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8화-실전 시험 (2)
실전 시험 공지를 받은 설천위는 그대로 미간을 찡그렸다.
워낙 바쁘게 지내느라 생각도 안 하고 있었던 내용이다.
애초에 지금은 게임 스토리가 시작되기 일 년 전의 시점이니 안중에도 없었지만.
“하, 이거 괜찮아요?”
[뭐가 말이냐?]
“산적이요.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산적이랑 싸울 깜냥은 아닌 것 같은데요.”
기초 수련을 항상 탈진에 가까운 쓰러짐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그런데 산적?
아무리 못해도 체력과 근력이 최소 하중(下中) 이상은 될 녀석들을?
거기에 그 녀석들 전부 다 무기 하나씩 꼬나쥐고 있는 놈들 아닌가.
무리, 무리.
[허, 밑을 잘 보거라.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예? 그래요?”
그럼 얘기가 다르지.
천마의 말에 화색이 돈 설천위는 곧바로 고개를 내렸다.
“……어디가요?”
[뭐가 말이냐?]
“어디가 시간이 충분하냐고요. 당장 2주 뒤구먼!”
2주 만에 약골이 산적을 잡을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산채가 남아 있을 리 있나!
[어허, 잊은 것이냐?]
“예?”
[산적 정도를 처리할 기술을 때려 박는 데 2주면 차고 넘치느니라.]
“……에?”
[오늘부터 특훈을 시작하자꾸나.]
이런 쌰……!
* * *
“……그건 또 뭐 하는 거냐?”
“수……련.”
아니, 고문인 것 같은데?
뒤꿈치를 든 채 양팔을 벌린다.
발목과 종아리의 힘으로 체중을 견디는 자세.
거기에다 양팔에 쥔 모래주머니까지.
아마 근육이 찢어지다 못해 비명을 지르고 있을 거다.
실전 시험에 대해 알게 된 이후 훈련 종목이 바뀐 설천위다.
이를 악물고 버티는 설천위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 철백은 마찬가지로 자신의 수련에 집중했다.
이번 실전 시험은 철백도 함께한다.
애초에 낮은 등급을 가진 학생들이 산적을 잡아 공적을 세워서 등급을 올리는 형태의 시험이니까.
중위권만 넘어가도 이런 산적은 상대도 안 한다.
녹림에 소속되지도 못한 허접들이니까.
뭐, 이쪽은 그런 산적들이라도 손에 무기를 쥐는 순간부터 긴장감 넘치는 적이지만.
“후우.”
쓸데없이 이어지려는 생각을 끊어 낸 철백은 다시 온전히 정신을 집중해 훈련에 매진했다.
천마는 설천위를 훈련시키면서 동시에 그를 통해 철백에게도 훈련 방법을 정해 줬다.
철백이 지시받은 훈련의 핵심은 하나.
무게.
“끄으읍!!”
최대한 무거운 것을.
최대한 많이 든다.
철백이 지시받은 훈련은 이것 하나다.
그렇기에 철백은 스스로 바윗덩어리들을 모아서 들고 또 들었다.
거기에.
‘또 가벼워지는군.’
한 번 할 때 횟수가 벌써 20회에 도달했다.
몇 번이나 증량했는데도.
노끈을 구해다가 바위들을 묶어 무게를 늘렸는데 그것도 슬슬 한계다.
이젠 크기 때문에 들기 힘든 수준까지 왔으니까.
역시 무게가 더 무거운 철이 필요한 것 같다.
그렇게 천마의 지시대로 엄청난 중량의 바위를 들고 또 들던 철백은 수련을 끝내고 다시 설천위를 바라봤다.
아까와 똑같은 자세.
벌써 시험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는데, 자신이 볼 때마다 항상 저런 자세로 있다.
대체로 발목과 다리를 강화하는 자세들.
밤에 늦게 잔다고 하니 밤에 따로 초식을 연마하는 것 같긴 한데…….
‘……시험에 맞출 수 있나?’
아무리 봐도 실전에서 싸울 만한 전력은 안 되는 것 같은데.
설천위를 바라보는 철백의 눈에 담긴 걱정이 조금씩 깊어질 때, 천마는 웃었다.
‘이 녀석, 생각보다 배움이 빠르구나.’
육체가 더럽게 구려서 그렇지.
이해력 자체는 충분하다.
인체에 대한 이해력도 꽤 있고.
이 정도라면…….
‘조금은 기대해도 되겠군.’
* * *
“준비는 잘돼 가냐?”
“뭐가?”
“너, 실전 시험 조장 됐다며.”
“흥, 문제없지.”
친구의 말에 코웃음을 친 배천문은 다시 읽던 서책에 눈을 돌렸다.
“뭐야, 진짜 여유롭나 보네? 계(癸)만 셋이라며?”
“버러지들이 있건 없건 문제없다.”
“없기는 인마, 그 녀석들이 다치면 네 책임인데.”
책임.
그 말에 배천문은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무슨 의도인지는 안다.
중위권이라 불리는 기(己)부터는 무림맹에 들어갔을 때 조장부터 시작한다.
그걸 위해 지휘력을 시험하는 거겠지.
문제는 지휘조차 불가능한 버러지들이 셋이나 껴 있다는 점이다.
무슨 쓸모가 있어야 부리지.
그래서 배천문은 이미 그에 대한 방안을 전부 생각해 놨다.
“대충 구석에 처박아 두면 문제없겠지.”
“야, 그럼 넷이서 산채 하나를 정리하겠다고?”
“충분해. 고작해야 부랑자들이 모인 산채 정도는.”
아니, 뭐 그렇긴 한데.
고개를 끄덕이는 친구의 모습에 배천문은 서책을 덮고 일어났다.
이 녀석이랑 있다간 진도가 안 나가겠어.
“쓸데없는 걱정 말고 너나 잘해라. 너도 조금만 더 점수를 채우면 승급 시험이잖아.”
“야, 나는 문제없지. 너처럼 빠르게 올라간 게 아니라서 승급 시험 내용도 꽤 쉬울걸?”
“나와 맞먹을 정도면 너도 충분히 빠르니까 너나 잘해라.”
대충 손을 흔들며 떠나가는 배천문.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친구는 어깨를 으쓱이곤 자리를 떠났다.
뭐, 지가 자신 있다는데 알아서 하겠지.
* * *
시험 당일 아침.
학관 정문에 도착한 설천위와 철백은 대충 앉아서 나머지 학우를 기다렸다.
이번에 그들과 시험에 함께하는 인원은 다섯.
단계상 7번째인 경(庚)이 하나.
8번째인 신(辛)이 둘.
9번째인 임(壬)이 하나.
10번째인 계(癸)가 셋이다.
목표로 하는 산채가 제대로 된 산채가 아님을 고려하면 전력상 충분하다.
그쪽도 많아 봐야 서른 명일 테니까.
머릿수는 꽤 차이 나겠지만 이쪽은 이류가 최소 셋이다.
경급과 신급은 이류 이상이니까.
그렇다면 삼류 산적 서른 명이야 뭐 어떻게든 되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는 표정이구나.]
“아 씨, 뭐래요.”
천마의 주절거림에 설천위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쪽은 긴장감 넘치거든요? 산적한테 죽으면 그게 무슨 개쪽이에요.”
[어허, 오만하구나. 매년 산적에게 죽는 무인이 몇이나 되는데.]
“아니, 뭐 그건 그렇지만. 그건 녹림 쪽 얘기잖아요.”
[산적이면 다 산적이지, 녹림 놈들은 뭐 산적이 아니더냐?]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지.
천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하늘을 바라봤다.
산채는 여기서 멀지 않다.
걸어서 한 네 시간 정도?
싸움을 위해서 적당히 쉬면서 걸을 테니 넉넉잡아 다섯 시간 정도면 되려나.
즉, 대충 여섯 시간 정도면 칼을 든 누군가와 맞서 싸워야 한다는 이야기다.
하루 종일 집에 처박혀서 게임이나 하던 인간이 무기를 쥔 누군가와 맞붙는다는 소리다.
긴장이 안 될 수가 없다.
학관 내에서 행해지는 대련은 최소한 목숨이 보장되어 있으니까.
그래서 이렇게까지 긴장되진 않았는데…….
“씁.”
“뭐냐, 긴장되냐?”
“넌 안 되냐?”
“이런 정도엔 안 쫄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이는 철백.
그 모습에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 녀석은 게임 내에서도 긴장감이라고 1도 없는 캐릭터였지.
동지를 찾는 것에 실패한 설천위가 다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심호흡을 하려는 순간.
“안녕하세요!”
“어, 안녕.”
밝고 활기찬 인사에 설천위는 반사적으로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처음 뵙네요! 계급(癸級)인 서하영이에요! 설천위 공자 맞죠?”
“아, 응. 그런데 공자는 낯간지러우니까 천위로 불러 줘.”
“그래요? 그래도 저는 서 낭자로 불러 주세요!”
“너, 밝게 다가온 주제에 거리를 벌리는구나.”
살짝 상처 입었다.
“헤헤, 아무리 그래도 외간 남자한테 막 이름으로 불리면 쑥스러우니까요.”
“그것도 그러네. 너도 그냥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
“옙! 설 공자! 그나저나 저희 셋이 계급인가요?”
“뭐 그렇겠지.”
설천위의 대답에 서하영은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에는 혼자 갔었는데, 완전히 없는 사람 취급을 하더라고요…….”
“전에? 전에도 가 봤어?”
“예. 이 시험은 대체로 승급자가 생길 때면 하니까요. 한 석 달 전에도 있었어요.”
이거, 일 년마다 일어나는 이벤트가 아니었구나.
게임에서도 한 번밖에 나오지 않은 거라 잘 몰랐네.
새로운 정보에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게임에서 나왔던 산적 상대 시험은 그 사건이 일어났던 한 번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일 년에 한 번인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네.
이건 문제가 조금 있구먼.
‘정보를 이용하는 데 있어서 조금 더 신중해야겠어.’
게임 내에서 한정적으로 봤던 정보이니 불확실할 가능성도 고려해야겠다.
작은 자기반성과 함께 설천위가 머릿속으로 몇 개의 정보를 정리하고 있던 그때.
“시간은 잘 지키는 버러지들이군.”
“아니, 저 새끼가 말끝마다…….”
“출발한다.”
설천위를 가볍게 무시하고 출발하는 배천문.
그 뒤에는 설천위를 붙잡은 서하영이 있었다.
“조장이랑 싸우면 중징계예요.”
“……왜?”
“무림맹은 결국 무력 조직이니까요. 상명하복이 원칙이잖아요.”
“……씁.”
그러고 보니 그런 설정이 있었지.
아니, 설정이기 이전에 당연한 이야긴가.
여기는 사관학교 같은 곳이니까.
철저한 실력주의의 사관학교.
성적이 부족하면 병사로.
성적이 뛰어나면 바로 장교로.
그런 의미에서 상명하복은 기본이겠지.
저런 모욕에 화가 난다면 나중에 정식으로 항의하는 게 답일 거다.
[그런 규칙조차 넘을 힘이 있다면 얘기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어느새 설천위의 곁에서 낄낄거리는 천마.
그 모습에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급에서 벗어나는 건 상당히 힘들다.
그리고 그렇게 벗어나려면 천마가 말하는 정도의, 규칙을 넘어서는 힘이 필요할 터.
“후…….”
작게 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라앉힌 설천위는 어느새 상당히 멀리까지 걸어간 녀석들의 뒤를 쫓았다.
그래, 일단은 참는다.
참는데…….
나중에 올라가면 너부터 손봐 주마.
나 설천위, 승부욕 하나로 게임 하나에 수천 시간을 쏟아부은 독종이라 이 말씀이야.
* * *
“실전 시험?”
“예, 오늘 출발했다던데요?”
홍유화의 보고에 유예린은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실전 시험.
보통 승급을 위해 진행되는 시험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고.
위험하기도 위험하지만, 이때 조장을 맡은 학생은 신경이 상당히 날카로워진다.
겉으로는 티를 안 내려고 해도 중위권으로의 진입이 걸린 시험이니 중압감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그걸 전부 뛰어넘는 실력이 있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겠지만…….
“조장이라는 사람의 실력은? 알아?”
“물론 조사해 왔죠! 우리의 언니가 궁금해할 것 같아서!”
커흠, 작게 헛기침을 한 홍유화는 자신이 조사해 온 배천문에 대한 정보를 간략하게 말했다.
“귀주성 출신의 무인이고, 실력은 이류 정도예요!”
“이류?”
“예! 아무래도 점수를 엄청나게 열심히 모았나 봐요.”
이류의 실력으로 승급 시험을 치르려면 상당한 수준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걸 해냈으니 대단하다면 대단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실력은 부족하다는 소리고, 그 부족함은 큰 중압감으로 찾아올 거다.
“거기에 왠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더라고요!”
“스스로?”
“네! 하위권 학생들을 버러지라고 부른대요!”
홍유화의 말에 유예린은 미간을 찡그렸다.
“고작해야 이제 기급(己級) 시험을 치르는 경급(庚級)이?”
이 무슨…….
“더럽게 싸가지가 없죠!”
“말.”
“헤헤, 하지만 맞잖아요!”
홍유화의 미소에 결국 화를 내지 못한 유예린은 고개를 저으며 창밖을 바라봤다.
조장에게 몇 가지 문제가 있다.
그런 상황에서 치르는 시험에 계급(癸級)이 셋?
조금 구린내가 난다.
그렇기에 유예린은 작게 기도했다.
‘제발 무사하게만 돌아와 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