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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10화 (10/624)

제10화

9화-실전 시험 (3)

학관에서부터 출발해 다섯 시간 후.

설천위를 비롯한 일행은 산채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물론 오는 내내 두 무리로 나뉘어 거의 따로 걷다시피 했지만.

“후, 더럽게 힘드네.”

“장시간 걷는 건 꽤 힘들죠~.”

근처 바위에 걸터앉은 설천위의 옆에서 서하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당히 큼지막한 바위라 둘이 앉아도 공간은 충분했다.

“그나저나, 넌 익힌 무공이 뭐야?”

“예?”

“오는 내내 네가 하는 잡소리만 들었잖아. 슬슬 전투에 대비해야지.”

어찌나 말이 많던지.

전략을 위한 대화는 거의 하나도 못 나눴다.

마침 거의 도착하기도 했고, 숨 돌릴 틈을 이용한 설천위의 질문에 서하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없어요!”

“……뭐?”

“제대로 익혔다고 말할 만한 무공이 없어요! 계(癸)인 걸요!”

“자랑이다.”

당당하기 그지없는 대답에 허탈한 웃음을 지은 설천위는 철백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얘 끼고 우리 둘이서 해야겠지?”

“음, 아무래도 그럴 것 같다.”

설천위의 말에 배천문을 살피던 철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골적으로 이쪽을 무시하고 있다.

아마 따라가면 산적을 만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제대로 된 전투에 투입되는 건 무리겠지.

아예 따로 떨어트려 놓을 확률이 높다.

그러니 이쪽의 몸은 스스로 지킬 필요가 있다.

“일단 내가 앞에 서지. 혹시 모를 사태가 벌어져도 그나마 내가 더 오래 버틸 테니까.”

“응. 마침 부탁하려고 했어. 좋네.”

철백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서하영을 바라봤다.

게임에서는 계급(癸級)에 있는 모든 학생이 나오지는 않는다.

묘하게 익숙한 얼굴이긴 한데……. 게임 속 캐릭터들이야 대부분 다 예뻤으니까.

그래서 착각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보고도 기억이 안 나는 걸 보면 그리 큰 기대는 안 하는 게 낫겠지.

대충 생각을 정리한 설천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더 쉬고 싶긴 하지만…….

“가자.”

배천문이 움직이고 있으니 따라갈 수밖에.

괜히 이탈했다간 진짜 퇴학당할지도 모르고.

* * *

대부분의 숲이 그렇듯 숲속은 고요했다.

가끔 부는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정도가 끝.

짐승조차 잘 안 보이는 숲길을 일곱 사람이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마을에서 최종적으로 들은 정보로는 이 근처에 산채가 있다.

산채 토벌의 기본은 본거지를 치는 거다.

이런 산적들은 대부분 두목 정도가 무공을 익히고 나머지는 아닌 경우가 많다.

두목만 처리하면 뿔뿔이 흩어지는 건 시간문제다.

‘일단, 정찰하는 녀석은 없는 것 같군.’

긴장으로 신경이 날카로워진 배천문은 최선을 다해 주위를 살폈다.

가끔 산적에게 기습을 당해 큰 피해를 입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런 수치를 겪을 순 없지.

배천문이 그야말로 온 신경을 집중해 걷고 있는 사이, 설천위는 조금 떨어져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곁에는 철백과 서하영만이 있었다.

다른 일행과는 열 걸음 이상 떨어진 거리.

떨어진 이유?

당연히 하나다.

[함정이라도 있으면 다 같이 죽겠구나.]

배천문을 보며 혀를 차는 천마.

애초에 이렇게 뭉쳐서 가는 것 자체가 조장의 오판이다.

배천문과 함께하는 세 명은 애초에 삼류 산적 따위가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즉, 각개격파를 당할 위험이 적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넓게 흩어져 수색 범위를 늘리고, 혹시 모를 함정에 대비하는 게 옳다.

이렇게 뭉쳐서 가면 적에게 들키기도 쉽고, 함정에라도 걸리면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첫 실전에 대한 긴장으로 나온 결과물이겠지.

천마가 여러모로 떠들며 혀를 차는 사이, 설천위 또한 주위를 열심히 살피고 있었다.

이유는 당연히 천마의 조언 때문이다.

‘이게 반복되는 것이라면 산적들이 대비를 안 했을 리가 없다.’

머리가 조금만 돌아가는 사람이 있어도 대비를 했을 거다.

무림맹 근처에서 산적질을 하는 경우는 두 가지.

정말 절실해서 뒤가 없거나.

무림맹의 본격적인 감시가 시작되기 전까지 버티다가 잘 빠져나갈 자신이 있는 경우.

전자면 다행이겠지만, 운에 기대서 실전을 치를 순 없는 법.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 움직일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설천위가 살피고 있는 건 도주 경로다.

어디로 도망가야 할지.

마을이 나오는 길은 어딘지.

최대한 주변 사물을 머릿속에 담아 길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설천위가 사력을 다해 머릿속에 길을 새기고 있던 그 순간.

“정지.”

배천문의 신호에 일행 모두가 일제히 걸음을 멈췄다.

[호오? 그래도 눈썰미는 괜찮구나.]

천마의 감탄과 함께 배천문의 지시를 받은 신급(辛級) 둘이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교묘하게 감춰져 있던 함정을 발견해 내곤 웃으며 그것들을 해체했다.

그 모습에 설천위는 물론 철백까지 안도하는 그 순간.

[하지만, 3할 부족하구나.]

천마의 목소리에 설천위는 곧바로 허리를 펴고 외쳤다.

“피해!”

즉각적인 경고.

하지만 계급(癸級)인 설천위의 경고는 앞서 나간 두 명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 결과는 당연히.

“아악!”

기습.

화살이다.

순식간에 어깨와 다리를 꿰뚫린 두 사람은 고통을 참으며 몸을 날렸다.

운 좋게 급소는 피했지만, 다음 공격은 급소에 맞을 가능성이 충분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바닥을 뒹구는 사이, 천마는 웃으며 위를 가리켰다.

[그래도 기본적인 전술은 아는 녀석들이로구나.]

“아오.”

뭐가 그리 즐거운 거야, 이 할배는.

천마의 느긋한 목소리를 한쪽 귀로 흘린 설천위는 자세를 잡고 섰다.

철백과 함께 서하영의 앞을 지키는 위치.

“에? 에?”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서하영이 놀라 어리둥절했지만, 그것 또한 무시했다.

그런 것에 정신을 팔 여유는 없으니까.

“화살 막을 수 있냐?”

“한 열 발 정도가 한계야!”

막을 수 있구나, 이 자식!

철백의 대답에 역시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는 걸 깨달은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이곤 자세를 낮췄다.

“후퇴 명령이 떨어지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칠 거야. 나만 따라와. 길은 다 기억해 뒀으니까.”

“알았다.”

“옙!”

철백과 서하영의 즉각적인 대답에 설천위는 그대로 전방 주시에 집중했다.

기습으로 주요 전력 둘이 빠진 상황이다.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지금은 일단 도망치는 게 맞다.

활을 쏜 산적들도 거리가 있기에 이쪽이 전력으로 도망치면 따라붙지 못할 거다.

그러니 한 번 후퇴해서 정비를…….

“전원 전투 준비!!”

“이런 X!”

배천문의 지시에 곧바로 욕지거리를 내뱉은 설천위는 시선을 돌려 산적들을 바라봤다.

저쪽은 이미 기세등등해서 산을 내려오고 있다.

도착까지 수십 초 정도밖에 안 남은 상황.

“전투라니! 도망쳐야지!”

“고작 산적 나부랭이한테 도망쳐서야 어찌 정파의 협객이 되겠느냐! 이 버러지야!”

이 새끼가 끝까지……!

이 상황에서도 콧대를 세우는 배천문의 모습에 설천위는 얼굴을 구겼다.

저 머저리는 말이 안 통한다.

고작해야 삼류 산적.

전투에 들어가면 어떻게 해서든 이길 자신이 있다는 태도다.

하지만 그건 상대가 진짜 삼류일 때나 통하는 이야기다.

“쏴라!”

누군가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린다.

화살이다.

동료가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남았으니 끝까지 활을 이용할 생각인 거다.

달려 도망쳐도 피하기 힘들 텐데 가만히 서서 적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

이를 악문 설천위는 철백을 보며 말했다.

“야, 선택해!”

“뭘?”

“싸울 거냐? 튈 거냐?”

혼자였다면 망설임 없이 도망쳤을 거다.

그리고 지원을 요청한 뒤 상황을 봐서 게릴라전에 들어갔겠지.

그게 맞다.

하지만, 그건 정파에선 썩 좋은 방법이 아니다.

하물며, 철백 같은 곧은 사람과 함께한다면 더더욱 아니다.

설령 동료가 입이 더러운 싸가지라고 해도.

“구해야지!”

철백 같은 강철의 신념을 품은 사람은 물러서지 않으니까.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 나가는 철백의 뒷모습에 설천위는 작은 한숨과 함께 따라붙었다.

“지켜 주기 힘들지도 모르니까 잘 도망쳐. 잡히면 험한 꼴 당한다.”

“옙! 걱정 마세요!”

차렷 자세로 대답한 서하영은 그대로 설천위의 등에 바짝 붙었다.

“……뭐 하냐?”

“도망치려면 여기가 가장 안전한 것 같아서요!”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철백만 보낼 순 없으니 이쪽도 뛰어들 생각이거든.

하지만 이제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이미 지척까지 다가온 산적들을 향해 철백이 돌진하고 있었으니까.

“나도 들어간다!”

“아!”

서하영을 신경 쓰지 않고 곧바로 달려 나가는 설천위.

“빨라.”

그 모습을 서하영은 순간 멍하니 바라봤다.

약하다고 생각했는데.

자신과 같은 계급(癸級)이라고 생각했는데 뭐지, 저 속도는?

설천위의 모습에 서하영은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들었다.

그래, 같은 계급(癸級)이야.

나도 할 수 있어.

앞서 나간 설천위의 뒤를 따르는 서하영.

그 순간, 이미 철백은 산적과 맞붙고 있었다.

“하!”

철백의 철권이 산적의 안면에 처박힌다.

상대의 품으로 파고들어 칼을 피해 내고 주먹을 박아 넣은 일격.

그 움직임이 참으로 깔끔했지만, 거기까지다.

내공이 실려 있지 않은 공격은 동네 양아치의 주먹과 다를 게 없으니.

하지만 동네 양아치의 주먹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로 내공을 익히지 않은 산적이라면 충분히 통한다.

철백의 주먹이 연신 산적의 안면에 박힌다.

하나, 둘.

확실하게 기절시키며 숫자를 줄이는 철백.

그리고 그 등 뒤에서 설천위 또한 주먹을 놀리고 있었다.

[어허! 느리다!]

“아오!”

천마의 잔소리와 함께 연신 주먹을 움직이는 설천위.

그 속도가 범상치 않았다.

한 방, 한 방의 위력은 약하지만, 그 타수가 엄청나게 많은 주먹질.

‘무슨 뎀프시롤도 아니고!’

양 주먹을 교대로 움직이며 적을 몰아붙이던 설천위는 옛날에 봤던 만화책을 떠올렸다.

복싱 만화였는데, 그 만화의 주인공도 큰 재능은 없었지.

어릴 때부터 집안일을 도우며 기른 근력만 있었을 뿐.

그런데도 한 나라의 정상까지 오를 정도로 성장한다.

만화 속 이야기지만, 보는 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잡생각이 길다!]

“어헉?!”

천마의 호통 소리에 정신을 차린 설천위는 가슴께를 스쳐 지나가는 칼에 놀라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니, 이런 미친.

잡생각을 하는 버릇을 고치든가 해야지.

실전에서까지 이러면 안 되지.

가슴에서 느껴지는 아릿한 통증에 설천위의 집중력이 다시 최고조로 오른다.

[멍청한 놈.]

그 모습에 혀를 차는 천마.

무림에서 이렇게 늦게 집중하는 건 치명적인 단점이다.

이것도 조만간에 고쳐 줘야겠구먼.

천마가 머릿속으로 훈련 계획을 수정하고 있을 때, 설천위는 주먹을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빠바바박!

연달아 꽂힌 주먹이 산적의 안면을 만신창이로 뭉갠다.

덩달아 설천위의 주먹에도 상당한 충격이 왔지만, 그걸 대비해 미리 붕대를 튼튼하게 감아 놓은 상태다.

앞으로 한참은 더 싸울 수 있겠지.

‘좋아. 할 만해.’

싸울 만하다.

죽어라 단련한 보람이 느껴질 정도다.

하긴 고작해야 삼류 산적한테도 지면 말이 안 되지.

음음.

설천위가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 순간.

“이놈! 네가 두목이구나!!”

어느새 접근한 거한을 향해 배천문이 달려들었다.

거대한 도를 어깨에 걸친, 누가 봐도 강자의 포스를 풍기는 거한.

하지만 그래 봤자 이런 작은 산채의 산적 두목이다.

그렇게 생각한 배천문이 검을 꼬나쥐고 달려드는 순간.

[허, 이건 조금 위험하구나.]

천마의 목소리에 설천위는 완전히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일류다.]

아니, 그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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