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서(序)
육도(六道).
게이머들이 명작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 대작.
무협을 배경으로 한 방대한 세계관.
멋들어진 액션과 연출.
선택에 따라 뒤바뀌는 수많은 스토리.
맵 곳곳에 존재하는 수많은 히든 피스들까지.
정말 뛰어난 대작이다.
뛰어난 대작이긴 한데…….
“……게임 속으로 들어오고 싶을 정돈 아니었는데.”
낯선 천장을 마주한 소년은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 * *
무림학관.
무림맹 지부에 소속되어 있는 이 기관은 젊은 후기지수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다.
입관하는 나이대는 15세부터 25세까지 다양.
또한, 나이에 상관없이 계급으로 급을 나누며 졸업할 때의 계급에 따라 맹에 들어갈 때의 지위가 바뀐다.
치열한 경쟁 사회인 이 학관 내에는 당연히 도태되는 자들이 존재한다.
낙제생이라 불리는 이들.
배경, 인맥 등의 이유로 이곳에 들어왔지만, 내부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가장 아래 단계인 계(癸)에 떨어진 자들.
“그게 나야, 빠 둠빠 두비두바.”
낡은 숙소.
갑자기 헛소리를 지껄이는 학우의 모습에 배천은 미간을 찡그렸다.
저 자식이 진짜로 맛이 갔나.
순진하게 헤헤 웃기만 하더니 속에선 곪고 있었구나.
어제 하루 종일 멍하니 있을 때 육포라도 좀 쥐여 줄 걸 그랬나.
짜증 뒤에 찾아온 안타까움에 말을 삼킨 배천은 이내 관심을 끊었다.
자기 앞가림하기에도 바쁜데 뭔 오지랖이냐.
배천이 다시 운기조식을 시작할 때, 헛소리를 지껄였던 학우가 침상에서 일어났다.
“……미친.”
꿈이 아니네.
사고의 흐름대로 흘러가던 생각을 입으로 뱉어 봤지만 목소리만 선명하다.
가볍게 뺨을 두드린 학우, 천희는 한숨과 함께 주위를 둘러봤다.
꼬질꼬질한 거적때기, 아니 모포.
낡고 허름한 침상.
벌레가 여기저기 기어 다니는 목재 천장.
지금껏 이런 장소에 살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이 몸은 살아 봤겠지만 천희는 아니다.
‘게임 속에 들어왔다는 건 진짜 오버인데…….’
심지어 그게 육도(六道)라니.
이 게임이 재미있는 건 맞지만, 세계관이 상당히 어둡다.
암약하는 세력도 많고, 또라이는 더 많다.
일반 백성의 목숨은 풍전등화나 다름없고, 무인이라고 해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엑스트라들은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다 하면 수천, 수만 단위로 쓸려 나가니까.
게임에서야 1도 신경 안 썼지만, 내가 그런 입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네.’
미간을 찡그린 천희는 한숨과 함께 침상에서 일어났다.
뭐가 됐든, 상황 파악이 우선이다.
기숙사로 보이는 폐가에서 나온 천희는 일단 밖을 걸었다.
어제 얼이 나간 채로 있을 때 얼핏 들은 바로 이곳은 육도의 세계관이 맞다.
벌써부터 유명한 몇몇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이름을 들었으니까.
그런 캐릭터들에게 빙의되었다면 얼마나 좋단 말인가.
천무지체, 음양지체 등등 좋은 건 하나씩 다 가진 녀석들 아닌가.
아쉬움을 삼킨 천희는 무작정 걸으며 분위기를 살폈다.
어차피 이쪽엔 관심도 없을 테니 쓱 둘러보면서 공기나 읽자.
이 몸의 기억이 없는 지금, 정보를 최대한 모을 필요가 있다.
주변의 흐름을 타기만 해도 반은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약 삼십 분 정도 걸었을까.
천희는 이상한 느낌에 미간을 찡그렸다.
숨이 슬슬 거칠어지고 있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단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무시당하고 있다.
길가에 지나가는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는, 그런 무시가 아니다.
조롱과 멸시.
눈이 마주친 사람들마다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마치 같잖게 어딜 돌아다니느냐는 듯한 눈빛.
보통이라면 아무리 낙제생이어도 이 정도 취급은…….
“아.”
짧은 탄식과 함께 정신을 차린 천희는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거울 혹은 물이라도.
내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게 필요하다.
게임 속 세계관이니까 상태창 같은 거라도 뜨면 좋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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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설천위
나이: 16세
레벨: 1
근력 下下
체력 下下
순발력 下下
지력 中下
정신력 中下
내공 下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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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 관련 모든 스탯이 가장 낮은 下下로 도배된 상태창.
이 상태창을 천희는 몇 번이나 봤다.
이름이 비슷해서 몇 번이나 데리고 다녔던 주인공의 동료 캐릭터.
노쓸모의 대표 주자.
설천위.
“이건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새끼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