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26화-악령 퇴치 (2)
“창은 왜 챙기라고 한 거예요?”
쓸데없이 짐만 되는 것 같은데.
청소 도구와 함께 창까지 챙긴 서하영의 질문에 설천위는 당연하다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
“그럼 창사(槍士)가 창을 안 들고 다녀?”
“아.”
생각해 보니 그러네.
하긴 처음 쥔 순간부터 평생 들고 다녔던 것처럼 익숙하게 느껴졌지만, 평생 들고 다녔던 건 아니니까.
적응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납득이 가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 서하영을 뒤로한 채 설천위는 구교사로 들어갔다.
미묘하게 신경을 긁어 대는 기묘한 냄새.
먼지와 묘한 비릿함이 섞인 냄새는 아마도 옛날에 이 구교사를 채웠던 피의 흔적일 거다.
“입구부터 난리군.”
“입구부터 시작하지 않았다면 큰 피해가 안 생겼겠지.”
“음, 그것도 그렇군.”
고개를 끄덕인 철백은 청소 도구를 내려놓곤 양 소매를 걷었다.
곳곳에 묻어 있는 핏자국들.
이 녀석들을 제거하는 게 먼저다.
방법은 간단하다.
갈아 낸 다음에, 나무가루를 접착제로 채워 넣으면 된다.
“그럼 바로 시작하지!”
“오냐.”
호기롭게 시작하는 철백.
그를 따라서 설천위도 공구를 들었다.
하지만 경계를 늦추진 않았다.
이 구교사에 등장하는 악령의 패턴은 크게 두 가지.
살인마에게 죽은 원념들.
살인마.
후자는 이 지역의 보스이니 마지막에나 볼 수 있을 거고, 문제는 악령들이다.
이놈들의 목적은 순전히 화풀이다.
살인마의 혼령은 쳐다보지도 못하니 들어온 놈들이나 괴롭혀서 내쫓겠다는 목표 하나로 움직이는 놈들.
물론 그중에는 살인마의 영혼에 다른 사람이 희생되질 않기 바라며 동참하는 녀석들도 있지만.
그러니 기다려야 한다.
적당한 순간까지 기다려서 악령들을 마주하고, 붙잡은 다음에 살인마 혼의 위치를 알아낸다.
이게 이 퀘스트의 흐름이다.
그러니까 일단은…….
“우오오오!”
“오! 천위 빠른데?”
열심히 청소나 하자.
* * *
“크! 벌써 이 구역이 다 끝났군!”
사흘째.
오후에만 나와 몇 시간 정도 청소하고 있기에 그 속도가 그리 빠르진 않았다.
구교사는 두세 층 정도의 건물 몇 개가 이어진 구조를 하고 있다.
건물들을 잇는 복도가 있고, 그 외부는 담으로 둘러싸인 정원이다.
솔직히 말해서 겉으로 보면 상당히 운치 있는 건물이다.
돈 있는 놈들이 자식들 가르치겠다고 만든 건물이라는 티가 팍팍 난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그런 건물 중 하나를 전부 정리했는데…….
“왜 안 나오지?”
“음? 뭐가 말인가?”
“아니야. 신경 쓰지 마. 아, 오늘 시간 좀 남았는데 저쪽 복도나 좀 하다 갈까? 저기 엄청 더럽던데.”
“좋지.”
“좋아요~.”
설천위가 가리킨 방향을 본 철백은 고개를 끄덕이곤 도구를 챙겨 곧바로 이동했다.
그런 그의 뒤를 따르는 서하영.
그렇게 두 사람과 거리를 벌린 설천위는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천마를 바라봤다.
“천마 할배, 주변에 혼령들 없어요?”
[음? 왜 그러느냐?]
“제 영안이 부족해서 혼이 안 보이나 해서요.”
아무리 그래도 이건 심하다.
청소를 다 끝내고 나면 구교사에 들어올 명목이 사라진다.
최대한 빨리 정리할 필요가 있다.
거기에, 괴이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을 학관장이 이곳에 보낸 걸 생각하면 살인마의 혼을 처리하는 게 거래의 요점일 터.
잘 정리하면 이전에 했던 산적과의 싸움을 빌미로 승급 업을 시켜 주겠다는 거래일 거다.
유예린의 노력을 헛되게 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처리해야…….
‘내가 왜 걔 노력을 걱정하고 있지?’
자기 혼자 알아서 한 일인데.
이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가 있나?
순간 머릿속에 든 생각에 미간을 찡그리는 설천위.
생각해 보니 그렇다.
굳이 걔의 노력을 생각해서 열심히 할 필요는…….
[아, 잡귀라면 내가 쫓아내고 있다.]
“……예?”
그건 또 뭔 소리야?
[사실 쫓아낸다기보다는 내 곁으론 얼씬도 안 하는 거라고 봐야겠지.]
“왜요?”
[격의 차이가 너무 심한 혼에게 대들면 소멸당할 수도 있으니 그런 것일 게다.]
아!
천마의 말에 설천위는 미간을 찡그렸다.
이건, 상당히 안 좋네.
“설마 그럼 이 근처에 숨어 있을 살인마의 혼도?”
[아마 접근 안 할 게다. 애초에 잘 안 움직이는 녀석이기도 하고.]
아따, 천마 할배 세네!
그냥 격의 차이 하나만으로 접근을 막아 버리고 있다는 거 아니야?
“후, 그럼 일단 좀 비켜 주세요.”
[위험할 텐데?]
“그 녀석을 처리 못 하면 여길 정리했다고 할 수 없잖아요.”
[음.]
설천위의 말뜻을 이해한 천마는 가만히 설천위를 바라봤다.
이 아이가 이길 수 있을까?
악령은 괜히 악령이 아니다.
존재의 일그러짐을 받아들이고 인세(人世)에 간섭할 힘을 얻은 자들.
그 위험도는 여타 무인들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하지만…….
‘그놈의 상태를 생각하면 못 할 것도 없을 것 같구나.’
살인마의 혼은 지박령이다.
이유는 사인(死因) 때문.
전문적으로 퇴마술을 익히지 않은 설천위라도 도망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터.
무엇보다.
‘대련 상대로 딱 좋겠어.’
위기의 순간에 자신이 구해 줄 수 있다는 점이 참 마음에 든다.
몇 가지 생각 끝에 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는 일단 물러나 있으마.]
“옙.”
[단, 살인마의 혼은 아직 네가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발견하면 즉시 도망치도록.]
“옙, 명심할게요.”
고개를 끄덕이는 설천위를 바라본 천마는 천천히 설천위와 거리를 벌렸다.
이 구교사를 나가 있는 정도면 적당하겠지.
그렇게 천마의 혼이 나가고.
“……아저씨는 안 가요?”
[어허, 아저씨라니? 호칭이 점점 더 편해지는구나?]
그래도 무공을 전수한 스승 같은 존재인데!
나름 불만을 내뱉던 암영의적은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죽은 마당에 그게 무슨 상관이냐.
[나는 그 살인마란 놈보단 약하다. 내가 있다고 한들 나타날 게다.]
“오, 그거 든든하…… 든든한 건가?”
약하면 별로 쓸모없는 거 아니야?
미묘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설천위에게 암영의적이 떽 하고 소리쳤다.
[도망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게 해 줄 터이니 말이나 잘 듣거라!]
“예이.”
암영의적의 호통에 장난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다시 철백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일단, 오늘은 청소에 집중하고 내일부터 악령 찾기에 나서 볼까.
* * *
“천위, 오늘 뭔가 물건이 자주 엎어지지 않나?”
“으힉?!”
철백의 질문에 설천위보다 먼저 반응한 서하영이 기묘한 비명과 함께 두 사람을 바라봤다.
“아, 아니 뭔가 이상한 느낌이 엉덩이를…….”
“우, 우리는 아닌데?”
오, 철백 당황한 것 봐라?
이런 분야에는 또 멍청하구나.
아주 그냥 만화에서 가져온 성격 같아.
하긴 대쪽 같은 녀석이니 여성을 대하는 게 서툴 만하지.
서하영이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않았으면 아직도 거리가 한 천리(千里)는 떨어져 있었을 거다.
잠시 철백을 보며 고개를 젓던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그거 유령 짓이다.”
“유, 유령이요?! 혼?! 사자(死者)?!”
“어. 다양하게도 말하네.”
놀라 소리치는 서하영의 목소리에 귀를 살짝 막았던 설천위는 주위를 둘러봤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녀석들이 보인다.
생전에 강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악령으로 지낸 세월이 길어 그 존재감이 뚜렷해진 이들.
이 부족한 영안으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수준이다.
“이 건물, 옛날에 살인마 때문에 버렸다고 했던 거 기억하지?”
“예……. 기억하지요.”
“그 희생자들이 계속해서 원한을 쌓고 쌓아서 악령으로 변한 놈들이 이 주변에 가득 차 있어.”
“왜 첫날에 안 나타나고 지금 나타나는 거지?”
설천위의 말에 철백이 미간을 찡그린 채 주위를 둘러봤다.
“뭐, 관찰했던 거겠지. 우리가 건드릴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그렇다면, 이 구교사를 청소하려다 실패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 그놈들 짓이겠지?”
“아우! 중상을 입은 사람도 있는데요?!”
“그러니까 악령이지.”
뭐, 죽은 사람이 없는 건 아직까지 양심이 남아 있는 혼들 덕이겠지.
정말로 더 이상 희생자가 나오질 않길 바라는 소수의 선한 놈들.
그놈들은 아마 악령이라고 부르기에도 모호한 상태일 거다.
“그래서 해결책은 뭔가? 없다면 말을 꺼내지도 않았겠지?”
철백의 물음에 설천위는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혼을 볼 수 있다.
이것 하나로는 혼과 싸울 수 없다.
하지만, 설천위에게 있는 게 하나 더 있으니.
“일단 너희는 청소해. 저놈들 정리는 내가 할 테니까.”
주먹을 들어 올린 설천위가 웃으며 구석을 바라본다.
그의 손에 맺힌 것.
영력(靈力)이다.
* * *
“오? 진짜 무언가랑 싸우는 것 같군.”
갑자기 뛰어간 설천위가 허공에 주먹질하는 모습을 보며 철백은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저렇게 현실감 있게 허공에 주먹질이라니.
솔직히 조금 웃기긴 하다.
“아우, 그런데 진짜 악령이라니…….”
“뭐, 이혼대법이라는 것도 있다는데 악령이 뭔 대수겠어?”
떨리는 서하영의 목소리에 철백은 어깨를 으쓱였다.
“죽어 봤자 결국은 사람. 사람이라면 어떤 방법으로든 이길 수 있는 길이 있는 법.”
“예?”
“볼 수 있다면, 때릴 수 있겠지.”
그리고 그곳에 있다고 알고 있다면 볼 수도 있을 거다.
어느새 손을 멈춘 철백이 가만히 설천위를 바라보기 시작하자, 서하영도 손을 멈추고 설천위를 바라봤다.
혼이 보일지 안 보일지 모르겠지만…….
‘보, 볼 수 있다면 조금 덜 무서울지도?’
시도해 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 * *
“그래서 청소의 진행이 더디다?”
“미안하네.”
“아니, 미안할 건 없지. 오히려 잘했어.”
영력이란 건 거의 모든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개화시킬 수 있는 스탯이다.
그걸 철백과 서하영이라고 못 얻으리란 법 없지.
오히려 얻는 속도가 빠르면 빨랐지 느리진 않을 거다.
철백의 말에 생각지도 못한 점을 깨달은 설천위는 방법을 바꾸기 시작했다.
“어때? 보여?”
[놔, 놔라!]
“음, 안 보이네.”
“만지는 건?”
“으음……. 잘 모르겠군.”
“서 소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악령을 붙잡아서 보거나 만져 보는 것도 시도해 보고.
“어때? 때릴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허공에 손짓하는 느낌이네.”
“저는 내공을 담으면 묘한 저항감이 있긴 하네요.”
“벌써 내공을 담아? 주먹에도 못 담았으면서?”
“창이 제 손보다 편해요. 헤헤.”
역시 창절(槍絶).
재능의 격이 다르구나.
설천위가 붙잡은 악령을 공격해 보기까지.
여러 가지 시도를 하며 노력했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아쉽군. 싸움에 도움을 줄 수 없다니.”
“뭐, 됐어. 애초에 나 혼자 할 생각이었고.”
아쉬워하는 철백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 설천위는 눈앞에 있는 거대한 문을 바라봤다.
이 구교사에서 가장 큰 건물.
2층 높이의 건물인 이곳은 학생들이 모일 때 쓰는 장소.
즉, 강당의 역할을 하던 곳이다.
그리고.
[상당한 살기구나.]
살인마가 숨을 거둔 곳이기도 하다.
듣자 하니 살인마의 혼은 이곳에 박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유? 모른다.
게임에서도 안 나왔으니까.
그냥 보스 방이겠거니 하고 들어갔지.
뭐, 지금도 별다를 건 없지만.
큼지막한 문에 손을 댄 설천위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영역(靈域)이다!]
암영의적의 외침에 설천위가 움찔한 순간.
압도적인 살기가 세 사람을 덮쳤다.
아직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어이, 천위.”
“……어.”
“저거, 진짜 생전에 사람이었던 거 맞냐?”
중간쯤에 잘려 나간 검신.
그런 것들이 십수 개가 박힌 몸.
게다가 심장에는 하나의 검이 대못처럼 박혀 있다.
그 몸에서 피어오르는 붉은색의 아지랑이가 그 검신들 사이로 흐른다.
[오랜만에 보는 먹잇감이구나.]
살의와 충동만으로 가득 찬 붉은 눈동자가 세 사람을 응시했다.
살인마, 현태중.
생전의 별호는 사적귀검(斜跡鬼劍).
그 경지는 완숙한 화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