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향 156화
四章
“……여인이었단 말인가?”
검마를 눈앞에 둔 당철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겨우 8장 정도의 거리다.
성별 정도는 충분히 알아볼 수 있는 거리인 것이다.
혹시 잘못 보았나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것이, 사람 머리를 잘라 그 생혈을 핥아 마시는 이가 검마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정말 마귀라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는 년이로다!”
검풍대주 육평이었다. 싸움을 좋아하는 그는 어딘지 모르게 즐거워하는 얼굴이었다.
그의 검풍대가 멸문한 구대문파의 검진을 하나하나 형성하기 시작했다.
본래는 육대세가이나 산동악가의 부재로 오대세가 출신 무사들만 모인 일백인의 척살대…….
그들도 검마를 서서히 포위하기 시작했다.
당철은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경합의 승리가 확실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구대문파 부흥을 위해 그 생존자들이 모여 만든 정의회.
그곳의 정예부대인 검풍대가 강력한 검진을 일으키고 있고, 검귀를 쫓기 위해 단련시켜 온 오대세가의 척살대가 백 명이나 있었다.
거기에 초절정고수인 자신과 당가십수가 함께하니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외쳤다.
“검마여! 당장 무릎을 꿇어라!”
* * *
“멍청해도 너무 멍청했소. 어떻게 마인에게 그딴 소리를 할 수 있는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오.”
그리 말한 표량이 술병을 다시 들고 한 모금 들이켰다.
“마공을 익혀 미쳐도 열 번은 미쳐 버린 마인이, 무릎 꿇으란다고 ‘아, 네, 알겠습니다.’하고 꿇겠소? 그딴 소리 지껄일 시간에 공격을 퍼부어야지. 하여간 그땐 남궁도도 그렇고 육평이라 하는 놈도 그렇고 다 어이없어 하더구려.”
* * *
검마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사람의 머리를 던져 버리고 당철을 바라보았다.
아무 감정도 보이지 않는 눈빛을 똑바로 마주하게 된 당철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하지만 체면을 중시하는 터라 곧 정신을 차리고 공격을 명령했다.
먼저 남궁도와 척살대가 앞으로 나섰다.
그러나 검마가 한 수 더 빨랐다.
마라검(魔羅劍).
육식(六式).
멸공(滅攻).
그녀가 검을 바닥에 꽂자 거대한 파문과 함께 땅이 일렁이더니, 일대가 푹 꺼지며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났다.
“뭐야!”
“으아아아!”
균형을 잃은 무사들이 넘어지거나 검마가 만들어 낸 구덩이에 빠졌다.
허공으로 솟아오른 검마가 구덩이 속으로 검기를 쏟아부었다.
파파파파팍!
“크아아악!”
“으웩!”
“컥!”
피와 살점이 구덩이 안을 가득 메웠다.
구덩이에 빠진 자들 중 살아남은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한순간에 서른 명이 명을 달리하고 만 것이다.
깜짝 놀란 육평이 거대한 검을 휘두르며 나섰고, 그 뒤를 검풍대가 뒤따랐다.
무당의 천무검진이 발동되고 검막이 사방을 뒤덮었다.
충격파가 반원을 그리며 퍼져 나갔고, 주민들의 가옥들이 파괴되었다.
검마도 이에 응수하며 피해는 점점 더 커지는 중이었다.
표량이 미리 주변 주민들을 대피시키지 않았다면 큰 참사로 이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싸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면양이라는 도시는 자그마치 십만이 넘는 주민들이 살고 있던 곳으로, 표량이 대피시킨 곳은 십만 주민들 중 일부가 사는 곳일 뿐이었다.
다른 곳을 대피시키기까진 시간이 많지 않았고, 싸움이 그리도 크게 번질지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검풍대와 검마 간의 대결은 도시의 끝에서 시작하여 중심부까지 이어졌다.
당연히 그 사이에 있던 모든 가옥들이 파괴되었고,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은 모조리 죽어 나갔다.
표량은 분타의 모든 무사들을 동원하고도 모자라 주민들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하여 구조 활동을 벌였다.
그 와중에도 검풍대는 검마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파캉! 파카카캉!! 쾅!
구대문파의 전설적인 검진들이 모두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 소림의 십팔나한진을 변형시킨 검진도 등장했다.
그런데도 검마를 제압할 수 없었다.
오히려 피해만 늘어 갔다.
검마는 마인이기 때문에 양민들을 신경 쓸 리가 없다. 그러나 그것은 육평의 검풍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임무를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용납되도록 훈련받았다.
그런 그들에게 양민의 목숨쯤은 하루살이보다 못했다.
얼마 후 뒤늦게 전열을 정비한 척살대와 당철 등이 합류했다.
서른이 넘는 무사들을 잃고 이제 칠십여 명 정도 남은 척살대가 원거리에서 검기를 준비했다.
칠십여 명이 한꺼번에 날리는 검기.
이는 초운을 상대하려던 시절에 확립한 전술이었다.
남궁도가 신호하자 검풍대가 뒤로 물러섰다.
검기의 소나기가 검마를 향해 쏟아졌다.
효율만 따지자면 당가의 만천화우에도 버금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위력은 그에 못 미쳤다.
무지막지한 검기의 소나기를 검마의 검이 모조리 쳐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악할 만한 일이었지만 어느 누구도 포기하지 않았다.
당철과 당가십수가 한순간에 백여 가지의 독을 검마에게 흩뿌렸다. 물론 암기도 잊지 않았다.
면양 분타주 표량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의 입장에선 검마보다 당철들이 더 증오스러웠다.
검마에 의해 살해된 이들보다 저들의 무분별한 공격 때문에 살해된 주민들의 숫자가 몇 십 배나 더 많았다.
그럼에도 그는 그들을 말릴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것뿐이었다.
모든 검기를 막아내고 당가십수의 독공마저 피해 낸 검마는 살며시 미소 지었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멍한 것이, 마치 인형이 웃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마치 자기 차례라도 되는 것처럼, 검을 들어 다시 한 번 땅에 꽂았다.
“두 번 당할쏘냐!”
모두가 그녀의 검공에 대비하여 높이 뛰어올랐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그녀가 노리는 것이었다.
마라검(魔羅劍).
오식(五式).
백룡(百龍).
검마의 검끝에서 용의 형상을 한 기운이 튀어나왔다. 그녀가 외쳤다.
“폭(爆)!”
하나의 거대한 용이 일백 마리의 용으로 분열했다.
그리고 하늘로 뛰어오른 무사들을 향해 날아갔다.
하늘을 나는 재주라도 있지 않는 한 허공에서 저 용의 형상을 한 검기들을 피하기란 불가능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검풍대의 경우 육평을 제외하고 모조리 전멸했다.
남궁도의 척살대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많은 인원을 자랑하던 척살대는 남궁도를 포함하여 겨우 아홉 명만 남아 있었고, 그나마도 부상이 심했다.
당철이 데리고 온 당가십수 또한 모두 죽었다.
살아남은 자는 모두 열한 명뿐이었다.
검마가 내뿜은 용형기(龍形氣)를 막아 내느라 몸이 만신창이가 된 당철은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눈앞의 여인을 노려보았다.
두려웠다. 검마의 수준은 일반적인 마인과는 차원이 달랐다.
아무리 낮게 잡아도 천상련의 팔대호법신마 수준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들이 이토록 참패할 리가 없었다.
비교적 재빨리 정신을 차린 그는 자신의 앞쪽에서 무릎을 꿇은 채로 검마를 바라보던 남궁도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후퇴해, 남궁도! 도망가!”
하지만 남궁도는 듣지 못했는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니, 이미 눈빛이 죽어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조금 전에 죽은 척살대의 무사들 중에는 그의 친동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양민을 도구로 삼은 그일지라도 친동생의 죽음만큼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그때 검마의 검이 다시 움직였다.
마라검(魔羅劍).
구식(九式).
광폭랑(狂暴狼).
그녀의 검끝에서 이번엔 청색의 기운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것은 눈이 아홉 개 달린 늑대의 형상으로 변했다.
“저, 저것은 이미 검공 따위가 아니야……. 주술…… 주술이다…….”
머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던 육평이 소리쳤다.
다시 허공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검에서 뛰쳐나온 늑대가 남궁도의 신형을 지나쳤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피가 솟구치며 당철의 상반신을 적셨다.
당철이 고개를 돌려 보니 남궁도의 왼쪽 반신은 거대한 이빨 자국만 남긴 채 사라져 있었다.
마치 뜯겨 나간 것처럼…….
“으, 으아아아아!”
공포에 질린 당철이 비명을 질렀다.
겨우 살아남은 척살대 무사 여덟이 다음 차례였다.
콰드득--! 콰드득!
늑대는 여지없이 그들을 잡아먹었다.
남궁도의 피를 뒤집어쓴 채 늑대를 바라보던 당철을 육평이 어깨에 짊어졌다.
그 또한 공포에 질려 무서웠지만 다행스럽게도 그의 생존 본능은 공포를 이겨 냈다.
그는 뒤도 안 돌아보고 경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뒤를 검마와 검마의 늑대가 쫓기 시작했다.
* * *
표량의 이야기가 끝나자 적운이 믿기 어렵다는 얼굴로 말했다.
“검에서 늑대가 튀어나오다니…….”
“하지만 분명 나는 보았소. 검마가 그 늑대를 타고 달리는 것을.”
성 장로가 끼어들며 말했다.
“마공이라는 건 본래 세상의 진리에서 벗어난 역천의 비술. 그러니 그것들이 꼭 무공이라 단정 지을 순 없다네. 마인들이 펼치는 여러 이능들을 겪어 보았으니 자네도 알걸세. 검마 또한 특이한 이능을 보이는 것뿐이야.”
적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확실히 마공은 무공이란 개념에서 벗어난 면이 있다. 무인으로서의 편견이 마공을 무공의 범주에 집어넣은 것뿐이리라.
표량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하여간 이야기는 여기까지요. 그 당철이란 놈과 육평이란 놈이 살아 있는지는 모르겠소. 내심 뒈지길 원하지만……. 하여튼 내 마지막으로 보고받은 게, 이틀 전 그들이 서쪽의 오랑산(五朗山)에서 목격되었다는 것이오.”
“표량 아저씬 이곳과 이곳 주민들을 많이 좋아하는군요?”
초운이 그에게 물었다.
아저씨라는 단어에 적운의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이미 튀어나온 말이라 제지하진 않았다.
“물론이오. 이곳은 적제께서 관리하라 명하신 우리 패도맹의 소중한 영토이니까.”
초운은 빙그레 웃었다.
그의 목소리에서 도시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고마워요, 사람들을 지켜 주어서……. 사부님께 표량 대협의 노고를 꼭 알려 드릴게요.”
“흥, 그런 건 필요 없으니, 부족한 의원이나 더 보내 달라고 전해 주시오.”
표량은 투덜대긴 했지만 기분이 나빠 보이진 않았다.
초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건 당연하죠. 아마 최고의 의원들을 보내 주실 거예요.”
“허험, 험. 나는 이만 나가 보겠소. 소공, 편히 주무시오.”
“네, 내일은 갈 길이 머니까요.”
표량이 나가자 초운의 얼굴에선 미소가 사라졌다.
그는 적운과 성 장로, 그리고 조유성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검마의 폐해가 생각보다 심각하네요. 하루라도 빨리 잡아야겠어요.”
“오랑산이라면 멀지는 않습니다만, 산세가 굉장히 험해서 찾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적운의 말에 성 장로가 동조했다.
“게다가 당철과 육평, 그 두 놈이 이미 죽었다면 검마가 다른 곳으로 떠나 버렸을 가능성이 있네.”
“음…….”
초운이 난감한 얼굴로 침음했다.
그러자 그때 조유성이 나섰다.
“제게 한 가지 방도가 있습니다.”
여행 중에도 그리 말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인데다, 어딘지 모르게 벽을 쌓는 느낌의 조유성이었다.
그런 그가 먼저 의견을 제시하려 하니 다들 놀라워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던 초운이 그를 재촉했다.
“뭔가요, 그 방도란 게?”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마도(魔道)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마…… 도?”
“예, 마도입니다.”
초운은 고개를 갸웃거렸고, 적운과 성 장로는 입을 살짝 벌리며 탄성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