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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향-172화 (172/217)

검향 172화

一章

흔히들 천하삼세에 대해 얘기할 때, 천상련을 가장 앞에 두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천상련은 사파의 종주를 자처하며 수백 개의 방파를 거느리고 있는데다, 천상련 자체가 지닌 힘 또한 거대하기 이를 데 없기 때문이다.

천상련을 대표하는 호법신마들은 또 어떠한가?

그들은 천상련주 직속의 마인들로서 지닌 바 능력이 괴이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런 자들이 각자 자기만의 영역을 허락받아 세력을 일구고 있으니, 그 세력들 또한 무시 못 할 수준이었다.

이런 힘 덕분에 천상련은 과거 이빨을 드러낸 무림맹의 대침공도 훌륭히 막아 내고, 이후 반천련과 패도맹의 압박까지 잘 견뎌 냈다. 때문에 세상은 천상련이 최고라는 데 이의를 달지 않았다.

한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한때 사파의 종주였다가 천상련에 자리를 내준 사파의 거대 방파 두 곳과 무림맹이 힘을 합쳐 만든 반천련이 새롭게 이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송산이라는 거인에 의해서…….

천왕 송산.

천하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 중 한 곳의 주인인 그는 무림맹주를 거쳐 현재는 반천련주라 불리고 있다.

하지만 그는 반천련주로서의 명성보다 더 거대한 명성을 지니고 있었다.

바로 당대의 천하제일고수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이 들어 있는 육왕칠사.

그러나 그들 사이에서조차 실종된 반선검왕을 제외하곤 이백 초를 받아 낼 이가 없을 것이라는 게 세간의 평가.

그만큼 그의 이름은 거대한 것이었다.

과거 천상련이 무림맹을 절멸시키지 못한 것이 바로 송산의 존재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어쩌면 천왕이라는 별호보다는 무신(武神)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유일무이한 존재, 송산.

그는 반천련이 만들어진 이후론 칩거하다시피 하였으나, 얼마 전 반천련의 대총사 제갈정오의 사망 이후로 복수를 천명하며 힘을 모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백월성과 성천궁이 밑천을 내놓았다.

백월성에서는 다음 세대 후계자인 혈월과 그 휘하의 백랑전, 그리고 백랑전의 전대 고수들이자 현 성주의 직속 부대인 벽월인(碧月人)들을 모조리 내보낸 것이다.

성천궁은 더욱더 대단했다.

강력한 무사를, 아니 살아 있는 병기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그들의 광기 어린 염원이 만들어 낸 걸작.

생강시를 무려 이백 구나 동원한 것이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한 구의 생강시는 절대고수에게 밀리지만, 두 구의 생강시는 절대고수를 죽인다 하였다.

즉, 생강시 이백 구는 절대고수 일백 명을 압도한다는 의미였다.

이 밖에도 반천련 본단 및 지부, 그리고 지부에 속한 분타에서 각각 최고라 불리는 고수들이 추려졌으며, 반천련에 가입되어 있는 방파에서도 각자 최정예를 보내왔다.

이 정도만으로도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할 정도이건만, 이게 다가 아니었다.

북해빙궁.

북해를 지배하는 단 하나의 방파. 북해의 귀궁이라고도 불리는 곳에서 일천의 빙귀(氷鬼)를 이끌고 나타나 송산이 모은 군대와 동맹을 선언하였다.

게다가 그 빙귀들을 이끄는 자는 바로 북해빙궁의 주인 설라타(雪邏嶄).

스스로를 북천무황(北天武皇)이라 자처하며 북해를 일통한 절대군주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무림 방파로서의 세는 약하지만 오직 검로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무인 집단이 있다.

해남검문이 바로 그곳인데, 일인 전승 비인부전으로 친자식이나 내(內)제자에게만 전수한다는 검파들이 뜻을 합쳐 만든 곳이었다.

수많은 검파가 난립하는 해남도는 그만큼 은원 관계도 다양한 편이라 해남검문에 속해 있는 검파일지라도 서로 적대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해남검문은 그것을 막지 않았다. 아니, 해남도 안에서는 어떠한 권세도 휘두르지 않는다. 오직 강자존의 규칙만을 철저히 지키도록 감시하고 있을 뿐이다.

때문에 해남검문은 해남도 안의 작은 무림이라 보는 것이 옳았다.

그러한 검문의 존재 목적은 외부의 침략에 모든 검파가 은원을 잊고 힘을 모아 대항할 수 있게끔 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런 해남검문이 수백의 검사(劍士)들을 이끌고 중원에 발을 디뎠다. 검사 하나하나가 고류검파의 전승자들이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신분으로 이루어진 고수들이었다.

이 밖에도 신비지문이라 불리는 크고 작은 문파들이 송산의 아래 모여들었다.

그렇게 해서 모여든 무사들의 숫자가 무려 일만!

이는 반천련이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의 칠 할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송산이 반천련에서 모집한 정예보다 바깥에서 끌어모은 무사들이 더욱 많다는 것으로, 천왕 송산이 어찌하여 두려움의 대상인지를 잘 알려 주었다.

그가 모은 일만의 대군 앞에 천하삼세의 나머지 두 곳은 물론이고 천하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은 천왕이 이끄는 군대를 두고 진천군이라 불렀으며, 이는 곧 그들 군대의 이름이 되었다.

* * *

진천군의 등장에 가장 당혹해 한 집단은 다름 아닌 패도맹이었다. 천왕 송산이 진천군의 첫 번째 제물로 패도맹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패도맹은 최하위의 말단 무사들까지 긴장감이 팽배해져 있었다.

마치 폭풍 전야와도 같달까? 고요하기 그지없는 패도맹이었지만 실상은 전쟁 준비로 한창이다.

그중 가장 바쁜 것은 다름 아닌 패도맹의 대총사 마영으로, 현재 그는 패도맹의 정보 조직인 신안의 당주 도호성과 함께 수십 종의 지도를 살피며 향후의 계획에 대해 의논 중이었다.

“가만…… 그러고 보니 우리는 별로 상관없지 않나? 사실 정오란 놈은 인형사 천응의 손에 죽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패도맹 산하의 상단들의 현황에 대해 살피던 도호성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중얼거렸다. 그러자 지도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던 마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는 하지요.”

“그런데 왜 우리가 먼저인 겐가?”

마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제일 만만하지 않습니까. 진천군과 제일 가깝기도 하고…….”

“……농담하지 말게.”

도호성이 눈썹을 찡그리자 마영이 피식 웃으며 들고 있던 지도를 내려놓았다.

“송산도 분명 천상련을 먼저 치고 싶을 겁니다. 그의 입장에선 자식을 죽인 불구대천의 원수 아닙니까. 한데 우리라는 가시를 뒤통수에 남겨 두고 그들을 칠 순 없는 거겠지요.”

“천상련 또한 커다란 가시이지 않은가? 우릴 치면 분명 그 치들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

간단한 구도이지만 이것이 바로 천하삼세가 유지되는 이유였다.

천상련이 반천련을 치려 하면 패도맹이 득을 보고, 패도맹을 치려 하면 반천련이 득을 본다. 이는 어떤 경우라도 마찬가지.

어느 세력도 나머지 둘을 압도할 수 없기 때문에 승부가 나지 않는 것이다.

“잊으셨습니까? 그가 우리 패도맹을 치기 위해선 반드시 한 곳을 거쳐야 합니다.”

마영의 말에 도호겸이 잠시 눈을 굴렸다.

“아…… 화산 말인가?”

“네. 송산은 그곳을 반드시 정리하려 들 겁니다. 천상련의 가장 강력하고 중요한 요새입니다만, 그는 그저 지나가다 밟히는 잡초처럼 쳐낼 테지요. 지금 진천군의 전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천상련이 그곳을 잃게 되면 큰일이겠군.”

그의 추측에 마영이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였다.

“총 전력의 삼 할이 깎여 나가는 겁니다. 그것도 가장 강력한 전력을 잃게 되는 것이니, 우리나 반천련과 분쟁 중인 지역 중 몇 곳은 포기해야겠지요.”

“천왕이 노리는 것도 바로 그것이겠군.”

마영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정말 복수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걸 전문 용어로 ‘꿩 먹고 알 먹고’라고 한다네.”

“…….”

도호성은 집무실 한편에 쌓아 둔 종이 뭉치들을 바라보며 한숨지었다.

“휴, 전서구로 장계(狀啓)가 올라올 때마다 암담하더군. 우리가 과연 버틸 수 있을는지…….”

“생강시만 해결되면 우리 쪽 승산은 칠 할. 해결되지 않는다면 사 할입니다. 우리 패도맹도 지난 세월 놀기만 하지는 않았으니까요.”

“반천련에서 진천군을 지원할 후발대를 보내진 않겠는가?”

진천군은 어떤 의미에선 반천련과 별개의 세력이라 봐도 좋았다. 송산이 정예들을 상당수 빼내긴 했으나 반천련 자체의 힘은 그리 많이 깎여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상련은 화산을 지원하려 할 테고, 그 길목은 반천련의 본진이 막아 내야 합니다. 천상련이란 존재는 우리보다 더 위험하니까요”

“송산 때문에 외통수로군, 천상련이나 우리나…….”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보여 주어야 합니다. 누가 중원의 패자로서 합당한지를. 우릴 우습게보면 어찌 되는지를.”

“당연한 말일세.”

그리 답한 도호성은 책상 위에 널린 자료들을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반면에 마영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도호성에겐 자신감 있게 말했지만 난세란 꼭 계산대로 흘러가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생강시는 어떻게 하시려는 겁니까, 주군.’

* * *

“화산에 좀 가 줘야겠다.”

초운은 자신이 지금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하고 어리둥절해했다.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화산에 가는 것이 자살 행위라며 극구 말리던 이가 바로 사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화산에 오르라고 하니 초운의 입장에선 황당할 수밖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하늘과도 같은 사부의 명령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자신이 가장 바라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알았습니다. 언제 출발하면 되지요?”

“……생사가 달린 일이다. 의심하지도 않는 게냐?”

적제가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초운이 빙그레 웃었다.

“가라고 하신 이유가 있겠지요.”

“답답한 놈 같으니…….”

“헤헤헤.”

적제는 그런 초운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너도 들어 알겠지만, 천왕의 진천군이 우리를 멸하려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그는 길목에 있는 화산을 먼저 치려 할 터. 그것은 즉, 너의 오래된 은원을 풀기 위한 둘도 없는 기회일 테지.”

“기회…… 요?”

“그래. 화산을 보호하고 있는 모든 마인들을 진천군이 대신 상대해 주지 않겠느냐. 그러니 너에겐 기회지.”

당초 초운이 화산에 오르지 못했던 이유는 화산 인근이 마인들로 겹겹이 방어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화산 또한 요새화되어 입산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러나 진천군이 침공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생긴 틈이 초운의 몸을 가려줄 것이 분명했다.

적제에게 설명을 들은 초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가능성이 높았다.

“목적을 이루고 난 뒤에 넌 그냥 빠져나오면 된다. 걸리적거리는 건 진천군 놈들이 알아서 치워 줄 테니까.”

“하지만 그들이 저를 쫓지 않을까요?”

초운은 마인들보다 오히려 진천군이 더 걱정이었다. 하지만 적제는 의미심장한 미소로 답했다.

“그에 대한 대비책은 사부가 마련해 두었으니 안심하거라.”

그렇게 초운의 화산행이 결정되었다.

* * *

가장 바쁜 사람이 마영이라면 가장 바쁜 조직은 바로 천검각이었다.

패도맹에 뿌리를 내리고 1년도 되지 않아 진천군의 침공이라는 큰 사건이 터져 버렸지만, 천검각의 무사들은 이를 오히려 기회라 여겼다.

아직 제대로 된 입지를 구축하지 못한 천검각으로선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어느 때보다 사기가 올라 있었고, 그만큼 바쁘게 움직였다.

천검각의 각주, 아니 검주로 더 알려진 적운은 현재 천검각이 이백 년 넘게 감춰 두었던 모든 힘을 끌어모았다. 모든 천검 무사들을 소집하기로 한 것이다.

천검각, 아니 천검단은 세대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늘 일백에서 이백 명 정도의 천검 무사들을 유지해 왔다.

그러다 죽음이나 장애로 결원이 생기는 경우엔 곧바로 새로운 무사가 충원되었는데, 어떻게 곧바로 충원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었다.

하지만 진실은 아주 간단했다. 천검단의 숨겨진 규모가 어지간한 대방파에 버금갔기 때문이다.

자그마치 수천의 무사들이 양민들 틈 사이에서 다양한 직업으로 살아가며 평소에는 제자나 자식에게 천검단의 신념과 무공을 전수하고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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