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29화 (29/624)

제29화

28화-악령 퇴치 (4)

“2트째 하러 왔다!”

당당한 걸음.

그 걸음에 희미해져 가던 이성마저 돌아온다.

[황당한 놈이군.]

의미 모를 헛소리를 저렇게 당당하게 외치며 들어오다니.

입꼬리를 비튼 현태중은 다시금 검을 들었다.

[하루 만에 무엇이 바뀌었다고 그리 자신만만한 것이냐?]

“원래 애들은 빨리 성장하는 법이거든.”

이리저리 몸을 풀며 웃던 설천위는 순간 땅을 박찼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가르는 무형의 검기.

[반응은 조금 좋아졌구나.]

“너무 뻔한 기습이라 가뿐했지.”

현태중의 웃음에 웃음으로 대답한 설천위는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숨겼다.

‘노모션?’

이건 선 넘었지!

노모션, 즉 사전 동작이 거의 없는 형태의 공격.

게임에서 등장하면 똥겜이라고 온갖 욕은 다 처먹는 불합리의 끝판왕.

순간적인 감에 의존해 땅을 박차지 않았다면, 2트째를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중상을 입을 뻔했다.

떨리는 눈동자를 가라앉히며 설천위는 다시금 현태중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방금 사전 동작 없이 펼쳐졌던 공격은 분명 위협적이긴 하지만 확실히 느렸다.

감에 의존해 피한 거라곤 해도 자신의 속도로 충분히 피해 낼 수 있는 속도였으니까.

잘 안 쓰는 이유는 그만큼 속도가 느리고 위력이 약하기 때문이겠지.

그렇다면 집중을 유지한 채 정말로 신경 써야 할 건 통상의 공격이다.

궤적을 읽을 수 없는, 무형의 검기.

[집중하거라.]

옆에서 들려오는 암영의적의 목소리에 설천위는 천천히 자세를 낮췄다.

공략?

어림도 없는 소리.

힘의 격차는 명확하다.

그렇다면,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모든 것을 거는 건 어리석은 선택.

기회가 무한한 지금, 해야 할 건 끝없는 연습이다.

보고.

익히고.

숙달한다.

이 세 과정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성과를 얻어 내면 첫 단계는 성공이다.

그게 설천위에게 주어진 첫 번째 과제다.

“자, 드루와.”

끝내주게 도망쳐 줄 테니까.

* * *

베인다.

어깨에서 퍼져 나오는 아릿한 통증을 느끼며 설천위는 몸을 비틀었다.

무려 한 시간.

전신은 이미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목숨은 아직 붙어 있다.

[네 녀석은 그나마 실전에서 숙달되는 속도는 괜찮아지는구나.]

“그거 전혀 칭찬 아닌 것 같은데요.”

암영의적의 말에 미간을 찡그린 설천위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현태중을 바라봤다.

대체 무슨 생각일까.

완전한 치명상은 아슬아슬하게 피해 내고 있다지만, 솔직히 몸 상태는 상당히 안 좋아진 지 오래다.

끝내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진즉에 끝낼 수 있었을 터.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긴 싸움을 이어 나가고 있는 걸까.

회복으로 천천히 아물어 가는 상처를 느끼며 설천위는 허리를 폈다.

드디어 현태중이 검을 늘어트렸기 때문이다.

“뭐야? 끝이야?”

[시시하구나.]

“뭐래, 지가 끝내 놓고.”

[저 노괴만 아니었다면 네 녀석은 차 한 잔 마실 시간도 버티지 못했을 거다.]

씁, 역시 그런가?

현태중의 말에 어깨를 으쓱인 설천위는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 근육을 풀었다.

“뭐, 그래도 나는 아직 내공이 좀 남아 있거든? 마저 하자.”

[아니, 흥이 식었다.]

검을 완전히 거둔 현태중은 결국 자리에 앉았다.

완전히 전투 의지를 상실한 그 모습에 설천위는 한숨과 함께 땅바닥에 앉았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 단계에서 선공을 취하는 건 죽으러 가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이렇게 긴장감 없는 보스전은 예상외의 전개인데 말이지…….

물론 긴장감이 없다곤 해도 설천위의 시선은 계속해서 현태중을 향했다.

그 노모션의 공격을 저 상태에서 쓰지 못하리란 법은 없으니까.

그렇게 설천위가 현태중을 계속해서 주시하며 휴식을 취하길 약 십 분.

가만히 지켜보던 현태중이 결국 입을 열었다.

[……저건 뭐지?]

현태중이 가리키는 반향을 슬쩍 본 설천위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신경 쓰지 마. 네 힘을 조금 빌리고 있는 것뿐이니까.”

[내 힘을 빌리고 있다고?]

“어. 저 녀석들은 이 영역이 아니면 저 할배를 아직 못 보거든.”

겸사겸사 영안의 개안 훈련도 하고 있지.

지금은 이 안에서 무공을 전수 받고 있지만, 개안이 이루어지면 외부에서도 수업을 진행할 거다.

[……내가 의식을 유지하고 있는 동안에 이런 광경을 보게 될 줄은 몰랐군.]

사지(死地)라 할 수 있는 악령의 영역(靈域)에서 수련이라니.

황당함을 넘어 재미있는 수준이다.

헛웃음을 흘린 현태중은 미소와 함께 설천위를 바라봤다.

[네가 원하는 건 무엇이냐?]

“엉?”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에 미간을 찡그린 설천위를 보며 현태중은 자신의 새하얀 손을 바라봤다.

인간의 흔적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손.

단단했던 굳은살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나는…….]

무언가를 말하려던 현태중은 이내 손을 움켜쥐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장난은 여기까지 하지.]

“야! 말하던 건 말하고 끝내야지!”

어느새 살기가 흘러나오는 현태중의 모습에 설천위가 빽 하고 소리쳤지만, 현태중은 담담히 검을 들어 올렸다.

[장단에 맞춰 주는 것은 여기까지다. 영감.]

[껄껄, 생각보다 참을성이 좋은 친구로군.]

자세를 잡고 준비하던 설천위는 어느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천마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며 자세를 풀었다.

오늘의 실전 수련은 여기까지인가.

[그럼, 내일 또 보겠네. 젊은 친구.]

[꺼져라.]

* * *

“여! 3트째 하러 왔다!”

[쯧.]

다음 날에는 1시간 10분을 버텼다.

“야! 4트째다!”

[끈질기구나.]

사흘째에는 1시간 15분을 버텼다.

그리고.

“보, 보인다!”

“저도요!”

나흘째 아침, 철백과 서하영은 나란히 영안을 개안했다.

그 수준은 천마를 겨우 볼 수 있을 정도였지만, 그래도 개안한 게 어딘가.

“이젠 밖에서도 초식을 배울 수 있겠네.”

[음? 그게 무슨 소리냐?]

“응?”

천마의 반문에 설천위는 싸늘한 감각을 느꼈다.

설마?

[저 아이들이 너 같은 줄 아느냐? 요 사흘간 영역 내에서 초식은 전부 가르쳤다.]

“아니, 그게 말이 돼요?!”

나는 초식 하나 익히겠다고 피똥을 쌌는데!

[쯧쯧, 너는 재능이 없다 못해 해가 되는 수준이지만 저 아이들은 그 정반대에 위치해 있느니라.]

아니, 그건 선을 넘었지.

영안도 무슨 사흘 만에 개안했는데.

초식까지 사흘 만에 다 익혔다고?

실제로 배운 시간은 세 시간 조금 넘는데?

이건 아니지.

설천위가 억울함에 미간을 찡그리는 순간.

“천위가 재능이 없다뇨?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젠 천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철백이 반문했다.

아니, 재능이 없다니.

그럼 그 강함은 뭐란 말인가?

당연하다면 당연한 철백의 질문에 천마는 껄껄 웃으며 설천위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마 이 아이가 내가 본 아이 중에 무(武)에 있어서 가장 끔찍한 재능을 가졌을 것이다.]

“한데…….”

[허나, 무(武)라는 것은 재능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지.]

이 말은 설천위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천마는 눈에 다정함을 담은 채 철백과 서하영을 바라봤다.

[무(武)에 있어서 재능은 5할이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무엇이겠느냐?]

“노력입니까?”

[정답이다. 물론 천위의 경우 재능이 남아 있는 노력의 영역까지 한 2할은 파먹어 버렸지만.]

입꼬리를 올린 천마는 설천위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허나, 3할의 노력만으로 나머지 7할을 채우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훌륭한 스승이 함께한다면 그 이상도 채울 수 있지.]

성장에서 중요한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하나 정도 없다고 해서 포기할 이유도 없다.

[갈고닦아라. 무(武)란 결국 사람이 행하는 것. 내공이 없어도, 창 이외의 무기엔 재능이 없어도 그 끝에 도달할 수 있으니.]

확답.

이미 그 끝의 지척까지 도달했을 사람의 보증에 철백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래.

할 수 있다.

나 또한, 그리 믿고 이 길을 걸어온 것이 아니던가.

“예! 해내겠습니다.”

[훌륭하구나.]

“저, 저도요!”

[이번 수행에서 가장 기대되는 것이 너이니 분발하거라.]

철백과 서하영이 천마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이, 설천위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냐, 갑자기?]

“뿌렸던 씨앗이 발아하는 느낌이라서요.”

[누가 보면 저 아이들을 네가 키웠는지 알겠구나.]

뭐 비슷한 느낌이지.

아직 철백과 서하영은 볼 수 없는 암영의적의 말에 어깨를 으쓱이며 설천위는 몸을 풀었다.

“자! 그만 놀고 수련하러 가자!”

장소는 보스 룸.

목표는 보스 레이드.

이젠 3인으로 공략에 나설 시간이다.

* * *

“도르마무!”

“천위, 대체 그 말은 왜 자꾸 하는 건가?”

“아니, 그냥 재미로 하는 건데.”

원래 반복 도전할 땐 이거 외쳐 주는 게 국룰이라고.

무려 스무 번.

설천위와 친구들은 현태중에게 깨지고 또 깨졌다.

화경의 힘을 발휘 못 하니 할 만할 거라고?

어림도 없는 소리.

그 기예는 여전히 화경이며, 쓰지 못하는 것은 검강 정도다.

설천위가 당했던 노모션 공격.

소적검(消跡劍).

그건 미완성의 무공이 아니라, 완성된 화경의 경지의 무공이다.

육체를 잃어 그것을 온전히 재현해 낼 수 없기에 위력이 약해진 것뿐.

그 사실을 천마에게 들었을 땐 얼마나 놀랐는지.

그럼 생전에는 얼마나 강했다는 거냐.

여하튼, 반쪽짜리 화경일지라도 그 강함은 초절정보다 위다.

설천위와 철백이 절정급 고수에게 그냥 농락당했던 것을 생각하면 어림도 없는 격차.

허나.

“막아!!”

“오우!!”

그 격차는 빠르게 좁혀졌다.

궤도가 변하는 현태중의 검을 철백이 몸으로 막아선다.

실체를 가진 진검이었다면 무리겠지만, 결국 영혼이 자신의 영력으로 빚어낸 물건.

영안을 개안하면서 영력을 조금이나마 다룰 수 있게 된 철백은 그 육체의 강도에 힘입어 몇 번의 공격 정도는 받아 낼 수 있었다.

더불어.

“흡!”

천마에게 전수 받은 화경(化勁)의 묘리를 품은 권법, 사철권(沙鐵拳).

모래와 같이 공격을 흡수하면서도 필요에 의해 사철(沙鐵)의 날카로움을 품고 적을 찢어발긴다.

이 권법은 상승의 묘리까지 품은 권법.

내공이 없는 철백을 위해 천마가 직접 손을 본 무공이니 그 위력은 내공을 가진 무인이 펼치는 것에 크게 밀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철백은 몇 번이고 현태중의 검을 받아 낼 수 있었다.

“합!”

그리고 철백이 방어로 만들어 내는 틈을 서하영이 찌른다.

서하영의 풍영류권(風泳流拳)을 천마가 완전히 창술로 재해석한, 풍영류창(風泳流槍).

그 움직임은 절벽 사이를 헤엄치는 바람처럼 날래며 기묘하다.

아무리 좁은 공간도 비집고 들어가는, 적의 빈틈을 파헤쳐 관통하는 창.

그것을 막기 위해선 아무리 현태중이라 할지라도 검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완성되는 팽팽한 균형.

이 균형을 만들어 내기까지 20일이 걸렸다.

그로 인해 생겨나는 여유.

여태까지 함께 현태중의 공격을 받아 내던 설천위는 한 걸음 물러서서 전투를 바라봤다.

이대로 이긴다?

어림도 없는 소리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현태중은 손속에 사정을 두고 있다.

아무리 철백과 서하영의 성장 속도가 빨라도 초절정 고수를 둘이서 막아 낼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실제로 저 둘보다 약했던 설천위도 멀쩡하게 살아 있지 않은가.

즉, 현태중에게는 아직도 공략할 요소가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요소를, 설천위는 알고 있다.

“후.”

작게 호흡을 내뱉은 설천위는 내공을 돌려 몸의 근육을 팽팽하게 당겼다.

그 긴장이 정점에 이르는 한순간.

설천위의 몸이 단숨에 땅을 가른다.

목표는 서하영이 만들어 낸, 옆구리의 작은 틈.

거기까지 단숨에 도달한 설천위의 손이 노리는 것은 하나.

옆구리에 박혀 있는 반쪽의 검신(檢身).

그렇게 설천위의 손이 반쪽짜리 검신에 닿는 그 순간.

강렬한 충격음이 영역을 뒤흔든다.

검신에 제대로 손도 대지 못하고 튕겨 나간 설천위.

겨우 몸을 일으킨 그의 눈에 여태까지와는 다른 살기를 두른 현태중이 보인다.

가슴에 생긴 자상을 지혈하며 설천위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2페이즈 시작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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