함은 너무도 강렬했다.

[커헉!]

명치를 강타 당한 현태중의 허리가 기침 소리와 함께 꺾인다.

이쪽이 빨라진 게 아니다.

그의 힘에 짓눌린 현태중이 느려진 것이다.

격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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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지체(靈魂之體)의 효과에 의해 흡수율이 크게 증가합니다!

일시적으로 영력이 중상(中上)으로 격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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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에 흘러넘치는 영력.

아마 지금은 도핑한 것 같은 느낌이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이 힘은 약해지긴 할 거다.

물론 어느 정도 흡수는 할 테니 영력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여하튼, 중요한 점은 이거다.

까득.

“딱 좋네.”

[네 녀석…….]

남아 있던 검신들까지 씹어 먹으며 설천위는 분노를 품은 현태중의 시선을 가볍게 무시했다.

아니,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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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지체(靈魂之體)의 효과에 의해 흡수율이 크게 증가합니다!

일시적으로 영력이 상하(上下)로 격상됩니다.

영력이 상급(上級)에 도달했습니다!

일시적으로 영악(靈握)(上下)을 습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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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뜬 알림창을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으니까.

상급?

상그으읍?

……아니지. 어찌 보면 당연한가?

게임에서 영력을 얻는 구간은 보통 중반부를 넘어야 한다.

당연히 현태중을 잡는 임무는 그 이후에나 할 수 있다.

그 시기의 플레이어 스펙을 고려하면 상급은 타당한 수준이긴 하네.

도저히 지금 도전할 만한 수준은 아니긴 하지만.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어느새 더욱 강력해진 영역(靈域) 속에서 현태중을 바라봤다.

이미 승기는 확실하게 잡았다.

그렇다면 굳이 안 할 이유가 없지.

따로 스킬 설명을 읽지도 않은 설천위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영악(靈握)]이라는 스킬은 게임에서도 본 적 없지만…….

상급 스킬이니 그 위력을 의심할 필요는 없겠지.

그럼…….

“영악(靈握).”

* * *

“감사합니다.”

서하영을 품에 안은 채 앉아 있던 철백은 어느 정도 여유를 되찾았다.

모두 천마의 조치 덕분에 서하영의 숨이 안정됐기 때문이다.

그런 철백의 인사에 천마는 껄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너희처럼 어린 아해들이 죽는 걸 내 어찌 보고 있겠느냐?]

손이 닿는다면 당연히 구해야지.

철백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 천마는 검신을 마저 씹어 먹고 있는 설천위를 가리켰다.

[지금부터 네가 집중해야 할 건 내가 아니라 저기 있는 네 친구다.]

“……예.”

[알고 있으니 다행이구나. 잘 지켜보거라. 길은 다르지만, 언젠가 너와 네 짝이 도달해야 할 경지이니.]

도달해야 할 경지.

즉, 설천위는 당연히 저 경지에 도달할 것이니 그와 함께하기 위해서 그에 맞는 수준을 갖출 필요가 있다.

천마의 말을 철백은 그리 해석했다.

그렇기에 두 눈을 부릅뜨고 설천위가 싸우는 것을 지켜봤다.

자신이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서 매에게도 전달해 주리라.

그래서 함께 강해지리라.

그의 강철 같은 의지가 불타오르는 순간, 영역(靈域)에 의해 상쇄되는 검격을 계속 날리던 현태중이 돌연 움직임을 멈췄다.

어떻게든 길을 뚫으려 발악하던 그의 앞에 선 설천위는 그저 손을 뻗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허…….]

천마의 감탄과 함께 드디어 철백도 설천위가 무엇을 했는지 볼 수 있었다.

“……저게 말이 되는 겁니까?”

[아무래도 되는 것 같구나.]

이렇게 두 눈으로 볼 수 있으니.

거대한 손.

무형의 거대한 손이 현태중을 짓누르고 있었다.

어떻게든 발악하던 그를 찍어 누르며 서서히 조여 나간다.

그렇게 천천히, 천천히 조여져 끝내 손이 주먹을 쥐게 되었을 때.

그 앞에 선 설천위가 현태중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끝이다.”

[……훌륭하다.]

입꼬리를 올린 설천위를 보며 허탈한 웃음을 짓는 현태중.

그리고 이내 현태중의 몸이 흩어지며 그의 혼이 가루가 되어…….

“응?”

[저, 저 악독한 놈.]

빛으로 흩어지던 현태중의 혼이 설천위를 향해 빨려 들어간다.

그 모습에 철백은 의문을 표했고, 천마는 혀를 찼다.

[더러운 놈에게 걸렸구나.]

뭐, 죗값을 치른다고 생각하거라.

* * *

“천위, 상태는 괜찮은가?”

“어, 문제없어.”

철백의 걱정에 설천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악의들을 흡수하고 나서 잠깐 환청에 시달리긴 했지만 뭐, 문제없다.

고작 환청 정도에 흔들릴 정신력도 아니고.

어깨를 으쓱인 설천위는 바로 화제를 바꿨다.

“서 소저 상태는?”

“상당히 좋아졌다. 천마 공의 말씀으로는 흉터도 남지 않을 거라고 하더군.”

전투가 끝난 후.

설천위는 뒷수습을 했고, 철백은 천마의 지시에 따라 약을 구해 서하영을 돌봤다.

철백은 그걸 미안하게 생각했지만, 당연히 설천위는 하나도 신경 안 썼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덕분에 눈치 안 보고 혼을 흡수하고 다녔으니까.

악령 놈들 달달했지.

덕분에 조금만 더하면 영력이 또 오를 것 같은 기분이다.

[악독한 놈…….]

“뭐래요.”

“예?”

천마의 혀 차는 소리에 철백과 달리 어깨를 으쓱이는 거로 넘긴 설천위는 다시 발을 움직였다.

전투가 끝나고 최대한 영력을 흡수하려 했지만, 결국 제대로 흡수할 수 있는 영력은 많지 않았다.

그나마 흡수 못 한 영약이 몸에 남는 것처럼 몸 안에 가둬 두는 데는 성공했으니 조만간에 영력은 한 단계 더 성장할 거다.

아주 만족스러운 성과다.

지금은 사람을 상대로 별 힘을 못 쓰지만 상급 정도만 되면 솔직히 사람한테도 충분히 통할 정도로 강력해지는 게 영적인 힘이다.

그 이상 올라가면 현경급의 초인과 다를 게 없는 수준이고.

음음.

아주 무난한 성장 속도라 할 수 있다.

“천위, 도착했네.”

생각에 빠져 그냥 걷던 설천위는 철백의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그런 그의 눈에 보이는 글자.

[學館長室(학관장실)]

두 사람이 함께 이곳에 온 이유는 뭐 뻔하다.

보고를 위해서다.

당장 내일 새 학기가 시작되니 보고할 필요가 있어서다.

문제는…….

“왜 직접 오라고 했을까?”

행정실에 보고하러 갔다가 학관장실로 가라기에 오긴 했는데, 이유가 궁금하긴 하다.

설천위의 질문에 철백이 어깨를 으쓱이는 순간.

“그건 내가 궁금하기 때문이지. 들어오거라.”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천천히 열리는 문 사이로 보이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 팽후를 보며 설천위는 포권을 취했다.

“학관장님께 인사드립니다.”

“됐다. 언제부터 그리 예의를 차렸다고.”

“뭐, 그렇긴 하죠.”

팽후의 말에 바로 고개를 든 설천위는 당당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보고는 어디부터 시작하면 되겠습니까?”

당돌한 설천위의 태도에 기분이 나쁠 법도 하건만, 팽후는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런 팽후의 행동에 따라서 자리에 앉는 두 사람.

두 사람이 착석하자 팽후는 미리 준비라도 한 듯 차를 권했다.

“일단 목부터 축이지.”

“아, 감사합니다.”

내가 또 주는 건 거절하지 않지.

차의 향을 음미한 설천위가 한입 마시려 찻잔을 입에 가져다 댄 순간.

“너희와 지금은 병상에 있는 서하영. 이 세 사람의 무룡투쟁의 출전이 결정됐으니 그것을 직접 알려 주고 싶어 불렀느니라.”

“예?!”

“아 씨, 깜짝이야!”

철백의 놀란 목소리에 덩달아 놀란 설천위는 쏟을 뻔한 찻잔을 내려놓으며 웃었다.

“야, 뭘 놀라느냐. 당연히 해야지.”

뭐, 놀랄 만하긴 하지.

무룡투쟁(武龍鬪爭).

유저들은 이리 불렀다.

승급전(昇級戰)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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