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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향-107화 (107/217)

검향 107화

그 힘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덧없는 것이고, 그 끝에 어떤 파멸이 기다리고 있는지 잘 알고 있기에 그는 마인들을 불쌍히 여겼다.

조유성은 눈을 부릅뜬 채 죽어 있는 마인의 눈꺼풀을 감겨 주었다.

짧은 애도를 끝낸 그는 적오를 향해 다시 말했다.

“중원의 마공은 누군가 심어주는 형태인 건가요?”

“그럴 리가……. 마공은 배우는 것도 힘들지만 안정화시키기 위해 수많은 인간의 목숨이 필요하다. 결코 남이 심어 준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지.”

그러자 조유성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들의 마정은 자신의 것이 아닌 듯 보입니다. 누가 인공적으로 주입한 듯하군요. 아, 그렇다고 마인이 아니라는 건 아닙니다. 자의든 타의든 마정이 생긴 이상 마인은 마인이니까요.”

“화산을 공격했던 마인들은 강시처럼 양산된 것이라 들었다.”

“그런 가짜들과는 다릅니다. 제가 여기서 본 시신들은 자아도 있고 광폭한 진짜 마인들입니다.”

그들의 대화를 듣던 귀천대주 소호가 어깨를 으쓱하며 중얼거렸다.

“바야흐로 마인을 찍어 내는 시대라 이건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안정화가 덜 되어 힘이 부족하더군요. 이런 마인들은 스스로 마공을 연성한 마인들보다 몇 배는 더 노력을 해야 강해집니다. 찍어내도 곧바로 큰 성과를 내긴 어려운 것들이지요.”

“노력이라 함은?”

소호의 물음에 조유성이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다.

“사람을 덜 잡아먹었다고 봐야지요.”

“…….”

“마공은 어떤 식으로든 타인을 희생시켜야 강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래로부터 마인들은 희생자를 두고 먹을 것에 비유했지요. 아, 그러고 보니 대표적인 마공이 있습니다. 바로 흡정마공.”

적오도 그렇고 나머지 귀천대원들도 그렇고 어느새 모두가 조유성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한마디 한마디가 앞으로의 싸움에 도움이 될 게 분명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몇 년의 시간과 이끌어 줄 마인이 존재한다면 말이 달라집니다.”

마인의 마정은 무인으로 따진다면 단전의 진원지기를 뜻한다.

때문에 스스로 연성해야 그 농도가 진해진다.

마인이 죽게 되면 마정 또한 깨지는데, 간혹 전혀 깨지지 않은 마정이 튀어나오게 되고, 이는 타인에게 이식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마정을 이식하더라도 스스로 연성하여야 힘을 얻을 수 있지만, 정말 수준 높은 마인이 나서서 그 연성을 앞당겨 준다면 몇 단계를 한꺼번에 뛰어넘을 수도 있는 것이다.

“정말 그런 놈들이 있다면 큰일인데? 누군가에게 마정을 심고 그걸 이끌어 줄 마인만 있다면 언제든 구대호법신마 같은 놈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얘기잖아.”

조유성의 말을 듣던 이들 중 누군가가 말했다.

“괜찮을 겁니다. 마인이란 본래 욕망의 덩어리라 남 잘되는 꼴은 못 봅니다. 저처럼 마도를 걷는 자 중에 절대경에 이른 자가 있다면 또 모를까, 마인이 마인의 힘을 키워 주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이득 될 게 없으니까요.”

조유성이 확신에 찬 말로 답해 주자 곁에 있던 소호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마도를 걷는 자 중에 절대경의 고수라…….”

조유성은 그가 생각하는 바를 금세 알아채고 설명을 이었다.

“그 또한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도사가 절대경에 이른다면 그것은 곧 신선이 되길 갈망하는 선인(仙人)이라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무인이 이룬 절대경과 도사가 이룬 절대경은 그 가치가 다르다고들 하지요. 무인의 절대경은 그것이 곧 끝이고 한계입니다만, 도사가 이룬 절대경은 그것이 곧 새로운 경지로의 시작이니까요. 쓸데없는 업을 쌓아 수행의 성과를 망칠 도사는 없듯 마도를 걷는 자 또한 같습니다.”

도사 출신인 적오는 이해할 수 있었다.

불심 깊은 고승이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정심(正心)한 마음을 지니고 있듯, 마도를 걷는 자 또한 마찬가지다.

올바른 마음과 선한 의도를 지닌 이가 마인을 만들어 낼 리 없는 것이다.

마도는 어디까지나 마(魔)를 바라보고 연구하는 것이지, 마(魔) 그 자체는 아니기에 오히려 도문의 도사들보다 마경에 들기 어렵다.

하지만 적오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늘 그렇듯 하늘은 변덕이 심하다. 불가능한 것이라도, 아니 설사 천기에 어긋난 것일지라도 인세에 내보냄을 주저하지 않는다.

게다가 오래된 고서에는 반선이나 악선 같은 타락한 존재들도 등장한다.

득도를 앞둔 선인(仙人)조차 마경에 빠지면 그리되는 것이다.

그러니 마도를 걷는 자라 해서 특별할 것은 없었다.

만일 세상 어디엔가 그러한 이가 존재한다면? 그래서 틀에 찍듯 상위 마인을 찍어 낼 수 있다면?

인세는 지옥으로 변할 것이 분명했다.

* * *

아주 낮은 발자국 소리가 어둡고 긴 복도를 울렸다.

소리의 주인은 턱수염을 곱게 기른 중년의 사내로, 피곤한 듯 눈 밑은 검고 볼이 홀쭉했다.

그러한 점만 뺀다면 상당히 사내다운 인상이었으나, 다년간 천인금신법(天人禁身法)과 같은 봉인대법을 펼치고 여러 독물에 스스로를 노출시킨 결과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는 인간에 대한 애증으로 득도를 거부한 마도의 현인(賢人)이었으며, 세상 사람들에게 흑마(黑魔)라 불리고 있는 절대자 곽호였다.

그는 지금 천루옥에 와 있었다.

그와 앙숙인 귀면호리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방문한 것이다.

물론 천상련의 부련주인 오일상에게 허가증을 받았으니 드나들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단지 귀면호리의 수하들의 따가운 눈초리가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수많은 죄수들의 피와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천루옥.

이십 년 전, 그는 이곳에 한 죄수를 가두어 둔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죄수는 그가 이곳을 찾게 만든 이유였다.

복도의 끝에 도달한 곽호는 이 장에 달하는 거대한 철문 앞에 섰다. 그리고 약간의 공력을 일으켜 철문을 밀었다.

철문은 그 무게만도 오백 근에 달하는 강철로 이루어져 있건만 너무도 손쉽게 열렸다.

문 안쪽의 어둠은 불길해 보였으나 그는 개의치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짐승의 썩은 내가 코끝을 찔렀다. 동시에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입니다, 사부.”

“그래, 이십 년 만이구나.”

곽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그러자 어둠으로 휩싸인 공간에 아주 약한 빛이 생성되었다.

그라면 더 밝은 빛을 만들어 낼 수도 있었지만, 빛을 싫어하는 제자를 위해 일부러 그렇게 했던 것이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형상이 드러났다.

그의 전신은 두꺼운 쇠사슬로 감겨 있었으며, 쇠사슬 곳곳에 괴황지로 만든 부적이 수백 장이나 붙어 있었다.

만약 부적들이 오래되어 너덜너덜하지 않았다면 그가 쇠사슬에 묶인 것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곽호가 그에게 물었다.

“정신은 좀 차렸느냐?”

“……이젠 제어할 수 있습니다. 많이 먹었으니까.”

제자의 대답에 곽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확실히 짐승으로 보이는 뼛조각부터 인간의 것으로 보이는 것까지, 다양한 뼈들이 보였다.

곽호는 제자의 암멸마공(暗滅魔功)이 경지에 이르렀음을 깨달았다.

게다가 조금 전부터 뇌옥의 어둠이 자신의 호신강기를 침식해 오고 있었다.

물론 침식한다 해서 침식될 리는 없다.

그는 마도의 길을 걷는 자. 암멸마공 또한 그가 이해하는 마(魔)의 부정적인 일면일 뿐이다.

이십 년 전 그는 제자에게 전대 암멸마인의 마정을 심었고, 암멸마공을 전수해 주었으며, 제대로 자리 잡게 하기 위해 마기를 넣어주었다.

그걸로도 부족하여 이십 년 동안 이 천루옥의 어둠에서 폐관 수련을 시켰다.

이 제자는 그가 만들고 키운 네 명의 마인 중 가장 걸작이라 할 수 있었다.

절대고수의 능력을 지닌 마인일지라도 진짜 절대고수 앞에선 그저 힘세고 빠르기만 한 바보로 보인다.

그나마 무공과는 다른, 마인이 익힌 마공의 특별한 능력으로 그 차이를 메우지만 그것도 얼마 안 되어 파훼되게 마련이다.

즉, 진정한 무리를 깨달은 이들 앞에서 마인의 능력 따위는 잔재주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곽호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이 제자는 그러한 차이를 뛰어넘는 진마(眞魔)였다.

모든 것이 다른 마인들과 같았다. 무공 수위는 절정고수이거나 그보다 못한 수준.

하지만 절대고수들이 잔재주라 여기는 마인의 능력, 그 능력이 천외천이라 할 수 있었다.

어둠을 움직여 모든 사물에 안식을 내려주는 그의 마인으로서의 능력은 절대고수라 해도 쉽게 빠져나갈 수 없다.

그야말로 마인 중의 마인.

마인의 정점에 설 존재였다.

곽호가 손가락을 튕겼다.

챙---!

채챙---!

제자를 감싼 쇠사슬이 끊어지며 쇠사슬에 붙어 있던 부적이 타올랐다.

굶주린 마인이 서서히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원하는 게 뭡니까, 사부.”

어둠 속에서 반원형의 파동이 곽호의 호신강기를 건드렸다.

마인으로서의 능력, 죽음의 기운이 그를 스친 것이다.

제자가 사부를 죽이려 한다. 하지만 그것이 더욱더 곽호를 기쁘게 하였다.

그 성취가 자신이 원하던 것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암멸마인의 귓가에 죽여야 할 자들의 이름이 새겨졌다.

五章

광동에서 제법 잘 나간다는 삼 인의 낭인, 광동삼호.

이들은 낭인방에 이름을 올린 낭인들로서 모두가 절정경에 이른 고수였고, 이 중 혈뢰검 이도성은 초절정에 달했다고 한다.

절정경의 고수 셋이 모였으니 무서울 것이 없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현재 이송 중인 검귀에게 온갖 금제를 다 가했다.

혈도를 점해 놓는 것은 기본이었고, 전신을 포승줄로 묶어 놓았으며, 그것도 모자라 두 시진에 한 번씩 미혼향을 맡게 했다.

헌데 광동삼호는 이조차도 불안했는지 최근엔 양손과 목에 항쇄(項鎖 : 목에 씌우는 칼)를 채웠다.

그것도 일반적인 항쇄가 아니라 강철을 통째로 주조하여 만든 것으로, 그것만도 무게가 오십 근은 족히 넘었다.

부상을 입은 이에게 다소 심한 처사라 할 수 있었으나 광동삼호의 이 같은 금제는 당연했다.

그들이 이송 중인 검귀는 무림공적으로서 수 년간 전 중원의 고수들에게 쫓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 한 번도 잡히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을 쫓던 고수들을 모조리 도륙해 버린 전과가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 전과로도 모자랐는지 최근에는 그 유명한 현천마녀까지 참살했다고 한다.

현천마녀가 누구인가. 천상련의 구대호법신장 중 하나이자 수많은 무림고수들의 정기를 빨아먹고 최고의 내공을 얻었다는 무서운 마녀가 아니던가.

광동삼호로서는 감히 꿈도 못 꿀 상대였다.

때문에 검귀를 금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조금 전 그들은 의뢰인과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곳에 의뢰인들은 없었다.

아니, 있긴 했는데 다들 돈을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약속 장소는 의뢰인들의 시체로 뒤덮여 있었다. 그냥 딱 봐도 오백 이상이다.

그들이 의뢰인들과 만나기로 한 곳은 호남성 회화(懷化)인근의 한 장원으로, 의뢰인들은 검귀에 의해 친인척을 잃어버린 중소문파들이었다.

못해도 열 개 정도의 문파가 힘을 합쳐 현상금을 내건 것이다.

그들은 이 준비된 장원에 모여 검귀를 공개 고문하려고 했다.

실제로 고문 도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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