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7화-실전 시험 (1)
[먼저 네가 익힌 심법에 관한 설명부터 하마.]
늦은 밤.
의식을 치렀던 공터에 나온 설천위는 천마와 마주 앉았다.
[혼원패공(魂元覇功)은 본디 사령술에서 파생된 심법이다.]
“사령술이요?”
[그래, 혼을 다루는 것을 업으로 삼던 자들이 만들어 낸 심법이지.]
천마의 말에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다.
스킬 설명에도 비슷하게 적혀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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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원패공(魂元覇功)(最上)(一成)
모든 혼백(魂魄)을 지배하고 그들의 으뜸이 되는 공부.
운기를 할 때 내공의 최대치가 소폭씩 영구적으로 증가한다.
운기를 할 때 내공의 회복 속도가 소폭 증가한다.
지배한 혼백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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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과 달리 기본적인 효과는 일반적인 심법과 같다.
다른 건 딱 하나.
지배한 혼백이라는 문장뿐.
저 하나의 차이가 이 무공을 최상급으로 바꿔 준 것일 거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일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다.
거기에 등급 옆에 적혀 있는 일성(一成)이라는 단어.
하나 이루었다는 뜻이니, 첫 단계라는 뜻이다.
보통 무공은 십성(十成)에서 십이성(十二成)까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하나 오를 때마다 하나씩만 추가돼도 지배할 수 있는 혼의 수가 최소 열에서 최대 열둘이라는 소리.
어찌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겠는가.
[뭐, 이 무공은 사실 상당히 유명해야 맞는 무공이다.]
“예? 왜요?”
[이백 년 전에 있었다고 알려진 혈마대전을 알고 있느냐?]
혈마대전.
그러고 보니 설정에 그런 단어가 등장했었지.
“그, 혈패황(血覇皇)인가 하는 사람이 무림이랑 황실에 엄청난 타격을 줘서 무림의 역사를 백 년 이상 늦췄다고 하는 그 싸움이요?”
[그래, 그 결과로 중소 문파들이 기회를 잡아 날아올랐고,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예전만 한 성세를 누리지 못하고 있지.]
천마의 말에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육도는 게임답게 보통의 무협지와는 조금 다른 설정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세력 구도다.
대문파들이 강하긴 하지만, 전통적인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힘이 그렇게 절대적이진 않다.
그 이야기의 타당성을 만든 게 바로 혈마대전.
설정상으로만 봤던 이야기를 이렇게 직접 입으로 들으니 뭔가 묘하긴 하네.
설천위가 대충 고개를 끄덕이자, 천마가 피식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
[네가 익힌 혼원패공(魂元覇功)이 그 혈패황(血覇皇)이 익힌 무공이다.]
“예?! 그럼 혈교 쪽 무공이란 소리예요?!”
그럼 안 되지!
들키면 척살이라고!
설천위의 반발에 천마는 진정하라는 듯 손을 저었다.
[혈교는 무슨, 오히려 정파에 가까운 무공이다. 그리고 혈패황(血覇皇)이 그 무공을 익혔다는 걸 아는 사람도 얼마 없고.]
알고 있었어도 아마 지금쯤 다 백골로 뒹굴고 있겠지.
짧게 덧붙인 천마는 설천위를 보며 말했다.
[그 무공은 얼마나 강한 혼을 얼마나 결속력 있게 지배할 수 있느냐가 관건인 무공이다.]
“……저는 천마 할아버지랑 이어진 거 아니에요?”
[어허, 네 주제에 무슨? 우린 그냥 적당히 함께 있는 것뿐이다.]
눈을 부라리는 천마의 모습에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다면 그런가 보지.
[여하튼, 본론을 말하자면 그 심법의 특징은 포용력에 있다.]
“포용력이요?”
[그래, 대체로 어떤 무공을 익혀도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소리다.]
특정한 속성에 치우치지 않았기에, 또 특정 혈도를 무리하게 운용하지 않기에 대부분의 무공을 사용할 수 있다.
거기에…….
‘뭐, 이 녀석이 그 정도 수준까지 갈 수 있을 리 없나.’
그 녀석은 괴물 그 자체였으니까.
혈패황의 모습을 잠깐 떠올렸던 천마는 고개를 저어 잡념을 털고 설천위를 바라봤다.
[그래서 네게 내가 처음 알려 줄 무공은 이거다.]
다리를 벌리고 자세를 낮춘 천마는 왼팔을 앞으로 내밀고 오른팔은 몸에 붙였다.
[무공의 이름은 섬벽권(閃霹拳).]
순간, 설천위가 눈을 감았다 뜨자, 천마는 어느새 그의 앞에 주먹을 내밀고 있었다.
[네가 생각해야 할 건 딱 하나다. 그 무엇보다 빨라져라.]
* * *
“하는 게 똑같잖아요!”
[그럼, 당연한 것 아니냐? 빨라지려면 달려야지!]
이른 아침, 평소보다 조금 더 빨리 나온 설천위는 채찍질의 고통을 감수하며 달렸다.
어제 배운 초식들은 기억도 잘 안 난다.
그저 평소처럼 하염없이 달리는 순간.
[그게 아니라고 했을 텐데?]
“억!”
채찍이 왼쪽 다리를 후려친다.
[보법이란 자고로 모든 상황에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걸을 때도, 잠꼬대할 때도 그렇게 걸을 수 있게 되도록 혼에 새겨라!!]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채찍질이 쏟아진다.
하지만 그렇기에 조금씩, 조금씩 설천위의 자세는 변해 가고 있었다.
“벌써 시작했군.”
평소처럼 나온 철백은 땀을 뻘뻘 흘리며 달리는 설천위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런 열정이다.
자신을 극한까지 몰아붙일 수 있는 저 근성.
저것이 자신이 배워야 할 첫 번째 덕목이다.
또 한 번의 결심과 함께 호흡을 가다듬은 철백은 곧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50번.
처음에는 말도 안 되게 힘들었다.
이를 악물고 달리는 설천위는 쉬는 시간조차 최소화하면서 달렸으니까.
내공 한 점 없이 순수한 육체의 힘으로 달려야 하는 입장에서 버겁기 그지없는 훈련이다.
하지만.
‘슬슬 할 만해지고 있단 말이지.’
내공이 없다는 것을 빼면 거의 모든 부분에서 축복을 받은 철백은 그것에도 적응하고 있었다.
그러니 오늘쯤에는 꽤나 여유롭게 50번을 다 채울 수 있을 거다.
철백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악, 하악, 왜, 빨라졌지?”
체력이 약한 건 거의 그대로다.
그런데, 달리면 달릴수록 점점 빨라진다.
마치 누군가가 옆에서 쉴 새 없이 틀린 자세를 고쳐 주는 것처럼.
땅을 딛는 방법, 몸을 앞으로 보내는 방법, 상체의 균형을 잡는 방법 등등.
모든 것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그것도 옳은 방향으로.
그냥 지적해 준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심지어 그 움직임을 보고 조금씩 따라 하려고 하니 할 수가 없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섬세한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소리.
그런 걸 달리면서?
“하, 하하하하하!!”
거칠어진 숨조차 잊을 만큼 시원한 웃음을 터트린 철백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허리를 숙였다.
그래.
이래야지.
이러지 않으면, 저 등을 붙잡기 위해 아등바등할 이유가 없지.
잡는다.
올해가 가기 전에 반드시 잡는다.
* * *
“이건, 흥미롭네요.”
여느 때와 같은 수업 시간.
자유 대련 시간을 준 화영은 한 학생의 앞에 멈춰 섰다.
“반항일까요?”
이번에 알려 준 수업 내용을 복습하는 게 아니라 기마 자세를 하고 있다.
하체를 단련하는 기초 훈련에 집중하는 것은 좋은 자세이나 지금은 수업 시간이다.
화영의 질책이 담긴 눈빛에 기마 자세를 하고 있던 설천위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면, 이유를 알려 줬으면 하네요.”
“어차피 낙제일 것 같아서 필요한 수련을 우선시하려고 했습니다.”
“흐음.”
이건 참……. 맹랑하다고 해야 하나? 경우가 없다고 해야 하나?
수업 시간에 대놓고 딴짓을 하면서도 당당한 설천위의 모습에 화영은 미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소문은 익히 들었다.
궁금해서 직접 찾아가 확인까지 했고.
‘속도를 위해 하체를 단련하는 것이겠지만…….’
과연 속도를 중시하는 무공이 설천위와 맞을까?
어떤 무공이든 다 그렇겠지만, 속도를 중시하는 무공도 재능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백날 연습해도 1초식도 펼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수개월 만에 모든 초식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초식의 이해력도 이해력이지만 그걸 지탱해 줄 근육의 질과 관절의 안정성 때문이다.
아무리 내공의 힘으로 보조한다고 해도 결국 무공을 펼치는 것은 몸이다.
그 몸이 부실하면 제대로 된 무공이 나올 리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설천위는 그런 몸의 영향이 가장 적은 화경(化勁)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아마 본인도 그런 생각에 이 수업을 신청했던 거겠지.
그리고 가문에서도 마침 가문의 주력에 화경을 이용한 무공이 있으니 그걸 위주로 전수했을 것이고.
그런데 무슨 생각일까.
‘어떤 분인지 모르겠지만, 생각을 읽을 수가 없구나.’
그녀가 가서 수련하는 모습을 봤을 때, 상당한 수준의 보법임을 알 수 있었다.
그만한 무공이라면 전수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설천위가 스스로 만들었을 리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전수를 해 준 사람은 아마 대련에서 조언을 해 줬던 사람과 동일인이겠지.
그만한 실력자가 설천위에게 속도를 중시한 저 무공이 맞는다고 판단한 근거가 있을 터.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그분은 보고 있는 건가?’
스스로의 부족함에 대한 의심으로 화영이 미간을 찡그리자, 설천위는 떨리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아 씨, 그러니까 수업 중에는 얌전히 있자니까.’
[어허, 눈알 보소? 가만히 있거라. 다 잘될 테니.]
눈빛만으로 설천위의 생각을 읽어 낸 천마는 일어나려는 설천위의 어깨를 짓눌러 막았다.
그렇게 설천위가 근육이 끊어질 것 같은 기마 자세를 강제로 당하고 있는 사이, 상념에서 벗어난 화영은 작은 헛기침과 함께 돌아섰다.
“강해지는 길은 스스로 걷는 거지요. 알아서 하도록 하세요. 단, 그만한 대가는 각오하도록 하세요.”
“……예.”
근육이 타다 못해 끊어진 것 같은 고통에 설천위가 힘없이 대답했다.
그런 설천위의 대답에 말없이 멀어지는 화영.
“……갔는데요?”
[그래서?]
“이, 이제 한계인데요?”
[어허, 한계란 네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정하는 것이지.]
“진짠데!”
[어허, 목소리가 크구나. 광인 취급까지 받고 싶은 것이냐?]
사악한 미소와 함께 그저 지그시 누르는 천마.
그냥 주저앉아 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
이 기묘한 노령(老靈)은 이번엔 채찍 대신 송곳을 설천위의 엉덩이 밑에 깔아 놨으니까.
찔리면, 피똥 정도로는 안 끝난다.
아니, 그 정도 고통을 영혼으로 받는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진짜 이를 악물고 버티고 버틴다.
1초 1초가 마치 한 시간처럼 흘러가는 인내의 시간.
결국, 견디지 못한 설천위가 다리의 힘이 풀려 주저앉기 직전의 순간.
천마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
“허억, 허억.”
그대로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는 설천위.
그 모습에 천마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재능은 더럽게도 없지만 가르치는 맛은 있는 녀석이다.
힘들다고 찡얼거리면서도 확실하게 따라오니까.
뭐, 고통 때문에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그때, 그야말로 하얗게 불태우고 앉아 있는 설천위의 곁으로 한 사람이 성큼성큼 다가갔다.
“어이, 쓰레기.”
“……앙?”
노골적인 욕설에 지쳐 있던 설천위가 짜증을 담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처음 보는 낯짝.
“실습 일정이다. 나와 한 조가 된 걸 영광으로 알도록.”
“이 무슨 싸가지 없는 새…….”
설천위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종이만 휙 던진 남자는 그대로 뒤돌아 떠나갔다.
그 독선적이기 그지없는 행동에 말없이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설천위는 이내 포기하곤 종이를 바라봤다.
어차피 이 다리로는 쫓아가지도 못하니까.
한숨과 함께 종이를 살피는 설천위.
그리고.
“……씁?”
이게 이때도 있어?
[호오? 이건 재미있구나.]
긴장감에 정신이 돌아온 설천위와 달리 천마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암, 이놈들이 뭘 알기는 알아.
이런 수련도 진행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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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적인 실전 시험 일정 안내.
…….
목표: 사파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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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사파 지부는 당연히 사천맹(邪天盟)의 지부가 아니다.
산속의 사파인(邪派人) 즉, 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