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향 161화
七章
온갖 약물과 주술로 몸을 강화하고 마기에 대한 저항력을 높인 이 마물들은, 그 전투 능력만 놓고 보자면 절정고수를 가볍게 상회했고, 셋이 모이면 초절정고수를 능가했다.
처음엔 성천궁에서 이 같은 마물들을 만들어내어 강호제패라도 할 셈인가 하고 의심했던 제갈정오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물들은 쇠약해져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철을 능가하는 피부도, 무섭도록 빠른 재생력도 사실은 선천지기라 부르는 생명력을 폭주시킨 결과였다.
거기에 마공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는 시술까지 더해지면 마물들의 수명은 채 석 달을 넘기지 못한다.
새삼 성천궁에서 적극적으로 발 벗고 나서며 돕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들은 그저 새로운 작품의 실험 무대가 필요했고, 제갈정오는 그 무대를 자발적으로 제공한 것이다.
어찌 됐든 실혼인의 전투력을 유지시키려면 선천지기를 소모하지 않는 방법뿐이었다.
그리하기 위해선 최대한 싸우지 않아야 했다.
초운과 천응들을 서로 부딪혀 양패구상하게 만들려는 이유도 실혼인들의 이런 약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제갈정오의 절약 정신도 이젠 소용없어졌다.
울컥-!
“또 죽었나?”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피를 토하는 호결을 향해 그가 물었다.
호결은 이제 익숙한 듯 소매로 입술을 닦으며 답했다.
“네. 이번엔 여섯 명입니다.”
빠드득-!
제갈정오가 이를 갈았다.
실혼인이 줄어드는 것이 아까웠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해질 무렵부터 초운 측이 실혼인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처음엔 우연인가 싶었으나 희생자가 두 자리 수를 넘기 시작하자, 뭔가 틀어졌음을 깨달았다.
일이 너무 쉽게 풀려 잊고 있었다.
자신의 적들은 패도맹의 차기 후계자와 제갈세가를 한 번 멸문으로 몰아넣었던 악귀라는 것을.
그는 하는 수 없이 호결에게 명했다.
“이대로 가다간 타격이 클 것 같군. 더 손실이 생기기 전에 이쪽에서 먼저 움직여줘야겠어.”
“그렇다면…….”
“많이 이르지만 사냥을 시작하게.”
호결의 눈이 빛났다.
“그렇다면 형제들의 행동에 불필요한 봉인을 모두 제거하겠습니다. 허락하십니까?”
그의 물음에 제갈정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허락하네.”
호결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봉인을 해제합니다.”
그 순간 오랑산 전역의 실혼인들이 짜기라도 한 듯 동시에 눈을 빛냈다.
어두운 산속에서 수백 명의 안광이 번뜩였다.
* * *
“크헤헤헥!”
실혼인은 마치 자살이라도 할 것처럼 몸을 내던졌다. 늘 묵묵히, 그리고 조용히 싸움을 걸어오던 것과는 달랐다. 마치 모든 것이 마지막인 것처럼 실혼인은 돌진해 오고 있었다.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부상을 입은 적운이 말했다.
겨우 실혼인 하나 때문에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 사방에서 몰려오는 기척들 때문이었다.
초운은 강하니 홀로 실혼인 무리에 대적하더라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일행은 아니었다.
초운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모두를 보호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지금 실혼인들의 상태는 이상했다.
파칵-!
초운은 처음으로 당황하는 중이었다.
그의 검기가 실혼인들을 완전히 꿰뚫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정도로도 치명상이었지만, 그 무식한 재생력으로 인해 곧 나아버렸다.
게다가 재생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달려들었다.
절대고수의 검기를 그저 치명상으로 막아 내고 상처 부위를 고속으로 재생하며 달려들다니……
초운은 몇 번 더 검기를 날리고 나서야 실혼인을 완전히 침묵시킬 수 있었다.
반 시진 전만 해도 단 일 검으로 파리 날개 따듯 목을 자를 수 있었건만 상황이 달라지고 만 것이다.
“어쩌다…… 이리 변한 거지?”
“놈들이 몰려옵니다!”
그 침착하던 조유성조차 이번엔 목소리를 높였다.
“음!”
천응은 당황하는 초운 일행들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이것이 제갈정오가 숨겨 놓은 패일 것이다.
‘이게 아껴둔 패인가? 실망이야, 조카님.’
하지만 생각과 달리 천응은 기뻐하는 중이었다.
그는 누군가 자신을 증오하고 죽이려 하는 것이 즐거웠다.
역설적이게도 자신이 살아 있다고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슴이 차오르는, 환희에 늙지 않는 소년은 언제나처럼 아름답게 웃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 감추어진 추악함은 가려지지 않았다.
* * *
“어째서…… 어째서냐…… 천응아!”
거대한 규모의 장원에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 두 형제는 마주 보며 서로를 향해 울부짖었다.
아니, 울부짖는 것은 제갈청뿐이었다.
천응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눈물을 흘리면서도 웃고 있었다.
“사부께서 원하신 거야. 제갈세가를 없애고 천명비고(天命秘庫)를 열어 준다면 날 더 사랑해 주신다고 하셨거든.”
제갈청은 멍한 얼굴로 자신의 동생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곧 증오에 가득 찬 목소리로 외쳤다.
“겨우…… 겨우 그따위 이유 때문이었어?! 겨우 그것 때문에 수백 명의 혈육을 죽인 것이야?”
시종일관 웃음을 멈추지 않던 천응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제갈청의 멱살을 잡으며 말했다.
“혈육?”
“…….”
“혈육이라……. 어느 혈육이 자기 자식에게 독을 먹이지? 어느 혈육이 자기 혈육을 추하다고 학대하지? 어느 혈육이 어미를…… 죽이고 그 아들을 빼앗아 오지?”
“무슨 소리냐, 설마 아버지가 그런 짓을…… 컥!”
천응이 제갈청의 목을 조르며 말을 이었다.
“그 영감탱이가 죽기 전에 내 기억을 봉인했더군. 하나뿐인 아들의 지척에 나 같은 악귀가 존재하는 게 마땅치 않았던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너는 분명…… 우리 집안의…….”
“시끄러워!”
그가 제갈청의 목을 더욱 거세게 졸랐다.
“난 제갈 씨가 아니야.”
“…….”
“난 너를 뛰어넘는 천재다. 한데 모든 것이 능력대로 굴러가는 제갈가에서 왜 나를 가주로 내세우지 않았던 걸까?”
천응은 자신의 얼굴을 쥐어뜯으며 말했다.
검붉은 피가 볼을 타고 흘러내려 제갈청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
“이 추악한 외모 때문에? 당치도 않지. 그따위 것에 신경 쓰는 가문이었다면 망해도 수백 년 전에 망했을 테니까.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친아들이…… 아니라는 건가.”
제갈청의 중얼거림과도 같은 한마디.
하지만 천응은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그것보다 더 심해! 난 실패작이다. 세상에 태어나선 안 될 악귀였던 거야. 그렇기 때문에 네 아비도 날 죽이려 하다 죽임을 당한 거겠지.”
“네가 아버님을?”
제갈청은 믿을 수 없었다.
그의 아버지이자 제갈세가의 전대가주인 제갈은은 가문 최고의 술법가였다.
그는 지병이 악화되어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지 누군가에게 살해당하지 않았다.
그 임종을 지킨 것이 바로 제갈청 자신 아니던가.
천응의 말을 믿을 수 없는 이유였다.
“그래, 내게 괴상한 저주를 걸더군. 그날 술식의 구조를 한순간에 파악하고 되돌리지 못했다면 당하는 건 나였을 거야. 그래도 완전히 막아 내진 못해서 기억을 잃어버렸지만.”
“…….”
제갈청은 경악했다.
겨우 십 대 소년이 제갈가 최고의 술법가가 건 저주를 받아쳤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리고 뒤이은 진실은 그를 절망하게 했다.
“예전부터 궁금했었어. 난 태어나면서부터 내가 남과 다르다는 걸 알았거든. 제갈 씨들 중에 천재가 많이 태어난다지만…… 내가 볼 땐 저잣거리에서 머리에 꽃 달고 돌아다니는 병신들과 별 차이가 없었고…….”
호랑이 앞에선 토끼나 거북이나 다 똑같은 먹이일 뿐, 먹잇감 중 누가 더 빠르냐는 의미가 없다.
그는 너무도 뛰어났던 터라 다른 친족들의 천재성조차 무시했다.
그리고 그 이유가 그의 입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만들어졌다. 어미 배 속에서 누군가의 뜻에 따라 조제된 인간이야. 천명을 따르기 위해 만들어진 꼭두각시. 제갈가의 숙원을 이루기 위한 실험체였다. 가주인 너라면…… 이 같은 술법을 알고 있을 텐데?”
그의 말에 제갈청이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신인환신대법(神人換身大法)…….”
제갈가에서 수백 년에 걸쳐 연구 중인 대법의 이름이었다. 인간의 몸으로 신력을 받아들일 수 있는 대법.
살아 있는 신선을 만들어내는 금지된 사도(邪道).
“사부님이 아니었다면 난 언제까지고 이 제갈가에 얽매여 살았겠지. 지금까지의 인생이 다 거짓인 것도 모른 채…….”
“넌…… 그게 싫었느냐?”
제갈청이 묻자, 천응은 순간 꿀 먹은 벙어리로 변해 버렸다. 그의 눈동자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제갈청이 다시 물었다.
“우리 가문이 너에게 못된 짓을 한 것은 알겠어. 하지만 정말 그것뿐이더냐? 너에게 남은 게 정말…… 그것뿐이더냐?”
혼란스러워 하는 천응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러나 그는 애써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닥쳐! 죽여 버리기 전에!”
제갈청이 천천히 일어서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너는 곽호에게 현혹되어 눈이 가려졌다. 나와의 추억은? 너를 친동생처럼 귀여워한 송산과의 추억은? 그리고 너를 가장 잘 따르던 어린 ‘마영’은? 정말…… 너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느냐?”
“시끄럽다고 했잖아!”
눈물을 흘리던 천응이 수인을 맺자, 겹쳐진 손가락 앞에 거대한 불꽃의 막이 생겼다.
이는 제갈가를 태워 버린 술식이기도 했다.
하지만 제갈청은 멈추지 않았다. 불꽃의 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들이민 것이다. 그러자 놀란 것은 오히려 천응이었다.
“죽…… 죽고 싶어?”
“죽이려 했다면 진작 죽였겠지.”
제갈청이 다가갈수록 천응은 그만큼 뒤로 물러섰다.
* * *
천응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제갈청을 보며 과거의 기억 속에서 깨어났다.
제갈청은 실혼인들과 초운 일행 간의 난전이 벌어지던 순간, 천응을 업고 검마의 신체를 확보했다.
계획이 조금 바뀌긴 했지만 일은 순조롭게 흘러간다고 할 수 있었다.
“봉인된 인격을 해방한다? 어림없는 소리지. 조금 더 내 뜻대로 움직여 줘야겠다, 초운.”
그리 말한 그가 수인을 맺자, 어디선가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자, 그럼 다음 계획이야. 제갈청, 네 아들이 모든 패를 꺼냈으니, 응당 이 숙부도 보여줄 건 보여줘야겠지.”
“…….”
“가 보자고, 그럼.”
그가 명하자 제갈청의 신형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돌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