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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향-138화 (138/217)

검향 138화

사람들로 가득 찬 대전은 시끄러웠다.

이들 대부분이 패도맹의 한 축을 차지하는 방파나 집단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엿새에 한 번 있는 정례 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패도맹은 반천련이나 천상련과 달리, 규모가 작은 방파도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대전 회의에 반드시 참가해야 했다.

심지어 문도가 겨우 네 명뿐인 문파조차 회의에 참가하고 발언을 할 수 있었다.

개인의 자격으로 참가한 무사도 있었다.

이는 살왕처럼 개인이 영입되어 온 경우이거나, 실력을 인정받아 간부에 오른 이들이었다.

그 때문에 패도맹의 대전은 굉장히 넓었다.

각 문파와 집단을 대표하는 수백 명의 무사들이 한자리에 모이기 때문이다.

이들 중 가장 큰 세력은 단연 패도맹의 전신인 귀천무단의 무사들이었다. 그리고 그 뒤가 바로 사천당가.

하지만 맹이 자리를 잡아 가면서부터는 후발 주자들, 그러니까 패도맹의 울타리에 들어온 방파들과 영입되어 온 무사 집단들도 제법 그 세가 커졌다.

힘이 부족하면 합치고, 그렇게 강해져도 더 세를 모으려 노력한 끝에 어느 정도 높낮이가 정리되고 줄맞춤도 끝난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제 개인의 자격으로 패도맹에 들어온 자들도, 하다못해 말단의 무사들까지 나름의 줄에 서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끝없이 경쟁하였으며, 경쟁의 대부분은 맹주에게 충성을 보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천검단이 들어와서 그런지 서로 간의 견제와 경쟁이 더 늘어났다.

천검단이 홀로 입지를 다질 것인지, 다른 세력에 붙을 것인지 모르기에 무한 영입 경쟁에 나선 것이다.

천검단만 잡으면 귀천무단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천당가를 뛰어넘는 최고의 세력을 구축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 덕분에 천검단의 검주 적운은 몇 달째 여기저기서 영입 제의를 받아 왔다.

지금 대전에서조차 수십의 인원이 적운을 둘러싸고 한 번씩 말을 걸고 있었다.

다행인 점이 있다면 그의 인내심이 아주 강하다는 거랄까?

그는 주변의 귀찮음을 물리치지 않고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그렇게 한참 동안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그를 괴롭히던 자들이 한꺼번에 사라지며 사위가 조용해졌다.

적운은 조용히 눈을 떠 보았다.

대전 안에서 그렇게 떠들던 무인들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조용해졌다.

그들은 하나같이 긴장된 얼굴로 대전의 끝 상단에 위치한 거대한 태사의에 앉은 한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내는 평상시 입던 빛바랜 도사복 대신 붉은색의 용포를 입고 있었는데, 차갑고 매서워 보이는 눈빛과 어우러져 매우 위압적이었다.

적운은 무림맹 시절부터 반천련에 몸을 담아 왔기에 천왕 송산과 같은 고수를 많이 봐 왔다.

그러나 그들에겐 저런 위압감은 없었다.

종류가 다르달까?

송산이나 살왕, 장왕 등 육왕칠사에 속한 고수도 위압감은 있다.

하나 그것은 무인으로서의 위압감이다.

쥐가 고양이에게서, 개가 호랑이에게서 느끼는 그러한 것들이다.

하지만 저 태사의에 앉은 패도맹주, 적오자라는 이름 대신 적제라 불리는 사람은 달랐다.

호랑이와 같은 위압감이 아니라 만인을 우러러보는 군주와 같은 기운이었다.

절대고수여서 얻은 후천적인 존재력이 아니라 날 때부터 타고난 기질.

운명의 힘이 느껴졌다. 저절로 우러러보게 되는 그런 힘 말이다.

그야말로 옛 시대에 존재하였다는 황제를 눈앞에 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대전 안의 인물들이 문무백관과 비슷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때 황제가, 아니 적제가 무거운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오늘 안건은 뭔가.”

그렇게 길고 긴 대전 회의가 시작되었다.

* * *

“벌써 시간이 이렇데 됐나?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군.”

중천에 뜬 해를 보며 중얼거리던 장왕이었다.

연무장 바닥에 큰 대자로 뻗어 있던 초운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오늘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그런데 대전 회의는 안 가셔도 돼요?”

“그 마영이라는 녀석에게 귀찮다고 전해 두었다.”

“저기 뒤에 오시는데요?”

“뭣이?”

장왕이 뒤를 돌아보자 과연 마영이 오고 있었다.

하지만 장왕을 잡으러 온 것 같진 않았다. 그의 시선이 초운에게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냐?”

“장로님을 뵙습니다.”

마영이 포권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소공께 전할 말씀이 있어서 오게 되었습니다.”

“너라는구나. 난 밥이나 먹으러 갈 터이니, 이야기 나누거라.”

혹여나 마영이 회의에 참석하라고 할까 봐 걱정했던 장왕은 그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자 마영이 부드러운 눈길로 초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소공…….”

“네, 마 총사님.”

“그냥 마영이라 부르시면 됩니다. 주군을 모시는 입장에서 소공께 총사님이라 들으니 난감하군요.”

“그래도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데, 그럼 안 되죠.”

마영은 이 작은 공자가 마음에 들었다. 누구보다 예의 바르고 착했다.

도대체, 저런 주군 밑에서 이런 제자가 어찌 나왔을지 의문일 정도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주군이 근심을 덜어버려서 좋았다.

원래 목적도 잊고 초운을 한참 동안 감상(?)하던 마영은 불현듯 떠오른 목적에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주군께서 대전으로 부르십니다.”

“네? 대전으로요? 저는 아무런 직위도 없는데…….”

“대전 회의는 직위를 크게 따지지 않습니다. 자기 제자를 경험 삼아 데려오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아, 그랬군요. 다행이다. 그럼, 잠깐 씻고 와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천천히 준비하십시오, 소공.”

대전 회의는 많은 인원이 모이는 만큼 안건도 많았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처음엔 적제의 위압감에 압도되어 아무런 말도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과잉 충성 경쟁으로 중소 문파 출신 대표들은 아부하기 바빴다.

그러나 몇 년이 흐른 지금은 맹에 관련된 모든 의견이 오가는 토론의 장으로 변했다.

작은 일들은 대부분 서류로 의견을 올리고 결재를 받는 식이었는데, 어느 정도 큰 안건이거나, 서류를 보내도 아니다 싶어 반송되는 안건의 경우 대전 회의에 반드시 올라왔다.

심지어 맹의 뒷간 개수를 늘리자는 안건이 토론의 주제가 되는 날도 있을 정도였다.

하여튼 그만큼 다양한 일들 덕에 패도맹의 대전 회의는 늘 떠들썩하고 시간이 오래 걸렸다.

‘오늘은 아마 창맹 이래 가장 충격적인 안건이 올라오는 날이겠지. 반발이 거셀 텐데, 어떻게 넘길지가 걱정이로군.’

얼마 후 다 씻고 나온 초운이 밝게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이만 가요, 마 총사님.”

마영은 웬일인지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어떻게든 되겠지.’

* * *

-정말이오, 당 형? 그 자식에게 포룡상회의 뒷배가 있다는 게.

전음으로 묻는 이는 바로 양룡문의 백하태라는 자였다.

당철은 그에게 눈길을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하태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후계자 경쟁으로 인해 서로 으르렁대던 다른 쪽의 후보들에게서 쉴 새 없이 전음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두 명이라야지, 다섯 명이 한꺼번에 말을 거니 귀찮아 죽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그런 와중에 대전 회의에 집중하는 척하는 것도 아주 곤욕이었다.

‘내가 맹주가 되면 이따위 난잡한 대전 회의 따위 다 끝내 버릴 테다.’

그렇게 다짐하는 당철이었다. 하지만 그때 우연히 누군가와 시선이 마주쳤다.

유일하게 자신을 향해 전음을 날리지 않은 인물. 그리고 그가 최고 호적수로 인정한 자이기도 했다.

‘도.수.룡.’

패도맹 유일의 정보 조직인 신안(神眼)의 당주인 도호성의 아들이자 신안의 천급 요원.

그리고 역사 깊은 혈교의 후예이며 귀천무단 측에서 유일하게 내세운 후계자 후보였다.

모든 것이 자신에게 밀리지 않는 유일한 인물.

평소 후계자 싸움엔 전혀 관심이 없고 구색을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려 나왔다고 변명하지만, 그 머릿속에 여우가 몇 마리나 살고 있을지 감히 추측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당연히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서, 지금도 우연히 눈 한 번 마주쳤을 뿐인데 서로 불꽃이 튀고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눈싸움이 깊어져 갈 무렵.

끼이이익---!

대전의 문이 열리더니 두 명의 인영이 안으로 들어섰다.

간혹 대전 회의에 늦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처음엔 다들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러나 그중 한 명을 알아보는 사람이 생기자 그것은 곧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그자는 최근 대외적으로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화제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저 청년이…….”

“그…… 검귀로군.”

“검성…….”

“주군의 직전제자…….”

이러한 정보들이 대전 안 여기저기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대전은 또다시 고요에 휩싸였다.

초운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을 반기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인지 다소 힘이 빠졌다.

미움 받는 데는 익숙했지만, 그래도 편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그를 반겨주는 이들도 있었다. 바로 귀천무단계의 간부들이었다.

“소공께선 신수가 훤하십니다.”

“요 며칠 안 보이시더니 바쁘셨습니까?”

“키야~ 역시 잘생기셨단 말이야. 주군이랑은 다르게.”

그들은 초운이 패도맹에 처음 왔을 때 누구보다도 기뻐해준 이들이었다.

사부와 생사고락을 함께한 전우이기에, 그리고 자신을 그리워하는 사부의 괴로움을 항상 보아 왔기에 더욱 반겨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귀천무단계라 해서 모두가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피로 물들인 것처럼 적미에 적발을 지닌 무서운 눈빛의 노인은 초운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다 차갑게 고개를 돌렸다.

그에 대해선 이미 알고 있었다. 바로 신안의 당주인 도호성이었다.

그는 몇 달 전에 한 번 인사를 나눈 이후로 단 한 번도 얘기를 한 적이 없을 만큼 초운을 멀리하였다.

이유는 다른 사람들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도수룡이란 아들에게 기대하는 것이 많아 저러는 것일 뿐 악감정은 없다고.

게다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사부가 그의 아들인 도수룡을 상당히 아껴 왔다고 들었다.

후계가 거의 확실하다고 여겼을 때 자신이 나타났으니 얼마나 억울하고 안타까웠을까.

초운은 그의 마음을 이해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렇다면 사부를 부정하는 일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때 사부의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어느 때보다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초운아, 이리 오거라.”

그리 말한 적제가 가리킨 곳은 바로 자신이 앉은 태사의의 바로 오른편 아래였다.

초운은 별 생각 없이 그곳에 가서 섰다. 한데 그것을 목격한 이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허락한 적 없던 자리였다.

진짜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최측근 마영마저도 대전에서는 저 자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제자를 저 자리에 서게 한 것이다.

대전 안의 인간들 모두가 속으로 경악했다.

그것은 귀천무단계라고 다르지 않았다.

물론 그들 대부분은 주군인 적제를 전적으로 지지한다.

하나 단 한 명, 도호성만은 달랐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눈동자만큼은 크게 치뜬 상태였다.

눈동자는 몹시 흔들리고 있었으며, 그 안에는 안타까움, 분노, 배신감 등이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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