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향 165화
초혈마공의 이능으로 자기 심장을 터뜨리고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한 사내의 모습뿐이었다.
“혀…… 혀…… 형!”
“……그래, 다시 형이라 불러 주는 거냐.”
제갈청이 무릎을 꿇으며 앞으로 쓰러지자 천응이 함께 무릎을 꿇으며 그를 부축했다.
“왜…… 왜 그랬어…… 왜.”
분노에 물들어 마기를 한껏 뽑아내던 제갈청이었다. 분명 자신을 죽일 수 있었다.
자신이 죽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도 그는 아무것도 저지르지 않았다.
마공으로 인해 인성이 박살나는 중임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대신 자기 자신의 죽음을 선택했다.
제갈청이 떨리는 음성으로 답했다.
“피가 통했든 아니든…… 너는 내 동생이니까.”
그 한마디를 끝으로 그는 고개를 꺾었다.
“으…… 어…… 아,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천응은 그의 머리를 감싸 안으며 오열했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숨이 막혔다.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흠, 내가 직접 열려면 수십 년은 걸릴 텐데……. 어이없군.”
곽호였다. 그는 제자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하기보다, 제갈청의 죽음으로 인해 천명비고를 열 수 없게 된 것을 더 안타까워했다.
천응은 멍한 얼굴로 자신의 품에 안긴 형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당신은…… 살릴 수 있죠?”
“음? 뭐라고 했느냐?”
“사부님은…… 제 형을 살릴 방법이 있냐고요.”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았으니 방법이야 있겠지. 하지만 후회하게 될 텐데…….”
“후회해도 괜찮아요.”
곽호는 씁쓸히 웃었다.
이런 불완전한 존재는 제자로 들여도 골치 아프다.
이 천응이라는 녀석은 제갈청이 제 손으로 천명비고를 열게끔 압박하기 위해 이용한 도구였으나, 제갈청이 죽어버린 이상 이용 가치는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는 이용 가치가 없는 자를 살려 둔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리자니 아까웠다.
“……그의 단전에 있는 마정의 씨앗을 부서진 심장으로 옮기고 일전에 내가 가르쳐 주었던 조롱의 현술을 이용한다면 살릴 수는 있다.”
천재적인 두뇌를 지닌 천응은 그가 말해준 비술에 대해 금세 알아챘다.
“그래서야…… 강시나 다름없겠군요.”
“그래서 후회할 거라 했다.”
천응은 제갈청의 볼을 잠시 쓰다듬다, 다시 입을 열었다.
“하겠어요. 킥.”
“음…….”
“키힉…… 키히히힉…… 키히히히히히. 하하하하하.”
반쯤 풀린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던 그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기 시작했다.
‘미쳐 버렸군.’
곽호가 냉정히 평했다.
자신이 저지른 일임에도 그에게선 죄책감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가 인간적으로 가장 정을 준 것은 현재로선 곁에 있는 사요 하나뿐이다.
사요가 그에게 말했다.
“사부님…… 저 아이 정말 기뻐 보여요. 내가 죽여도 돼요?”
“아니다. 저 아이는 지금 슬퍼하고 있는 게야.”
“저렇게 웃는데?”
“뭐…… 너는 마녀라 평생 모를 수도 있겠구나. 어찌 되었든 죽이지는 말아라. 너의 새로운 사제이니…….”
그때 천응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덥수룩한 머리는 곧게 펴지고 추악하게 일그러져 있던 얼굴은 인피면구가 찢어지듯 피부가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몸의 골격이 점점 작아져 갔다.
“현인마공을 각성하는군.”
그가 천응에게 전수한 것들 중에는 마공도 있었다.
하지만 천응은 마공에 의해 인성이 파괴되는 것을 막고자 자신의 몸에 온갖 비술을 적용시켰고, 현인마공이 각성하는 지금, 부작용이 되어 돌아오는 중이었다.
다름 아닌 열두세 살 정도의 어린아이 몸으로 돌아간 것이다.
청년들이나 입을 헐렁한 옷을 뒤집어쓴 소년이 기다란 머리를 뒤로 넘겼다.
드러난 얼굴은 본래의 천응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천하제일의 미소년이랄까?
어떠한 미녀라 할지라도 이 소년 앞에선 감히 자신의 미모를 자랑하지 못하리라.
천응은 제갈청을 바닥에 조심히 눕히며 일어섰다.
잠시 후 마기로 이루어진 실타래가 제갈청의 단전에 가 닿았다.
콰득---!
칼날처럼 예리한 실을 제 몸처럼 다루어 제갈청의 단전을 가른 천응은 그곳에서 마정의 씨앗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것을 제갈청의 심장에 가져다 대었다.
그가 뽑아낸 실들이 심장을 감싸 안으며 융합을 시도했다.
그리고 얼마 후.
제갈청의 코에서 미약하지만 호흡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를 살려 두고 있는 조롱의 현술 덕에 그의 기억과 정신은 사라져 버렸다.
더 이상 제갈청이라 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대법을 다 마친 천응이 웃는 낯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가 곽호를 향해 아름다운 미소를 보내며 말했다.
“저를 버리지 마세요, 스승님. 제 손으로 죽여 드릴 때까지.”
사요가 소수마공을 끌어올리며 앞으로 나서자 곽호가 손을 들어 막았다.
“재미있겠구나. 할 수 있으면 해 보거라.”
“킥킥킥. 후회하시지 않을 겁니다.”
* * *
회상을 끝낸 곽호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천응이 초운을 죽이려 하는 것도 이해가 가는 일이다.
자신이 소중한 것을 잃었듯, 사부에게도 똑같은 것을 맛보게 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는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먼지가 쌓인 천명비고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날 상처 입히고 싶은 거라면 아직 멀었다, 제자여.”
잠시 후 천명비고에 양각된 새 모양의 조각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틈 사이로 밝은 빛이 튀어나오는가 싶더니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문이 다 열리자 곽호의 미소는 더욱더 진해졌다.
그가 비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는 왠지 서두르는 것처럼 보였다.
* * *
“신인환신대법이 완벽한 건 아닌지라 나 같은 놈이 태어나 버렸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적어도 저 호결이라는 놈보다는 상등품이라는 거야.”
“그 저주받은 대법을…… 어찌…… 하여…….”
제갈정오는 믿기지 않는다는 말투로 조상들을 원망하고 있었다.
신인환신대법은 신을 만들어내는 대법으로 오랜 기간 제갈가에서 연구되어 온 것이었다.
그나마 멸문하여 그 대법이 영원히 사라졌다고 생각했건만, 문제는 그 결과물이 눈앞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제갈청에게로 돌렸다.
“제갈청을 보아도 소용없어. 그도 처음엔 몰랐으니까. 너의 할아버지가 벌인 일이다.”
동남동녀 일천 명의 피를 모으고…….
그 피로 산모가 될 여인의 몸에 준비한 일천자의 주술을 새긴다.
그리고 남은 피를 염료 삼아 문신으로 파는데, 보통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여인이 죽어버린다.
그럼 다시 동남동녀의 피를 모으고 특정한 길일에 태어난 여인을 구해 시도한다.
여인이 문신을 새기는 과정을 견뎌 낸다 해도 더 힘든 과정이 남아 있었다.
특정한 길일에 태어난 사내를 골라 정을 통해 임신을 시키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산달 일까지 일천 명의 선천지기를 산모에게 주입해야 했다.
선천지기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힘.
이 힘이 없으면 혈액이 핏줄을 돌지 못하고 심장이 뛸 수 없다.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힘이다.
당연히 인간의 선천지기를 주입한다는 것은 누군가가 죽어야 함을 뜻했다.
그렇게 해서 다섯 명의 산모가 사망하고, 여섯 명째에 얻은 것이 바로 천응이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산모에게 주입된 선천지기는 대부분 사라져 버렸고, 기대했던 성과는 없었다.
육체 능력은 평범했다.
아니, 일반인보다 조금 못했으며 외모는 아기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추악했다.
그나마 남은 것은 뛰어난 지능뿐이었다.
“하여튼 정오야, 고맙구나. 좋은 부하들을 넘겨줘서.”
“…….”
“그러니 이젠 죽어 줘야겠지? 조카의 재롱을 받아 주는 것도 좀 지치니까.”
때마침 나타난 조유성 덕분에 허리의 검상을 지혈한 초운이 그를 향해 전음을 날렸다.
-조 대협.
-네.
-지금 싸움이 멈췄으니 적 각주를 데리고 몸을 피하세요.
-…… 그게 무슨…….
망발이냐고 소리를 지를 뻔한 조유성이었다.
하지만 초운은 이미 결심이 선 듯했다.
-저는 추 소저를 구해 뒤따를 테니 먼저 가시라는 말씀이에요.
-저 마녀가 방금 소공의 옆구리에 칼을 꽂았습니다.
-예, 아프네요.
-…….
조유성은 그동안 초운이 적제와 닮은 점이 별로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인정해야 했다.
‘이놈…… 확실히 주군의 제자다.’
무모한 성격도 성격이었지만, 고집이 황소고집이었다.
그가 아는 적제와 비견될 정도로.
때문에 그는 초운을 막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알겠습니다. 대신…… 꼭 살아 돌아오셔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조유성이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유성과 똑 닮은 환영이 그 자리에 그대로 생겨났다.
일종의 분신술이었다.
조유성의 실체는 다시 동굴로 향했고, 얼마 안 있어 적운을 업고 다시 나왔다.
조유성이 초운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초운도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바로 그 시각, 천응과 제갈정오 간의 대화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래도 조카는 조카이니, 자비를 베풀도록 하지. 먼저 도망쳐. 반각 후에 쫓을 테니.”
제갈정오는 그의 제의에 두말할 것 없이 경공을 펼쳤다.
수백의 실혼인들도 검마도 제갈청도 그에 반응하지 않았다. 천응에 의해 완벽히 통제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각이 흐르자 천응은 실혼인들 다섯을 풀어 그를 쫓게 했다.
이미 산 전체에 자신의 실이 뻗어 나가 있으니 그의 위치는 알고 있었다.
반각이란 시간은 바로 실을 보낼 시간을 벌기 위함도 있었다.
그가 슬며시 고개를 돌려 초운을 바라보았다.
“이제 네 차롄가, 초운?”
“…….”
“훌륭한 미끼가 되어주어 고맙군. 네 덕분에 수월했다.”
“거래를 제의한 것도 그 때문이었나?”
“그래, 숨고자 하면 평생 숨어 있을 수도 있지만. 그건 또 자존심이 상해서리…….”
딱-!
그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초운의 곁에 있던 조유성의 환영이 사라졌다.
“내가 설마 몰랐으려고? 그냥 봐준 거야. 어차피 내 목표는 너였으니까.”
“뜻을 이뤘으니 좋겠군.”
“응! 아주아주! 이제야 신마께서 화내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거든.”
“곽호가…… 화를 내는 모습이 보고 싶어 날 죽이려는 거였어?”
“응, 그래야 공평하거든.”
뭐가 공평하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천응의 말은 진심인 듯했다.
하지만 초운은 그와 한가롭게 대화를 나누려는 것이 아니다.
필살의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절대고수에게 오 장여의 거리는 일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