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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향-176화 (176/217)

검향 176화

三章

여행을 나서기 위해 짐을 꾸리던 초운의 방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비록 방문이 가로막고 있었지만 초운은 기척만으로도 그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바로 마영이었다.

“들어오세요, 총사님.”

“준비는 다 되셨습니까?”

초운이 봇짐을 꽉 묶으며 답했다.

“짐은 다 쌌고, 이젠 작별 인사만 하면 돼요.”

“아, 혹시나 해서 미리 말씀드리지만, 소공의 뒤엔 귀천대가 함께할 것입니다.”

“에?”

초운이 깜짝 놀란 얼굴로 마영을 쳐다보았다.

“놀라셨습니까?”

“많이요. 지금 맹의 상황이 힘든데, 가장 큰 전력인 그들을 저의 호위로 붙이는 건 좀…….”

부담스러워하는 초운을 향해 마영이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전 호위라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함께할 거라고만 했지.”

“그렇다면…….”

“네, 그들에겐 다른 임무가 있습니다. 그저 임무를 겸해 소공의 뒤를 몰래 따르는 것이지요. 그 임무가 무엇인지는 때가 되면 아실 겁니다.”

그의 설명에 초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영은 곧 다른 화제를 꺼냈다.

“그나저나 소공께서 친히 천거하신 그 녀석, 참 대단하더군요.”

“그 녀석이라뇨?”

“그 왜 있잖습니까, 당가의 천재 장인.”

마영의 설명에 초운의 머릿속에서 누군가의 얼굴이 번뜩였다.

“아, 현이! 그 아이 잘 있죠?”

“네, 그러니 대단하다고 한 것 아니겠습니까. 공방에 있는 다른 장인들이 자괴감을 느낄 정도로 천재라 하더군요.”

“그 정도였어요?”

“그동안 제대로 된 기회와 투자가 없어서일 뿐, 자리만 만들어 준다면 용이 되어 비상할 아이였습니다.”

초운은 과거 당가의 장로가 당현을 본가 공방의 2인자로 앉히려 했던 일이 떠올랐다.

‘확실히 재능이 있었나 보구나.’

그때 마영이 자기 옷의 앞섶을 살짝 풀어 헤치며 초운에게 말했다.

“이 보의(保衣)가 보이십니까?”

“그건…….”

초운이 보니 마영은 옷 안쪽에 딱딱한 재질의 무언가를 입고 있었다.

“그 녀석이 만들어준 겁니다. 천잠사를 거미줄처럼 엮어 만든 것이라더군요. 그것도 열 겹이나 됩니다. 근거리에서 쏜 화살도 막을 정도지요.”

“대단하군요.”

실력도 실력이지만 발상이 좋았다. 천잠사로는 보통 질긴 옷을 짓지 보호구를 만들지는 않는다. 아니, 못한다.

그저 쉽게 찢기지 않고 튼튼하여 질긴 실 따위에 무얼 기대할 수 있을까.

격렬한 싸움 뒤에도 잘 찢어지지 않기 때문에 무인들 의 사치품 정도로 인식된 것이 바로 천잠보의다.

한데 그것을 여러 겹 엮어 갑옷처럼 만들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보호구란 본디 쇠나 나무로 만들지 않던가. 천잠사를 거미줄 형태로 세밀하게 엮어 옷을 만들고, 그것을 다양한 모양으로 겹쳐 보호구로 사용할 생각은 누구도 하지 못한 것이었다.

“지금 양산 중인데, 이달이 가기 전에 정예 무사들에겐 한 벌씩 입힐 수 있을 듯합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기분이 좋은데요.”

“그래서 말인데, 녀석이 소공을 한 번 뵙고자 하더군요. 먼 길 가시기 전에 뭔가 드리고 싶은 게 있나 봅니다.”

초운이 기뻐하는 얼굴로 웃었다. 그러나 그것은 선물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천거한 인물이 그 재능을 발휘하여 기뻐하는 것이었다.

초운은 당현을 패도맹으로 보내 놓고서 단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하지 못했던 것이 내심 미안했었다.

비록 추천서를 써 달라기에 써 준 것뿐이지만, 그래도 일단 천거하는 모양새가 된 이상 끝까지 자신의 책임인 아이였다.

그런 아이를 공방에 두고 한 번도 찾지 않았으니 미안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공방에 도착한 초운은 금세 당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덩치 큰 어른들 사이에서 열심히 망치를 휘두르는 소년은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잘 있었어?”

“아, 형님. 아니아니, 소공 오셨군요!”

“소공은 무슨…… 그냥 부르던 대로 부르렴.”

소공이라는 호칭에 공방 안에 있던 장인들의 손길이 멈추었다.

높은 직위의 무사들이 공방을 직접 찾는 경우는 흔했다.

그러나 그런 그들조차 소문의 차기 후계자가 왔다는 소리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를 향해 한 노인이 다가왔다.

얼굴의 주름만 보아선 칠십 대가 다 된 듯 보였으나, 구릿빛 상체는 그가 아직 정정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소공. 저는 이 공방의 방장인 요문이라고 합니다.”

“아, 예, 저는 초운이라고 해요…… 아니, 합니다, 요문 어른.”

초운이 고개를 숙이며 자신을 소개했다.

적운이 옆에서 보았다면 인상을 찌푸릴 행위였지만 다행히 그는 옆에 없었다.

그러나 요문은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 짓고 있었다.

권위 의식 따윈 눈을 씻고 찾아 봐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사들은 기본적으로 공방의 장인들을 존중해 주지 않는다. 모든 이들이 그러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 달에 서너 번 꼴로 무사들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받거나 부당한 일을 당하게 된다.

물론 공방의 방주인 요문의 위치가 어지간한 전각의 부각주급의 직위라는 걸 듣게 되면 당황하여 사라지지만, 아직도 그런 경우가 많았다.

한데 차기 패도맹주라는 청년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니 요문의 입장에선 흐뭇할 수밖에.

이는 공방의 다른 장인들도 마찬가지인 터라 초운에 대한 그들의 호감은 급상승하는 중이었다.

“소공께선 소문이 오히려 모자란 감이 있으시군요.”

“예? 제 소문이요?”

“아닙니다, 아니에요. 한데 이곳엔 무슨 일로 걸음하신 건지…….”

“네, 제가 곧 먼 길을 떠나는데, 그전에 당현이가 절 보고 싶다고 해서요.”

초운은 솔직히 말했을 뿐이지만 공방 안의 온도는 순식간에 내려앉는 듯했다. 장인들이 차가운 눈빛으로 당현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요문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고개를 돌려 당현을 바라보았다.

“방금 내가 들은 것이…… 사실이냐? 네가 맹주님의 하나뿐인 제자를…… 직접 찾아뵐 생각은 하지 않고…… 불손하게도 친히 오시게 만들었다는 소리가?”

“예? 예!”

당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밝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자 잘못을 지적하던 요문이 오히려 당황했다.

분위기가 이 정도로 싸해지면 대충 눈치를 채야 할 텐데, 눈앞의 소년 장인에게선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쪽 눈 밑에 경련이 일어나기 시작한 그가 초운의 기색을 살폈다.

그러나 그것은 초운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그 또한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히 괜찮은 건가? 다른 사람 같았으면 경을 쳤을 텐데…….’

그때, 그의 귀를 파고든 당현과 초운의 대화가 그의 심장을 멈추게 할 뻔했다.

“그래도 마영 대총사님께서 제 말씀을 제대로 전해 주셨군요. 형님, 떠나기 전에 뵈어서 다행이에요.”

“응, 네 말을 전해주러 직접 찾아 오셨으니까.”

“더헉!”

요문은 체면도 잊고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패도맹의 2인자! 적제의 오른팔, 아니 양팔이라 불리는 대총사를 전령으로 썼단 말인가!

요문은 당장에라도 당현의 목을 조르고 싶었으나, 당최 잘못이 뭔지 모르는 소년과, 그 소년을 바라보고 있는 초운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소공…… 이 늙은이는 이만 물러갈 테니, 담소를 계속 나누시지요.”

“네. 고맙습니다, 어르신.”

“예…….”

요문은 옆에 더 있다간 수명이 줄어들 것 같아 결국 물러나야 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부른 거야? 얼핏 들으니 내게 줄 것이 있다던데.”

“아, 그거요? 잠깐만요!”

당현은 공방 안으로 쌩하고 달려가더니, 얼마 후 두 손 가득 뭔가를 들고 나왔다.

“뭐야? 그것들은?”

초운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묻자, 당현은 신이 났는지 급히 설명을 시작했다.

“먼저 이건 마영 총사님께 드린 천잠보갑보다 세 배 가볍고, 네 배 튼튼한 천잠보갑이에요. 초절정고수가 전력을 다해 휘두른 검기가 아닌 이상 어지간한 공격은 막아 줄 거예요. 뭐, 그전에 형의 호신강기가 모두 막아버릴 테지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거예요.”

만약의 경우란 부상을 입어 호신강기조차 펼쳐 내지 못하는 경우를 뜻했다.

“아, 그리고 이름도 지었어요. 천룡포(天龍袍)라고!”

“너무 좋은데? 정말 내가 입어도 되는 거야?”

“그럼요! 일부러 형님 체형에 맞춘걸요!”

“하하하, 고마워. 그건 또 뭐야?”

초운이 가리킨 것은 철로 만든 팔목 보호대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너무 얇아서인지 효용은 높지 않아 보였다. 게다가 그나마도 한쪽밖에 없었다.

“이건 만년한철로 만든 방패예요. 이름하여 귀천패(龜釧牌)!”

“귀천패? 방패 같아 보이진 않는데…….”

겨우 팔뚝만 보호할 수 있는 크기였고, 그 형태는 팔목을 감싸는 보호대였다. 이런 것을 방패라 하니 초운은 의아해 할 수밖에.

그러자 당현은 그것을 초운의 왼쪽 팔목에 씌워 주었다.

“딱 맞죠? 이제 거기에 공력을 불어넣어 봐요.”

“음.”

초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보호대에 공력을 주입하였다. 그러자.

촤라라락---!

얇기 그지없던 보호대가 비늘처럼 여러 겹으로 나눠지더니 넓게 펴지며 방패처럼 변했다.

그 크기도 꽤 커서 초운의 상반신을 절반이나 담을 정도였는데, 더 놀라운 것은 넓게 펴져 사과 껍질만큼 얇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탄성이나 경도가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귀천패야말로 제 야심작! 만년한철은 내력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으니, 계산대로라면 절대고수의 검강도 한두 번쯤은 막아낼 수 있을 거예요.”

“대단해!”

초운은 뭐가 그리 신기한지 방패를 펼쳤다 좁혔다 하며 재밌어하고 있었다.

“마음에 드세요?”

“당연하지, 이런 건 처음 보는걸!”

“멀리 떠나신다고 들었어요, 형님. 꼭 몸조심하셔야 해요!”

“알았어, 너의 귀천패와 천룡포가 많은 도움이 될 거야.”

검강을 한두 번 막아낸다 함은 절대고수의 공력을 그만큼 견뎌 낼 수 있음을 뜻했고, 이는 앞으로의 여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당현이 약간의 걱정을 담아 말했다.

“부디 몸 조심히 다녀오세요, 형님.”

“걱정 마.”

초운은 밝게 웃으며 당현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 * *

진천군이 패도맹을 친다고 할 때까지만 해도 천상련은 약간 우려하는 수준이었다. 아니, 조금은 반기기까지 하였다.

패도맹과 진천군이 부딪쳤을 때 둘 중 하나가 멸문하고 나머지가 그에 준하는 타격을 입는다면 그것만으로도 꽤 이득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들어오는 정보들은 하나같이 천상련에 불리한 것들뿐이었다.

우선 진천군이라는 거대한 군단이 만들어졌는데도 반천련은 전력의 대부분을 보존 중이라는 것, 그리고 진천군의 이동 경로에 화산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에 경악했다.

화산의 요새는 천상련의 전력 중 3할이 주둔 중이다.

양산되는 마인들을 포함하여 정예 무사들도 삼천이 넘게 포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많다 해도 진천군의 위세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

자그마치 일만이 넘는 고수들이다.

가장 하위 무사조차 절정을 상회할 정도이니, 화산의 요새는 상대가 될 리 없었다.

진천군이 화산에 도착한다면 발에 치이는 잡초 취급당하고 말 터.

천상련엔 당연히 비상이 걸렸고, 긴급히 지원군을 투입하려 했으나 그들의 발길을 막은 것은 바로 반천련이었다.

그들이 모든 길목을 가로막아버린 것이다.

곳곳에 전장이 생겨났고, 천상련은 반천련을 상대하느라 화산 근처에도 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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