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향 153화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는 당현을 구한 것은 한 청년과 두 사내였다.
청년은 바로 초운이었고, 두 사내는 새롭게 패도맹의 천검각주로 부임한 적운과 패도맹 최고의 무력부대인 귀천대의 조유성이었다.
한 시진이 흘러서야 겨우 정신을 차린 당현은 자신을 구한 이가 초운임을 알고 눈물을 흘렸다.
검을 빼앗긴 것이 너무 미안해서였다.
서럽게 우는 당현을 향해 초운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 미안……. 한 시진 있다 온다는 게 두 달이 지나고 말았네. 화났지?”
“아니에요, 흑. 그게 아니라…….”
당현은 자신이 서럽게 우는 이유를 설명했다.
설명을 다 들은 초운은 난감하다는 얼굴로 적운과 조유성을 바라보았다.
“큰일이네요. 당가라니…….”
뒤에 이어질 말은 ‘당가와는 대체 무슨 악연이죠?’였지만, 초운이 말끝을 얼버무린 탓에 당현은 초운이 부담스러워한다고 생각했다.
당현은 더욱더 미안한 마음에 닭똥 같은 눈물만 뚝뚝 흘려야 했다.
초운은 그런 당현을 달래 주며 적운을 향해 물었다.
“어떡하죠? 찾아오랬다는데?”
적운이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어떡하긴요. 오라는데 가야지요.”
초운의 시선이 이번엔 조유성에게로 향했다.
그 역시 미미하지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어쩔 수 없군요.”
초운이 한숨을 푹 쉬며 일어섰다.
그러자 당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설마 찾아가시려고요?”
“오라고 했다면서?”
“그건 그렇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당가의 권위 때문이라도 못 찾아가게 마련이다.
당포가 있는 공방은 당가의 본가라 불리는 장원 안에 있었고, 그곳은 허가 없이는 결코 들어갈 수 없는 금지된 곳이었다.
그곳에 들어간다는 것은 당가 전체에 싸움을 건다는 뜻인데, 누가 감히 당포에게 따져 물을 수 있겠는가.
당현이 그에게 물었다.
“다, 담이라도 넘을 거예요? 거긴…… 무서운 기관진식이 깔려 있는데…….”
“그런 짓을 왜 해? 난 도둑이 아니야.”
“그럼 어쩌시려고요?”
초운은 당현이 왜 이리도 자신을 걱정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안심하라는 듯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냥 정문으로 들어갈 거야.”
“예?”
잠시 후 당현의 대장간을 나온 초운과 적운, 조유성이 당가의 본가로 향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일백 명의 천검무사들이 일렬종대로 따랐다.
길게 이어진 무사들의 행진에 당가타의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 * *
당가의 본가는 때 아닌 난리가 났다.
패도맹의 후계자가 일백 명의 천검들을 이끌고 직접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당가주가 패도맹주 앞에서 행패를 부린 일로 잔뜩 졸아 있던 본가의 인물들은 잔뜩 경직된 얼굴로 정문 앞에 나와 있었다.
지위가 높은 직계 혈족들이 가장 앞에 섰고, 그 뒤로는 나이나 촌수가 높은 순이었다.
그들의 끄트머리에도 속하지 못하여, 담 너머로 얼굴을 내밀고 지켜보는 무리들 중에는 금속 공방의 2인자인 방계 혈족의 당포와 그의 세 아들들도 있었다.
그들 또한 검성이라 불리는 패도맹의 젊은 후계자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잠시 후 정문이 열리며 일백 명의 무사들이 들어왔다.
“오! 저들이 바로 천검단, 아니 이젠 천검각의 무사들인가!”
강호에 이름 높은 천검단이 패도맹의 천검각에 들어왔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일이었다.
다만 이번 경합에서 그들이 초운의 조력자로 나섰다는 것은 바로 조금 전에 드러난 진실이었다.
당가의 몇몇 어른들은 이번 경합에서 당철의 패배를 확실시했다.
그만큼 천검단의 위명은 대단한 것이었다.
당가주는 칩거 중이었기에 당가의 장로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초운을 영접했다.
패도맹의 후계라는 귀하신 몸이니 최소한 장로급 정도는 나와서 맞아 주는 것이 예의였다.
일백인의 무사들이 다 들어오고 난 후, 가장 마지막에 초운과 적운, 조유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첫 번째 무력 경합 때 초운을 본 적이 있던 장로가 먼저 인사를 해 왔다.
“소공께 인사 올립니다. 속하는 당가의 삼장로인 당서휘라고 합니다.”
이제 오십 대 중반인 그는 한창 때라 할 수 있으나, 일찍 아들에게 직위를 물려주고 장로가 된 이였다.
한때 그는 당가십수의 수장으로서 당가의 호랑이, 즉 당호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무서운 성격을 자랑했다.
그런 그가 초운에게 고개를 숙이자 직계 혈족들은 조금 놀라긴 했어도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였으나, 방계 혈족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직계 혈족들의 오만함을 가장 잘 아는 자들이 바로 방계 혈족들이었기 때문이다.
강호에 떠도는 당가의 악명은 직계 혈족들이 다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저 당서휘의 엄격함은 악몽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 이가 스스로 고개를 숙여 가신을 자처하니 방계 혈족들이 경악하는 것도 당연했다.
“아, 반가…….”
초운이 반갑다고 인사를 하려던 그때 적운이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
“안 됩니다, 소공. 당가주 본인이 나온 것도 아니고 겨우 장로급입니다. 존귀하신 소공께서 답하시면 격이 맞지 않습니다.”
적운은 목소리를 낮추지도 않았다.
오히려 모두가 들으라는 듯 목소리에 공력을 실었다.
이쯤 되면 자존심을 밥 대신 먹는다는 당가 무사들 사이에 불평불만이 돌 만도 했으나,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오히려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그들 중 대다수는 패도맹에 파견을 나간 경험이 있는 자들이었다.
패도맹주의 강력한 존재감을 몸소 체험해본 이들인 것이다. 게다가 이미 패도맹과 사천당가가 하나의 몸이라고 여기고 있으니, 그들의 이런 반응도 당연한 것이었다.
당서휘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고개를 숙였다.
“속하가 결례를 범하고자 한 것이 아니오라, 가주께선 폐, 폐관 수련이신지라…….”
사실 당가주는 초운을 맞이할 면목이 없어서 자기 방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지만, 당서휘는 가주의 체면을 생각하여 폐관 수련이라 둘러대었다.
초운이 이미 들었을 텐데도, 적운은 초운을 돌아보며 당서휘가 전한 말을 똑같이 읊조렸다.
적운이 이렇게 깐깐하게 구는 것은 당가의 사람들에게 초운의 위치를 각인시키기 위해서였다.
이미 경합이라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는 일임을, 이미 패도맹의 후계자는 검성 초운임을 사람들의 머릿속에 구겨 넣으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이곳엔 어인 일로 행차하신 겁니까. 저희 쪽 당철 공자께선 이미 떠나셨는데…….”
당서휘의 말을 듣던 초운이 적운을 향해 물었다.
“어라? 이상하네요?”
“예, 이상하군요.”
그들 간에 주고받는 말을 이해할 수 없던 당서휘가 재차 물었다.
“무엇이 이상하단 말씀입니까?”
“아니, 분명 당가 쪽에서 우릴 부른 건데 말이죠.”
“예?”
당서휘가 눈을 크게 떴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당가의 입장은 단순했다.
“쥐 죽은 듯 조용히 살아라.”
패도맹주의 뜻이기도 했고, 당가주의 결심이기도 했다.
그런 곳에서 패도맹의 차기 후계자를 초청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당서휘가 초운의 대변인 격인 적운에게 물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오, 검주?”
“음……. 소공께서 몇 달 전에 당가타의 한 대장간에 ‘애검’을 맡기셨는데, 오늘 찾으러 갔더니 이곳 본가의 누군가가 가져갔다 하더군요.”
적운이 중간에 애검이라는 단어를 강조하자, 당서휘는 물론이고 이야기를 듣던 직계 혈족들의 안색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 그래서요?”
“그 ‘애검’을 가져간 자는 말리는 대장간 주인을 두들겨 팬 것도 모자라, 따지려거든 검의 주인한테 당가의 본가로 찾아오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소공께서 이곳에 온 것이지요.”
“커헉!”
당서휘는 자기도 모르게 뒷골을 잡았다.
그러자 뒤편에 있던 그의 막내아들이 익숙한 듯 품에서 약을 하나 꺼내 넘겨주었다.
진정제로 쓰이는 청심환이었다.
물도 없이 급하게 약을 씹어 먹은 당서휘가 적운에게 물었다.
“그, 그 새끼가…… 아니, 그자가 누구요, 대체?”
“음, 뭐라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하군요. 아, 소공, 소공께선 기억나십니까?”
적운이 초운에게 묻자 초운은 모르는 척 눈을 굴리며 말했다.
“잘 떠오르지 않네요. 상황이 상황이었잖아요.”
“하긴, 어린 소년이 그토록 심하게 구타를 당했으니 마음이 여리신 소공께서 제대로 들으셨겠습니까. 이해합니다.”
적운은 평소 성격과는 달리 조금 능글맞게 얘기했다.
초운은 시시각각 변하는 당서휘와 그 뒤의 당 씨들을 바라보자 왠지 고소했다.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던 당현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저희가 찾겠습니다, 소공. 그 대장간이 어디입니까?”
당서휘가 외치듯이 물어 왔다.
그러자 이번에도 적운이 초운 대신 대장간의 위치를 설명해 주었다.
당서휘는 실로 오랜만에 호랑이라 불리던 옛 모습으로 변모하여 지시를 하기 시작했다.
“너! 너! 너! 셋은 당장 소공께서 들르셨다는 대장간으로 달려가, 대장간 주인을 데려와서 치료해라. 그리고 너! 너! 너! 너! 넷은 집법무사들을 소집하고 본가 안의 직계와 방계, 고용인들, 노비들, 똥개들, 개미 새끼들까지 한 마리도 예외 없이 모조리 연무장으로 모이게 해!”
그의 지시가 끝나자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각도 되지 않아 당현이 본가의 의원들에 의해 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대연무장에는 본가에 상주하거나 출퇴근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모였다.
당서휘는 그들을 모은 뒤 당가의 무사들에게 누구 하나 빠져나가는 이가 없도록 감시를 강화하게 했다.
그리고 그는 유일한 목격자인 당현을 심문하기 위해 의각으로 향했다.
* * *
의술에 일가견이 있는 조유성이 초반에 처치를 잘해 둬서 당현의 부상은 악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무공도 모르는 열다섯 소년에게 가해진 폭행으로는 최악이라 할 만했다.
왼팔에 금이 갔고 늑골이 네 대나 나갔다.
얼굴이 떡이 될 만큼 터지고 어금니 두 개가 나간 것은 애교로 보일 정도였다.
분명 무공을 익힌 자들이 구타한 것이리라.
얼마나 손속이 지독했는지 당서휘가 당현의 상태를 보자마자 얼굴을 찌푸릴 정도였다.
그는 당현이 누운 침상 옆에 앉아 손에 든 종이 뭉치를 넘겼다.
종이 안에는 당현에 대한 정보가 촘촘히 쓰여 있었다.
“흠. 당가타에 가게를 내는 것은 당 씨만 가능하니 방계일 테고……. 어디 보자…… 응? 피가 그리 멀지는 않구나? 오대조 할아버님의 대에서 분가했으니…….”
종이를 순식간에 다 읽은 당서휘가 당현을 향해 물었다.
“자, 신상 명세는 대충 알 것 같고……. 넌 내가 누군지는 알지?”
당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서휘를 모를 리가 없다.
본가 서열 5위의 장로 아니던가.
엄격한 호랑이로 불리며 가문의 규칙을 어기는 혈족들에겐 악몽과도 같은 원리원칙주의자.
부모가 돌아가신 다음 날에도 원칙대로 업무를 보았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당가타에 살면서 당서휘를 모를 수는 없었다.
“그래? 그렇다면 내가 여기 왜 있는지도 알겠구나?”
도리도리-
당현은 고개를 저었다.
되도록 말로 대답하고 싶었지만 입술이 심하게 부은 데다, 평소 당서휘를 무서워했기에 제대로 대답하기 어려웠다.
당서휘가 딴에는 가장 부드러운 표정이라 생각하는 표정을 지으며 당현에게 물었다.
“누가 너를 때렸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