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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향-168화 (168/217)

검향 168화

“휴우, 이제야 끝났군…….”

자신이 만들어 놓은 진법의 핵에서 한숨을 내쉬는 제갈정오였다.

그가 오랑산을 함정으로서 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지맥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용맥이 바깥에 드러나 있는 구조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오랑산에 존재하는 다섯 곳의 용맥에 수만 근의 화약을 심어 두었는데, 그것이 바로 그가 숨겨 둔 마지막 패였다.

“실혼인 따위가 비밀병기일 리 없지. 내가 누군데…….”

그가 한숨과 함께 바닥을 내리쳤다.

그가 숨겨 둔 진법이 새롭게 실행되기 시작했다.

그는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천하제일의 고수도 자연은 못 이겨.”

그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 *

우르르르---!

산이 흔들리는 것을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마영이었다.

그가 굳은 얼굴로 폭풍대주와 성 장로를 불렀다.

“벌써 진법을 해제한 거요?”

“역시 빠르시군요. 존경합니다, 총사님.”

폭풍대주 종리백의 아부에도 마영은 얼굴이 펴지지 않았다.

그가 두 사람을 향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진법이 문제가 아니오…….”

“그럼 무엇이 문제요?”

성 장로가 물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마영은 돌려 답하지 않았다.

“용맥이 파괴되었습니다.”

“커헉!”

성 장로가 대경실색했다.

“그런 게 정말 있긴 있습니까?”

풍수를 잘 모르는 종리백이 되물었다.

하지만 친절히 설명해 줄 시간이 없었다.

한시가 급했기 때문이었다.

“산자락 아래 모인 모든 무사들을 뒤로 물리시오. 최소한 백 장…… 아니 일 리 이상!”

“후퇴하라는 겁니까?”

“그렇소!”

“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러시는 겁니까.”

“설명할 시간이 없으니, 간단히 말하겠소. 잠시 후 산이 통째로 무너질 거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종리백과 성 장로는 자신의 대원들을 향해 뛰었다.

마영이 산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대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소공.”

十一章

쿠르르르르---

산이 울고 있었다.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슬픔을 인간들에게도 잘 전달하는 중이었다.

수십만…… 아니, 수백만 근의 토사가 아래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산을 지키던 나무와 바위도 그 파괴적인 흐름에 떠밀려 내려가는 중이었다.

오열을 멈춘 천응이 산이 우는 소리를 느끼며 중얼거렸다.

“조카의 짓인가?”

이런 짓을 할 사람은 제갈정오밖에 없었다.

보아하니 추격을 보냈던 실혼인들이 모두 실패한 듯했다.

그때 피투성이의 초운이 그의 목에 반검을 들이댔다.

자신의 무릎에 제갈청의 머리를 기대게 한지라 움직이지 못하던 천응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날 죽일 셈이야?”

“응.”

“추연희는 어쩌고?”

“인격은 다시 돌아왔어.”

천응이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히히히히. 그녀는 마공을 익힌 마녀야. 애써 찾은 인격도 곧 파괴되겠지.”

“…….”

마공을 익힌 마인의 인성이 부서지는 것은 필연이었다.

초운은 인성이 부서지며 마인이 새롭게 태어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황현 사형…….’

과거를 회상하며 눈을 질끈 감은 그가 천응을 향해 물었다.

“그녀의 마공을 없앨 수 있어?”

“응. 난 제갈가가 만들어 낸 최고의 괴물이니까.”

초운이 그의 멱살을 틀어잡으며 말했다.

“가르쳐 줘. 어떻게 해야 그녀를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지?”

“가르쳐 주면 제갈청을 살려 줄 거야?”

“…….”

초운은 죽어 가는 제갈청의 몰골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현천마녀 때와 같이 그의 몸은 모래처럼 바스러지고 있었다.

그런 그를 살리는 일은 대라신선이 와도 불가능했다.

“역시 못하는구나?”

천응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쿠르르르르---!

반대편에 보이는 산릉선이 무너져 내리며 나는 소리였다.

지진의 강도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보니 이곳도 머지않은 듯했다.

“제발 그녀를 도와줘. 그녀에겐 아무 죄도 없어.”

“응, 알아.”

천응이 고개를 저으며 다시 말했다.

“그래서 더 싫어.”

“…….”

“이제 그만 내려가. 난 제갈청과 함께 있을 테니.”

초운은 끝장을 낼까도 했지만 이미 천응의 부상도 보통이 아니었다.

제갈청이 막아 냈다지만 그 반동은 천응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특히 그의 양손과 발목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이겨져 있었다.

살아난다 하더라도 주술이나 현술은 더 이상 쓸 수 없을 것이다.

초운은 그를 남겨두고 추연희가 떨어진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제갈청과 둘만 남은 천응은 형체만 남아 덜렁거리는 손으로 제갈청의 볼을 쓰다듬었다.

“다시 우리 둘만 남았어, 제갈청.”

제갈청의 몸은 이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미세하게 움직이던 가슴의 기복도 이젠 더 이상 없었다.

그러나 천응은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쿠르르르르---!

지진은 더 가까워졌고 멀지 않은 곳에서 수십만 근의 토사가 광폭한 물줄기와 같이 흘러 내려오고 있었다.

“제갈청, 나를 안아줘. 예전처럼 머리를 쓰다듬어줘.”

그가 제갈청의 가슴에 얼굴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그 옛날 마정의 씨앗으로 대체했던 제갈청의 심장은 더 이상 뛰지 않았다.

그러나 온기는…… 언제나처럼 온기는…… 아직 그대로였다.

천응이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따뜻하다…….”

무거운 흙과 바위 더미가 그들을 덮쳤다.

* * *

“없어…… 없어…… 없어!! 추 소저! 어디 있어요! 추 소저!”

추연희가 떨어진 곳에 도착했지만 그녀는 그곳에 없었다.

“어디 있지?”

초운은 걱정이 앞섰다.

그녀가 그리된 것은 어찌 보면 자기 때문이었다.

자신과의 인연이 아니었다면 그녀가 천응의 표적이 되었을 리도 없었고, 그 고생을 할 필요도 없었다.

죄책감에 사로잡힌 초운은 산사태가 몰려오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그녀를 찾았다.

그때 한 사내가 거대한 규모의 산사태를 등지고 달려오며 그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이런 멍청이!”

오랜만에 듣는 익숙한 말투였다, 하지만 초운은 반가워할 정신이 없었다.

“아…… 안 돼. 추 소저를 찾아야 해……. 추 소저! 추 소저!”

“시끄럽다고 했잖아! 이 바보 사제 놈아!”

사내는 그렇게 한마디 하더니 바동거리는 초운에게 박치기를 날렸다. 초운의 몸이 축 늘어지며 조용해졌다.

“이제야 조용하군.”

사내의 경공이 더욱더 빨라졌다.

* * *

오랑산이 무너지기 이틀 전.

“역시 뭔가 꾸미고 있나 보네. 교활한 여우새끼.”

곽호가 비고의 바깥으로 나오자 어디선가 비웃음 가득한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수십에 달하는 수행원을 거느리고 네 명의 거인이 짊어진 교자에 앉아 부채로 얼굴을 가린 사내가 보였다.

그를 알아본 곽호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군. 한데 내 부탁을 들어주고 있어야 하지 않았던가?”

“네가 내 감옥에 들러 죄수 하나를 빼갔다는 소리를 듣고 나니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쏙 들어가더군. 그래서 열심히 유람을 즐기던 중이었지.”

“그럼 계속 유람이나 즐기지 왜 왔는가?”

“네놈 꿍꿍이가 궁금해서 말이야.”

곽호가 나직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말했다.

“이거 영광으로 알아야겠군. 사백 년이 넘게 살아오며 수많은 음모를 꾸며 천하를 농락해 온 귀면호리가 나 같은 소인배의 계획을 모르고 있다니. 정보 보호에 공을 들인 보람이 있었군.”

귀면호리라 불린 사내는 부채를 접으며 얼굴을 드러냈다. 사백 년을 넘게 살았다는 곽호의 말과는 달리, 그의 얼굴은 청년의 것이었다.

빠른 속도로 늙어 가는 곽호와 비교하자면 할아버지와 손자 정도로 보였다.

“뭐, 본좌는 이제 음모 같은 건 귀찮아져 버려서 장기휴업 중이지만 말이야……. 그래도 그 ‘감’이 어디 가는 건 아니거든……. 그렇지만 네 계획은 도무지 짐작도 할 수가 없더군.”

“유람이란 핑계로…… 나에 대해 조사하고 다니는 중이란 건 알고 있었네. 하지만 더 조사해 보아야 나올 것은 없을 것이야.”

“크…… 네 아비가 지금의 널 봤다면 참 재밌어 했을 텐데.”

지잉-!

어디선가 거대한 압력이 일어나 귀면호리를 내리눌렀다.

그가 탄 교자가 박살나고 그의 교자를 짊어지고 있던 거인들이 칠공에서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주변의 수행원들도 한순간에 즉사했다.

하나 귀면호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 압력에 맞섰다. 아니, 맞서는 것도 아니었다.

나비가 날듯 천천히 허공을 밟으며 교자에서 내려온 그는 부채질을 하며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잊었어? 나는 마도(魔道)의 진리(眞理)를 깨달은 자. 네 아비는 내게 마도를 전수받았고, 그 대부분이 너에게도 전해졌지. 그러니 네 힘은 내게 안 통해.”

“반대로…… 네 힘 또한 내게 통하지 않지.”

곽호가 미소와 함께 말하자 귀면호리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그래……. 그게 정말 아쉬워.”

싸늘한 목소리와 함께 그가 부채를 휘둘렀다.

그러자 부채에서 거대한 바람이 불어와 곽호를 때렸다.

폭풍과도 같은 바람이 곽호의 주변을 찢어발겼건만 정작 곽호는 멀쩡했다.

그의 말대로 서로의 비술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부채를 거둔 귀면호리가 입맛을 다셨다.

“쩝. 역시 안 통하는군……. 그래도 감개무량하네. 그 애송이가 이렇게나 커서 나와 같은 경지에 서다니 말이야.”

“마도(魔道)를 걸으며 마(魔)를 지켜보고 연구해야 할 자가, 마(魔)에 뛰어들어 마공을 익히고 몸을 개조한 것은 비의를 깨달았다 보기 힘들지 않은가?”

그러자 귀면호리가 검지를 흔들며 부정했다.

“난 마도를 벗어난 적이 없어. 마공을 익혔다 해서 인성이 파괴된 것도 아니고, 마공의 장점만을 뽑아 썼을 뿐이야. 마도에서 이 정도는 흔한 비술일 뿐이라고.”

“천하를 수없이 도탄에 빠뜨린 자가 할 말은 아니로군.”

“응? 뭔가 오해를 하고 있나 보네. 마공을 이용해 몸을 개조한 건 젊고 아름다워 보이려고 그런 거야. 그나마도 겨우 팔십 년 전이었지. 세상을 도탄에 빠뜨린 사건들은 너도 알다시피 사백 년 전부터 계속해 온 것이고.”

곽호의 표정이 조금 변했다. 그가 알고 있던 귀면호리에 관한 진실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귀면호리는 눈을 빛내며 설명을 이었다.

“그러니까 난 말이야……. 원래 그런 놈이야. 그냥 세상을 망가뜨리고 복구하는 게 취미일 뿐, 결코 마공 따위에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이 말씀.”

“그냥 미친놈이었단 소리군.”

“그래! 맞았어! 하하하하. 오랜만에 날 웃겨 주네.”

“그건 그렇고, 자네가 이곳에 온 이유는…… 날 방해하기 위해서인가?”

그의 물음에 귀면호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까 말했잖아. 네놈 꿍꿍이가 궁금했다고……. 한 가지 더 궁금한 것도 있긴 하지만.”

“그게 뭔가? 말해 보게.”

“네가 꺼내간 내 죄수는 어디 있지?”

곽호의 얼굴에 서늘한 미소가 떠올랐다. 숨길 이유가 없었기에 그는 순순히 답해 주었다.

“그 죄수라면…… 아마 사천에 있을 것이네.”

“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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