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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향-207화 (207/217)

검향 207화

“유기 사형의 말에 따르자면, 그 아저씨 뭐가 잘못됐는지 휙 돌아버렸다더군. 그래서 잘못된 비술에도 손을 댔고…… 여튼 그 비술을 사용해 네 몸을 취하려 할 거야.”

“…….”

꽤나 충격적인 이야기임에도 초운은 흔들리지 않았다. 아니, 아예 남의 일을 듣는 것처럼 초탈했다.

“놀라지 않는구나. 알고 있었냐?”

“아니요, 그건 몰랐어요.”

“근데 왜 그리 태연하지?”

그의 물음에 초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악휘구의 등 너머를 바라보며 밝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악휘구는 누가 오는 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원래 유기와 했던 약속대로 초운에게 말했다.

“유기 사형이 여기 오면 늦는다. 그러니 그전에 대답해 줘야겠다. 너, 유기 사형을 죽여줄 수 있겠냐?”

초운은 일언반구 말할 가치도 없다는 듯 환한 미소와 함께 답했다.

“안 해요.”

“그럼 안 돼, 인마! 네가 유기 사형을 죽이지 않으면 넌 곽호에게 몸을 빼앗긴다! 잘 모르겠지만…… 지금의 넌…… 지금의 넌…… 유기 사형을 죽일 수 있을 거야.”

중간에 인간이 아닌 것 같다는 소리는 차마 하지 못하는 악휘구였다.

“네, 전 유기 사형을 죽일 수 있어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럴 능력도 어찌 된 일인지 생겨 버렸어요. 하지만 죽이지 않을 거예요.”

“어째서지?”

유기였다. 어느새 악휘구의 곁까지 다가온 그가 초운을 향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에 대한 초운의 대답은 단순 명료했다.

“사형이니까요. 내 가족이니까요.”

“…….”

“그래서 죽일 수 없어요. 아니, 죽이지 않아요.”

유기는 반가운 마음보다 초운에게 서운했다.

그가 볼 때 초운은 이미 반쯤은 벗어난 자였다. 선체를 제대로 타고났기에 자신처럼 모자란 반선이 될 가능성도 없었다.

선계에 오른다면 필시 높은 직위에 오를 것이 분명했다. 때문에 지금은 보일 것이다.

자신의 고통이…… 슬픔이…….

그리고 그것을 풀어줄 방법도…….

그런데 거절한다.

자신은 선계에 올라 고귀한 몸이 될 거면서, 사형의 하나뿐인 원은 들어주지 않는다.

“너도 똑같구나……. 선계의 위선자들과 똑같아. 너도 나를 도구로 여기는 것이냐?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영원히 고통스러워하며 살라는 소리더냐?”

“…….”

초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반가움으로 가득하던 미소가 지워져 있을 뿐이었다.

“큭큭큭, 그러게 그 반열에 오르는 놈들은 대게 비슷하다고 하지 않았나, 유기.”

곽호였다. 피고름이 덕지덕지 묻은 붕대로 전신을 휘감은 그는 흉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오랜만입니다, 아저씨.”

“악가의 애송이로군.”

악휘구가 목인사를 해 왔다.

하지만 악휘구의 의도는 단순한 인사가 아니었다. 그는 들고 있던 철창으로 곽호의 심장을 꿰뚫으려 했다.

콰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충격파가 뒤따랐다.

하나 악휘구는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어느새 곽호의 앞에 나타난 유기가 손가락 하나로 그의 창을 막아버린 것이다.

“사형…….”

“녀석이 하지 않는다고 했다…….”

“…….”

“녀석이 날 버렸다…….”

“사형! 아니에요, 좀 더 설득하면…….”

그때 곽호가 끼어들며 유기에게 말했다.

“알다시피 내겐 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 유기. 그러니 잘 결정하게. 확실한 죽음을 내려줄 나인가? 가족이니 어쩌니 하며 헛소리를 지껄이는 초운인가?”

“…….”

유기는 짧은 고민을 끝내고 악휘구를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땅에서 검은 촉수가 튀어나와 악휘구를 감쌌다.

“크윽!”

“그것은 내일이나 되어야 풀릴 게다.”

“안 돼! 초운아, 도망가!”

악휘구가 초운을 바라보며 외쳤다. 하지만 초운은 그저 웃기만 할 뿐 도망갈 생각도, 그렇다고 공격을 할 생각도 없는 듯했다.

유기의 가슴에서 빛이 터져 나오며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인도자 유기……. 너를 선계로 인도해 주겠다. 다만 너의 육신은 곽호가 차지할 것이다.”

초운은 반항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잠시 후 그의 영이 양신과 포개어지듯 합일하였고, 천상으로부터 한줄기 빛이 떨어져 내렸다.

곽호가 소리쳤다.

“지금이다! 신인환신대법!”

그가 천명비고에서 얻은 또 다른 비술이 붉은 빛과 함께 시작되었다.

* * *

아이는 자신의 어미와 아비가 다신 깨어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다.

마을 사람들이 던진 돌도 더 이상 아프지 않았고,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뜨끈한 피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아…… 아…….”

크게 벌린 입에선 울음이 터져 나오지 않는다. 그저 간헐적인 신음과 함께 소리 없는 눈물이 이어졌다.

아이는 속이 타는지 자신의 가슴을 움켜잡으며 죽은 아비의 가슴에 이마를 비벼댔다.

마을 사람들은 이 안타까운 상황에도 악귀와 같은 형상으로 돌을 집어 들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아이의 곁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마치 더러운 것을 본다는 듯, 그들의 얼굴에는 혐오감이 가득했다.

여리디여린 아이의 몸에 돌이 떨어졌다.

살이 갈라지고 피가 튀었다. 그러나 아이의 공허한 눈은 여전히 어미와 아비의 시신에 가 있었다.

아이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부모의 곁으로 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때였다.

“어허! 이 무슨 천인공노할…….”

창노한 음성과 함께 푸른 도포를 입은 노인 하나가 아이의 앞을 가로막으며 날아오는 돌들을 쳐냈다.

노인이 아이를 향해 물었다.

“괜찮으냐?”

“네.”

노인은 아이의 손을 잡았고, 아이도 그의 손을 잡았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하나 아이도 노인도 그것을 인식하진 못했다.

아이의 부모님을 어느 산자락에 묻으며 노인은 아이에게 이름을 물었다.

“그래, 네 이름은 무엇이냐?”

아이는 대답했다.

“초…… 운(椒韻), 진초운…….”

“그래, 초운아. 이 할아비는 청연(靑聯)이라 한단다. 도명(道名)이지.”

초운이라는 이름의 아이는 왠지 그의 도명을 어디선가 들어 본 것이라 생각했다.

* * *

시간은 다시 유수와 같이 흘렀다.

아이의 키는 조금 자랐고, 청연이란 노인과 함께 화산을 오르는 중이었다.

“초운아, 배고프냐? 할아비가 벽곡단 주랴?”

“아뇨, 아까 먹어서 배 안 고파요.”

아이는 행복했다. 청연이란 노인의 얼굴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를 슬픔이 느껴졌지만, 그래도 그 따뜻함이 마냥 좋았다.

* * *

“이 아이입니까, 사백조님?”

어딘가 신경질적이고 무뚝뚝해 보이는 사내였다.

그는 청연자를 향해 사백이라 부르고 있었다.

아이는 저 무섭게 생긴 사람도 왠지 낯이 익었다.

어딘가 그립다고 생각했다.

그가 아이를 향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장 이리 나오너라. 사부를 보았으면 인사를 올려야지.”

“크흠. 초운아, 괜찮다. 해치지 않아.”

청연이 웃는 낯으로 초운을 달래자 적오가 작은 목소리로 투덜댔다.

“해치지 않아는 뭡니까, 해치지 않아는.”

* * *

아름다운 매화잎이 날리는 중에 아이의 사부는 이십사수매화검을 펼쳤다.

아이는 그것을 황홀한 듯 바라보았다.

그러다 잠깐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가 아는 이십사수매화검과는 조금 달랐던 것이다.

아니, 자신이라면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느껴졌다. 그러나 이내 그럴 리가 없다며 고개를 휘휘 저었다.

* * *

고달픈 수련의 나날이었지만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배움이 즐거웠고, 사부가 좋았다.

악휘구라는 사형도 생겼다.

“자, 이거 먹어.”

서평이라는 이름의 사형이 그에게 사과를 주고 있었다.

“어…….”

한데 이상했다. 분명 눈앞의 서 사형은 좋은 이였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상황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분명 다른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그런 고민은 오래가지 못했다. 갑자기 나타난 한 사내 때문이었다.

그의 이름은 곽호로, 견습 제자들을 위해 밥을 만들어주는 숙수였다.

“왜 그러느냐? 초운아.”

“여기 서 사형이…….”

“서 사형? 누굴 말하는 게냐? 아무도 없는데.”

“저한테 사과를 준 서…… 사형…….”

곽호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꿇더니, 아이의 양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화산파에 서 씨 성을 지닌 사형은 없단다. 네가 뭔가 착각을 한 거겠지.”

“착각…….”

“그래, 착각.”

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릴 만도 하건만, 이내 멍한 얼굴로 수긍하고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홀로 남은 곽호가 키득거렸다.

쨍---!

아이가 그의 시선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잡풀과 나무로 이루어져 있던 주변 경관이 거울처럼 깨지며 어두운 공간으로 바뀌었다.

곽호의 모습도 바뀌어 있었다.

그의 몸은 건장한 숙수의 몸이 아니라, 온몸에 피고름이 가득한 붕대로 감은 괴인의 모습이었다.

“좀 더 깊이 빠져들어라. 괴로움도 슬픔도 없는 곳으로……. 그게 너를 위한 길이고, 또 나를 위한 길이다.”

* * *

악휘구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유기를 욕했다.

“유기, 이 미친 자식아! 네 목적을 위해 사제의 몸을 괴물한테 넘기다니! 너야말로 이기적인 개새끼다! 넌 신선들을 욕할 자격도 없어!”

유기는 가부좌를 튼 채 그의 말을 무시했다. 하나 귀를 막은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 와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는 삶 자체가 고통이었다. 어서 빨리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 * *

“무공의 기초는 탄탄한 하체. 다른 제자들도 다 하는 일이니 어렵다고 우는소리는 하지 않길 바란다. 마보 한 시진이다. 한 시진을 채우지 못한다면 다음 날 못 채운 만큼 늘어나니 명심하도록.”

“네에! 열심히 할게요!”

아이가 소리치자 사부인 적오가 귀를 후비며 말했다.

“……그렇게 크게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네에!”

“……글쎄 조용하라니깐.”

* * *

사부인 적오는 자신의 등에 얼굴을 묻은 제자를 향해 투덜거리며 걸었다.

“흥, 네놈이 마음에 들어서 업어주는 게 아니다. 단지 제자 놈에게 사고가 생기면 장문인이 경을 치실 게 걱정되어 약당으로 가는 동안만 업어주는 것뿐이다.”

잠든 아이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사부는 언제나 따뜻하셨구나. 그때에도 지금도…… 응? 지금…… 도?’

아이는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것을 표현하지는 않았다. 언제부턴가 기억이 드문드문 끊기는 현상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 같은 혼란스러움을 느꼈음을 알고 있었다.

이유가 뭘까?

아이는 처음으로 의문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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