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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향-121화 (121/217)

검향 121화

청연자에 의해 화산에 오르기 전, 잠시 들렀던 마을에서 당과를 처음 접했었다.

이후로도 당과는 여러 번 먹어 보았지만 그때의 맛은 다시 느낄 수 없었다.

“저도 좋아합니다.”

“정말…… 요? 어? 이상하다? 우리 사부님이 그랬는데, 당과 좋아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 아니랬는데?”

“그렇습니까?”

“맞아요. 우리 사부님이 그랬어요. 당과는 착한 사람만 맛을 아는 거라고, 당과 맛을 잊어버린 사람은 나쁜 사람이래요.”

이 순박한 소년의 말에 초운은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의 사부라는 이의 말에 공감하였기 때문이다.

곽호에 의해 죽은 어린 사제들을 떠올렸다.

왜 늘 생각해 주지 않았던 걸까.

뭐가 그리 바빴던 걸까…….

사람이 죽는 건 잊혔을 때라 했다.

곽호는 그들의 몸을 죽였으나 자신은 그들을 잊고 있었다. 기억해 줘야 할 유일한 이가 그들을 잊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뜬 그는 구양문의 대제자인 복문진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저기…….”

“예? 예?”

“제가 잘못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확실히 잘못 생각했다. 그는 검풍대와 육대세가의 척살대가 자신을 두고 다투던 것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을 쫓는 이들 간에 자중지란(自中之亂)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이렇게 순박한 이들마저 다칠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마 과거 자신의 손에 유명을 달리한 무인들 중에서도 이런 이들이 있었으리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의 마음은 더욱더 무거워졌다.

그래서 그는 이들을 계획에서 제외하기로 마음먹었다.

“뭘…… 말입니까?”

복문진의 물음에 답하는 대신 초운은 자신을 묶고 있던 포승줄을 간단히 풀어버렸다.

“헉! 무슨 짓을…….”

“제가 잡히기 전에 저를 뒤쫓던 자들을 봤겠지요?”

그의 말에 복문진은 조금 전의 일을 기억해 냈다.

분명 저 검귀를 쫓는 자들이 있었다.

검귀가 복문진들을 향해 항복하자 그들은 무슨 이유에선지 더 쫓지 않고 사라져 버렸지만…….

“네, 기…… 기억납니다.”

“십 장 앞에서 매복 중입니다. 확실히 하기 위해선지 동료들을 끌어모았군요. 기척으로 보아 백 명 정도 되는 듯합니다.”

“헉!”

숫자를 들은 복문진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그 역시 보고 들은 것이 많은지라, 지금 상황이 얼마나 위험하게 돌아가는 중인지 알 수 있었다.

보물을 가진 것이 죄라 했던가? 검귀의 목에 달린 현상금을 생각하면 당연했다.

복문진은 자신을 따르는 사제들을 돌아보았다.

저들의 목숨이 자신의 손에 달렸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지는 듯했다.

다행히도 그는 욕심이 없었다. 사문인 구양문의 문규처럼 가늘고 길게 사는 것이 꿈이자 목표였던 것이다.

“사제들! 우린 이만 가야겠네!”

“어디 가요? 고기 먹고 가야 하는데?”

다른 사제들은 다 눈치를 챘건만 포룡은 여전히 고기 타령이었다.

그게 답답하였는지 복문진은 인상을 쓰며 말했다.

“고기는 스승님께서 사 주실 거야!”

“아~ 그래요? 그럼 빨랑 사부님한테 가요!”

단순한 포룡은 바로 수긍했고, 복문진의 인상이 약간 풀렸다. 미우나 고우나 사제는 사제인 것이다.

그는 멀뚱히 서 있는 초운을 향해 포권하며 말했다.

“저…… 무운을 빌겠소.”

왜 이런 인사를 하는지는 자기 자신도 몰랐다. 목숨을 건지게 도와줘서는 아닌 것 같았다.

그저 그의 눈을 보고 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항간에 떠도는 검귀에 대한 소문과는 다른 맑고 순수한 눈빛이었다.

도저히 삼두육비의 악인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를 향해 초운이 마주 포권하며 말했다.

“악록산 인근은 위험해질 테니 멀리 가세요.”

“꼭 그리하겠소.”

그는 곧 사제들을 이끌고 그곳에서 벗어났다.

멀어져 가는 구양문의 사형제들을 바라보던 초운은 다시 한 번 죽은 사제들을 떠올렸다.

어쩌면 저 우애 좋은 사형제들의 모습은 자신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제들을 다독이며 웃고 화내고, 걱정도 하는 그런 삶 말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만약일 뿐이다.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었다.

저 멀리서 한 번 뒤를 돌아본 포룡이 인사하듯 손을 흔든다.

하지만 그는 손을 흔들어주지 않았다. 매복해 있던 자들이 매복을 풀고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어린놈들 피를 묻히기엔 찜찜했는데 잘되었군.”

“분수를 아는 놈들이어서 다행입니다요, 두목.”

이런 대화를 나누며 초운에게 다가온 이들은 딱 보기에도 사파의 무인들이었다.

그들을 향해 초운이 양손을 내밀며 말했다.

“누가 묶으실 겁니까?”

무인들은 놀라 서로를 바라보았다.

“미쳤다더니 사실이었구만?”

“암요, 안 미쳤으면 저 구양문 애송이들한테 항복할 이유가 있었겠습니까?”

초운은 그들을 향해 물었다.

“그들이 비록…… 애송이일지는 모르지만 사태 파악은 빨랐습니다. 저를 잡아간다면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괜찮겠습니까?”

“뭐라? 후회? 으하하하하하!”

초운의 말에 두목이라 불린 자가 크게 웃었다. 어찌나 목청이 큰지 주변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였다.

잠시 후 웃음을 멈춘 그가 자신을 따르는 무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는 이들이 보이지 않는 게냐? 무려 백 명이다! 백 명! 널 잡으러 여기 온 녀석들 중에 우리가 가장 쪽수가 많을걸?”

그는 검귀에 대한 소문을 조금 우습게 여겼다.

그럴 만도 했다. 수많은 이들을 참살한 검귀라고 하기에 무슨 괴물쯤 되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 보니 기루에서 기둥서방질이나 해 먹을 것처럼 곱상하게 생겼다.

게다가 보자마자 항복부터 하는데 깔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반천련에 속한 방파다. 그 누가 우리를 건드리겠느냐.”

“돈은 귀신도 부리는 법이라지요? 하물며 제가 지닌 가치는 돈뿐만이 아니라 들었습니다.”

초운이 말을 마치자마자 갑자기 서쪽과 북쪽에서 붉은 연기가 치솟았다.

그 연기는 초운도 알고 두목도 아는 것이었다.

“천라지망? 그럴 리가. 분명 검귀는 우리가 잡았거늘……!”

“현상금이 한두 푼 걸린 게 아닙니다. 작은 성을 살 수 있을 정도지요. 게다가 저를 잡으면 명예도 함께 얻을 수 있으니 제가 곧 천하의 보물 아닐까요? 스스로 잡아가 달라고 몸을 내맡긴…… 그런 보물 말입니다.”

검귀라는 이름 뒤에는 늘 희대의 살성(殺星)이라는 말이 뒤따른다. 그만큼 잡기 어려운 인물이었고, 잡으려 했다간 피해가 극심했다.

실제로 이곳 악록산에 모인 무인들 중 자신에게 그런 좋은 기회가 올 거라 여긴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호남 지부에서 절정고수들이 올 때까지 포위망을 유지하는 게 임무라면 임무였다.

헌데 그 희대의 살성이 스스로 목을 내민다? 당연히 일생일대의 기회라 여길 것이다. 더군다나 평소 만만히 보던 방파가 경쟁자라면 빼앗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었다.

“그럴…… 수가…….”

그가 더 놀라기도 전에 연기가 피어올랐던 곳에서 인기척들이 느껴졌다. 그것은 결코 한두 명이 내는 것이 아니었다.

두목이 칼을 빼 들며 외쳤다.

“젠장하아알!!”

뺏고 빼앗기는 혈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 *

“아니…… 었는가?”

을마지는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댔다. 적운 일행에게 속았음을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허탈함을 떠나 창피하기까지 했다. 자신이 이런 실수를 하다니…….

아니, 잘 생각해 보면 분명 허점이 있었다. 아마도 지나친 의심과 확신이 그를 여기로 이끈 것이리라.

혹시나 해서 두 번, 세 번 확인을 해 보았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분명 검귀였지 적운은 아니었다.

뒤늦게 쫓아가 볼까도 했지만 벌써 반나절 가까이 차이가 났다.

작정하고 숨을 터이니, 찾을 수는 있을 테지만 예전보다 더 완벽히 숨어버릴 가능성도 무시 못했다.

무엇보다 그 도도문의 장로는 은폐에 한해서 탁월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또한 쫓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너무 여유를 부린 것일까? 잡을 수 있는 기회는 여러 차례 있었다. 아니, 손녀와 원칙 간의 갈등이 너무 길었다. 그들에게 아흐레나 시간을 준 것도 그 마음의 갈등을 풀기 위해서 아니던가.

“휴…….”

육왕칠사에 이름을 올린 후로는 느껴 본 적이 없는 감각이 그의 몸을 지배했다.

그것은 패배감…….

실로 오랜만에 느껴 보는 감각이었다.

“허…… 허허허. 참으로 오랜만이구나, 이런 기분은…….”

그는 초운을 바라보았다.

초운은 아직 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자신을 두고 다투는 두 무리의 무인들 틈에서 교묘하게 몸을 움직여 치명상을 피하는 중이었다.

허나 양팔이 결박된 상태라 완벽하진 않았는지 여기저기 핏자국을 보이고 있었다.

“환(幻)이 경지에 접어들었구나……. 분명 오늘의 일도 저 아이의 계획이었을 테지.”

적운들만 있을 땐 이런 계획이 없었다. 알았다면 살아남기 위해 진작 쓰고도 남았을 녀석들임을 을마지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결국 저 검귀라는 아이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리라.

“화산의 문하라더니…….”

화산이라는 단어 덕분일까. 그의 기억 속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또 하나의 절대자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기질이 닮았다. 그는 천성이 도사일 수밖에 없는 도기였고, 그것은 저 검귀도 마찬가지였다.

저 나이에 환검의 경지가 상당한 것을 보면 분명했다. 오직 도사만이 이룰 수 있다는 화산의 검의(劍意).

그 뜻을 기술로써 익힌 자라면 환검의 오의를 엿볼 수 없다. 허나 그 요체를 마음으로 얻은 자라면 바람을 다룰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가 볼 때 검귀는 이미 바람을 얻은 듯 보였다.

‘화산은 복이 많군. 저런 아이를 남겼으니.’

그는 고민 중이었다.

화산의 마지막 희망을 남겨 둘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원칙대로 살행에 방해되는 것을 멸할 것인지…….

그의 이번 고민 또한 조금 길어질 듯했다.

* * *

도망친 구양문의 제자들로부터 초운을 넘겨받은(?) 방파는 용호방으로 전형적인 사파였다.

십 수 년간 입에 밴 호칭이기에 그들도 어쩔 수 없었다.

정과 사가 하나 되어 반천련으로 통합된 이후 조금 잠잠하긴 하였으나 그들의 근본은 사파.

그것도 도박과 매춘을 일삼고, 강도질을 서슴지 않던 흑도(黑道)였다.

용호방은 그중에서도 약탈은 일상이요, 살인과 강간은 취미라 불릴 만큼 질이 나빴다.

원래 도둑놈이 도둑질당하는 게 더 열 받는 법이라고, 그들은 갑자기 기습을 당해 분노하는 중이었다.

“검귀를 내놔라!”

“우리가 먼저 침 발랐다!”

“그래도 내놔!”

용호방주는 너무 억울하여 악이 받쳤다.

자신들에게 당한 놈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자신은 백 명의 무인을 거느린 방파의 주인이다. 말이 백 명이지 사실은 모든 전력을 다 데리고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호남 지부장인 우문석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였다.

다행히도 그것이 이점이 되었다. 실력이 고만고만한 놈들끼리는 머릿수가 곧 힘인 법.

덤벼 오는 놈은 패고 달려드는 놈은 걷어찼다. 하지만 점점 버거워졌다. 어느새 소문이 퍼진 건지 무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서로 연합하지 않는다는 거였는데,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이튿날부터 정파는 정파대로 사파는 사파대로 연합하여 용호방을 친 것이다.

그날 용호방은 검귀를 빼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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