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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19화 (19/624)

제19화

18화-하계 과제 (4)

“아오! 뒈지겠다!”

낭떠러지의 중간.

주택진과 싸우다가 철백이 떨어졌던 곳과 한참 떨어진 곳에 떨어진 설천위는 까마득한 바닥을 보고 몸을 떨었다.

여기 그냥 떨어졌으면 무조건 죽었겠네.

[허허, 아주 훌륭한 능력이구나.]

“회복 중이어도 통증은 그대로지만요.”

가슴에 박혔던 검을 뽑아서 절벽에 꽂아 겨우 추락을 멈춘 설천위는 어깨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통증에 숨을 삼켰다.

그래도 그 자식이 검을 꽂아 줬으니 다행이지.

이거 아니었으면 감히 뛰어내릴 생각도 못 했을 거다.

그나저나 내공이 슬슬 한계네.

어차피 안 통하니 아껴 둔 덕에 이렇게 버티곤 있지만.

그럼 일단…….

[저쯤에 떨어지면 되겠구나.]

“될까요?”

[아마 될 게다. 내 힘으로 네 출혈을 막고 있는 것도 슬슬 한계이니 선택지가 없구나.]

“에효.”

불굴이랑 회복 아니었으면 어떻게 버텼겠냐. 지금도 힘든데.

천마의 지시에 바로 뛰어내린 거긴 하지만, 그래도 살이 떨리는 건 여전했다.

작게 한숨을 내쉰 설천위는 살짝 몸을 흔들어 단숨에 검에서 손을 떼고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겨우 사람 하나 정도 앉아 있을 수 있는 바위 턱에 안착.

그 순간, 시원한 바람이 설천위의 등을 간지럽힌다.

“……동굴?”

바위 턱 안쪽, 무협의 냄새가 가득한 동굴이 설천위를 반겼다.

* * *

[이건 인공적으로 만든 동굴이구나.]

“이게요?”

[섬세하게 위장하긴 했지만, 사람의 손길이 닿아 있구나.]

천마의 보증에 설천위는 다시금 유심히 동굴의 벽을 살폈다.

어두워서 잘 안 보이긴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인공적으로 파낸 것 같진 않은데.

뭐, 천마 할배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어깨를 으쓱인 설천위는 천천히 동굴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뱀 같은 건 없죠? 독 가진 애들.”

[음, 없는 것 같구나. 이런 절벽에 인위적으로 만든 동굴이니 아마 미물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음음.

조금 안심이 되는구먼.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조금 더 대담하게 걸음을 옮겨 동굴 안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저건, 말로만 듣던?”

[야광주구나.]

“오오!”

비싼 놈이잖아!

게임 후반부에나 마련할 수 있는 필수 아이템 중 하나를 여기서!

어두운 곳에 갈 때 매번 횃불을 들고 갈 순 없으니 그때 필요한 게 이 야광주다.

그리 높지 않은 천장.

조금만 점프하면 닿을 것 같은데?

곧장 야광주 밑으로 달려간 설천위가 뜀박질을 하려는 그 순간.

[이 고얀 놈!]

“으헉?!”

[으헉?!]

갑작스러운 귀신의 등장에 놀란 설천위.

그 놀란 설천위의 모습에 놀란 귀신.

두 존재의 짧은 경악성과 함께 귀신의 눈이 점점 더 커졌다.

[네놈! 내가 보이는 것이냐!]

“아, 안 보이는데요?”

[헛소리 마라!!]

“으헉!”

당황한 나머지 멍청하게 대답한 설천위의 머리 위로 남성의 주먹이 스쳐 지나간다.

[호오? 남벽권(擥霹拳)?]

그 범상치 않은 속도에 천마가 감탄하자, 중년 남성의 표정이 밝아졌다.

[남벽권을 아시오?]

[손 빠르기로 무림에서 손꼽히는 무공이란 것 정도는 알지.]

천마의 대답에 남성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그리고 그런 남성을 가만히 바라보던 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삼십 년 전쯤에 실종됐다던 암영의적(暗影義賊)이로군.]

[나를 아시오?]

[혼으로 떠다닌 세월이 길어 웬만한 일은 대체로 알고 있다네.]

[허, 이 권 모가 무림의 선배를 뵙습니다.]

아주 서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하고 있구먼.

뒷짐을 진 천마와 포권으로 인사하는 암영의적을 바라보던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혼들은 원래 이러고 노나?

아니,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이놈! 어른들이 이야기하는데, 또 도둑질이더냐!]

“아니, 이게 왜 도둑질이에요? 딱 봐도 주인 없이 버려진 물건이구만.”

[어떤 주인 없이 버려진 물건이 천장에 박혀 있다더냐?]

음, 그 말은 일리가 있군.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주위를 둘러봤다.

시체 하나, 비급 하나, 상자…… 하나?

“영약이다!”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이?!]

망설임 없이 상자에 달려드는 설천위의 모습에 암영의적이 뒷목을 잡았다.

저런 놈이 유일한 희망이라니.

아니, 아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저런 놈이라도 자신을 보고 자신의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쪽에서 직접 가르치면 될 일 아닌가.

암영의적이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는 사이, 비급과 상자를 집어 든 설천위는 두 물건을 유심히 살폈다.

하나는 보법이 적힌 비급서고, 하나는…… 음.

“이거 좋은 거예요?”

모를 땐 물어보는 게 최고지.

눈을 반짝이며 물어보는 설천위의 모습에 암영의적이 어이없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좋은 거? 좋다마다! 무려 선명초(宣命草)다!]

선명초?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은…….

“에?!”

선명초?!

그게 왜 여기에 있어?

선명초는 육도 내에서 등장하는 약초의 이름이다.

한자를 잘 모를 때는 대체 뭘 선명하게 해 주는 건가 궁금하게 여겼던 이름의 약초.

그 효과는 이름의 뜻대로 목숨을 베풀어 주는 약초답게 엄청난 양의 생명력을 회복시켜 준다.

수십 가지의 재료를 모으고 조합해 만드는 영약의 뺨을 갈길 수 있을 정도의 회복량.

거기에 영약답게 생명력을 다 채우면 초과분만큼 내공을 회복시켜 주는 효과까지 있었다.

그 말도 안 되는 회복량에 유저들이 엘릭서라고 부르던 약초인데…….

“씁, 이거 먹어도 돼요?”

[안 된다……고 하고 싶지만, 선택지가 없는 것 같구나.]

설천위의 상태를 확인한 암영의적은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옷이 피와 함께 굳어 가고 있는 상태.

게다가 가슴에선 계속해서 피가 스며 나오고 있다.

지금 저 밝은 상태가 회광반조가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의 상태.

그런 암영의적의 예상대로 설천위는 슬슬 위험해지고 있는 상태였다.

회복 덕에 내장에 입은 상처의 급한 불은 껐지만, 심각한 수준의 외상은 여전했다.

거기에 이젠 내공마저 바닥을 드러내고 있어 회복의 사용조차 힘든 상태.

정말 잘못하면 과다 출혈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렇기에 암영의적이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설천위는 망설임 없이 상자를 열어 안에 있는 풀을 입에 넣었다.

[단, 먹으면…… 이놈이?!]

조건을 말하기도 전에 풀을 입에 넣고 삼켜 버리는 모습에 암영의적이 눈을 부라렸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즉시 가부좌를 틀고 앉은 설천위가 운공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이런 막 나가는 놈을 봤나…….]

[허허, 이미 늦었네.]

부들거리는 암영의적의 어깨를 두드린 천마는 설천위의 등에 손을 올렸다.

이쪽이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미약하지만, 안 해 주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그나저나 역시 선명초군. 확실히 빨라.]

어느새 외상은 전부 아물어 버린 설천위의 모습에 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황제조차 3개 이상 들고 있기 힘들다는 선명초답다.

뭐, 감탄은 여기까지 하고.

‘역시 정신력 하나는 좋구나.’

몸 안에서 엄청난 양의 내공이 휘몰아치고 있는데 그걸 용케도 제어하고 있는 설천위의 모습에 천마는 웃으며 그의 운기를 도왔다.

그의 영력이 휘몰아치는 내공을 천천히 진정시킨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내공의 흐름이 부드러워지도록 유도한다.

그런 천마의 도움 덕분일까.

설천위의 안색은 빠르게 정상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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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원패공(魂元覇功)이 성장합니다!

내공 스탯이 성장합니다!

영력 스탯이 성장합니다!

정신력 스탯이 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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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설천위

나이: 16세

레벨: 1

근력 下中

체력 下中

순발력 下中

지력 中下

정신력 中中

내공 下上

영력 下上

패기 下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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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에 상태창을 연 설천위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에 성장했던 신체 스탯에 다른 분야의 스탯도 오른 상태.

강해졌다는 체감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스탯창이다.

“끗차!”

[생각보다 빠르구나.]

“얼마나 걸렸어요?”

[한 시진 정도다.]

전부 다 흡수하는 데 한 시진?

생각보다 빨랐네.

천마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단전을 쓰다듬었다.

무려 하상(下上)이다.

설천위의 재능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기적의 성장.

물론 앞으로 영약을 통한 성장은 더뎌지겠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최소 상급에 진입하기 전까진 영약으로 꽤나 성장할 수 있다.

그나저나 몸 상태가 정말 안 좋긴 했나 보다.

선명초를 먹고도 고작 한 단계밖에 올리지 못했으니.

[충분한 성장이다. 목숨을 구한 것에 감사하거라.]

“옙.”

그런 마음을 읽은 천마의 질책에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과욕이 사람을 망치지.

그나저나.

“할 얘기가 있는 표정인데요?”

[암, 있는 정도가 아니라 많으니라.]

“그럼, 한번 길게 이야기해 보시죠!”

몸은 멀쩡해졌으니 시간적 여유는 충분하니까.

그나저나 이쯤 되면 경험치가 들어올 때가 됐는데.

유예린과 마주치자마자 도망치려 했던 그 인간의 상태를 봐선 유예린이 이길 거란 건 확실하다.

애초에 게임에서 나왔던 유예린의 스펙을 생각하면 고작 그 정도 떠돌이에게 질 실력도 아니고.

천마도 그렇게 말했으니 승리는 확실한데…….

꽤나 시간이 지났는데도 왜 경험치를 얻었다는 알림이 안 뜨지?

[이놈, 듣고 있는 것이냐?]

“예? 음, 안 듣고 있었어요.”

[이, 이놈이?!]

걱정인가, 의문인가.

까슬까슬하게 걸리는 생각을 접은 설천위는 다시 암영의적의 말에 집중했다.

뭐, 이 얘기가 끝난 뒤에 나가 보면 알겠지.

* * *

“아가씨.”

“무슨 일이죠?”

“서 소저가 찾습니다.”

부하의 보고에 살짝 미간을 찡그린 유예린은 들고 있던 비수를 내려놨다.

“역시 제 실력은 서투네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내일 전문가를 불러 계속하세요.”

“알겠습니다.”

“잠, 잠깐! 안!”

등 뒤에서 들려오는 외침을 무시한 유예린은 그대로 방을 나갔다.

“어리석은 놈.”

유예린이 나간 방.

홀로 남은 남자를 바라보던 부하는 고개를 저었다.

아가씨를 화나게 하다니.

스스로 지옥에 몸을 던진 거나 다름없다.

가볍게 혀를 찬 부하가 밖으로 나가자, 흥분한 서하영과 유예린이 마주 보고 있었다.

“찾았어요!”

“철 소협 말인가요?”

“예! 유 소저가 알려 주신 정보 덕이에요!”

“다행이네요.”

철백이라도 찾았다니 정말 다행이다.

설천위가 밀어 버렸다는 주택진의 말은 믿기 힘들지만, 그래도 설천위의 친우 아닌가.

그라도 살아야…….

“천위! 천위는 어디에 있나!”

“자, 잠깐만요!”

순간 들이닥친 철백의 모습에 당황한 서하영이 말리려 했지만, 철백은 막무가내로 걸어 유예린의 앞에 섰다.

‘음?’

그 모습에 유예린은 살짝 의아한 표정으로 철백을 바라봤다.

조금 전 서하영은 얼핏 내공을 끌어올린 것 같았는데, 이 남자가 어떻게 그냥 걸어온 거지?

분명 내공이 없을 텐데?

묘한 철백의 변화에 유예린이 미간을 찡그린 순간, 철백의 눈이 유예린을 응시했다.

“천위가 어디에 있는지 아나?”

“……왜 그를 찾나요?”

설마 원망?

유예린의 눈빛이 스산하게 빛나려는 그 순간, 철백은 주먹을 움켜쥐고 그녀를 바라봤다.

“내 은인이 된 친구인데, 당연히 보고 싶지.”

“……은인이요?”

“나를 살려 주기 위해 목숨을 던진 친구일세.”

진심이 담긴 눈동자.

그 눈동자에 유예린은 가슴이 차갑게 일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없어요.”

“없다고?”

“당신과 떨어진 뒤 혼자 싸우다가 마지막에 검에 가슴을 찔린 채로 절벽으로…….”

거기까지 말하고 말을 멈춘 유예린의 모습에 철백은 미간을 찡그렸다.

절벽으로?

설마?

“혹시 스스로 뛰어내렸나?”

“예?”

“절벽으로 스스로 뛰어내렸냐고 물었네. 유 소저.”

스스로 뛰어내렸다.

그 의문에 유예린은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고 보니, 그러긴 했다.

아마 인질이 되지 않기 위해서였겠지만…….

“그런데요?”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미 늦었거늘.

허무함으로 가득 찬 유예린의 눈동자에 철백은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렇다면 서둘러야겠군.”

“예?”

“내가 아는 한, 그 친구는 그냥 막 뛰어내릴 위인이 아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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