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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화 (4/624)

제4화

3화-낙제생 (3)

설천위는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냈다.

이른 아침에 기상해서 훈련.

더럽게 안 되는 걸 천마의 조언을 들으며 조금씩 바꾸고 있다.

덤으로 약한 체력을 올리기 위해 달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전과 오후에는 수업.

주위의 무시와 멸시의 시선은 그대로였지만, 박치기 사건 이후 노골적인 괴롭힘은 없었다.

묵묵히 학업에 집중했다.

저녁에는 재료 찾기.

천마의 지시대로 여러 가지 재료를 찾고 의식의 장소까지 마련하는 데 걸린 시간은 사흘.

이제 남은 재료는 하나뿐이다.

“짐승의 피라…….”

마지막 남은 재료에 설천위는 고심했다.

무림학관 내부에 숲이 있긴 하지만, 사냥은 기본적으로 금지다.

며칠이나 고민한 결과, 설천위가 찾은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외부로 나가서 구해 오는 것.

이건 뭐 돈이 없으니까 구걸이라도 해야지.

문제는 짐승의 피도 결국 돈이 되기 때문에 힘들 거라는 점?

무엇보다 무림학관의 학도 신분으로 구걸하고 돌아다니다 들키면 쫓겨날지도 모른다.

여하튼, 이건 최악의 경우에 할 수 있는 방법.

다음으로는 이 학관 내부에 있는 조리장에 가는 거다.

여기는 그나마 구걸한다고 해서 쫓겨나진 않을 거다.

문제는 이유인데…….

그냥 달라고 할 순 없고.

뭔가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야 한다.

피를 이용한 무공이라고 하기엔 너무 사파스럽고…….

음.

[뭐가 고민인 것이냐?]

“취사장에 가서 짐승의 피를 달라고 할 건데, 이유를 뭐라고 해야 할지 못 정해서요.”

설천위의 대답에 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똑똑한 듯하면서 멍청하구나.]

“예?”

[가문의 비전 약 중에 짐승의 피가 들어가는 게 있다고 하면 그만 아니더냐.]

“그러면 사파라고 오해받지 않을까요?”

[그건 또 무슨 헛소리냐. 보신용 약에는 짐승의 피가 얼마나 자주 들어가는데.]

아!

이게 바로 편견인가?

하긴 짐승의 피는 원래도 여러 가지 용도로 쓰이지.

한 번의 자기반성과 함께 설천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정했으면 부딪쳐야지.

* * *

“없어!”

“어떻게 조금만이라도!”

“없으면 없는 거야. 피는 보관이 힘들어서 따로 안 들여놓는다고.”

확실한 거절.

설천위의 부탁을 숙수는 마치 단호박을 자르듯 딱 잘라 거절했다.

애초에 거절할 수밖에 없고.

아니, 있어야 줄 거 아닌가?

없는데, 어떻게 줘.

“제발,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피는 따로 신청하지 않으면 안 들어온다니까? 아니, 그리고 그런 건 약제당에 가야지.”

“거기는 제 계급이면 바로 쫓겨납니다.”

“……음, 그것도 그렇긴 하네.”

밥은 모두가 먹어야 하지만 약은 아니다.

학관의 지원도 없고, 가문에 버림을 받아 돈도 없는 계(癸).

약제당은 무림학관 내에서도 상당한 권위를 가진 곳이다.

피를 철철 흘리는 몰골이 아니면 출입도 거부당할 터.

장 숙수가 이곳에서 일한 지 벌써 20년째다.

설천위의 사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어떻게든 강해지고 싶어서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

가문의 비전 약이라도 만들어 먹고 싶지만, 그것도 요원하다.

비전의 약이란 건 원래 그만한 재료를 필요로 하니까.

아마 짐승의 피를 구해도 제대로 된 약을 만들기는 힘들겠지.

혼자서 설천위의 사정을 상상하던 장 숙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사흘 후에 들어올 납품에 짐승의 피를 조금 주문해 주마. 대신…….”

“대신?”

“사흘 동안 나와서 잡일을 도와라. 그 정도 노동은 제공해 줘야 해.”

“그거라면 문제없습니다!”

* * *

“……더럽게 맵네.”

이른 아침.

장 숙수의 지시에 따라 양파를 까던 설천위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몸은 아침에 일어나는 건 쉬운데, 힘이 없다.

몸 전체가 축축 처지는 느낌.

아마 원인은 처참하기 그지없는 체력 스탯 때문이겠지.

설천위는 무가 출신의 무인이다.

설가장 하면 꽤나 유명한 무가이기도 하고.

그런 무가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체력이 하하(下下)다?

이건 문제가 심각한 거다.

설천위가 비록 재능이 없었다곤 해도 가문에서 배울 기회를 아예 제공하지 않았던 것도 아닌데…….

하하(下下)면, 일반인 수준 혹은 그 이하다.

게임상의 설명이긴 했지만, 맞겠지.

수련을 아예 안 한 게 아닐 텐데.

이 처참한 체력을 어떻게 올려야 할지 벌써부터 막막하다.

근력이나 순발력도 마찬가지고.

[허허, 손이 느리구나.]

“또, 왜요?”

[무엇이든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련할 때도, 일상생활을 할 때도 모든 것에 집중하거라.]

“집중해서 뭐 해요? 양파 까는 실력 늘어 봤자 어디에 쓴다고.”

[어허, 사고방식 자체가 글러 먹었구나. 사흘이나 되는 시간이다. 날붙이에 조금이라도 더 익숙해지기 좋은 상황 아니더냐.]

이래서 요즘 것들은.

혀를 찬 천마는 양파를 까고 있는 설천위의 앞에 섰다.

[네 재능의 부족함은 매 순간의 집중으로 메워야 하느니라.]

“예?”

[내가 알려 준 심법의 호흡법을 항시 유지하고, 몸을 움직이는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하거라.]

“하나하나에요?”

[그래, 근육이 움직이고, 관절이 움직이는 모든 과정을 느끼고 제어하거라.]

“……그게 되면 이렇게 안 살았죠.”

재능의 부족이란 그런 것이다.

게임에서 설천위가 쓰레기 중 쓰레기로 평가받은 이유가 뭔가.

엄청난 노가다로도 메울 수 없는 처참한 재능 때문이 아닌가.

시작점도, 성장 속도도 느리다.

그나마 도술은 빠른 편이긴 하지만, 한계가 뚜렷하고.

답이 될 만한 건 강령술 정도…….

[어리석은 놈. 시작부터 그게 되는 녀석은 하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 노력해야 하는 건 네 녀석 같은 놈들이지.]

“예?”

[천재란 그런 것이다. 네가 하지 못하는 모든 것을 당연하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천재다.]

그렇다면 그 천재를 따라잡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겠는가.

그들이 당연하게 해내는 것을 이쪽도 당연하게 해낼 수 있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노력한다면, 인간은 해낼 수 있다. 이것이 약자가 강자를 이기기 위한 전제 조건이고, 무공이란 그런 발상에서 시작된 것이다.]

“…….”

천마의 엄한 목소리에 설천위는 입을 다물었다.

하긴, 생각해 보면 그렇다.

게임 속에서 설천위는 고작해야 주변 NPC.

유저가 훈련시키고 연구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처참한 재능.

생각해 보면, 설천위의 설정에 포기하고 절망했다는 문구가 있었다.

이 녀석은 스스로의 무능에 패배했던 거다.

나까지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긴, 답은 하나지.

죽음.

온갖 초고수, 괴이가 넘치는 육도(六道)의 세계에서 포기하여 도태된 자의 최후는 그것뿐이다.

설천위의 눈빛이 서서히 변한다.

강령술에 기대서, 지식에 기대서 어떻게든 상황만을 모면해 가려던 사고방식이 바뀐다.

‘좋구나.’

눈에 독기가 돌아왔다.

첫날 이후, 묘하게 점점 처지기 시작하더니 이젠 원래의 눈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어떤 계기로 바뀌었던 사고가 무능한 육체에 사로잡혀 또다시 침전되고 있었던 거겠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하긴, 그렇게 돼도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의 재능이긴 하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이 아이가 자신의 유일한 희망이니까.

* * *

생각을 바꾼 설천위는 그때부터 모든 일상생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걷고, 밥을 먹고, 수련을 하는 모든 과정.

그 과정에서 천마가 알려 준 심법의 호흡법을 유지했으며, 매 순간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그렇게, 숙수를 도와주기로 한 마지막 날 아침.

“오, 고생 많았네.”

“고생이라고 할 건 없었네요.”

“그 고생이라고 할 건 없는 일이 싫어서 도망가는 놈들 투성이인데 말이야.”

피식 웃은 장 숙수는 큼지막한 나무통을 내려놨다.

“네가 원하는 만큼의 피가 여기 있다. 충분하지?”

“예! 감사합니다!”

좋아.

이걸로 끝이다.

천마에 대해 살짝 반신반의하던 설천위는 이제 천마를 믿기로 결정한 상태다.

그의 도움은 확실한 발전을 만들어 주고 있었으니까.

이제 이 의식이 끝나면 천마의 도움은 더욱 확실해질 터.

게임 시스템이 재능이란 벽으로 막아 놓은 무공을 익히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다.

“오늘은 그것만 정리하고 가도 돼. 고생했다.”

“아뇨. 고생이라고 할 건…….”

“뭐야? 진짜 하잖아?”

설천위의 말을 끊고 들어오는, 조롱과 멸시로 가득 찬 목소리.

순간 몸이 굳은 숙수의 몸을 누군가가 밀친다.

덩치가 꽤 있는 숙수의 몸이 속절없이 밀려 나가고, 그 충격에 숙수가 바닥을 굴렀다.

“이야, 이 새끼 진짜 장난 아니네? 무림학관 생도가 양파나 까고 있어?”

조롱과 멸시를 넘어 분노까지 담겨 있는 목소리에 설천위는 미간을 찡그렸다.

그 목소리에 화가 나서?

아니다.

“아구구.”

아직도 제대로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숙수 때문이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

숙수는 몸은 건장하나 내공 하나 없는 일반인이다.

“진짜, 상도덕 없는 새끼들이네.”

이런 녀석들의 교육은 원래 주인공 중 하나가 맡아 주는 건데.

하지만, 일단 이 자리에 없으니…….

자력으로 처리해 보는 수밖에.

식칼과 양파를 손에 쥔 설천위는 일어난 상태 그대로 남자를 노려봤다.

어린놈.

나이는 끽해 봐야 18살?

하긴, 지금 보면 나보다 많은가.

설천위는 16살이니까.

약간의 자아 성찰과 함께 설천위가 욕을 쏟아 내려는 찰나, 천마가 그 입을 막았다.

[그만, 섣부른 도발은 우책(愚策)이다.]

뜬금없이 설천위의 시야를 가려 말을 막은 천마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확실하게 봤다.

자신에 대한 멸시나 조롱보다 쓰러진 숙수를 신경 쓰는 눈동자.

본인조차 제대로 된 무인이라 할 수 없는 반푼이이면서, 일반인을 걱정하는 저 사고방식.

그래.

이게 무인(武人)이지.

정사마를 떠나 무인이라면 이래야 한다.

[하루. 하루의 시간이면 된다. 의식을 진행할 수만 있으면 돼.]

‘……하지만.’

설천위의 눈빛을 읽은 천마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무인이란 뻔한 녀석들이지.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대로 하거라.]

“어이어이, 뭐냐? 겁먹어서 입이 얼어붙었냐? 앙?”

전형적인 양아치의 모습으로 한 걸음씩 다가오는 남자를 바라보며 설천위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라는 거냐, 이 쓰레기가.”

“앙? 쓰레기? 네가? 나보고?”

욕은 누가 하느냐에 따라 듣는 이의 기분에 큰 영향을 끼친다.

친구가 하면 친애의 표현으로 넘어갈 수 있고.

자신보다 우월한 사람이 하면 치욕감에 이를 악물 수 있다.

하지만, 자신보다 못한 인간이, 그것도 자신이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녀석에게 그런 말을 듣는다면?

거기서 생겨나는 감정은 단 하나뿐이다.

“이런 개X끼가……!”

분노.

주먹을 치켜드는 양아치.

이대로 주먹을 갈기겠지.

하지만.

“때릴 건가? 그럼 때려 보든가. 남들이 없는 곳에서 깨작깨작 시비나 거는 머저리가 그렇지 뭐.”

“앙?”

“나한테 제대로 이길 자신이 없으니까 이런 인적이 없는 곳에서 시비를 거는 거잖아?”

“이게 무슨 개소리를……!”

“하지만 어쩌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설천위의 눈짓에 고개를 돌린 양아치는 미간을 찡그렸다.

소동으로 모인 이들이 많았다.

하나같이 전부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들.

협박으로 입막음도 할 수 없는 숫자였다.

이대로 물러나야 하나?

양아치가 그렇게 갈등하는 순간, 설천위가 그 간지러운 곳을 긁어 줬다.

“내일, 공용 연무장에서 대련하자.”

“앙? 대련? 너랑 나랑?”

“왜? 쫄리냐?”

“이런 개…….”

다시금 쌍욕을 내뱉으려던 양아치는 이내 입을 다물고 입꼬리를 비틀었다.

멍청한 놈.

사람들이 많다는 걸 이용해 놓고 이런 자충수를 두다니.

“좋다. 내일 오시(午時: 11~13시)다. 도망치기만 해 봐, 다리몽둥이를 부러트려 놓을 테니까. 뭐, 나와도 부러트려 버리겠지만.”

비웃음과 함께 그대로 물러나는 양아치.

그 순간, 숙수에게 다가간 설천위는 곧바로 장 숙수를 챙겼다.

“괜찮으세요?”

“아니, 나는 괜찮네. 그런데 자네가…….”

미안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

저 양아치의 등급은 경(庚).

이따금 여기에서도 행패를 부리는 인간이다.

도저히 설천위가 이길 수 없는 상대.

장 숙수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어떻게든 되겠죠.”

무려 천마의 보장인데, 고작해야 양아치가 뭘 어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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