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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18화 (18/624)

제18화

17화-하계 과제 (3)

살기가 덮친 순간, 설천위는 이미 반응하고 있었다.

이유는 하나, [영각(靈覺)]이 아직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이고.

[피해라!]

천마의 경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왜 피하라고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천마가 피하라고 했으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철백의 뒷덜미를 잡아챈 설천위는 망설임 없이 땅을 박찼다.

“호오?”

살기에 위축될 법도 한데,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도망친다.

거기에다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한 대응 속도.

그 모습에 남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동물적인 감각을 지닌 녀석이라면 이류 수준인 그 머저리 도련님이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지.

게다가 이 날랜 움직임.

최소 이류 끝자락이다.

인간의 한계라는 일류에 다가간 속도.

하지만 거기까지다.

단숨에 설천위를 따라잡은 남성은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목표는 팔.

“크아악!”

“이걸 버텨?”

설천위의 팔을 노리고 휘둘렀던 검이 두꺼운 팔뚝에 막히자 남성은 놀란 표정으로 철백을 바라봤다.

아니, 아무리 검기를 두르지 않았다고 해도 이걸 버틴다고?

대체 얼마나 뼈와 근육이 단단한 거냐.

철백에 대한 사전 정보를 알고 있던 남성이 놀라는 사이, 설천위는 다시금 땅을 박찼다.

이길 수 없다.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천마가 그리 알려 줬으니까.

절정(絶頂).

인간의 껍질을 반쯤 벗은 괴물들.

인간이란 종이 가진 한계의 정점에 도달한 괴물들.

“끈질기구나.”

“빌어먹을!”

최대로 올린 속도조차 우습게 따라잡는다.

어느새 다시 앞에 서 있는 남자의 모습에 설천위는 주먹을 휘둘렀다.

“어허.”

무의미한 발악.

남성은 마치 벌레를 쫓는 듯한 가벼운 손짓으로 그 주먹을 쳐 냈다.

동시에 남성의 검이 설천위의 어깨를 꿰뚫는다.

“이놈!!”

이를 악문 철백이 남성의 팔을 향해 달려들었다.

“느리구나.”

빡!

경쾌한 소리와 함께 남성의 팔꿈치에 맞은 철백의 코가 부러진다.

동시에 그 여파에 철백의 고개도 뒤로 꺾였지만…….

“끄아아압!”

기어코 남성의 팔을 붙잡은 철백의 두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독기(毒氣).

좋은 말로는 근성이라고도 한다.

그 안에 담긴 것을 읽어 낸 남성은 인상을 찡그리며 검을 놓았다.

이런 녀석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지 않으면 절대 놓지 않는다.

그러니 일단…….

검을 놓은 남성이 철백의 팔을 붙잡으려는 순간.

“뒈져어어!!”

이를 악문 설천위의 주먹이 남성의 안면을 노리고 파고든다.

그 발악에 남성은 웃으며 고개를 틀었다.

가볍게 피하는 주먹.

“좋구나.”

포기한 녀석보다는 끈질긴 녀석이 괴롭힐 맛이 있지.

입꼬리를 비튼 남성은 내공을 끌어올렸다.

철백의 반도 안 되는 굵기의 팔이 가볍게 철백을 들어 올린다.

인간의 근력을 뛰어넘게 하는, 내공의 힘.

이런 비효율적인 방법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나쁘지 않다.

짓밟는 거다.

입꼬리를 비튼 남성은 독기로 가득 찬 눈빛을 보며 웃었다.

이번 일은 상당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낼 수 있을 것 같군.

* * *

[죽을 게다.]

“하악하악, 어쩔 수, 없잖아요.”

도박.

느긋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를 보며 설천위는 이를 악물었다.

자신이 끌고 가던 철백이 아닌, 굳이 자신을 노렸다.

명백하게 목표는 자신이다.

그런데, 살기에 비해 노리는 부위는 하나같이 급소가 아닌 팔이나 어깨.

즉시 죽일 생각이 없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길은 있다.

발악.

정말 죽을 때까지 발악하면서 시간을 버는 거다.

천마의 말로는 이 남자의 수준은 절정.

그렇다면, 버틸 수만 있다면 할 수 있다.

유예린.

그녀가 있으니까.

어떻게든 소란을 피우면서 버텨서 그녀가 도착하기만 하면.

그런 생각으로 버텼다.

“후욱, 후욱.”

“하하! 벌써 지친 것이냐?”

대체 몇 분이나 싸운 걸까.

일방적인 싸움이었다.

이쪽의 공격은 하나같이 전부 막히는데, 적의 공격은 하나도 막을 수가 없었다.

베이고, 맞고.

그 단단한 철백조차 곳곳이 부어올라 이미 본래의 형체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반면 검 위주로 당한 설천위는 곳곳에 살이 베이고 터져, 이젠 쓰라리다는 감각조차 사라졌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이 동맥은 전부 피했는지 출혈은 당장 생명에 위협을 줄 정도는 아니다.

“제대로 버티지도 못하고 이리 밀리니, 벌써 뒤가 없는 곳까지 왔구나.”

비릿한 웃음을 품은 남자의 말에 설천위는 그제야 주위를 둘러봤다.

전투에 집중하느라 주위를 아예 못 보고 있었는데…….

“하, 여긴가.”

“음? 알고 있는 곳이냐?”

“조금, 알고 있는 곳이지.”

피식 웃은 설천위는 고개를 돌려 벼랑 아래를 바라봤다.

깊은 골짜기 속 희미하게 반짝이는 무언가.

위치조차 정확하네.

이런 말도 안 되는 우연이 있나.

허탈하게 웃은 설천위는 옆에 서 있는 철백을 바라봤다.

이젠 눈을 제대로 뜨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모습.

아마 내가 부르지 않았다면 이런 상황에 빠졌을 리도 없겠지.

은혜에는 은혜로.

원한에는 원한으로.

의리에는 의리로다.

“정신줄 꽉 붙잡고 반짝이는 풀을 찾으면, 그대로 입에 쑤셔 넣어라.”

“어?”

짧은 말과 함께 설천위는 철백을 밀어 버렸다.

벼랑 아래로 철백을 밀어 버린 설천위를 보며 남자는 미간을 찡그렸다.

“뭐 하는 짓이냐?”

이해하기 힘든 그 행동에 남자가 묻자, 설천위는 웃으며 중지를 치켜세웠다.

“안 알려 줘, 개X끼야.”

* * *

유예린은 기뻤다.

‘돌아왔어. 자력으로.’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남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연인이 돌아왔다.

심장이 두근두근 뛴다.

떨어졌던 심장의 반쪽을 다시 찾은 느낌.

“저…….”

“음, 뭔가요?”

“설 공자가 왜 좋으신 건가요?”

“……예?”

아니, 우리 초면인데?

갑작스러운 서하영의 질문에 유예린이 되묻자, 서하영이 어색하게 웃었다.

“아! 실례가 됐다면 죄송해요. 근데 진짜로 궁금해서요.”

그런 유예린의 반응에 서하영은 팔짱을 끼곤 고개를 갸웃했다.

“설 공자는 뭔가 끈질긴 구석이 있긴 해도, 그렇게 매력적인지 잘 모르겠거든요.”

얼굴은 잘생겼지만.

뒷말을 삼킨 서하영은 가만히 유예린을 바라봤다.

초승달처럼 휜, 장난기가 담겨 있는 미소.

“그렇다면 비밀이네요. 경쟁자를 늘리긴 싫으니까요. 아, 딱히 경계할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요.”

장난스럽게 웃는 그 미소에 서하영은 한 남자를 떠올리고 단숨에 얼굴을 붉혔다.

“아, 아닌데요?”

“아직 별말 안 했는데요?”

“우으.”

“후후, 서 소저는 귀엽네요~.”

“아우.”

부끄럽다는 듯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서하영.

그녀는 이 이상 이 화제가 이어지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유 소저도 소문과는 상당히 다르네요.”

“소문이요?”

“예, 듣기로는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라고…….”

차분한 걸 넘어 차갑다는 평가지만.

최대한 순화해서 표현한 서하영은 유예린을 바라봤다.

어제 객잔에서 만났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장난기도 꽤 있고, 사람 자체도 상당히 부드러운 것 같은데…….

서하영의 의문에 그 뜻을 알아챈 유예린은 조금 쓰게 웃었다.

“그건…….”

서하영의 의문에 답을 하려는 그 순간.

비릿한 냄새에 유예린은 말을 멈췄다.

혈향.

그것도 상당히 진하다.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유예린은 단숨에 땅을 박찼다.

“에?!”

서하영이 어느새 멀어진 유예린을 간신히 인식할 정도의 속도.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유예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천위와 철백이 싸워서 이겼다면, 이 정도 혈향이 날 리가 없다.

그 둘의 무술은 권각술.

출혈이 적은 형태로 적을 제압하는 무공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천위!! 어디에 있나요?”

유예린은 내공을 실어 설천위를 불렀다.

이유는 두 가지.

설천위가 대답해 주면 위치를 더 빨리 파악할 수 있으니까.

두 번째는 적이 이 목소리를 듣고 도망치게 하기 위함이다.

그렇기에 목소리에 위협적으로 내공과 기세를 실었다.

숲에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

계속해서 천위를 부르며 달리던 유예린은 순간 걸음을 멈췄다.

“쯧, 빠르군.”

가볍게 혀를 차는 남자.

가슴에 검이 박힌 설천위.

멍하니 남자를 바라보던 유예린은 단숨에 그의 정체를 파악했다.

학검(虐劍) 주택진.

청부 살인을 업으로 삼는 낭인.

그 수준은 절정의 끝자락.

그의 정보를 떠올린 순간, 유예린은 아찔한 감각에 이를 악물었다.

자신이 기쁨에 헤실헤실하는 동안, 설천위는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학검(虐劍).

가혹하고 잔인하게 상대를 사냥한다고 해서 붙여진 별호.

그런 학검과 대체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싸운 걸까?

아니, 얼마나 긴 시간 동안 농락당한 걸까?

“어이쿠.”

주변을 잠식하는 소름 끼치는 살기에 주택진은 설천위의 가슴에 박아 넣었던 검을 놓았다.

아무래도 마무리까진 못 하겠네.

애용하던 검이지만, 목숨값보단 싸지.

그리고 그 순간, 주택진이 설천위와 눈이 마주쳤다.

입꼬리를 비틀며 중지를 치켜세운 설천위는 그대로 절벽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놈이?!”

“안 돼!”

그 돌발 행동에 주택진과 유예린 둘 다 놀라 소리쳤다.

물론 놀란 이유는 각자 다르지만.

‘이런 망할 놈이!’

허나, 상황이 누구에게 불리해졌는지는 명확하다.

이를 악문 주택진은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려 달렸다.

굳이 검을 뽑지 않은 이유는 설천위를 살릴 희망을 남겨 두기 위해서다.

검을 뽑지 않은 상태에서 즉시 조치를 취하면 살 수도 있을 테니까.

임무는 실패하게 되겠지만, 자신이 죽는 것보단 낫다.

그런데 이 빌어먹을 애송이가 그 길을 막아 버렸다.

독기(毒氣).

어린놈이 아주 고약하다.

망설임 없이 살길을 버리고 복수를 택하다니.

이를 악문 주택진이 설천위의 행동에 혀를 내두르는 그 순간.

“X벌…….”

앞을 가로막은 살기에 주택진의 발이 멈췄다.

“…….”

그저 말없이 흐느끼는 유예린.

눈에서 타고 흐르는 눈물이 앞섶을 적셨지만, 유예린은 그저 검을 든 채 주택진을 바라봤다.

애처로우면서도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모습이지만…….

그 모습이 어찌 이리도 무섭단 말인가.

“살아 있는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나지막한 경고에 주택진이 망설임 없이 몸을 꺾는 순간.

그의 팔이 잘려 허공으로 떠올랐다.

* * *

“또 여기에 있어?”

어린 시절, 외로움에 슬퍼져 숨으면 언제나 찾아 주던 아이가 있었다.

항상 웃으며 자신의 손을 잡아 줬던 아이.

가문의 경쟁에 휘말려 마음 둘 곳 없는 자신과 함께해 주었던 아이.

둘 다 외톨이였기에 같이 들판에서 꽃을 꺾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추억이 됐다.

함께한 모든 순간이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허나, 자신은 재능이 있었기에 외톨이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고, 그 아이는 재능이 없기에 외톨이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엔 자신이 손을 내밀어 주기로 했다.

내가, 너의 추억이 되어 줄게.

자신만만한 그 손길에 아이는 대답했다.

“유 소저, 미안해요. 나는…… 짐밖에 안 될 거예요.”

호칭이 바뀌고, 말투가 존대로 바뀌었다.

그 다정한 아이는 자신에게 짐이 되는 것을 두려워해 자신을 떠났다.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온 세상이 회색이 되어 버릴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그는 살아 있었고 그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그와의 미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여전히 다채로운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제발! 제바아아알!!”

분노와 살기로 가득 찬 목소리에 처량한 애원은 너무도 쉽사리 짓밟혔다.

의자와 바닥에 흐르는 피.

도저히 눈을 뜨고 보기 힘든, 붉은색의 향연.

허나, 보이지 않는다.

들리지 않는다.

세상은 이제 완전한 회색으로 물들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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