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향 210화
八章
남아 있는 칠 인의 상급 마인들을 잡아들인 패도맹은 그들을 가두기 위하여 귀주의 흥인(興仁) 인근에 거대한 뇌옥을 만들었다.
뭐, 뇌옥이라고 해 봤자 기존에 있던 작은 장원을 사들여 안에 굴을 파고 죄수들을 가둬 둔 것뿐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무사들은 이 뇌옥이 천강시를 잡기 위한 미끼임을 알았다.
그 장원으로부터 사 리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을 여러 곳에 무사들을 배치시켜 두었기 때문이다.
무공을 모르는 양민에게는 사 리도 먼 거리이겠으나, 일류 이상의 무인들에겐 코앞이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천강시가 나타난다 해도 마인들을 꺼내 먹는 순간 장원은 포위되고 말 것이다.
“미끼를 물었습니다.”
두 달, 천강시를 기다린 지 두 달 만에 들려온 소식이었다.
천강시는 상급의 마인을 쫓는다는 오일상의 예상대로, 패도맹에서 남아 있는 상급 마인들을 잡아 가두니 천강시에 의한 살육 행위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하나 어인 일인지 마물은 쉽사리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
상급 마인 일곱은 패도맹의 뜻에 따라 하루에 세 번씩 마기를 일으켰으나 이 또한 그리 큰 성과는 없었다.
한데 조금 전 천검각의 직속 정보 조직에서 보내온 정보에 따르면, 천강시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었다는 것이다.
강대한 적이 나타났다는 것은 기뻐할 일이 아니라 경계해야 할 일이었다.
하나 마영은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그가 기뻐하는 이유는 그만큼 자신만만하였기 때문이다.
지난 두 달 동안 패도맹은 놀고먹지 않았다.
십만이 넘던 토벌군 무사들을 삼만으로 줄여 최정예화하였고, 마영 스스로를 비롯해 천하에서 난다 긴다 하는 진법가들을 끌어모아 사상 최악의 절진들을 뇌옥 주변에 깔아 둔 상태였다.
시험 삼아 그곳에 한 번 갇혀본 장왕이 천왕 송산도 어느 정도 잡아 둘 수 있을 거라 장담할 정도이니, 그 위력에 대해선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육왕칠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풍마와 악가의 창왕이 흔쾌히 응하였고, 패도맹의 장로인 암제 당위룡과 살왕 등을 불러들였다.
장왕의 경우 천강시와 직접 겨루어본 적이 있는 터라 이를 갈고 있어서 설득할 필요조차 없었다.
금마는 중상이라 불가능했지만, 다행히 육왕칠사에 버금간다는 귀면호리를 끌어들일 수 있었다.
귀면호리도 금마와 같이 천강시에게 당해 중상이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는 회복이 빨랐다.
마지막으론 천왕 송산을 패퇴시킨 적제.
심의경에 도달한 고수들이 무려 일곱이 모였다.
삼만의 정예 무사와 자연 경관을 바꿔 버릴 만한 일곱 명의 고수들, 그리고 천하제일의 진법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설치한 사상 최악의 기관 진법.
자신감이 없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흐흐흐…… 어서 오너라, 마물아. 명년 오늘이 네 제삿날이 될 테니…….”
“누가 보면 자네가 악당인 줄 알겠군.”
적제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예? 무슨 그리 서운한 말씀을…….”
“너무 전형적인 악당의 말투이지 않은가.”
“음.”
마영은 남은 손으로 볼을 긁적이며 입맛을 다셨다.
“그나저나 자네, 요새 너무하지 않은가?”
“무슨 소립니까?”
“팔 하나 없다고 모든 서류를 내게 넘기는 거 말일세.”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눈도 하나 없습니다.”
“…….”
적제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마영이 씩 하고 웃으며 일어섰다.
“불편한 몸의 부하를 위해 주군이 그 정도는 해주셔야지요.”
“나도 바빠!”
적제가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그러자 마영이 한숨과 함께 물었다.
“제가 서류 작업할 때 기억 안 나십니까?”
“허험…….”
할 말이 없었다. 마영이 쌍코피를 흘리며 일할 때, 그가 하던 일은 주로 잠을 자거나 무공 수련이었다.
두 사내는 투덜대는 것을 멈추지 않으며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밖으로 나갔다.
아직 천강시가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밖은 전쟁터처럼 바쁘게 돌아갔다.
천강시에 대한 지침이 미리 내려간 상태였기 때문이다.
전서구 수백 마리가 한꺼번에 떠나고 돌아오기를 반복했고, 무사들은 설치된 진법을 피해 정해진 장소로 이동했다.
그렇게 뇌옥이 비워지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삼만여 무사들은 삼사 리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기로 하였고, 천강시를 가장 먼저 맞이할 자들은 적제를 포함한 일곱 명의 고수들이었다.
육왕칠사가 무려 다섯이나 섞여 있었지만, 모두 자존심이 굉장해서 천강시와 먼저 겨루기 위해 다투는 건 아닐지 걱정될 정도였다.
하지만 다들 작금의 사태가 꽤 심각해진 것을 알고 있던 터라 그런 알력 다툼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는가.”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창왕이었다.
뒤이어 풍마가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얼마 후 귀를 찢어버릴 듯한 파공음과 함께 장원 한가운데에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앙----!
조그만 전각 한두 개가 가루가 되고,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하나 칠 인의 고수들 주변으론 무형의 막이라도 있는 듯 튕겨져 나갔다.
피어오른 먼지가 어느 정도 사그라지자 그 사이에서 흑의 무복을 입은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갓 이십 대 중후반 정도로 보였으나 상당히 준수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는 주변을 슬쩍 돌아보더니 말했다.
“노인네들이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기어 나오셨군.”
그의 가벼운 도발에 넘어갈 만큼 단순한 자들은 여기 없었다.
하나 일단 대표는 필요했기에 적제가 앞으로 나섰다.
“너야말로 함정인 줄 알고 왔겠지? 요괴 놈아.”
“크크, 사부나 제자나 사람 성질 긁는 덴 뭐가 있단 말이야.”
“……초운을 아나?”
“그럼, 아주 잘 알지. 녀석이 더 나은 경지로 돕기도 했는걸.”
“뭐라?”
천강시는 피식 웃더니 엄지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녀석의 사제 열다섯 명을 녀석이 보는 앞에서 죽여 버렸거든. 일종의 충격 요법이었지. 킥킥킥.”
만약 앉아 있었다면 무릎이라도 쳤을 만큼 그는 크게 웃었다.
적제는 열다섯이라는 소리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저자가 어떤 아이들에 대해 지껄이는지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네놈…… 곽호냐?”
“정답!!”
적제의 눈이 순간 차갑게 빛나며 의형검이 천강시의 육체에 파고들었다.
파파파팟!
하나 천강시의 육체는 인간의 것과는 다른, 기운 그 자체였다.
의형검이 꿰뚫고 들어갔지만 그의 몸을 구성하는 기운만 흐트러졌을 뿐 아무 이상도 없었다.
게다가 손해도 전혀 보지 않은 듯했다.
“하하하하, 환영 인사가 너무 과격하군.”
그는 허공에 붕 떠오르며 말했다.
“기다려! 어딜 가는 것이냐.”
“상대하라면 할 수 있겠지만, 오늘은 인사차 들른 거다.”
적제는 장원을 둘러싼 수십 종의 진법을 모두 발동시켰다. 그러나 그마저도 곽호가 손을 내젓자 허무하게 사그라졌다.
그때였다.
“헐헐헐. 노부 앞에서 인사차 들렀다고 하다니, 웃기는 놈이로군.”
풍마의 풍마곤이 곽호의 어깨를 뚫고 지나갔다.
하나 그마저도 그저 물을 때리는 듯한 느낌.
경험 많은 노강호인 풍마조차 당황하고 말았다.
앞서 적제의 의형검이 실패했을 땐 눈을 속이는 환영이라 여겼다.
한데 자신의 풍마곤마저 같은 꼴을 당하니 놀랄 수밖에.
“비키시오.”
장왕의 집채만 한 장영(掌影)이 곽호의 전신을 집어삼킬 듯하였다.
하지만 곽호는 되레 팔짱을 끼며 그것을 그대로 받았다.
이어진 살왕의 검공도, 암제의 암기술도 소용없었다.
내로라하는 초고수들의 공격이 하나도 먹히지 않는 것이다.
“저건 선술이오. 아니, 단순한 선술이 아니라 신선술이지.”
귀면호리가 이를 갈며 소리쳤다.
다들 놀랐다. 천강시의 재료가 시해선의 유해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선술까지 쓸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야…….
“신선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풍마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다른 이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곽호는 통쾌한 듯 배를 잡고 웃었다.
“그래. 잘 아는군, 영감. 이 몸은 애당초 내 그릇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신선으로서의 능력을 제한 없이 쓸 수 있는 그릇.”
“……몸을 바꿨다는 말이로군. 본체는 어찌했나?”
귀면호리가 물었다. 그게 뭐 어렵겠냐는 표정을 지으며 그가 답했다.
“까마귀밥으로 던져줬다. 한데 까마귀도 먹지 않으려 하더군. 그래서 태워서 야산에 뿌려 버렸지.”
“허…….”
귀면호리가 본체에 대해 물은 이유는, 혹시나 약점이라도 될까 해서였다. 한데 자기 본체를 태워 버렸다는 건 약점이 아니라는 뜻이다.
“곽호…… 그것은 천강시의 몸이다. 분명 제한이 있을 텐데……. 저주도 저주지만 다신 등선을 못할 수도 있다.”
“상관없다. 아니, 더 잘되었군.”
“뭣?”
귀면호리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상관없다고 했다. 더러운 선계에 오르느니, 하계에서 영원히 저주받고 살 생각이다.”
“허…….”
원한이 큰 줄은 알았으나 저 정도일 줄이야.
그는 평생 수많은 인간들을 봐 왔지만 등선을 거부할 정도로 원한에 사무친 인간은 처음 보았다.
곽호는 다시 하늘로 떠오르며 말했다.
“등천신교가 멸망한 것이 단순히 정파의 질투 때문이었을까? 귀면호리, 너라면 알고 있겠지……. 그것은 선계의 획책이었다. 하늘의 섭리를 조종한다는 특권 의식에 빠진 쓰레기들이 등천신교를 마교로 탈바꿈시켰다.”
“그건 너무 심한 비약이야. 선계는 섭리를 조종하는 게 아니라 따르는 자들이다.”
“선근이 없어 신선도 인간도 되지 못한 반선 따위가 뭘 안다고 지껄이는 거냐?”
“…….”
확실히 경지라는 측면에선 그는 곽호를 넘어서지 못했다.
곽호가 아직 인간이었다면 해볼 만할지도 모르겠으나, 선경에 들었다가 그것을 뒤틀어 하계에 남아버렸으니 자신은 상대가 되지 못했다.
아니, 세상에 누가 있어 살아 있는 신선을 상대할 것인가.
저것은 이미 지상에 강림한 신이나 마찬가지였다.
-하늘은…… 타락했다. 때문에 그들이 관조하는 이 세계도 타락하였다. 이제!!
장원 위로 높이 떠오른 곽호가 천리전성을 사용했다. 그러자 그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이천 리 안에 있는 모든 인간들의 귀에 그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사실상 대륙 전역에 그의 목소리가 퍼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곽호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내가 이 타락한 세상을 멸하여 인간을 구원하겠다.
오만했다. 미쳤다. 하나 그것은 빈말이 아니었다.
과거 천마 전설 무렵의 천강시와는 그 수준이 달랐다. 하계에서 신선의 힘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존재인 것이다.
신선이 하계에 내려오지 않는 한 그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없다. 모든 인간이 그를 죽이려 할지라도 그는 죽지 않는다.
결국 저자의 뜻대로 되고 말리라.
곽호가 다시 말했다.
-얌전히 멸망에 이르거라. 먼저…… 죽은 자가 일어나리라.
곽호의 선술이 천리전성을 타고 천하 도처로 퍼져 나갔다.
적제 등의 고수들의 가슴속엔 절망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