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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향-142화 (142/217)

검향 142화

‘비무라……. 사부님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

초운은 사부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이기라 하기에 이겼는데, 왜 갑자기 비무를 벌이란 말인가.

그때 심판인 막구가 관중들에게 설명했다.

“자! 자! 우리 멋진 맹주님의 관용 덕분에 여러분이 비무를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무 보려고 돈 거셨다 회수하신 분들, 비무할 거니까 빨리 다시 거세요.”

그의 농담에 관중들이 폭소했다.

“그럼 간단하게 규칙을 설명하겠습니다. 일대일의 비무면 남은 한 명이 너무 유리해지겠지요? 그래서 각자 적을 정해서 비무를 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패배를 인정하거나 기절하면 패배. 상대가 치명상을 입으면 입힌 쪽이 패배입니다. 이건 그저 비무이니 불상사가 생기면 안 되니까요.”

설명이 끝나자 막구는 세 경합자들 앞에 서서 말했다.

“아까 맹주님 말씀 들어서 아시겠지만, 앞서 두 개의 과제는 무효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번 비무에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세 분 모두 건투를 빕니다.”

말을 마친 막구가 비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말끔히 치워진 비무대 위엔 경합자 셋뿐이었다.

당철이 말했다.

“승리는 내 것이다. 사흘 내내 설사하고 싶지 않다면 둘 다 물러나는 게 좋을 거야.”

경합 전에 비무 시 독과 암기의 소지가 허가되었던 당철이다.

독의 경우엔 치명적인 것은 쓸 수 없지만, 암기는 칠대금용 암기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당가가 자랑하는 암기술의 천재이기도 했다.

도수룡이 눈을 빛냈다.

“당 형이나 조심하시오. 당신은 확실히 나보다 느리니까.”

“윽.”

당철은 조금 전의 과제가 떠오르며 비무대 아래의 막구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와 시선이 마주친 막구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당철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하, 하여튼 빨리 시작하지!”

그가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비무대의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뛰어난 경공과 보법으로 상대를 피하며 암기를 날리는 당가의 무공은 거리가 가장 중요했다.

도수룡 또한 그런 그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그리고 허리춤에 묶어 둔 채찍을 풀어냈다. 혈교주의 직계만이 소유가 가능한 혈룡편이었다.

그는 적제를 존경하여 검을 수련했다. 하지만 좀 더 익숙한 것은 역시 이 채찍이었다.

채찍만 있다면 검막도 어설프게나마 흉내 낼 수 있으니 당철의 암기 따위는 쉽게 막아 낼 수 있으리라.

초운은 비무대 중간에 남고 말았다. 이런 비무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다수와 난전을 벌인 경험은 많다.

지난 수년간 검귀로 불릴 만큼 무수한 실전을 치르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은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도 없는데다, 적이 명확한 것도 아닌 뜨뜻미지근한 상황이라 적응이 힘들었다.

비무대 아래서 막구의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작!”

이란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당철의 우모침이 허공을 가득 메웠다.

초운은 화들짝 놀라 그것을 모조리 피했다. 그러나 우모침의 목표는 그가 아니었다.

파파파파팡---!

공기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핏빛의 채찍이 무수한 잔상을 일으켰다.

혈룡편의 독문무공인 용린벽(龍鱗壁)이다.

저 채찍의 경계는 용의 비늘처럼 촘촘하기 그지없어서 들어오는 모든 것을 갈기갈기 찢어발기리라.

그리고 정말 우모침은 용린벽을 뚫지 못했다. 하지만 당철의 암기는 우모침이 다가 아니었다.

소매 춤에서 튀어나온 두 자루의 혈륜(血輪)이 우모침을 막아내는 채찍의 가장자리로 날았다.

쾅---! 쾅---!

두 번의 굉음과 함께 혈륜은 부서져 버렸다.

그러나 당철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것이 바라던 것이었으니까.

도수룡은 자신의 코를 통해 들어오는 이물감을 느끼자마자 호흡을 멈추었다.

하지만 약간 늦었는지 진기가 흐트러졌다.

“신선폐로군…….”

내공을 흐트러뜨리는 산공독의 일종이었다.

그게 당철의 손에서 나왔다는 것은 보통의 신선폐보다 몇 배는 더 지독함을 뜻했다.

하지만 워낙 미량이라 도수룡은 금방 배출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사이 그의 채찍은 느려졌고, 당철은 그 틈을 노리지 않았다.

둘은 호적수였기에 서로를 너무도 잘 알았다. 그래서 인지 일진일퇴의 공방이 계속되었다.

주로 당철이 공격하면 도수룡이 방어를 하는 형태였다.

초운은 비무대 가장자리에서 둘의 살벌한 혈투를 지켜봐야 했다.

분명 그 또한 비무 참가자인데, 은근히 따돌림당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 쉽게 보였나……. 그런데 누굴 적으로 삼고 공격해야 한단 말인가. 어렵구나…….’

그러다 관중석 쪽을 바라보던 초운은 반가운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바로 서평과 엽성이었다.

손을 흔들고 싶었지만 지금은 엄연히 비무 중이라 그럴 수도 없었다.

대신 서평에게 전음으로 말을 걸었다.

-서 사형, 저 사람들이 저를 공격하지 않아요.

하지만 무공이 없는 서평이 전음으로 답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대신 서평은 엽성에게 답을 해주고, 그가 대신 전음을 날려 주었다.

-초운이 너를 만만하게 본 건 아닐 거야. 저 둘이 워낙에 견원지간이라더군.

-그랬군요. 이대로 어부지리를 노려야 할까요?

-그러면 너무 재미없지.

-그럼 어떻게 해요?

초운의 물음에 서평이나 엽성 모두 씩 하고 웃었다.

그들은 전음으로 답하는 대신 큰 목소리로 동시에 외쳤다.

“네가 둘 다 밟아!!”

잠시 후 정말 그 일이 벌어졌다.

초운은 보법경합 중에 보여 준 엄청난 경공으로 먼저 당철의 뒤에 섰다.

그리고 그의 목을 잡고 비무대 끝으로 집어 던졌다.

방해를 받고 화가 난 당철이 우모침을 모조리 쏘아 내자, 초운은 애검 처로를 들더니 아주 쉽다는 듯 모조리 쳐내 버렸다.

그리고 그대로 달려가서 검을 거꾸로 하고 손잡이로 당철의 복부를 찍었다.

당철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무릎을 꿇더니…….

“우웨에에엑…….”

온갖 것들을 다 게워냈다.

토사물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던 초운이 말했다.

“……아침에 생선을 드셨군요.”

당철은 화를 낼 수조차 없었다. 몸이 움직일 생각도 하지 못했다.

“크, 윽…… 너…… 너는…….”

“아프시더라도 참으세요. 내공을 잠시 흩어 두었으니 반나절은 갈 거예요.”

쉬이이익---!

그때 붉은색의 채찍이 초운의 목을 감아 왔다.

아니, 실제로 감겼다. 도수룡이 허를 찌른 것이다.

결과를 더 소중히 하는 패도맹에선 당연한 행위이기도 했다.

관중들은 야유를 했지만 패도맹의 무사들은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했다.

도수룡은 채찍으로 기를 흘러 넣음과 동시에 초운을 비무대 바깥으로 패대기칠 예정이었다.

하지만 채찍이 움직이지 않았다.

목이 조여 말을 못해야 정상일 텐데, 초운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편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채찍, 소중한 거겠죠?”

도수룡은 자기도 모르게 고갤 끄덕였다.

초운이 싱긋 웃더니 채찍을 잡고 그대로 끌어당겼다. 그러자 채찍을 잡고 있던 도수룡은 자기도 모르게 끌려왔다.

그 힘이 얼마나 세던지, 그는 마치 실 끊어진 연처럼 날아서 초운의 앞에 착지했다.

자기 목에 감긴 채찍을 가볍게 풀어버린 초운은 그 채찍으로 도수룡을 묶었다.

꽁꽁 묶인 도수룡은 그대로 패배를 자인했다.

“졌습니다…… 소공…….”

초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감사합니다.”

뭐가 감사하다는 걸까.

그때 당철의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나…… 먹어라!!”

붉은색의 가루가 초운과 도수룡에게로 향했다. 이것은 남만에서만 사는 붉은나방의 날개에서 채취한 독으로, 극독은 아니나 몸을 한 시진 이상 마비시킬 수 있었다.

하나 그저 그런 독이라면 당철은 지니고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독성이 약한 대신 초절정 고수에게도 통하는 장점이 있었다.

그리고 확실히 통했다.

“헤헤헤헤…… 어떠…… 냐…… 당가의…… 독이…….”

“콜록, 콜록!”

“……으윽?”

당철은 경악성과 함께 기침을 하는 청년을 바라보았다.

“콜록, 콜록, 콜록!”

“그럴…… 리가…… 기침조차 못할…… 분량일 텐데…….”

“예? 기침을 못해요? 잘 나오는데?”

“그…… 그럴…… 리가…… 우욱…….”

당철이 너무 심한 복통에 다시 무릎을 꿇었다.

이에 초운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래서 가만있으라고 한 건데. 복부를 통해 단전에 이종진기를 흘려 넣은 거라 움직일수록 아파요. 그리고 방금 그 가루, 혹시 기침하는 독인가요? 목이 너무 칼칼한데…….”

“커헉, 그럴…… 수가……. 너, 넌 설마…….”

당철은 결국 고통에 못 이겨 무너지듯 쓰러졌다. 하지만 끝내 기절은 하지 않았다.

그가 어렵사리 입을 열며 초운에게 물었다.

“설마…… 절…… 대…… 고수…… 냐?”

초운은 대답 대신 단상 위의 사부에게 눈을 돌렸다. 사부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게 절대경을 말하시는 거라면…… 맞아요.”

“커헉!”

얼마나 놀랐는지 당철은 게거품을 물며 기절하였다.

그의 독에 당해 뻣뻣하게 굳어 있던 도수룡도 눈빛만은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비무대 밑에 있던 심판, 막구가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관중들을 향해 미리 준비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무력 경합의 승리자는 우리 패도맹이 자랑하는 검성(劍星), 초운 공자였습니다! 놀랍게도 이분은 절대경에 이른 고수! 그것도 무림 최연소 절대고수였던 것입니다!!”

“와아아아아---!”

관중들의 입에서 이제껏 나왔던 함성 중에 가장 거대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젊은 무사들은 놀라운 솜씨를 보여 준 초운에 열광하였으며, 그의 진실된 정체에 감탄했다.

대부분이 패도맹 인근에 사는 양민들인 그들은 그런 엄청난 젊은이가 맹주의 제자이며 후계라는 점에 열광했다.

지금 벌어지는 현상은 특정한 우상이나 영웅이 탄생하는 과정과도 유사했다.

그리고 이것이, 적제가 노리는 것이었다.

七章

태양을 집어삼킨 먹구름으로 인해 흐릿한 하늘은 비를 내리고 있었다.

땅을 빨갛게 물들인 핏물이 서서히 씻겨 내려갈 때쯤, 시신의 산 위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던 소년이 중얼거렸다.

“비가 더 많이 올 것 같아, 제갈청.”

“…….”

“사부는 내 계획을 알고 있어. 내가 그 녀석을 죽이려 한다는 것도……. 하지만 말리지 않는다는 건, 실패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늘 밝기만 하던 소년의 얼굴이 웬일인지 지금의 날씨처럼 시무룩해 보인다.

“드디어 그녀의 마라검이 완성되었는데…… 나는 지금 망설이고 있어. 혹시 이 모든 게 사부의 안배가 아닐까? 나는 그저 그의 장기말처럼 움직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에.”

“…….”

제갈청은 묵묵히 비를 맞으며 자신을 바라볼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의지는 이미 마음속 깊은 곳에 봉인되었고, 홀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과거 제갈세가의 미래라 불리던 천재 제갈청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모습.

그의 그런 모습은 소년이 저지른 죄악의 증거였다.

그의 질투와 죄책감이 만들어 낸 비통한 결과물.

소년, 천응은 그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사실…… 나도 너와 같지 않을까 두려워. 나는 과거의 그날 이미 죽어버렸고,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 몸을 차지한 닮은 괴물……. 사부가 죽은 나를 살려 내어 불어넣은 인격이 아닐까?”

꼭두각시를 만드는 인형사는 자신이 또 다른 인형사의 꼭두각시가 아닐지 늘 두려워했다.

하지만 고개를 저으며 애써 부정하는 천응이었다.

그의 기원은 다른 제자들과 달랐다.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첫 번째 제자는 또 어떨지 모르지만, 적어도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데에서 오는 우월감이 있었다.

그는 마인이 분명했지만 마인이 되기에 앞서 곽호의 비술을 익혔다.

강력한 마인을 꼭두각시로 만드는 괴뢰술.

조롱의 현술도 사실은 곽호의 것이지 그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비술의 부작용에 시달렸다.

마공을 익히기 전 인성이 파괴되는 폐해를 막기 위해 몸에 새긴 온갖 비술은 육체의 시간을 멈추고 말았던 것이다.

자라지 않는 소년 천응이 잔혹한 마인 제갈청을 데리고 세상을 떠돌게 된 이유였다.

하지만 인성을 지키기 위한 비술은 소용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마인화시켜 꼭두각시로 만든 그는 극도의 자기혐오로 미쳐 버렸다.

현인마공(絃刃魔功)의 부작용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자멸하고 만 것이다.

찌꺼기밖에 남지 않은 마음속엔 오직 곽호에 대한 증오와 애정만이 남아 집착으로 변했다.

그는 곽호를 사랑하는 만큼 제거하고 싶어했다. 남들과 공유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은 곽호를 처음 본 50년 전 그날, 그가 제갈세가의 글 선생으로 찾아온 그날부터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

“제갈청, 나는 그의 장기말이라도 상관없어. 신마님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야. 하지만 그는 내 손으로 널 죽이고 너의 몸과 마음을 빼앗게 했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도 맛봐야 해. 아끼는 사람이 나락으로 떨어지는걸. 크흐…….”

천응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 여인이 가부좌를 튼 채 앉아 있었다.

그녀는 시체의 사기를 흡수하는 중이리라.

“그녀는 완성되었어. 그러니 이제 사천으로 가자, 제갈청. 뱀을 사냥하려면 수풀을 쳐야 하니까.”

그의 목소리에 제갈청이 움직이자, 그녀도 가부좌를 풀고 일어섰다.

천응은 평소와는 다른 음울한 눈빛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빗줄기는 거칠어지고 있었다.

천응은 다시 한 번 눈을 감으며 빗물이 얼굴을 때리는 것을 즐겼다.

얼마 후 그의 모습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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