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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향-186화 (186/217)

검향 186화

한 점에 집중된 귀혼탈명대의 힘은 창처럼 인파를 꿰뚫고 지나갔다.

말이나 사람이나 한 명도 다치지 않았다.

있다 해도 그저 찰과상 정도랄까?

귀혼탈명대와 하나가 된 전마들은 그들의 공력을 받아들여 몸을 보호했고, 전마가 걸친 갑옷은 공력이 더해지자 그대로 신병이기와 같은 예리함을 자랑했다.

그들이 탄 전마 한 마리의 순간적인 파괴력은 초절정고수에 육박했다.

돌격에 앞장서서 날카로운 창극을 담당했던 악휘구는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 낼 생각도 하지 않고 말을 돌려 두 번째 돌진을 준비했다.

“이게 바로 귀혼탈명대의 몰살기(歿殺技), 혈룡포(血砲)다. 전쟁터에서만 쓸 수 있는 기술이지.”

혈룡포는 일대일의 대결이었다면 오히려 당할 수도 있는 합격술이다. 그저 단순 무식한 돌격뿐이었으니까.

그러나 전장에서라면 그 양상이 다르다. 모여 있는 보병이나 기마병을 돌격 한 번으로 와해시킬 수 있는 기술인 것이다.

애초에 귀혼탈명대는 전장에서 태어난 악귀의 부대.

전쟁은, 전장은 그들에게 있어서 고향과도 같은 것이었다.

때문에 집단전에 한해서라면 그들은 날개를 단 호랑이였다.

풍마는 자신이 데려온 무사들이 죽어 나가는 데도 그저 웃을 뿐이었다.

“허허, 보면 볼수록 동백이 놈을 닮았단 말이야. 잘 여물면 상대할 만하겠어.”

그는 악휘구를 기특한 듯 바라보다 다시 초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싸늘히 웃으며 물었다.

“어디 출신이냐. 성천궁? 제갈세가?”

“부모님은 평범한 화전민이셨습니다만…….”

“그래? 그게 정말이냐?”

“그렇습니다.”

“음…… 너 같은 존재를 만들 수 있는 곳은 그 두 곳뿐일 텐데…… 성천궁도 제갈세가도 아니라면 대체 누가……. 부모는 어디 있는고?”

“제가 어릴 때…… 돌아가셨습니다.”

“그래? 아쉽게 되었구나. 살아 있었다면 너 같은 괴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주리를 틀어서라도 알아냈을 텐데.”

그의 말은 진심 같았다. 아니, 그는 초운의 부모가 눈앞에 있었다면 정말 주리를 틀어서라도 원하는 것을 얻었을 것이다.

그는 힘이 최고라는 지상 명제 속에서 살아왔다.

힘만 있으면, 힘을 얻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였고, 그것은 늘 성공했다. 백 살이 넘은 지금도 힘을 갈구하는 그의 욕망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해졌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두고 안하무인이라 비난하지만, 어디까지나 말뿐이었다.

그를 비난할지언정 그를 벌하는 이는 없었다.

그것은 오로지 힘 덕분이었다. 백여 년의 시간을 그리 살아왔고, 그는 그 자신의 삶이 옳다고 믿었다.

힘을 추구한 결과 천운이 따라야 도달할 수 있다는 심의경을 얻은 것이 그 증거였다.

그는 풍마봉이라 이름 붙은 사 척의 단봉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마음 같아선 저기 날뛰는 악가 놈들 모조리 갈아버리고 싶지만, 그랬다간 네가 싫어하겠지? 그래서 말인데, 자리를 옮기는 게 어떠냐?”

“알겠습니다. 선배님과 제가 다투면…… 무사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요.”

“후후후.”

그는 이미 초운이 심검지경에 올랐음을 알고 있었다.

절대경에 이른 자가 자신의 존재력을 숨길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이는 절대경 중에서도 마음을 다루는 심의경에 도달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일이다.

그는 풍마봉을 지팡이 삼아 땅을 짚고 그 탄력으로 경공을 펼쳤다. 특이한 방식이기는 하나 그의 신형은 화살처럼 뻗어 나갔다.

그 뒤를 초운이 쫓았다.

무사들에게 막 두 번째 돌진을 끝낸 악휘구는 초운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지만 곧 다시 전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귀혼탈명대의 무사 중 하나가 그런 그에게 물었다.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그의 상대는 풍마입니다.”

“걱정이야 되지, 풍마의 무서움은 내가 가장 잘 아니까…….”

그는 풍마의 숙적인 창왕의 손자다. 창왕의 경지를 눈앞에서 본 그는 풍마가 어느 정도의 인물인지 잘 알았다.

“하지만 왠지 초운도 질 것 같지는 않거든.”

그가 질문을 한 수하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자, 움직이자. 아직 죽여야 할 놈들이 너무 많다.”

불과 일 각 만에 오 리를 주파한 풍마는 자신에게 뒤지지 않는 속도로 경공을 펼치는 초운을 보고 감탄했다.

경공에서만큼은 육왕칠사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든다고 여겼건만, 그런 자신을 상대로 한 걸음도 지지 않는 초운이 놀라웠던 것이다.

초운에 대한 그의 평가는 다시금 상향 조정되었다.

일각이 더 흐르고, 그들이 도착한 곳은 한 이름 모를 평야였다. 주변에 인가라고는 눈 씻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았고, 멀지 않은 곳에 작은 동산 서너 개가 서 있을 뿐이었다.

“이쯤이면 좋겠군. 마음껏 싸울 수 있겠어.”

“저를 잡아간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야 그렇지만, 오늘이 아니면 또 언제 이만한 상대를 만날 수 있을까.”

풍마는 갈증에 허덕였다. 목이 말라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갈고닦아 온 힘을 쏟아부을 상대를 원했다.

오랜 숙적인 창왕은 칩거한 지 오래였고, 육왕칠사의 다른 이들과는 인연이 별로 없었다.

마지막으로 온 힘을 다해 싸워 본 것이 벌써 10년 전이다.

육왕칠사의 다른 이들은 어떨지 모르나 그는 더 큰 힘을 얻기 위해, 그리고 그 힘을 증명하기 위해 살아왔다.

천왕의 부름에 응한 것도 진천군에 붙어 있다 보면 강자들과 겨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게다가 거래의 마지막 조건은 바로 천왕과의 대결.

그가 오랫동안 기다려 온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눈앞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구경만 할 성격이 아니었다. 때문에 온전히 데려오라던 천왕의 명을 무시하기로 했다.

그는 천왕의 수하가 아닌 협력자일 뿐, 요청은 몰라도 명령까지 들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초운은 보기 드문 만찬.

이것을 천왕에게 넘긴다면 언제 맛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 좀생이가 먼저 맛볼지도 모르지.’

남 주고 후회하느니, 내가 갖고 후회 안 하는 게 현명한 길이라고 생각하는 풍마였다.

파파팡---!

풍백신공의 내력이 바람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심검을 얻은 강자와의 대결이 얼마 만이던가!”

그의 목소리는 희열로 가득했고, 표정은 마치 즐거운 놀이를 앞둔 어린 소년과도 같았다.

이에 대꾸라도 하듯 초운 또한 자하신공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그의 기운이 바람과 한데 어울러져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가 심의경에 도달해 얻은 것은 바로 바람.

때문에 그의 심검은 바람과 그 속성을 같이했다.

심검지경에 올라 얻게 된 환검의 극의는 바람을 닮아 있어, 그의 매화검류는 풍마의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신형이 허공에서 얽혔다.

꽝!

광폭한 폭풍과 부드러운 선풍이 부딪치자 천둥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저 소리뿐이건만, 땅이 들썩이고 먼지가 피어오른다.

풍마의 봉에 압축된 폭풍이 상대의 심장을 부숴 버릴 것처럼 뻗어 나왔다.

그러자 초운은 반검을 비스듬히 들어 봉을 막았다.

하지만 충격이 완전히 분산된 것은 아니었는지, 초운의 등 뒤로 충격파가 납작한 원형의 고리 모양으로 터져 나왔다.

울컥-!

초운의 허리가 굽혀지며 입에서 핏물을 토해 냈다. 하지만 손해를 본 것은 풍마도 마찬가지였다.

초운의 부러진 검에서 쏟아진 강기가 그의 호신강기를 박살내고 내장을 뒤흔든 것이다.

충격의 대부분을 분산시켰으나 그 여력에 내상을 입은 초운도 심각했지만 풍마의 내상도 못지않았다.

하지만 둘 다 심의경에 도달한 고수.

그 정도 내상은 눈 깜짝할 사이에 보완하고 다른 수를 준비했다.

“하하하하! 이 얼마 만의 부상이란 말인가! 좋구나! 아주 좋아!”

힘을 지배할지언정 도취되지는 않는 초인, 풍마.

그는 기뻐하며 제이 격을 준비했다.

그의 애병 풍마봉이 무섭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드---!

쟁천봉(爭天棒).

팔대섬멸기(八代殲滅技).

풍옥(風獄).

그가 창안한 쟁천봉.

이십사 식으로 이루어진 이 봉법으로 그는 무수한 수라장을 건너왔다.

절대경에 이른 후에는 이십사 식의 초식을 새롭게 정리하여 여덟 가지의 필살기를 만들어냈는데, 세인들은 그것을 두고 살인기라 부르며 두려워했다.

그리고 그 초식들은 그가 육왕이 아닌 칠사에 들게 된 이유가 되었다.

너무나도 강력하여 당한 상대에게 오직 죽음만을 내린다는 섬멸기.

그중 첫 번째 초식인 풍옥이 십 년 만에 펼쳐지고 있었다.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초운을 감쌌다.

사막의 용권풍과도 같은 이 바람은, 닿는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찢어발기는 맹렬함의 화신.

하지만 초운은 그 속에서도 평안했다. 스스로의 몸에 바람을 두르고 견뎌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팔대섬멸기 풍옥의 진짜 힘은 이 정도가 아니었다.

초운을 가둔 회오리바람이 줄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람의 기세와 거대한 바람의 방벽은 그대로였다. 아니, 압축되는 만큼 그 힘은 더욱더 강해졌다.

“풍옥은 안에 가두어 죽이는 기술. 무슨 수를 내지 않는다면 찢겨 죽는다.”

풍마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초운은 그의 기대에 부응 해주었다.

七章

보통 말보다도 거대한 흑색의 전마는 단단하면서도 탄력 있는 철갑을 두른 채 앞으로 돌진했다.

말 위에 탄 채 몸을 숙이고 철창을 휘두르는 이는 절대경에 이른 자신의 공력을 말과 자신의 철창에 불어넣고 있었다.

거구의 인간을 태우고 철갑을 두른 수백 근의 짐승이 몸에 강기를 두르고 돌진하니 수십 명의 인명 피해가 뒤따른다.

그리고 그 위에서 대포처럼 뻗어 나가는 철창 또한 수십 명을 학살한다.

그리고 그러한 인마(人馬)의 뒤로 똑같은 형태를 한 열 명의 기마무사들이 뒤따른다.

추혼탈명대의 몰살기, 혈룡포는 벌써 천 명이 넘는 무사들을 죽거나 다치게 했다. 부상을 입은 이들도 대부분 전투 불능에 빠진 상태였다.

추혼탈명대라고 해서 멀쩡한 것만은 아니었다.

혈룡포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공력과 체력이 뒤따라야 하는 터라 모두 지쳐 있었다.

열한 명의 무사들은 한 자루의 창과 같다. 그들의 공력은 단순히 타고 있는 전마에게만 보내는 것이 아니고 열한 명의 무사들 전체가 나눠 쓴다.

때문에 공력의 소모는 평소의 두 배에 달했다.

더구나 썩어도 준치라고, 진천군 측은 점점 혈룡포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 증거로 첫 돌격에서 사백이 넘는 사상자를 낸 것과 달리 열 번째 돌격을 마친 지금은 사상자가 겨우 구십 정도였고, 그 대부분도 가장 앞서 돌격한 악휘구가 낸 것이었다.

그러나 진천군 측의 사기는 눈에 띄게 떨어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겨우 열한 명에 의해 일천이 넘는 무사가 죽었다. 사기가 오르는 게 이상한 일이다.

아무리 보아도 저 인마 일체의 괴물들을 쓰러뜨릴 방법은 없는 듯 보였다.

무사들 중에는 머릿속으로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무사들을 통솔하는 혈월조차 머리를 쥐어짜고 싶은 심정이었다.

절대경에 이르면 뭐든 다 가능할 줄 알았건만, 오히려 반대였다.

늘 새로운 강자들이 나타났고, 그들이 보여 주는 벽에 절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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