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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11화 (11/624)

제11화

10화-실전 시험 (4)

일류.

어떤 직업이든 일류라는 단어가 붙으면 그 의미가 남달라진다.

일류 주방장, 일류 격투가, 일류 변호사 등등.

그건 일류라는 단어의 의미 때문이다.

어떤 방면에서 첫째라는 그 의미는 언제나 특별하다.

물론, 그것조차 뛰어넘은 이를 절정(絶頂)이라 부른다.

그야말로 발전의 최고봉에 이르렀다는 의미.

그리고 그 발전조차 뛰어넘은 이들을 초절정이라 부르고, 그것조차 뛰어넘은 이들을 화경(化境)이라 부른다.

즉, 절정 이상부터는 반쯤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자들이란 소리다.

하지만, 그 위로 수많은 단계가 있는 무인이라고 해도 일류라는 의미는 확실히 특별하다.

왜냐하면, 일류는 인간의 영역 내에서 최고라 불리는 수준이니까.

거듭되는 무(武)의 발전으로 일류라는 단계가 중간쯤에 위치하게 됐지만, 그렇다고 그 강함이 퇴색된 것은 아니다.

인간의 한계에 다가간 이들.

눈앞에 나타난 거한은 그러한 한계에 다가간 자다.

“단숨에 베어 주마! 산적 놈!!”

그리고 그런 거한을 향해 달려드는 배천문.

그 또한 이류라는, 범인(凡人)을 기준으로 보면 상당한 수준의 강자이지만…….

“뭐라는 거냐, 애X끼가.”

거기까지다.

가볍게 배천문의 검을 막아 낸 거한은 손목을 튕겨 그의 검을 튕겨 냈다.

단숨에 열린 가슴.

그 사이로 파고드는 거한의 도(刀).

배천문이 자신의 죽음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사지(死地)로 처박히려는 그 순간.

“끄아압!”

철백이 아슬아슬하게 그 앞을 막아섰다.

양손으로 도의 옆면을 붙잡고 옆구리에 끼어 도를 멈춘 철백.

“호오?”

그 모습에 거한은 흥미롭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귀찮아서 도를 비틀지 않았다곤 해도 이런 녀석이 자신의 도를 붙잡을 줄이야.

내공도 두르지 않은 맨손, 오로지 힘만으로 자신의 도를 멈추다니.

“뒈져!!”

거기에다 이런 기습까지.

“역시 무림학관인가. 생각보다 물이 좋군.”

달려드는 설천위의 주먹을 가볍게 잡아챈 거한은 망설임 없이 그를 내던졌다.

“하지만 결국 애X끼들은 애X끼들이지.”

“커헉!”

거한의 발길질에 도를 잡고 있던 철백의 몸이 뒤로 밀린다.

고작 밀리는 것으로 끝났다는 점에서 오히려 거한이 놀랐지만.

여하튼, 결과적으로 거한은 아무런 시간의 낭비 없이 자유를 되찾았다.

그 모습에 겨우 몸을 일으킨 설천위는 이를 악물었다.

[역시 낙법부터 가르쳤어야 했나?]

천마가 지금까지의 교육 방법에 대해 다시 고찰하게 만들 정도로 큰 충격을 받은 설천위는 억지로 마른침을 삼켰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속이 뒤집힐 것 같았으니까.

거친 숨과 함께 이를 악문 설천위는 주먹을 들어 올렸다.

뭐가 됐든,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아니, 승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보아하니 제대로 된 훈련을 받은 녀석이다. 도망치는 건 무리겠군.]

최소한 전투에서 천마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그렇기에.

[집중해라. 네가 대련을 이겼던 그날도 집중했기에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집중하면 된다.

이길 수 있다.

고금제일인(古今第一人)이라 자신하는 천마가 그리 보증하고 있으니.

설천위의 집중력이 극한까지 조여든다.

그 모습에 입꼬리를 올린 천마는 설천위의 뒤에 서서 거한을 바라봤다.

일류라는 거대한 벽은, 조금 시점을 달리하면 이렇게 보인다.

[고작해야 일류다. 인간의 범주 안에서 강한 녀석이란 소리지.]

초인(超人)이라 불리는 영역에 들어가지 못한 실패자.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산적 정도를 처리하는 데 2주면 충분하다고.]

고작 2주.

살을 빼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지만 천마는 가능했다.

고작해야 삼류 수준인 설천위를 극한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일류건 이류건 산적은 산적.

천마는 약속은 잘 지키는 사람이다.

[뛰어라. 길은 내가 알려 줄 터이니.]

너는 그저 한결같이 빨라지는 것에만 집중하거라.

* * *

이를 악문 철백은 몸을 비틀었다.

몰아치는 도격(刀擊).

하나하나가 급소보단 움직임을 막는 데 집중하고 있다.

허나 그렇다고 급소를 방어하지 않을 순 없다.

결국, 몸에 늘어가는 건 상처뿐.

단련한 근육 덕에 뼈까지 베이진 않았지만, 옷은 이미 피로 흥건해져 있었다.

“하악, 하악.”

거칠어진 숨.

피를 상당히 많이 흘린 탓이다.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일각(一刻 : 약 15분)? 아니, 반각은 버틸 수 있을까?

아니.

못 버틴다.

이를 악문 철백은 눈을 흘겨 주위를 살폈다.

멍청한 배천문 놈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끝까지 쓸모없는 놈일세.

그리고.

“……저리 가요!!”

‘저쪽도 상당히 위험하군.’

이를 악물고 주먹을 휘두르고 있는 서하영이 보인다.

그나마 부상이 없던 임(壬) 단계의 학생과 함께 겨우겨우 버티고 있다.

문제는 실력이 너무 처참해서 산적들에게 계속 포위당하고 있다는 점이려나.

조금 전에 튕겨 나갔던 설천위는 정신을 잃었는지 아직도 안 돌아오고 있다.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

‘최소한, 서 낭자라도…….’

자신들은 죽으면 끝이지만, 여자인 서하영은 죽는 거로 끝나지 않는다.

최소한 서하영만이라도 탈출시켜야 무인의 자존심이 선다.

학관에선 자신을 무인이라 인정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도 무인의 도리를 저버릴 필요는 없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

이를 악문 철백은 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도에 집중했다.

한 끗.

아주 작은 틈만 있어도 빠져나갈 수 있다.

금세 붙잡히겠지만 서하영이 다른 한 명과 함께 탈출할 수 있는 틈 정도는 만들 수 있을 터.

어떻게 해서든…….

철백이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며 집중하는 그 순간.

철백의 눈에 여태껏 본 적 없던, 날카로운 얼굴이 잡혔다.

씨익.

“그렇게 나와야지!”

“놈!”

자신의 등 뒤를 급습한 설천위를 막기 위해 거한이 도를 빼자, 철백은 망설임 없이 물러났다.

이쪽은 이미 만신창이다.

회피하던 것마저 기적인 상황.

지금 해야 하는 건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변을 정리해 주는 거다.

철백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기 위해 움직였고, 설천위는 홀로 거한과 마주했다.

“어린놈이 죽고 싶어 아주 환장을 했구나.”

구태여 인기척을 낸 공격.

명백하게 자신이 몰아붙이던 녀석을 탈출시키기 위한 공격이었다.

정파는 정파란 건가.

아무리 정파가 썩었다는 이야기가 사방에 퍼졌어도, 결국 그 혼은 살아 있다는 건가.

거한은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딴 정의(正義)는 정의가 아니다.

옳고 그른 것은 오로지 최후에 살아남은 승자만이 정할 수 있는 것.

패자(敗者)가 말하는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감언(甘言)이다.

패자(敗者)가 행하는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위선(僞善)이다.

“옳은 것은 언제나 승자다!!”

“뭐래! 갑자기 왜 급발진이야!”

살기로 번뜩이는 거한의 눈동자에 중지를 날린 설천위는 그대로 몸을 비틀었다.

[좌로 반 보, 허리를 틀어 상체를 숙여라.]

천마의 지시.

그걸 따라 정확하게 움직인다.

1초 1초.

모든 순간에 집중한다.

피하고.

피하고.

피하고.

피한다.

몇 번이고.

몇십 번이고 반복해 피해 낸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지만,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다.

멈추는 순간이 바로 자신이 죽는 순간이니까.

죽음에 대한 극한의 긴장감이 가지고 있는 모든 한계를 끄집어낸다.

“이, 이 애송이 놈이!!”

설천위는 필사적으로 피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거한이 느끼기엔 달랐다.

그야말로 최적의 동작만으로 자신의 도를 피해 내는 모습.

그것 자체가 여유로 느껴진다.

그런데 그런 여유를 보이면서도 반격하지 않는 것.

구태여 틈을 만들어도 반격하지 않는 것은 마치 자신을 조롱하는 듯한 느낌이다.

오만하다.

어린놈이 오만하기 그지없다.

마치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듯한 그 모습이 죽도록 띠껍다.

그렇기에 거한은 자신도 모르게 도를 움직였다.

[호오? 사철도(蛇撤刀)?]

뱀을 가둔 도법이라 하여 기묘한 움직임이 특징인 도법.

정통 사파의 무공이다.

최소 동네 산적이 익힐 만한 무공은 아니었다.

본래라면 일류 수준의 도법이 튀어나온 이 순간, 설천위의 위기는 확정이었겠지만…….

[좋긴 하나, 빈틈도 많은 도법이지.]

나지막한 말과 함께 천마는 이번에 직접 설천위의 몸을 두드렸다.

말로 하기엔 늦으니까.

설천위의 다리가 살짝 꺾이며 자세가 낮아진다.

그리고 그 순간, 익숙한 자세가 된 설천위는 곧바로 천마의 의도를 이해했다.

요 2주간, 셀 수도 없이 반복했던 초식의 준비 자세.

후에는 취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지금은 반드시 취해야 하는 자세.

허리를 살짝 흔들어 도를 피하는 설천위.

허나 그런 설천위를 따라 도의 궤도가 꺾인다.

위력을 조금 줄이고 변화에 집중한 도이기에 가능한 움직임.

[사철도는 변화에 집중해 속도가 부족한 것이 흠이다.]

천마의 나지막한 훈수와 함께 설천위의 몸이 튕기듯 땅을 박찼다.

설천위가 그냥 땅을 내디뎌서는 절대로 낼 수 없는 속도.

근육은 물론 쥐꼬리만 한 내공까지 동원한, 신속의 일격.

[섬벽권(閃霹拳) 제1초 일벽(一霹).]

노리는 건 하나.

안면이다.

설천위의 주먹이 닿는 것과 동시에 거한의 목이 뒤로 꺾인다.

설천위의 모든 체중을 담아 쏘아 올린 신속의 일격.

그 위력은 아무리 설천위가 펼쳤다고 해도 맨 정신으로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렇기에 설천위가 승리를 확신한 그 순간.

“이런 개…….”

꺾였던 거한의 목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았다.

압도적인 체급 차이가 만들어 낸, 절망적인 격차.

자신의 주먹이 통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설천위의 표정이 빠르게 굳었다.

반면, 순간 정신이 흐릿해졌던 것을 인지한 거한 또한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설천위를 바라봤다.

제대로 된 내공도 느껴지지 않았고, 신체의 단련도 부족한 반푼이에게 이렇게까지 당했다고?

무슨 소설에 나오는 병약한 천재도 아니고…….

까득.

이를 악문 거한은 다시금 도를 들어 올렸다.

이야기에서나 나오는 허접한 악역이 될 순 없지.

이 세상의 주인공은…….

우득.

“커헉!”

“나를 잊으면 안 되지.”

어느새 돌아온 철백의 일격이 거한의 왼쪽 옆구리를 강타했다.

몇 개나 되는 뼈가 부러진 감각.

아찔한 통증에 흐려지려는 정신을 겨우 붙잡은 거한이 몸을 돌리려는 순간.

어김없이 설천위가 튀어 오른다.

설천위의 주먹이 이번엔 반대쪽 옆구리에 꽂힌다.

짜릿한 통증에 거한이 도를 휘둘렀지만, 마치 예상이라도 하듯 피해 내는 설천위.

그 순간, 거한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진 거다.

자신이 이런 삼류 나부랭이들한테 패배한 거다.

“이…… 이런……!”

개 같은!

인정할 수 없다.

인정할 수 있을 리가 있겠냐!

고작해야 애X끼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들한테 내가 패배한다고?

분노가 차오른 산적이 흥분으로 고통을 잊어 가는 그 순간.

“끝났다.”

우드득.

어느새 파고든 철백이 거한의 팔을 잡고 꺾었다.

뒤로 꺾는다거나 그런 게 아니다.

그저, 순수하게 꺾어 버렸다.

삼백 근이 넘는 바위를 들어 올리는 근력이다.

아무리 일류라고 할지라도 결국 인간의 뼈.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도를 쥐지 않은 왼팔이 꺾였지만 거한은 망설임 없이 도를 휘둘렀다.

전투에 임하는 자세로서는 훌륭하지만…….

“진짜 끝이라니까?”

설천위의 주먹이 그 마지막 발악조차 끊어 냈다.

다시 한번 턱을 강타하는 주먹.

턱이 흔들리며 결국 의식을 잃은 거한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진다.

“두, 두목이 졌어!”

그렇기에 사방에 있던 산적들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천하무적이던 두목이 졌으니까.

그 모습에 철백은 구태여 앞으로 나섰다.

“뒈지기 싫으면 꺼져라아아아!!”

우렁찬 포효.

자신이 건재함을 알리는 그 포효에 병장기를 쥐고 있던 손에 힘이 풀린다.

“으, 으아아아!”

예상치 못한 패배에 혼비백산해 도망치는 산적들.

그 모습에 철백과 설천위는 입꼬리를 올렸다.

일단, 살아남는 데는 성공한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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