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31화 (31/624)

제31화

30화-악령 퇴치 (6)

한 번에 세 개.

그 숫자가 의미하는 것.

미간을 찡그린 현태중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철백을 바라봤다.

목숨을 건 견제.

이 녀석들이 믿는 것은 이거였나?

허나 그렇다고 해도 거기까지다.

아무리.

[손재주가 좀 좋은 도둑이라고 해도, 결국 도둑놈은 도둑놈일 뿐.]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두르는 현태중.

그의 검을 철백은 두 눈을 부릅뜨고 마주했다.

이번 도전의 시작 전, 설천위가 부탁한 단 한 가지.

최대한 붙어서 그의 움직임을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것.

친우와의 약속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칼끝에 설 수 있다.

“흐아아압!!”

극한의 극한까지 끌어올린 집중력은 현태중의 검에 철백이 반응할 수 있게 해 준다.

잡는다?

어림도 없는 소리.

본심을 발휘하는 현태중의 검을 철백이 잡을 수 있을 리가 없다.

하는 건 근육의 집중이다.

궤적을 읽어 근육을 극한까지 뭉친다.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것은 강철의 육체.

거기에.

[풍영류창(風泳流槍) 제1초 쇄풍(灑風)]

흔들림과 함께 분열하는 창이 검의 궤적을 지워 낸다.

창을 익히기 시작한 지 2달이 채 안 됐다곤 믿기 힘든 완숙한 움직임.

서하영이 지우는 궤적은 근육이 없는 관절 부위를 향하는 공격뿐이다.

“어림도 없다!!”

그렇기에 단단해진 근육으로 공격을 전부 받아 낸 철백이 거칠게 포효하며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근육은 버텼지만 가죽은 버티지 못해 몇 개의 자상이 남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껍데기가 갈라진 정도의 고통.

얼마든지 감내해 낼 수 있다.

그게 자신이 걸어가는 길이니까.

철백의 두 눈이 강렬한 의지로 형형하게 빛나는 순간, 현태중은 기묘한 위압감을 느끼며 몸을 비틀었다.

“어허, 늦었네.”

[어허, 늦었네.]

그런 현태중을 보며, 어느새 아까와 정반대 위치에 선 설천위가 입꼬리를 올리며 검신을 흔든다.

또다시 세 개.

벌써 여섯 개나 되는 검신이 빠졌다.

그 신속한 움직임에 현태중은 다시 검을 다잡았다.

도발에 반응하지 않고, 자신의 자세를 고치는 그 모습에 설천위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같은 높이에 섰네.’

여태까지 일방적으로 위에서 내려다보던 현태중과, 셋이 힘을 합쳐서라지만 겨우 동렬에 섰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시간을 길게 끌 생각은 없다.

길게 끌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제한 시간은…… 앞으로 10분 정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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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憑依)(中中)(一星)

혼을 자신의 몸에 받아들여 그 혼의 능력을 몸으로 재현해 내는 힘.

자신과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혼을 육체에 받아들일 수 있다.

대상과의 힘과 격의 차이에 따라 유지 시간, 재현도 등이 달라진다.

숙련도에 따라 연결되어 있지 않은 혼 또한 받아들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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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설명이 없어서 결국 직접 실험해 볼 수밖에 없었던 스킬.

얻은 건 그저께였지만, 이제야 쓰는 이유가 이거다.

얼마나 효과를 가진지 모르니 실험해 볼 시간이 필요했다.

이게 설천위가 준비한 비장의 한 수.

영역에서 성장한 건 철백과 서하영만이 아니란 소리다.

영력이 下上(하상)에서 中下(중하)로 오른 순간, 이걸 얻고 클리어 각을 볼 수 있었지.

설천위가 자신의 성장을 되새기며 만족해하는 사이, 전투의 공기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어느새 자세를 가다듬은 현태중의 검이 철백과 서하영을 노린다.

현태중이 그 둘을 완전히 무시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다.

무시해선 안 되니까.

방어를 담당하고 있는 철백은 그렇다고 쳐도, 서하영의 공격까지 무시할 순 없다.

대체 얼마나 뛰어난 재능을 가졌는지 벌써부터 공격에 의념(意念)이 실리고 있다.

이 정도면 선천적으로 신창합일(身槍合一)을 이뤘다고 해도 될 정도의 재능이다.

그 압도적인 재능이 한 사람을 상대로 쌓아 올린 전투 경험으로 하나의 예리한 창끝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니 무시할 수 없다.

무시했다간,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를 테니까.

그렇기에 현태중은 철백을 공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철백을 공격하면 서하영이 그를 지키기 위해 방어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기에 현태중과 철백, 서하영 구도가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거기에 그 빈틈을 암영의적의 신속으로 찌르는 설천위까지.

엄밀히 말하면 암영의적 본인이지만.

여하튼, 치밀하게 짜이진 않았지만 정확하게 맞물리는 합공 앞에서 현태중은 조금씩 밀리고 있었다.

집중을 끌어올린 덕일까.

다음에는 두 개만 뺏겼다.

그다음에도 또 두 개.

벌써 열 개나 되는 검신이 빠졌다.

허나 검신은 결국 현태중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그의 정신을 오염시키는 고름이다.

그것이 하나씩 빠질 때마다, 현태중의 의식은 더욱 선명해지고 그 검은 더욱 날카로워진다.

철백과 서하영이 이 합공을 며칠 전부터 완성했음에도 아직까지 세 사람이 현태중을 쓰러트리지 못한 이유다.

아니, 아마 게임에서 썼던 정공법을 썼다면 이미 쓰러트렸을 거다.

게임에서 쓰는 방법은 검신을 뽑는 게 아니라 밀어 넣는 것이니까.

전부 밀어 넣으면 완전히 이성을 잃은 현태중은 완벽한 악령이 되고, 그 폭주 상태는 강력하지만 허술한 보스가 된다.

천희는 게임에서 도전할 때, 설천위를 데리고 가서 플레이하면 근접에서 아주 잠깐 검신을 뽑는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찾아냈었다.

문제는 그 난이도.

너무나 짧은 시간과 예측하기 힘든 타이밍 때문에 포기했던 공략.

그걸 설천위는 현실에서 하고 있었다.

난이도는 올라가지만, 천마라는 사기 버프가 지켜 주고 있으니 충분히 할 만하다고 생각해서가 첫 번째 이유.

두 번째 이유는 당연히 난이도가 높으면 보상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의 성장 자체도 그 보상이라 할 수 있을 정도지만.

이왕 얻을 수 있는 거 최대로 뽑아야지.

“이제 앞으로 세 개 남았구나.”

[이제 앞으로 세 개 남았구나.]

설천위와 암영의적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현태중은 자신의 몸을 내려봤다.

이젠 한 번에 뽑히는 개수가 하나로 줄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뚜렷한 답이 보이진 않는다.

아마 이대로 흘러가면 자신은 소멸하겠지.

‘……나쁘지 않군.’

이런 후배들에게 밀려 사라지는 거라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수만 번?

휘두르고 휘둘러 혼이 되어서도 잊지 못한 검의 궤적을 젊은이 둘이서 막아 낸다.

그리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다른 녀석에 의해 또 하나의 검이 뽑힌다.

이제 두 개.

그래, 길어도 너무 길긴 했다.

이젠 끝낼 때도 됐지.

이제 한 개.

끝이다.

이제 나는 사라지고 무림은 여태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또다시 흘러가겠지.

여태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또다시?

현태중의 등에 박혀 있던 마지막 검신을 뽑아 낸 설천위가 멈추는 그 순간.

영역(靈域)이 흔들렸다.

“끝…….”

그 모습에 안도한 서하영이 창을 내려놓으려는 그 순간.

“정신 차려! 안 끝났으니까!!”

“하익?! 예, 예!”

설천위의 호통에 서하영은 다시 창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나약했다.]

나지막한 목소리.

이젠 살기조차 사라진 그 목소리에 철백은 자신도 모르게 서하영의 앞을 가렸다.

팔다리가 자신도 모르게 떨린다.

근육의 경련이 몸을 흔든다.

어째서 평온한 이 목소리가 살기를 담고 있던 목소리보다 더?

생각이 이어지기 전, 철백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근육의 밀집.

순간적으로 가슴과 복부를 강화한 철백의 몸이 그대로 밀려난다.

[훌륭하구나.]

그런 그를 칭찬하는 현태중의 목소리.

“커헉!”

그러나 그의 뒤에서 터져 나오는 피를 토하는 듯한 기침 소리.

재빨리 몸을 돌린 철백의 눈에 자신과 똑같은 부위를 공격당한 서하영이 들어왔다.

문제는 철백은 근육으로 내장을 지켜 냈지만, 서하영은 그러지 못했다는 점이다.

“서 매!!”

그런 서하영을 다급하게 챙기는 철백.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현태중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얼마나 더 유지할 수 있느냐?]

“……그리 길게 하진 못할 것 같은데.”

간신히 공격을 피해 냈던 설천위는 고개를 꺾으며 현태중을 바라봤다.

검신을 전부 밀어 넣으면 힘이 폭주하며 패턴이 허술해진다.

무(武)를 잃은 현태중은 고작해야 영력이 조금 강한 잡귀에 지나지 않으니까.

허나.

반대로 모든 무(武)를 회복한 현태중이라면?

악의(惡意)에 침식당하지 않고 올곧게 선 현태중이라면?

[오랜만이구나. 이런 느낌은.]

“거참, 더럽게 강하네.”

살기를 뿜어내지 않고 있음에도, 그 위압감은 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화경(化勁).

인간을 넘어선 무언가가 되어 버린 진정한 초인의 시작.

그 격의 차이가 설천위를 짓누른다.

하지만.

“야, 반대로 한번 물어보자.”

흔들리지 않고 올곧이 선 설천위가 담담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화경에게 덤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지금 설천위의 몸에 빙의한 암영의적의 경지도 초절정일 뿐이니까.

화경과의 정면 대결은 백전백패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인간이 상대일 때의 이야기다.

“너는 얼마나 버틸 수 있냐?”

입꼬리를 비트는 설천위의 질문에 현태중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길진 않을 것이다. 나의 존재를 지탱하던 악의(惡意)는 네 녀석이 거의 다 뽑아 버렸으니.]

“악령이 아닌, 그냥 혼이 생전의 힘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지.”

이 방법이 정답인 이유.

버티기만 하면, 이쪽의 승리다.

그리고 암영의적은 화경 정도에겐 붙잡힌 전적이 없는 대도(大盜)이고.

현태중의 성격상, 철백과 서하영을 인질로 잡을 일도 없다.

심장을 조이는 일수(一手).

자신이 빠진 함정을 깨달은 현태중은 웃으며 설천위를 바라봤다.

[아직 허술하구나.]

허나 거기까지다.

이젠 지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나약함엔.

현태중의 손이, 천천히 자신의 심장에 박혀 있는 검을 움켜쥔다.

그리고 서서히 그 검을 뽑아내기 시작하는 현태중.

그 모습을 설천위가 지켜보던 그 순간.

수많은 궤적이 현태중을 중심으로 수 미터의 공간을 베어 낸다.

“이 괴물 같은 놈……!”

[이 괴물 같은 놈……!]

재빨리 설천위의 몸을 움직여 그 공격을 피해 낸 암영의적은 황당함이 담긴 눈으로 현태중을 바라봤다.

이 괴물 같은 놈이 기어코 완성해 버렸다.

[소적검(消跡劍)]

발자취조차 남지 않는, 무흔(無痕)의 검.

[나를 옭아매는 악의는 언제나 나의 심장 속에 있었다.]

심장에 박혀 있던 검을 완전히 뽑아낸 현태중이 그 검을 든 채 설천위를 바라본다.

심장에 뚫린 구멍에서 새어 나오는 것은 검은 악의(惡意).

그의 몸은 이젠 검은 악의(惡意)와 붉은 혈기(血氣)로 뒤덮여 있었다.

[내 딸의 원념을 풀기 전까진 나는 이 무림의 악령으로 남을 것이다.]

살기와 집념으로 번들거리는 눈동자.

그 몸에서 솟구치는 힘은 도저히 시간제한이 있을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이, 이거 어떡하죠?”

[내가 알겠느냐? 이제 시간도 얼마 없으니 알아서 하거라.]

“아니, 이러다 나도 죽어서 떠돌아다니겠어요!”

매정한 암영의적의 대답에 설천위가 소리쳤지만, 현태중은 담담히 그를 향해 검을 들었다.

[네가 내 길을 막는다면, 나는 기꺼이 너를 베고 나아갈 것이다.]

이젠 완전한 악령으로 거듭나 버린 현태중의 협박에 설천위가 고민하는 그 순간.

[부숴라.]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에 설천위는 고개를 들었다.

이거, 천마 할배 목소린데?

[검을 부숴라.]

아니,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부수냐고요. 저 괴물 같은 인간이 들고 있는 검을.

말도 안 되는 요구에 설천위가 입술을 삐죽였다.

그게 됐으면 내가 진즉에 했지.

[명심하거라. 무인과 무인의 싸움이 아니다. 혼과 혼의 싸움이니라.]

“그러니까 그게 대체 무슨 상관…….”

천마의 목소리에 결국 불만을 토해 내려던 설천위는 이상한 느낌에 자신의 가슴을 더듬었다.

그리고 그 손끝에서 느껴지는 것.

암영의적이 열심히 훔쳐서 품에 갈무리해 놓은, 십수 개의 부러진 검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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