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24화 (24/624)

제24화

23화-혈사련 (4)

상황을 미처 이해할 틈도 없이, 유예린은 움직였다.

왜 혈주라는 말에 사내가 반응했고, 그걸 설천위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자신을 향하던 살기가 이젠 설천위를 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마치 들켜선 안 될 것을 들켰다는 듯, 맹목적인 살기가 설천위를 향해 날을 들이민다.

이 순간을 놓치면, 설천위가 죽는다.

죽지 않더라도 그에 준하는 중상을 입을 게 뻔한 상황.

어찌 망설일 수 있단 말인가.

늘어트리고 있던 팔을 양쪽으로 뻗는다.

[암은검(暗隱劍) 오의(奧義)]

소매에 숨겨져 있던 한 척(尺) 길이의 단검(短劍)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부드러운 소재로 이루어져 높은 탄성을 지닌 검이 한 번, 두 번, 세 번 튕기기 시작한다.

이윽고 그 흔들림이 하나의 파동이 되어 검 끝에 도달한 순간.

[암음(暗音)]

기를 실은 소리가 단숨에 사내를 난자했다.

“흥!”

하지만 상대도 초절정의 고수.

급소를 전부 지켜 낸 사내는 외날의 도를 치켜세웠다.

이런 큰 공격을 연속으로 할 수 있진 않겠지.

전신이 피투성이가 됐지만, 사내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땅을 박찼다.

이제야 겨우 반응해서 방어를 위해 팔을 앞으로 모으는 꼴이 우습구나.

네 목숨은 이제 내 것이다.

살기로 번뜩이는 사내가 설천위의 지척에 도달한 그 순간.

“제 소리는 검을 담아 낸 소리지요.”

“커헉!”

순간, 강렬한 격통과 함께 사내의 몸이 흔들린다.

등줄기가 싸늘해지는, 몸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통증이다.

“침투경의 일종인가!”

“검법에 침투경이 없을 거라는 건 편견이죠.”

어느새 자신의 지척까지 따라온 유예린의 목소리에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한 상대다.

이 목숨이 사라져도 아깝지 않을 만큼 훌륭한 상대.

하지만.

“그럼에도 이 녀석의 목숨은 가져가야겠다!”

치켜세웠던 도가 단숨에 땅으로 떨어진다.

그 안에 담긴 것은 사내가 평생을 연마한 일념(一念).

베어 내겠다.

오로지 그 하나의 의지만이 담긴 참격이 설천위를 향해 쇄도한다.

막을 수 없다.

사내도, 그 공격을 마주한 설천위도, 즉시 달려오던 철백도 그리 생각했다.

아니, 지금 이 상황을 보고 있는 모두가 그리 생각했다.

한 사람과 두 영혼을 빼고.

“망설인 순간, 이미 늦었어요.”

참격이 갈라진다.

반으로 나누어진 기는 그 중심을 잃고 허무하게 허공으로 흐트러진다.

예기를 잃었으나 힘은 남아 있는 참격이 설천위를 덮쳤지만, 그 정도 충격은 아무렇지도 않다.

[정말 훌륭한 은검(隱劍)이구나.]

천마의 감탄과 함께 설천위는 그제야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첫 공격은 단순히 틈을 만들기 위한 것일 뿐.

애초부터 그녀의 목적은 설천위를 지키는 것이었단 소리다.

그리고 그 목적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이루어 냈고.

이게 은검(隱劍).

어떤 꽃보다도 아름다운 외모도.

듣는 이의 심장을 떨리게 하는 달콤한 목소리도.

모두가 두려워하는 가문도 작아지게 만드는 힘.

아름다운 여인이 가질 수 있는 모든 미사여구를 별호에서 제외해 버리는, 진짜 힘.

“끝을 내도록 하죠.”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유예린이 천천히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물론, 이미 끝났지만요.”

“그런 것 같군.”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내.

빈틈을 보이고 집중이 흐트러진 순간, 패배는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훌륭한 검이었다.”

“칭찬, 고맙군요.”

부드러운 유예린의 미소와 함께 사내의 가슴에서 피가 솟구친다.

엄청난 출혈량.

내부의 주요 혈관을 확실하게 끊어 버린 것이 분명한 그 출혈은 결코 사람이 살 수 있는 수준의 출혈이 아니었다.

천천히 쓰러지는 사내에게서 몸을 돌린 유예린은 짐짓 화난 표정으로 설천위를 바라봤다.

“대체 어떤 수를 쓴 건진 모르겠지만, 위험한 선택이었어요.”

왜 위험을 자초하느냐.

질책이 담긴 그 시선에 설천위는 머쓱하게 웃었다.

딱히 할 말이 없었으니까.

그 모습에 유예린은 더욱더 표정을 굳히며 다그쳤다.

“저는 조금의 부상으로 끝나겠지만, 공자는 아니라는 거 알잖아요?”

똑똑한 사람이, 그것도 모르고 덤벼들었을 리는 없고.

대체 왜 그런 거야?

만약 충동적으로 한 거라면 진짜 따끔하게…….

“다치는 게 싫었으니까.”

“예?”

“네가 다치는 거 보기 싫었다고.”

[오오오오?]

무의식중에 나온 말.

그 말에 감탄하는 천마.

순간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은 설천위는 헛기침과 함께 돌아섰다.

“암튼 덕분에 산채 정리는 성공했어. 고마워.”

“아, 예…….”

“그럼 뒤처리 도와주러 갈게!”

“잠…….”

유예린이 붙잡기 전에 재빨리 탈출한 설천위는 포로들을 모으고 있는 철백에게 합류했다.

“네가 다치는 걸 보기 싫었다고~~.”

“뒈진다.”

“다치는 게 싫었으니까~~.”

“이 새끼가 진짜……!”

“크하하하하!”

놀리는 철백을 두드려 패는 설천위였지만, 철백은 웃으며 그 주먹을 받아들였다.

아프기는 더럽게 아팠지만, 얼마든지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바보.”

붉은 미소와 함께 유예린은 고개를 숙였다.

* * *

“으어어어어어어!!”

[왜 그러느냐? 좋은 말이었다.]

“좋긴 뭐가 좋아요! 오글거려 죽겠구먼!!”

[허, 이래서 낭만을 모르는 것들이란. 자고로 나 때는 말이다.]

“수백 년 전 이야기를 할 생각이라면 그만두시죠?”

[커흠,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구나.]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천마를 무시한 설천위는 한숨과 함께 바위에 앉았다.

산채 정리가 끝나고 모두 함께 객잔으로 돌아온 지금, 설천위는 몰래 빠져나왔다.

이유는 하나.

‘아까 그건 분명히 설천위의 행동이야.’

게임에서도 설천위는 유예린과 엮이면 몸을 날리길 주저하지 않는 캐릭터였다.

거기에 이번처럼 직설적인 화법은 덤이었고.

게임에서 텍스트로 볼 때나 그 오글거림을 참을 수 있었지, 현실로 해 버리면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심지어 본인이 한다?

아오!

‘……이게 아니지.’

너무나 큰 트라우마에 자꾸 생각이 딴 곳으로 빠지려는 것을 바로잡은 설천위는 다시 핵심에 집중했다.

설천위의 영향이 무의식적인 행동에 드러나고 있다.

아까 전 유예린의 너무나 뛰어난 실력에 얼이 빠진 나머지 헛소리가 튀어나온 것처럼.

……그럴 마음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다.

유예린이 다치면 전멸의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었으니까.

물론 이성적인 판단에 근거해 내린 결론이었다.

여하튼, 그래서 유예린은 다치면 안 된다고 생각해 나름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 거였는데…….

그게 설천위의 영향일 수도 있다는 소리다.

“아니, 나는 나다.”

[네가 너지, 그럼 뭐겠느냐?]

끼어들려는 천마의 말을 무시한 설천위는 아예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에 집중했다.

뭐가 됐든 무의식중에 설천위의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건 확실하다.

그렇다면 이번처럼 의식하지 못한 부분에서 그 영향이 나타나고 있을 수도 있다.

평소의 행동을 점검하고, 앞으로 방해가 될지도 모르는 부분은 의식적으로 배제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설천위가 집중하는 순간.

천마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고민을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참으로 쓰잘데기 없는 것을 고민하고 있는 것 같구나.

* * *

“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명상을 했던 설천위는 가볍게 한숨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명상하면서 되새겨 본 결과, 딱히 원래의 성격이 흔들린 부분은 없었다.

너무 과하게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는 거겠지.

그럼…… 이제 다음으로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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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 포인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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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 포인트.

얻기도 더럽게 힘들고, 사용하는데도 조건이 있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효과는 확실하다.

아마 [영각(靈覺)]에 투자하거나 하면 확실하게 전력을 높일 수 있겠지.

‘역시 이게 답이겠지?’

물론 [영각(靈覺)]에 투자할 생각은 없다.

그 스킬은 좋긴 하지만 액티브 스킬이다.

사용하면서 숙련도는 자연스럽게 오를 터.

스킬 포인트의 사용처는 이런 액티브 계열이 아니다.

패시브.

즉, 상시 적용되기 때문에 오히려 수련이 어려운 스킬에 투자하는 게 최고다.

그리고 그런 스킬이라면 당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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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지체(靈魂之體)(上中)(一星)

영혼과 일체화할 수 있는 재능을 품은 육체.

영혼을 통해 얻는 모든 경험치에 소폭 추가 보정이 더해집니다.

영혼을 이용한 모든 스킬의 효율이 소폭 상승합니다.

스킬의 단계에 따라 스킬의 효과가 증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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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다.

이걸 일성에서 이성으로 올리면 되겠지.

지금 가지고 있는 스킬들 중에서 성장 우선순위 1순위는 이거다.

이유는 당연히 성장에 도움을 주는 스킬이라서.

스킬 포인트 하나로 거의 모든 스킬에 다 영향을 줄 수 있으니 이것만큼 남는 장사가 없다.

빠르게 결정을 내린 설천위는 망설임 없이 스킬 포인트를 투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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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지체(靈魂之體)(上中)(二星)

영혼과 일체화할 수 있는 재능을 품은 육체.

영혼을 통해 얻는 모든 경험치에 추가 보정이 더해집니다.

영혼을 이용한 모든 스킬의 효율이 상승합니다.

스킬의 단계에 따라 스킬의 효과가 증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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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쉣.”

뭔데 벌써 소폭이라는 단어가 사라지냐.

나중에 십성(十星)쯤 가면 진짜 무슨 스킬이 되려고?

[음? 뭐냐?]

만족감에 설천위가 고개를 끄덕이자, 천마가 의아함을 품고 그를 바라봤다.

[또 뭔가 변했구나?]

“예?”

[흐음……. 혼과 육신의 연결이 더 강해졌구나.]

이 할배는 대체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안데.

천마의 날카로운 지적에 뜨끔한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이며 얼버무렸다.

“뭐, 나름 성장했나 보죠.”

[흐음…….]

좋아, 슬슬 해도 뜨고 있겠다. 객잔으로 돌아갈까.

의아함이 담긴 눈빛을 풀지 않는 천마를 뒤로한 채 설천위는 바로 객잔으로 향했다.

나중에, 나중에 설명하자고.

* * *

“자, 식사도 끝났으니 이야기를 할 때가 온 것 같군요.”

젓가락을 내려놓은 유예린은 부드럽게 웃으며 설천위를 바라봤다.

철백과 서하영도 마찬가지.

늦은 밤까지 전투를 하고 나서도 아침에 일어나 이렇게 모두 모이다니.

참 성실한 친구들이야.

잠시 또 딴생각을 하던 설천위는 해명하지 않으면 절대 보내지 않을 거라는 세 사람의 눈빛에 한숨을 내쉬었다.

뭐, 일단 변명거리는 준비해 놨지.

“알았어, 말해 줄게. 거, 눈빛에 뚫리겠네.”

“솔직하게 말해야 할 걸세, 천위.”

철백의 으름장에 어깨를 으쓱인 설천위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마침 잘됐다.

아군들에게는 어느 정도 공개를 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내가 갑자기 좀 변했다는 건 알지?”

“아아, 알고 있다.”

“내가 몇 달 전 비무 중에 거하게 박치기한 것도 알고?”

“물론. 그때도 꽤나 재미있다고 생각했었지.”

뭐, 그렇긴 하지.

철백의 솔직한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담담하게 본론을 꺼냈다.

이참에 공개하려고 준비하고 있던 변명.

“나 그때부터 영혼이 보이거든.”

“……어?”

“덕분에 엄청나게 강한 영혼이 곁에 붙어서 지도해 주고 있어.”

“예?”

못 믿겠다는 노골적인 눈빛.

서하영과 철백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질 때 유예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래서 그런 움직임이 가능했던 거군요.”

이제야 의문이 풀린다.

아무리 설천위라도 몇 번의 비무에서 아무런 조력자도 없이 그런 움직임이 가능할 리가 없거늘.

교관들이 풀지 못한 비밀 하나를 알게 된 유예린이 작게 웃자, 이번엔 설천위가 미간을 찡그렸다.

“의심 안 해?”

혼이 보인다고 하면 의심부터 해야지.

보통 약팔이 아니면 사기꾼이라고.

묘하게 걱정이 담긴 그 시선에 유예린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해요. 설 공자가 말하는 건. 의심 같은 거 안 해요.”

그 솔직한 대답에 설천위가 미묘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고, 유예린은 웃으며 손뼉을 쳤다.

“그럼 돌아갈 준비를 할까요? 다음 학기에는 재미있는 일이 많을 것 같군요.”

아마, 여기에 있는 이 세 사람으로 인해 새로운 폭풍이 몰아칠 거다.

유예린이 미래를 상상하며 웃는 그 순간, 철백은 미간을 찡그렸다.

“아니, 그래서 어떻게 알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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