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6화-낙제생 (6)
[달리거라, 굼벵아!]
“으어어!!”
일주일.
이젠 붓기가 완전히 가라앉은 이마 위로 땀이 줄줄 흐른다.
달리기.
가두호와의 싸움 이후, 천마는 설천위에게 다른 걸 요구하지 않았다.
한결같이 달리기.
오로지 달리기.
[하체 단련은 무인의 기본! 네 녀석은 그 기본조차 안 되어 있는 버러지다!]
욕설은 덤이고.
그렇게 설천위는 연병장을 달리고 또 달렸다.
오전에도, 수업이 모두 끝난 저녁에도, 수업이 없는 빈틈에도.
그저 달리고, 달린다.
“……대체 언제까지 달려요?”
그렇게 2주를 했을 때 설천위는 죽은 눈으로 천마에게 물었다.
아니, 대체 언제쯤 달리는 걸 멈춘단 말인가.
“시험까지 이제 2주밖에 안 남았어요.”
2주.
승급 시험은 아니다.
수업을 이수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르는 시험.
현재 설천위가 듣고 있는 수업은 총 4가지.
화경(化勁)의 기초, 기초 은신법, 권각술의 기본, 기초 내공학(內功學).
이 4가지다.
화경의 기초는 화영이 가르치는, 그 첫 번째 박치기를 했던 수업이고.
기초 내공학을 제외한 나머지 세 과목 전부가 실기 시험을 치른다.
즉, 저 세 과목은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는 소리다.
그런데 연습은커녕 하루 종일 달리기만 하고 있으니 어찌 불안하지 않을 수가 있나.
당연하다면 당연한 설천위의 질문에 천마는 피식 웃었다.
[시험을 걱정하는 게냐?]
“그럼요. 불합격해도 쫓겨나진 않겠지만, 상당한 수준의 벌이 있으니까요.”
상당한 수준의 벌.
뭐, 변소 청소 혹은 몸을 쓰는 노동에 종사하는 거다.
거기에 보충 수련은 덤.
두들겨 패진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설천위의 대답에 천마는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싸늘한 느낌과 함께 고개를 꺾는 설천위.
허나, 어림도 없다.
[걷지도 못하는 놈이 달리려고 해!]
“아악!”
강렬한 꿀밤과 함께 설천위는 이마를 감싸 쥐었다.
진짜 빌어먹게도 아프네.
게다가 영혼에 들어오는 충격이라 손으로 감싸 쥔들 아무런 효과도 없으니 왠지 더 아픈 것 같다.
[네 녀석이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은 편법뿐이다. 남는 시간에 공부나 열심히 해서 내공학이나 합격하도록.]
“끙.”
아니, 뭐 맞는 말이긴 한데.
작게 한숨을 내쉰 설천위는 상태창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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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설천위
나이: 16세
레벨: 1
근력 下下
체력 下下
순발력 下下
지력 中下
정신력 中下
내공 下中
영력 下中
패기 下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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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2주간, 진짜 영혼이 닳도록 달렸는데도 오른 건 영력 스탯뿐.
솔직히, 영력도 채찍질에 맞아서 오른 것 같은 기분이다.
물론 운 좋게 두 번이나 등급 외의 대상을 이겨서 경험치는 많이 쌓여 있으니 투자하면 되겠지만…….
살짝 고개를 돌린 설천위는 천마를 바라보며 몇 번이고 확인한 질문을 던졌다.
“저, 진짜로 수련만 하면 강해질 수 있는 거 맞죠?”
[물론.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자신만만한 대답.
그 대답에 설천위는 쓴침을 삼켰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해 보자.
육체 스탯을 수련으로 올릴 수 있다면, 경험치로 올리는 스탯은 다른 쪽에 투자하는 게 맞다.
미래를 보면, 이게 정답이다.
이 세계에서 무공은 선택이 아닌 필수니까.
그러니까…….
[빈둥대지 말고 뛰어라!!]
“아 좀!! 그만 때려요!”
[때리지 않으면 느려지는데, 어찌 때리지 않을 수 있겠느냐!]
일단, 이 악물고 달리자.
* * *
설천위의 기행은 학관 내에 알음알음 퍼져 나갔다.
신(辛) 등급과 경(庚) 등급을 잡은 계(癸).
이것만으로 충분히 화제가 될 법한 일인데, 그 뒤에 이어진 행동이 참으로 기괴하다.
“이야, 그렇게 필사적으로 달리는 녀석은 처음 봤지.”
“누가 뒤에서 채찍으로 때리는 줄 알았잖아.”
진짜 악을 쓰며 달리는 모습을 목격한 이들이 웃으며 그 얘기를 꺼냈다.
처절하게 달리며 자신을 극한까지 몰아넣어 수련하는 것은 무인의 모범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느려서야 채찍질에서 도망이나 칠 수 있겠어?”
“계(癸)가 괜히 계(癸)가 아니지.”
그조차도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너무도 느린 속도.
진짜 악을 쓰며 달리지만,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하는 체력.
두 번이나 벌어진 선전에 품었던 혹시라는 생각을 단숨에 날려 버리는 모습이었다.
결국, 계(癸)는 계(癸)일 뿐.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몇몇 교관들과 학생들.
그들은 설천위의 변화를 매우 흥미롭게 지켜봤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중 하나는 행동력이 참으로 뛰어난 사람이었다.
“……있군.”
이른 아침, 아니 새벽이라 불러야 마땅한 시간.
연병장에 도착한 남자는 죽기 살기로 달리고 있는 설천위를 바라봤다.
저 독기, 저 필사의 눈빛.
저 녀석이다.
저 녀석과 함께한다면…….
상념이 깃든 짧은 눈빛과 함께 남자는 설천위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가 다가가자, 설천위 또한 천천히 걸음을 멈췄다.
“수련을 방해해 미안하다.”
정중한 포권, 그리고 이어지는 자기소개.
“나는 철백이라고 한다. 혼자 하는 수련에 막혀 너와 함께 수련하고 싶다.”
“……수련? 나랑?”
기묘하게 일그러지는 설천위의 표정에도 철백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계(癸)급이다. 그리고 나는 등급을 벗어나고 싶다.”
“그래서?”
“함께 성장할 친우가 필요하다. 혼자 하는 수련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대련 상대라도 찾고 있는 거면 상당한 오판 같은데.”
철백의 전신은 훌륭하게 단련되어 있다.
보는 것만으로 위압감을 느낄 수 있는 덩치와 근육들.
나약하기 그지없는 설천위와는 확연히 비교되는 신체다.
하지만, 설천위의 대답에 철백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확신하고 있다. 너와 함께하는 건 큰 도움이 될 거다.”
대체 이 기묘한 확신은 무엇이란 말인가.
자신감에 가득 찬 철백의 대답에 설천위는 기묘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설천위가 철백의 접근에 거리를 둔 건 그를 경계해서가 아니다.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살짝 물러난 거다.
철백(鐵伯).
육도(六道)에도 당연히 플레이어가 조종할 수 없는 NPC들이 있다.
조력자로 들어오지도 않고, 직접 플레이할 수도 없는 캐릭터들.
하지만 그런 캐릭터들 사이에서도 인기 있는 캐릭터가 몇 있다.
철백은 그중 하나로, 대부분의 엔딩에서 살아남는 캐릭터다.
그게 무슨 소린가.
철백은 초반에 어이없게 죽지만 않는다면, 확실하게 강해져 신(神)들의 영역을 넘볼 강자가 된다는 소리다.
“나는 내공을 익히지 못하는 몸이지만, 이 육체로 무인이 될 것을 다짐했다.”
그것도 내공조차 없는 몸으로.
저렇게 뛰어난 신체를 가진 철백이 계(癸)급인 이유다.
내공이 없으니 힘을 신체 내부로 넣는 발경에 약하고, 검기나 도기는 상대도 못 한다.
설천위가 무인의 기본인 체력과 근력이 바닥 그 자체라면, 철백은 무인의 기본 중 기본인 내공이 아예 없는 것이다.
무인이 될 자격이 없다고, 학관은 그리 판단한 것이다.
허나, 철백이 가진 것은 강철의 정신과 육체.
“함께하게 해 다오.”
어떤 역경에도 꺾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진정한 영웅.
게임을 하면서 상당히 좋아했던 캐릭터이기에 설천위는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철백이 어떤 것을 계기로 강해지는지는 안다.
그리고 그건 설천위가 설명해 준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괜히 잘못 설명해 줬다간 오히려 망칠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기초 체력 훈련 정도야 같이하면 좋겠지 뭐.’
성장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라면 문제없을 거다.
“그래, 같이하자.”
“좋군.”
“그럼 잠시만 몸 풀고 있어 봐. 생각 좀 하고 올 테니까.”
“음? 알았다.”
뜬금없는 소리에 잠시 의문을 품었던 철백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부탁한 것이니 쓸데없는 의심은 무례다.
그렇게 철백이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푸는 사이, 설천위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천마를 바라봤다.
“좀 도와주세요.”
[뭘 말이냐?]
“쟤요. 같이 수련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저 아해가 네게 무슨 도움이 된다고?]
“에이, 뭐 꼭 도움이 돼야 하나요? 그리고 저 녀석, 왠지 강해질 것 같아서요. 빚 정도는 만들어 두면 좋죠.”
[흠.]
설천위의 대답에 천마는 턱을 쓸며 그를 바라봤다.
우연인가, 아니면 직감인가.
천마가 보기에 철백은 확실히 재능을 품고 있다.
단지 그 재능의 씨앗이 너무도 낯설고 깊게 박혀 있어 알아채기 힘들 뿐.
거기에 자신의 도움으로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설천위를 찾아온 것부터가 범상치 않다.
스스로 한계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느껴 찾아온 것일 테니까.
아마 몇 년만 지나면 웬만한 무인은 앞에 서지도 못할 수준이 되겠지.
이 녀석이 앞으로 나아가는 길에 큰 도움이 될 거다.
짧은 생각 끝에 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내가 말하는 대로 하라고 가서 전해라.]
천마의 말에 귀 기울이는 설천위.
그리고.
“……진짜로요?”
[진짜다.]
천마의 확답에 한숨을 내쉰 설천위는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철백에게 다가갔다.
“생각은 끝난 건가?”
“아, 응. 일단, 진짜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싶어서 나랑 같이하자는 거 맞지?”
“음, 맞다. 하지만 일단 네 체력의 문제도 있으니 이번에는…….”
“그럼 문제없겠네. 50번.”
철백의 말을 끊고 손을 쫙 펴는 설천위.
그 모습에 철백은 고개를 갸웃했다.
“50바퀴? 힘들긴 하겠지만 그렇게까진…….”
“아니, 번이라니까? 바퀴가 아니라.”
“……번?”
그러게, 왜 번이지?
철백이 의문을 해소 못 하고 미간을 찡그리려는 순간, 설천위가 어색한 미소와 함께 그 의문을 풀어 줬다.
“나를 50번 추월해. 그게 첫 번째 과제야.”
* * *
설천위의 훈련에 한 명이 추가됐다.
그 소식이 퍼지자, 사람들은 기웃거리며 그 광경을 지켜봤다.
아니나 다를까, 같은 계(癸)급끼리 어울리는 모습에 사람들은 조소를 머금었다.
물론, 설천위도 철백도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 따윈 없었다.
한 달.
과목의 시험에 떨어진 설천위는 벌과 함께 체력 훈련을 받으며 그야말로 산송장이 되어 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천천히 늘어나는 체력 덕분에 속도와 거리는 계속해서 향상되었다.
문제는 그런 설천위를 끊임없이 따라잡아야 하는 철백이었다.
성장이 어느 정도 더뎌진 시점에서 끊임없이 발전하도록 강제하는 수련.
그야말로 극한의 극한이다.
그렇게 정말로 달리다가 죽겠다 싶은 시점이 되었을 때.
[슬슬, 기술 훈련에 들어가도 되겠구나.]
천마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어때요? 신기하죠?”
“……응.”
누군가의 질문에 여인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별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는 얼굴.
언뜻 보면 대화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할 법한 표정이지만, 그녀와 대화하는 상대는 알고 있었다.
지금 저 얼굴이 이야기에 상당히 흥미를 느끼고 있는 표정이라는 것을.
하긴 누구 이야긴데, 흥미가 없겠어.
요즘 학관 내에서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 설천위의 기행을 풀어놓던 여자, 홍유화는 짓궂게 웃었다.
“낭군님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있어요?”
“…….”
침묵.
살짝 붉게 달아오르는 뺨에 홍유화는 몸을 배배 꼬며 달려들었다.
“아우! 언니, 귀여워! 왜 아무도 안 데려가는지 몰라!”
“약혼자, 있으니까.”
“아니, 나는 그게 가장 의문이에요. 왜 파혼을 안 해요?”
가문에서도 기겁하며 시킬 만한데.
아무리 설가가 한 위세 하는 가문이라고 해도 눈앞의 언니 또한 한 가문 하지 않은가.
홍유화의 질문에 그녀를 슬쩍 밀어낸 여인, 유예린은 작게 웃었다.
“약속이니까.”
언젠가 나를 지켜 줄 거라고, 그 아이가 약속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