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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향-111화 (111/217)

검향 111화

하지만 성 장로는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뭐가 전형적이라는 것인가?”

“사파나 마인들은 의외로 떳떳합니다. 나쁜 짓을…… 악행을 저지르더라도 굳이 숨기질 않지요. 개인차가 존재하지만 전체적인 성향이 그렇다는 얘깁니다. 천검단에선 이런 식으로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성향을 두고 전형적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당한 것은…….”

“네, 정파의 인물들이 배후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자기 손에 피 안 묻히고 더러운 짓을 하려 하는 악인들의 전형…….”

그때 벽호가 끼어들며 말했다.

“그럼 련으로 돌아가는 것은 자살행위겠군요, 검주.”

“그렇겠지.”

잠시 무거운 기운이 감돌았다.

뒤에서는 사신이나 다름없는 천하제일 살수가 쫓고 있고, 앞에는 검주의 목을 노리는 반천련이 있다.

그렇게 긴 침묵을 깬 이는 이번에도 적운이었다.

“벽호.”

“네.”

“각지의 만서(萬鼠)들의 위치는 숙지하고 있겠지?”

“당연합니다.”

벽호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만서란 정보원을 뜻한다. 세상이 천검단에 대해 한 가지 모르는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이 만서들의 존재였다.

그들은 천하 각지의 정보를 모아 검주에게 전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면 검주는 그들이 보내온 정보를 분류하여 악인에 대한 살생부를 만든다.

그리고 이들 만서는 각지에 흩어져 있는 천검단원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데도 이용되는데, 길들인 매를 이용하여 전서구보다 몇 배나 빠른 정보 교환이 가능했다.

만서는 이름만 다를 뿐 천검단의 일부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성 장로의 도움으로 몸을 반쯤 일으킨 적운이 벽호에게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더 이상 천검단이 위선자들에게 휘둘려선 안 되겠지. 귀주전선과 감숙전선의 천검들을 모조리 탈영시켜라. 천검단의 새 집결지는 호남이다.”

호남엔 반천련이 벌여 놓은 사업들이 꽤 많았다.

그것들이 타격을 입게 되면 반천련도 꽤 골머리를 앓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 적운이 천검단을 불러 모아 무슨 짓을 저지르려는 건지는 세 살 먹은 어린애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벽호도 알았다.

그가 씩 웃으며 일어섰다.

“명 받들겠습니다, 검주!”

* * *

“아…… 아…… 이것이야말로 난세의 향기로다. 좋다…… 좋아!”

이제 갓 약관을 넘었을까? 키는 작지만 상당히 준수한 외모를 지닌 청년이 코를 벌름거리며 중얼거렸다.

곁에 있던 꼽추가 그런 그를 향해 물었다.

“무슨 냄새…… 말입니까? 소인에겐 거름 냄새만 느껴지는 듯한데…….”

근처에 논밭이 많으니 당연히 코를 파고드는 것은 거름 냄새뿐이었다.

“모자란 놈 같으니…… 자고로 난세의 향기란…… 아니, 아니다. 어찌 뱁새가 황새의 뜻을 알리오.”

“아…… 네, 그러시겠죠.”

“……너 좀 비꼬는 것 같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소인이 어찌 주인님을 비꼬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지요. 자고로 주인님이 달이 네모나다 그러면 네모난 것이고, 태양이 차갑다고 하면 차가운 것 아니겠습니까? 원래 종놈은 말도 안 되는 소리에도 토를 달면 안 되는 겁니다. 암요, 그렇고말고요.”

“…….”

분명 옳은 소리이건만 듣고 나면 기분이 나쁜 건 왜일까.

청년, 귀면호리는 더운지 얼굴을 가리고 있던 부채를 연신 움직였다.

“그런데 길은 알고 가시는 겁니까요?”

“무슨 길 말이냐?”

“지금 그 곽호의 요청으로 길을 나서신 것 아닙니까?”

“그렇지.”

“그럼 그 화산 제자 놈이 어디 있는지 알아봐야 될 것 아닙니까?”

귀면호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답했다.

“그놈 위치라면 이미 알고 있는데?”

“에?”

“알고 있다고.”

“그럼 왜 이리 느긋한 겁니까!”

“네가 함정일지도 모른다면서. 왜 이리 서둘러?”

“그야 그렇지만…….”

“곽호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는 했다만, 언제까지 잡아다 주겠다는 소린 안 했다고.”

결국 밖에 나갈 구실이 필요했다는 뜻이다.

‘어쩐지…….’

“그럼 어디로 가실 겁니까?”

꼽추, 천루옥의 간수장 대명(大鳴)이 물었다.

귀면호리는 눈동자를 굴리며 한참을 생각하는가 싶더니,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젠장. 안 가본 곳이 없어서 가보고 싶은 곳이 없어!”

곽호보다도 훨씬 나이가 많은 그답게 천상련주에게 영입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여기저기 놀러 다니느라 바빴던 것이다.

대명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럼 가셨던 곳 중에 가장 보기 좋았던 곳이 어딥니까?”

귀면호리는 다시 한 번 길게 생각을 하는가 싶더니, 곧 얼굴을 활짝 펴며 말했다.

“당연히 호남이지.”

“휴. 그럼 거기로 가면 되겠군요.”

“좋아. 가자, 호남으로.”

제멋대로인 사고방식에는 익숙해졌는지 대명이 뒤에 서 있는 옥졸들을 향해 말했다.

“다들 호남으로 간다.”

* * *

그 시각, 육대세가 중 산동악가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가문에서 고르고 골라 모인 정예 척살대의 대주 남궁도(南宮渡)는 한 장의 밀지를 받아 보고 있는 중이었다.

“반천련이 우릴 돕는군.”

“알아내셨습니까?”

남궁도와 같은 남궁 씨인 청년이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남궁도가 반천련의 천이각주로부터 온 밀지를 구겨 입에 넣으며 답했다.

“우린 호남으로 간다.”

“호남……?”

“검귀는 그곳에 있다.”

일백의 척살대가 이끄는 말이 커다란 먼지를 일으키며 동쪽으로 향했다.

동쪽으로 닷새면 호남에 당도할 것이며, 그땐 검귀를 붙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몰랐다. 척살대의 뒤를 쫓는 은밀한 움직임을…….

열두 명의 창귀(槍鬼)들은 살기를 애써 감춘 채 그들을 따랐다.

그들이 모습을 드러낼 날은 척살대가 검귀와 조우하는 바로 그때가 될 것이다.

이렇듯 전 중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수많은 무인들이 움직였다. 제각각 목적이 다르기도 했고, 혹은 같기도 했으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누군가 그랬듯 세상은 난세에 접어들었고, 그것을 알리는 시발점은 호남이 될 것이다.

* * *

초운은 골치가 아팠다.

다름 아닌 낭인방의 세 낭인들 때문이었다.

“그 약속은 잊어도 좋다 하지 않았습니까.”

한숨을 푹 내쉰 초운이 거부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그래도 계약은 계약,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혈뢰검이었다.

“암~ 암~”

추임새를 넣은 것은 광혈마부였다.

“적어도 백월성이 잠잠해질 때까진 자네 곁에 있을 예정이네.”

귀궁이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말했다.

가장 위험한 곳이 가장 안전할 수도 있다.

낭인방의 방주가 입버릇처럼 하는 얘기다.

현천마녀를 작살내고 백월성의 백랑전주 혈월마저 꺾어버린 무림공적 청년은 비록 인생에 굴곡은 많으나 그래도 강했다.

그러니 어떻게든 곁에 있어야 했다.

그에게서 멀리 떨어지는 것은 위험하다.

백랑전의 고수들은 검귀를 잡기 위해서라면 고문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이미 초운과 한 배를 타 버렸음이 알려진 마당에 그들을 피해 갈 수 있으리라 생각되지 않았다.

“휴…… 어쩔 수 없군요. 대신 위험해져도 전 모릅니다.”

“위험할 일이 뭐 있겠는가. 자네도 어차피 도망 다녀야 할 입장인데. 조용해질 때까지 피해 다니면 되는 것을…….”

귀궁의 말에 초운이 정색을 했다.

“제가 언제 도망 다닌다고 했습니까?”

“아니었나?”

“받아야 할 빚이 있어 받으러 갈 생각입니다.”

“서, 설마 반천련에 쳐들어갈 생각은 아닐 테지? 무림공적으로 지정당해서 기분이 더럽다는 뭐, 그런 이유 때문에…….”

“반천련은 아닙니다. 게다가 그땐 분명 제 잘못도 있었구요.”

그리 말한 초운의 머릿속에 사악한 마인으로 화한 황현의 싸늘한 미소가 스치듯 떠올랐다.

그때 혈뢰검이 차갑게 물었다.

“그럼 어디로 갈 생각이냐?”

“사문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초운이 웃으며 답했다.

“사문……?”

광혈마부가 그리 읊조리며 귀궁을 바라보았다. 귀궁에게서 초운의 사문에 대한 답이 나올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귀궁은 답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혈뢰검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 성정만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살이 취미인 놈이었다니. 내 눈이 썩었나 보군.”

“화산은 이미 마인들의 본거지일세. 수백의 마인이 그곳에서 생사람을 잡아 정기를 빨아먹는단 말이네. 그것을 알고 있는가?”

귀궁이 묻자 초운은 슬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찌…….”

“받아야 할 빚이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가면 죽네. 십이면 십 죽어!”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지금 가지 않는다면 영원히 갈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허…….”

느낌. 그저 느낌 때문에 간단 말인가. 도사 출신이라더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소리만 하고 있었다.

“호남도 벗어나기 어려운데 섬서까진 어떻게 갈 생각인가?”

“찾아보면 방법이야 없을까요. 섬서에만 도착하면 되는 것이니…….”

“허허. 이거야, 원.”

귀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탄식했다. 그러다 우연히 혈뢰검과 눈이 마주쳤다.

“형님은 어찌할 생각이시오.”

“당연히 같이 못 가지. 저놈 따라가면 마인들 한 끼 식사밖에 더 되겠느냐?”

귀궁이 역시나 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초운에게 말했다.

“어쩔 수 없군. 우린 여기서 헤어져야겠네.”

“잘 생각하셨습니다.”

“설마 우릴 떼어 놓기 위해 거짓을 말한 것은 아니겠지?”

“속았다 생각되면 다시 찾아오셔도 무방합니다.”

“알았네. 무운을 빌지.”

현실적인 귀궁이 가장 먼저 등을 돌려 사라졌다. 그 뒤를 광혈마부가 따랐다. 하지만 혈뢰검은 떠나지 않았다.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고 우물거리는 것이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였다.

“안 가십니까?”

“간다, 가!”

혈뢰검이 발끈하며 외쳤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걸음을 떼지 못했다. 뭔가 갈등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초운은 하는 수 없다는 듯 먼저 걸음을 옮겼다.

그가 등을 돌려 사라지려는 순간, 혈뢰검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거…… 어떻게 한 거냐?”

“예?”

초운이 다시 등을 돌리며 되물었다. 그러자 그가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그것 말이다. 혈월을 쓰러뜨린…….”

“아…… 특별한 초식은 아니었는데…….”

그것은 초운 스스로가 깨달은 환검의 개념을 표출한 것에 불과했다.

앞으로는 그가 익힌 매화검류에 얻은 것을 섞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도 그것을 미완성이라 여겼다.

머리로 알고 하는 것이 아닌 몸이 알고 하는 것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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