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향 104화
화살은 사각을 통해 날아왔다.
분명 보고 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늘을 향해 곡사로 쏘아 올린 것이리라.
손가락 마디 굵기의 화살이 성 장로의 어깨에 틀어박혔다.
“커헉!”
“영감!”
그의 어깨에서 피가 튀자 제일 먼저 놀란 것은 벽호였다.
평소 사파의 늙은이라 비난하며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도, 막상 일이 터지니 그는 성 장로를 걱정했다.
성 장로의 어깨에서 흘러나오는 피에서 역한 냄새가 풍겼다.
“독이로군…….”
적운이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화살에 맞자마자 이렇게 지독한 냄새를 피우는 독이라면 극독임이 분명했다.
경험 많은 성 장로는 곧바로 화살을 부러뜨려 뽑아버린 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언제 또 화살이 날아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독으로 인해 먼저 죽게 생겼으니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벽호가 그의 호법을 서주었다.
핑---!
다시 한 번 화살이 떨어졌다.
그러나 이번엔 적운과 벽호도 방심하지 않았다.
화살이 날아오는 소리를 잡아낸 적운이 검으로 화살을 쳐냈다.
여전히 화살의 목표는 성 장로였다.
그것은 적이 어디선가 이곳의 상황을 인지하고 있음을 뜻했다.
벽호가 이를 갈며 성 장로에게 말했다.
“나무 뒤로 숨어야겠소, 영감! 어깨를 잡고 움직일 테니 운기조식은 풀지 마쇼.”
화살이 언제 날아들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인데도 성 장로에게 미리 설명을 한 이유는, 운기조식 중엔 갑작스러운 충격에도 주화입마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지금처럼 독에 저항하고 있는 상황에선 더욱 위험했다.
피핑---!
이번엔 두 발의 연사였다. 놀랍게도 하나는 서쪽에서, 또 하나는 북쪽에서 날아왔다.
약간의 시간차가 없었다면 두 명이 동시에 쏘는 줄 알았으리라.
이번에도 적운이 화살을 쳐냈다. 하지만 곧바로 또 한 발이 날아왔다. 이번엔 남쪽에서였다.
초운의 어깨가 길게 찢어지며 화살이 스쳐 지나갔다.
“젠장! 괜찮나, 검귀?”
벽호가 욕지거리와 함께 물었다. 그러나 초운은 대답할 수 없었다. 독이 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짧은 운기조식을 마친 성 장로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학정홍이네…….”
“학정홍? 당가의 독이잖아. 그거 분명 문외불출이라며 관리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귀궁이 어찌 그런 귀물을…….”
“한 오십 분의 일 정도로 희석된 학정홍일세. 안 그랬으면 나나 검귀나 즉사했겠지.”
“이제 괜찮은 거요?”
벽호의 물음에 성 장로가 고개를 저었다.
“학정홍이 괜히 절대지독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네. 희석되었다곤 하나 내 목숨도 얼마 남지 않았어.”
성 장로는 자신의 목숨이 걸린 일인데도 덤덤히 말했다.
사실 아직 늦지는 않았다.
본래의 독에 비해 그 양이 많지 않고 희석되어 있기까지 하니 적당히 쉬면서 운기조식을 하고 좋은 약을 먹으며 한두 달 정양하면 회복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 그런 호사는 불가능했다.
아마 못해도 반 시진…… 그 시간을 넘긴다면 대라신선이 와도 그의 목숨은 살릴 수 없으리라.
“이 새끼들…… 다 죽여 버리겠어!”
벽호가 검귀를 내려놓더니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달려가려 했다. 그러나 적운이 그를 막았다.
“진정해라, 벽호. 귀궁이 노리는 게 그거다. 우리를 서로 떼어 놓으려는 거지.”
그때였다. 중독되어 얼굴이 하얗게 질린 초운이 그를 향해 말했다.
“나를…… 나를 넘기면 됩니다.”
그는 내공이 잘 돌지 않은 상태인데도 잘 버티고 있었다. 강력한 기초를 쌓으며 얻은 튼튼한 육체 덕분이었다.
적운은 그의 의견을 단호하게 잘랐다.
“너를 악도들에게 넘기는 건 정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역시 설득은 통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자신은 무림공적에 불과하다. 헌데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까지 만드는가.
초운은 신념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자신에게도 그 비슷한 것이 있었다. 아니, 한때는 그것을 신념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니, 무공은 그저 자신이나 타인과의 약속이었지 신념과 같은 숭고한 것이 아니었다.
무공은 강해지기 위해 배웠다기보다 사랑받기 위해, 칭찬받기 위해 익혔다.
그러다가 하나하나 알아가는 게 즐거워졌고, 나중에 가서는 아주 좋아졌다.
그러나 그뿐이다. 무언가 간절히 원하거나 지키려 한 적은 없었다.
신념이라는 것은 곧 간절함. 초운에겐 그 간절함이 부족했다. 하지만 이제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당신들이 나를 두고 떠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독에 저항하지 않겠습니다.”
“뭣이!”
초운은 간절한 염원을 담아 다시 말했다.
“나로 인해 타인이 다치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어차피 저는 무림공적……. 그냥 두고 가세요. 그럼 그들도 쫓지는 않을 겁니다.”
“…….”
초운이 성 장로를 가리키며 다시 말했다.
“더 늦는다면 돌이킬 수 없을 테니, 저분을 어서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세요.”
벽호는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성 장로에게 터벅터벅 걸어가 어깨에 짊어졌다.
“……벽호!”
적운이 그를 불렀다.
죽어버린 동료는 어쩔 수 없으나, 죽어 가는 동료는 반드시 구한다.
천검단의 정신을 가장 강하게 이어받았다는 벽호의 신념이었다.
적운이 그를 부단주로 앉힌 것은 정의로운 마음도 마음이었으나, 그의 동료애가 가장 컸다.
동료를 위하는 마음 또한 정의 아니겠는가.
정의를 외치다 소중한 것을 잃는 경험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벽호를 부단주로 내세운 것이다.
가끔은 자신의 길이 정말 정의를 위한 길인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벽호는 검주인 자신과는 다른 길을 걸으려 했다.
적운은 눈을 질끈 감았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웬일인지 귀궁의 화살도 더 이상 날아오지 않았다.
잠시 후 감았던 눈을 뜬 적운이 허리춤에 찬 검을 풀었다. 그것은 초운의 애검으로, 잠시 맡아 두고 있었던 것이다.
“받아라.”
초운은 갑작스레 돌아온 처로를 붙잡았다.
앙탈이라도 부리는 걸까. 처로의 검신에서 나직한 검명이 울렸다.
검을 돌려준 적운이 그에게 말했다.
“공정한 조사를 받게 해주고 싶었다.”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디 살아남길 기원하마. 그땐 다시 내 손으로 잡아 주겠다.”
“당신 손에 잡힌 적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다시 만나길 기원하겠습니다.”
괴뢰사 천응이 데리고 다니던 마인 제갈청.
초운이 그의 초혈마공에 당하지 않았다면 천검단은 감히 그를 잡아 두지 못했을 것이다.
적운은 피식 웃으며 등을 돌렸다. 성 장로를 짊어진 벽호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 * *
“떠났군.”
“정말이냐? 귀궁.”
광혈쌍부가 귀궁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귀궁이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대며 눈살을 찌푸렸다.
조용히 하라는 신호였다.
귀궁은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땅에 귀를 대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발자국 소리를 잡아내기 위해서였다.
부상자 둘 중 한 명은 남았고 한 명은 동료들과 떠났다. 이것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귀궁이 혈뢰검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역할은 다했으니 그가 필요해진 것이다.
“가보시오, 형님. 아마 넷 중 한 놈은 남아 있을 게요.”
“수고했다.”
혈뢰검이 거칠게 수풀을 건너며 그 장소로 달렸다. 남겨 두고 간 것이 그 공적 놈이면 좋지만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적에게서 필요한 정보를 빼내는 법은 수십 가지나 알고 있었으니까.
초운은 몸 안의 독을 제어하기 위하여 운기를 시작했다.
내상으로 인해 내력의 순환이 어려운 상태였지만 가만히 있으면 제아무리 체력이 뛰어나도 버티기 어려웠다.
그래서 운기를 시작한 것이다.
지난 한 달여의 시간 동안 공력은 많이 돌아왔다.
단지 경맥이 문제였다.
단전을 물이 시작되는 수원지라 가정한다면 경맥은 강이다. 수원지에서 시작된 물줄기를 바다까지 이어 주는 강 말이다.
강이 제구실을 못하니 수원지의 물은 고이기만 할 뿐 배출이 어렵다. 경맥이 굳어버린 것이다.
주요 경맥을 다시 뚫는 데 못해도 두 달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고수가 진기를 인도하면 보름도 안 걸릴 테지만, 무림공적의 입장에서 그것까지 바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 지금 그의 앞에 서 있는 혈뢰검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크…… 역시 말로만 정의였군.”
혈뢰검은 초운을 두고 사라져 버린 적운을 비난했다.
정의니 뭐니 지껄여도 자기 자신이 제일 중요했던 것이다. 이래서 악당보다 위선자가 더 싫었다.
혈뢰검이 검집에 검을 넣으며 말했다.
“이봐, 천검주에게 고맙게 생각해라. 그자가 여기 있었다면 어쩔 수 없이 네 목만 취하고 도망가야 했을 테니까.”
살려 줄…… 생각인가? 초운이 운기를 잠시 멈추고 혈뢰검을 바라보았다.
혈뢰검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산 채로 데려가면 오만 냥 추가거든.”
아마 세상의 고문이란 고문은 다 준비되어 있겠지.
어두운 미래가 엿보임에도 초운은 작은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면 기회는 온다. 무림공적으로 쫓기던 시절에 배운 교훈이었다.
“웃어? 미친 거냐?”
혈뢰검이 의아해 하며 묻자, 초운이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그 추가된 현상금을 다 못 챙길 게 분명하니 웃었습니다.”
“뭐?”
초운은 귀궁의 화살에 의해 생긴 상처를 보여 주며 말했다.
“저 역시 중독되어 있거든요.”
그 소릴 듣자마자 혈뢰검의 안색이 돌변했다.
그는 휘파람을 길게 불었다.
그러자 얼마 안 되어 한 명의 거인과 한 명의 사냥꾼이 그 앞에 나타났다.
혈뢰검이 그들 중 사냥꾼 복색을 한 사내에게 말했다.
“귀궁! 네 독에 당했다.”
“이런……!”
귀궁이라 불린 사내의 안색이 변했다.
그는 품에서 옥병을 하나 꺼내 마개를 열어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초운에게 다가가더니 상처 부위를 잡고 옥병을 슬쩍 기울였다.
하얀 액체가 상처에 닿자 초운은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따가운 정도가 아니라 뜨거웠기 때문이다.
옥병 안의 액체가 반 정도 남자 귀궁은 잠시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포기한 듯, 그것을 초운의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
“피독수(避獨水)다. 진짜 학정홍도 아니니 해독은 될 거다.”
초운은 군말 없이 옥병을 입에 대고 단숨에 마셔 버렸다.
여기서 더 나빠질 일도 없으니 마셔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해 봤자 죽기밖에 더 하겠는가.