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3화 (3/624)

제3화

2화-낙제생 (2)

낙제생의 박치기와 함께 기절.

갑(甲)·을(乙)·병(丙)·정(丁)·무(戊)·기(己)·경(庚)·신(辛)·임(壬)·계(癸).

이 계급에서 규도의 계급은 신(辛).

하위권이라 할 수 있는 신급(辛級)이지만, 계(癸)급에 졌다는 건 큰 문제였다.

실패자라고 불리는 낙제생.

그 밑바닥의 존재가 바로 계(癸) 아니던가.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삼류 무사 이하의 머저리들이다.

재능이 없는 걸 떠나 무(武)의 길을 걷는 것 자체가 수치인 자들.

정파에서 만든 무림학관에서 재능이 없다고 대놓고 내쫓을 수 없으니 눈치껏 나가라고 만들어 놓은 자리다.

폐가 수준의 기숙사, 전혀 없다시피 한 지원이 그것이다.

그런 녀석한테 기절을 당해?

개인의 수치를 넘어서서 거의 가문의 수치다.

그렇게 규도가 학관 내에서 조롱의 대상으로 등극했을 때.

설천위는 천천히 눈을 떴다.

지끈거리는 머리.

그리고…… 웬 영감?

[낄낄낄, 드디어 눈을 떴구먼. 며칠 정도는 이 녀석이나 지켜볼까.]

공중에 떠서 수염을 쓰다듬는 노인은 이상한 헛소리를 했다.

지켜보긴 뭘 지켜봐.

아니, 그전에…….

“왜 공중에 떠 있는데?”

멍한 정신 탓에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입으로 내뱉은 설천위는 미간을 찡그렸다.

어떻게 박치기로 기절시킨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이 노인은…….

[음?]

하지만 설천위보다 놀란 건 노인이었다.

[네 녀석, 내가 보이는 게냐?]

조금 들뜬 목소리.

묘한 흥분이 담겨 있는 목소리에 설천위는 상체를 일으켰다.

“예. 그런데 누구세요?”

[으잉? 누구? 크, 크하하하하! 역시 웃기는 녀석이구나!]

허공에 떠 있는 몸.

선명하지 못한 몸체.

딱 봐도 유령이다.

그런데 이런 반응이라?

입꼬리를 비튼 노인은 이번엔 지그시 설천위의 눈을 바라봤다.

[귀신을 본 적은 없을 것인데, 생각보다 더 담담하구나.]

영안(靈眼)에도 등급이 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게 아니라, 후천적으로 얻었다면 하급일 확률이 높다.

존재감이 약한 잡귀는 제대로 보지도 못할 수준이다.

그것도 이제 막 발아한, 새싹 중의 새싹.

살면서 귀신을 제대로 봤을 일은 없을 터인데…….

이렇게 담담하다고?

[이상하구나. 너는 얼마 전에 봤을 때만 해도 소극적이고 겁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자세히 보진 않았지만, 구석에서 수련하던 모습은 기억난다.

이번처럼 괴롭히면 얌전히 맞던, 소극적인 아이.

노인이 기억하는 설천위는 그런 아이다.

노인이 품은 의문과 별개로, 설천위 또한 고민하고 있었다.

‘이건 또 뭐야.’

눈앞에 나타난, 반투명한 알림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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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보다 두 단계 높은 상대에게 승리하였습니다!

추가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업적 달성!

보상이 주어집니다.

스킬 [영안(靈眼)(下中)]을 습득합니다.

특수 스탯 영력(靈力)이 개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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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안이랑 영력?

중반이나 가야 얻을 수 있는 스킬이랑 스탯인데?

그러고 보니…….

‘2단계 이상 차이 나는 적을 상대로 이긴 적이 없네.’

육도(六道)라는 게임에서 무림학관은 꽤나 비중 있는 역할을 지니고 있다.

심지어 졸업 후에도 연관된 이야기가 나오니까.

당연히 그 내부 시스템도 상당히 치밀하게 짜 놓은 편인지라 2단계의 차이는 생각보다 더 넘기 힘들다.

2단계 차이를 비빌 수 있을 만한 스탯과 스킬을 찍으면 칼같이 승급시켜 버리니까.

그래서 상당한 고인물이었던 설천위도 2단계 이상의 적을 잡아 본 적이 없다.

‘이렇게 좋은 보상을 주는지 알았으면 해 볼걸.’

뭐, 솔직히 안 되긴 했겠지.

가장 최하위인 계(癸)가 아니었다면 무리일 테니까.

저 위에 있는 놈들은 한 단계, 한 단계 차이가 진짜 격이 다르다.

유저도 그걸 체감하고.

무림학관에서 갑 등급을 찍는 걸 전문으로 도전하는 녀석도 있을 정도였으니까.

‘……잡생각은 여기까지.’

쓸데없이 흘러가는 생각을 정리한 설천위는 상태창을 열었다.

영력이 뭔지는 알지만 그래도 확인해 볼 필요는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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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설천위

나이: 16세

레벨: 1

근력 下下

체력 下下

순발력 下下

지력 中下

정신력 中下

내공 下中

영력 下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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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은 그대로다.

아마 게임 그대로 경험치를 스탯에 투자해 올라가는 스탯만큼 레벨이 오르는 형태겠지.

스탯은 올리기 힘든 만큼 신중히 찍어야 하고…….

터치하면 설명이 나오는 방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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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력: 혼의 질과 크기. 높으면 높을수록 영적인 방어력과 공격력이 상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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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네.

설명이 간단한 것도 그대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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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안(靈眼)(下中)(一星)]

-숙련도 1/100

혼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되는 능력.

다만, 현재는 그 능력이 약해 존재감이 강한 혼만을 제대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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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은 숙련도로 올리는 시스템인 것도 같네.

이쪽은 노력과 투자로 해결할 수 있는 분야다.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상태창과 스킬창을 닫았다.

“그래서, 영감님은 누구세요?”

[이놈이 여태까지 내 말을 다 귓등으로 흘리고 있었구나.]

설천위가 고민하는 사이, 혼자 열심히 떠들었던 노인이 미간을 찡그렸다.

하여튼 요즘 것들은…….

작게 혀를 찬 노인은 쓸데없는 말은 다 털어 내고 바로 본론을 꺼냈다.

[내가 네 스승이 되어 주마.]

“싫은데요.”

* * *

정신을 차리고 얼마 뒤, 깨어난 걸 확인한 의원은 곧바로 설천위를 내쫓았다.

물론 약도 없다.

계급(癸級)에는 약재 지원이 없으니까.

부어오른 이마가 아프다.

다행히 그렇게 엄청 크게 붓진 않았지만…….

[어허, 내가 누군지 알고 거절한단 말이냐!]

“알아요. 아까 말씀하셨잖아요.”

[그러니 문제라는 거다! 내가 누구인데……!]

“천마라면서요.”

기숙사 침대에 대충 누운 설천위는 흥분해서 소리치는 노인, 천마를 가볍게 무시했다.

천마(天魔).

무협 세계관에서는 거의 라스트 보스급의 이름이다.

문제는 라스트 보스급이라는 점이다.

악역.

설천위를 비롯한 대부분의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있는 정파의 적이다.

무공으로 정파인지 마도인지 구분이 되는 상황에서 천마의 무공을 익힌다?

아마 무림 공적으로 찍혀서 피똥 싸게 도망치다가 죽을 거다.

어림도 없는 소리.

거기다.

‘마교는 거의 망한 세력일 텐데.’

육도(六道)에서 마교는 꽤 자주 언급되지만, 실질적인 등장은 극히 적은 세력이다.

뭐 차기작에서 나올 거라는 이야기가 많긴 했지만.

여하튼 정체도 잘 모르는 조직의 수장한테 무공을 배우는 건 썩 좋지 못한 선택이다.

무엇보다 눈앞에 있는 노인이 천마라면 그게 더 웃기다.

아니, 여기가 어딘데.

정파 무림의 최심부 아닌가.

여기에 천마의 영혼이 왜 있어?

뭐, 영안의 설명을 봐선 좀 강한 사람인 건 맞는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이 노인에게 배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설천위가 시종일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천마는 미간을 찡그렸다.

이 허름한 기숙사.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 사는 녀석들은 대체로 이런 기회가 오면 무조건 잡으려 들 텐데…….

아무래도 접근 방법을 바꿀 필요가 있어 보이는군.

판단을 바꾼 천마는 헛기침과 함께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공 때문에 마교로 몰릴까 봐 걱정돼서 그러는 것이냐?]

“뭐, 그것도 있죠.”

[그런 거라면 걱정할 필요 없다. 나는 정파의 무공도 많이 알고 있으니.]

“그럼 더 문제죠. 다른 문파의 무공을 훔쳐 배운 건데.”

[허허, 무례하구나. 내가 그렇게 멍청해 보이더냐? 당연히 내가 만든 무공이다.]

한결 말투가 부드러워진 천마는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갔다.

자신에게 배우면 어떤 장점이 있고, 네가 생각하는 그런 단점은 없을 거다.

[기초 훈련에도 격이 있는 법이다. 정확한 자세는 모든 것의 기본이지. 너는 그것을 할 수 없지만 내가 일대일로 봐준다면 할 수 있을 거다.]

[모든 동작을 정확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빠르고 완벽하게 습득할 수 있다는 소리지.]

[나는 혼이니 네가 수련하는 모든 과정에 붙어서 지도해 줄 수 있으니 이만큼 좋은 일이 어디에 있겠느냐?]

본격적인 설득에 설천위는 조금씩 귀를 기울였다.

이 할배, 말에 설득력이 있네…….

“……그럼 한번 배워 볼까요?”

[좋은 선택이다.]

“나중에 막 마교를 되찾아 달라, 당대의 천마가 되어 달라, 그런 부탁을 해도 못 들어줍니다?”

[물론이다. 내 하늘에 대고 맹세하마. 그런 부탁은 하지도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거라.]

천마는 그 손을 설천위의 어깨에 올리며 씨익 웃었다.

[나만 믿어라. 확실하게 강하게 만들어 줄 터이니.]

* * *

“……누구?”

“설천위 말입니다.”

“그 벌레가 왜?”

“최근 기묘한 행동을 한답니다.”

“기묘한 행동?”

“예. 먼저 안 하던 아침 수련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침 수련.

무인의 기본이지만 스스로 안 된다는 절망에 빠진 설천위는 그 노력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신(辛) 계급 이하의 학생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이 학관 내에서 밑바닥을 맡은 녀석들은 전부 무력감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버러지들이다.

혐오와 경멸이 가득한 눈빛.

병(丙) 계급의 학도, 설천강의 눈빛에 도백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배다르다곤 하지만 그래도 동생인데, 저런 눈빛이라니.

호남의 설가(雪家).

하남성과 하북성 사이에 있는 이 학관에선 조금 멀지만 그 이름만큼은 잘 알려진 가문이다.

이 학관이 세워질 때 무공을 기부한 가문이기도 하고.

그 가문의 적자인 설천강은 몇십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이지만, 그 성격이 냉혹하기로 유명했다.

재능 없이 빌빌거리는 배다른 형제는 핏줄로 취급하지도 않을 정도로.

그러면서도 가문의 이름에 먹칠할까 싶어 설천위의 행보에 귀를 기울이는 꼴이라니…….

솔직히 말해서 정파인으로서는 자격 미달이다.

협과 의는 개나 줘 버린 듯한 모양새니까.

‘하지만 뭐…….’

그게 무슨 상관인가.

강하면 장땡인 세상이거늘.

그래도 저 썩은 눈빛은 보기 싫네.

빨리 본론만 말하고 이 대화는 넘길까.

“이상한 것들을 모으고 있다더군요. 특이한 풀 같은 걸요.”

* * *

“……이거 진짜 맞아요?”

[어허, 아직도 의심하는 것이냐?]

“아무리 봐도 그냥 잡초인데요. 주변에 겁나 널려 있고.”

풀을 손에 쥔 설천위 주위엔 그와 비슷한 풀이 가득했다.

일단 필요하다고 하니 어떻게든 재료를 모으긴 하는데…….

이럴 시간에 아침에 했던 훈련이나 반복하는 게 나을 듯싶은데.

[그 풀의 즙을 짐승의 피와 섞으면 의식에 필요한 재료가 된다.]

“음…….”

[그리고 아침마다 수련하니 알고 있지 않으냐? 혼자 수련해선 답이 없다는 것을.]

응, 그건 맞지.

지식으로 알고 있다면 반복해서 할 때마다 조금씩 발전하기 마련이다.

최소한 어느 정도 선까지는.

그런데 이놈의 몸뚱이는 그 발전이란 게 아예 없다.

천마가 계속해서 말로 지적을 해 줘야 그나마 조금 발전하는 수준.

[의식을 거행하면 내가 직접 네 몸에 손을 댈 수 있다. 그렇다면 자세를 확실하게 잡아 줄 수 있지.]

“으음.”

[게다가 이번에 네가 익힌 심법은 혼과 연결되면 연결될수록 좋은 점이 생기니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니라.]

천마에게 배운 심법은 게임 내에서도 본 적이 없는 거라 잘 모른다.

심지어 이 저주받은 몸뚱이는 아직도 그 심법을 스킬로 체득하지 못했다.

스킬창의 설명도 볼 수 없는 상황.

일단 믿는 수밖에 없나.

작게 한숨을 내쉰 설천위는 다시 열심히 풀을 뜯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짐승의 피는 어디서 구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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